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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17|조회수28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신앙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자신이 지닌 신앙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과 평가, 성찰과 계획은 필수입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측면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 초심자 시절 지니고 있었던, 조금은 철없는 초보 신앙, 자기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이 아직도 그대로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직도 신앙을 내 마음의 위안과 평화, 만사형통의 도구로 생각하고, 크신 하느님을 그저 끝도 없는 내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가짜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마냥 졸라대기만 한다면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성모님의 신앙 여정이 정말이지 탁월하고 위대하며 돋보입니다. 그분의 신앙 여정은 우리 신앙 여정의 진정한 모델이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자렛의 소녀 시절, 마리아의 신앙은 작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크신 하느님의 초대앞에 의혹과 의구심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도와 묵상, 끝도 없는 시련과 고통에 대한 성찰은 그녀의 신앙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기쁨과 축복, 성공과 승리도 선물로 주시지만, 때로 우리를 더 큰 그릇으로 성장시키려고 혹독한 실패와 고통 슬픔과 좌절도 맛보게 하십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좀 더 당신 마음에 드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펄펄 끓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그런 노력 조차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 안에 벌어지는 만사를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시련과 역경도 주님 섭리의 손길 안에 바라보는 것, 성숙한 신앙생활, 주님 마음에 드는 기도 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더이상 저 자신의 성공이나 건강, 승승장구나 만사형통, 축복을 청하는 기도는 드리지 않습니다. 그간 주님께서 베푸신 것 생각하면 흘러넘치도록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청하기보다 무엇을 주님께 드릴까 고민합니다. 내게 다가오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 역경과 시련, 병고와 죽음까지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마태오 6,7-15  
 
주님의 기도로 모든 것을 얻어내는 방법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아주 뼈 있는 경고를 덧붙이시죠.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는 하느님 앞에 끊임없이 청구서만 들이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애 대학 붙게 해주세요.
이번 사업 꼭 대박 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 기도를 기계적으로 돌리고, 주님의 기도를 주문 외우듯 수백 번 반복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내 편의와 목적을 위해 기도의 본질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시키는 무서운 교만이죠. 
 
누군가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마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이솝 우화』 중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자기가 먹기 편한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옵니다.
두루미는 긴 부리 때문에 한 입도 먹지 못하죠.
여우는 속으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했는데 왜 안 먹지?' 하고 섭섭해합니다.
상대를 향한 묵상이 빠진 일방적인 베풂은 이토록 폭력적입니다. 
 
이 우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 (2019)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알래스칸 말라뮤트 샐리라는 덩치 큰 개의 이야기입니다.
이 샐리는 주인이 손만 대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으려 하며, 밤낮없이 늑대처럼 하울링을 해대서 이웃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억울해 죽습니다.
자기는 샐리에게 사람이 살 만큼 훌륭한 집을 지어주고, 손수 고기를 입에 넣어주고, 매일 예쁘게 털을 빗겨주며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강형욱 훈련사가 와서 내린 진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보호자님이 문제입니다."
샐리는 어릴 적 파양된 상처와 의지하던 동료 개를 잃은 극심한 외로움과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샐리가 진짜 원했던 것은 주인이 그저 조용히 자기 곁에 머물러 주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기가 해주고 싶은 방식대로 털을 빗기고, 억지로 밥을 먹이려 들었습니다. 샐리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끔찍한 괴롭힘이었던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얻어내려면, 내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이철환 작가의 글 중에 눈만 오면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며칠씩 내려오지 않는 판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모두 판다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토끼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죠.
"판다의 새끼들이 사냥꾼에게 잡혀갔어. 눈밭에 찍힌 자기 발자국을 사냥꾼이 따라왔기 때문이지.
판다는 눈 위에 자기 발자국이 찍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거야."
토끼는 어떻게 판다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판다의 입장이 되어 그 아픔을 깊이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내 소원을 뜯어내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지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청하는 묵상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기 상권』 13장을 보면, 기도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가 파국을 맞은
사울 임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필리스티아 대군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사울 임금은 사무엘 예언자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나서서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쳐버립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뜻이나 그분이 정하신 율법의 질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당장 전쟁에서 이기게 해 줄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결과물만 뜯어내고 싶었죠.
하느님의 뜻을 묻는 묵상은 생략한 채 자기 소원부터 들이민 결과가 어땠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에게 "임금님은 어리석은 짓을 하셨소.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 임금님의
왕권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읽지 않고 내 뜻만 강요하는 기도는 사울의 번제물처럼 결국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올 뿐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뜻에 내 마음을 완전히 맞추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요?
13세기 독일의 위대한 신비가 대 제르트루다 성녀의 일화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어느 날 성녀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제가 청하지 않은 것조차 이토록 넘치게 다 들어주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너의 뜻을 버리고 온전히 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나 역시 내 뜻을 버리고 온전히 너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단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내 청구서를 찢어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먼저 여쭙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한 구절 한 구절 입에 올릴 때마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애타는 마음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저는 성체조배 할 때 주님의 기도만 호흡으로 숫자를 세며 그것만 묵상합니다. 
 
두 시간 동안 주님의 기도를 한 번만 바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그분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십니다.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마태 6,7-1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신다단순히 말의 공식이 아니라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드리는 기도로서모든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는 기도다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것은신자에게 하느님과의 친밀한 자녀 관계를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분을 아들 안에서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De Trinitate, 8,5 재해석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9)는 단순한 찬미가 아니라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도록 살아가게 해 달라는 청원이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은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행실과 삶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20,1 재해석기도는 삶으로 구현되는 신앙을 요구한다우리의 행동이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10)라는 청원은 하느님의 정의와 통치가 우리 삶과 세상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이미 하느님의 나라 시민인 우리는우리의 내적 순종과 선행을 통해 나라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교리서는 주님의 기도를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 그분의 통치를 따르는 삶으로 인도하는 기도”(2816-2827항 참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11-12)라는 청원은 하루하루의 삶과 영적 필요를 하느님께 맡기는 겸손한 마음을 나타낸다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구절을 해설하며양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영적 양식인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고 말한다죄의 용서 청원은 타인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지속적으로 회복하려는 의지를 전제한다.(마태 6,14-15 참조)

마지막 청원은 우리를 사탄과 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기도이다성 베네딕토는 이를 영적 투쟁의 기도로 보며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악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제시한다우리의 연약함을 하느님께 맡기며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자녀 관계를 드러내는 살아 있는 기도다우리가 오늘도 삶을 통해 주님의 기도를 살아가는 참다운 제자가 되도록 힘쓰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인간과 쥐, 누가 더 똑똑할까요?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교의 파크리사누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제비 뽑기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A와 B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뽑기를 총 200번 진행합니다. A를 뽑으면 75%의 확률로 1,000원을 벌고, B를 뽑으면 25%의 확률로 1,000원을 법니다. 물론 참가자는 이 확률을 모른 채로 실험에 참여합니다.

 

참가자는 A와 B를 선택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100번쯤 했을 때 A를 뽑으면 B를 뽑았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보상받는다는 규칙을 눈치챕니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A와 B를 왔다 갔다 하며 수익률을 떨어뜨렸습니다. 반면 쥐는 눈치를 채자마자 계속 A만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쥐가 사람보다 1만 2,000원을 더 벌었습니다. 왜 쥐보다 어리석은 판단을 할까요?

 

눈치를 채고서도 자기의 첫 판단을 함부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이 신중한 사고 체계를 갖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자기 판단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표징과 말씀만으로 예수님을 향한 이유가 충분한데도, 자기 안의 고정관념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주님의 기도는 단순히 미사 때 암송하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양식의 나눔과 용서를 실천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면서,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용서에 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이미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용서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한 용서, 상대의 보상에 따른 용서를 외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판단으로 이웃을 향해 마음을 닫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올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주님의 기도에 나오듯이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기 삶을 하느님 뜻에 맞추는 영적인 조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면서 우리는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도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 결단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평소에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인생의 갖가지 어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이다(앤드류 카네기)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18.목.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8)

하느님의 사랑은
기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십니다.

기도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 안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게 하는 것이며,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십니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드릴 때,
삶의 우선순위는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도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길입니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청하는 겸손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오늘에 감사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바르게 살아가겠다는
자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를
비추어 주는 삶의 거울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던 마음은
마침내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기도를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그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자녀의 길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가 필수불가결하고 본질적인 것을 알면서도

왜 기도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기도를 소홀히 하면,

우리는 곧 천상의 것들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오로지 땅의 것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시작하면,

우리 안에서 천상의 것들에 대한 생각과

열망이 되살아남을 느낀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일단 기도의 무한한 은총과

혜택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가 어려울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지금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느냐,

아니면 너 자신을 위해 있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때입니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기도해서 얻어지는 것이 없어서’

기도하기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명백해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주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9ㄱ) 
 
'완전한 모범!' 
 
오늘 복음(마태6,7-15)은 '올바른 기도인 주님의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9ㄱ)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자주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절대적 길'인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6,14-15) 
 
'하느님의 자녀들이 매순간 반드시 해야 할 생명행위'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영혼의 호흡(숨)이며, 예수님을 통해 쏟아진, 아니 매일 쏟아지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거룩한 생명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로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완전한 모범'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먼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미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대한 청원기도'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청원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의 기도가 빈말을 되풀이하는 '공염불 기도'가 되지 않도록 올바르게 기도합시다!
올바르게 청하고, 올바른 것을 청합시다!
사랑과 용서를 청하고, 사랑과 용서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다시 부활하는 생명이 됩시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물사랑, 생명운동입니다." 
 
(~ 욥기40,14) 

 

복음말씀

1독서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8,1-14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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