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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18|조회수29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방법!

연세가 점점 들어가시는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 얼마나 참된 진리인지를 뼈져리게 실감하게 됩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곰곰이 따지고 보니 도둑들, 날강도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천신만고 끝에 출산해서, 그 오랜 세월 애지중지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그 숱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세드신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 참담함이었습니다.

아직도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도둑들이 목청을 높이고 활개를 칩니다. 그들은 아들, 딸이요, 며느리, 사위에다 손주, 손녀들입니다.

그들의 행태는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기다리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자연스레 유산에 대한 분배가 이루어질 텐데, 그걸 못 견디고 조속한 분배를 요구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챙겨가려고 기를 씁니다. 굶주린 하이에나 떼가 따로 없습니다.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보물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대체 그 보물은 어떤 것일까요? 엄청난 은행 잔고? 잘 나가는 주식? 목 좋은 곳의 부동산? 아파트? 남부럽지 않은 건강, 사랑하는 사람? 재능? 자리?

사실 우리가 보물로 생각하는 대상들은 진정한 보물이 아니라는 것,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보물의 특징은 영원성, 불멸성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썩어 내려앉고, 허물어질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진정한 보물은 영혼과 관련된 것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따뜻함과 친절함을 보이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께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보물을 얻은 것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군가에게 내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건넸습니까? 그로 인해 그가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나로 인해 미소를 되찾고,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보물을 하늘나라에 쌓은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칭찬이 독이 되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이 눈을 통해 새어 나온다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신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깊겠느냐?"(마태 6,23) 그런데 빛이 어둠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빛이 어떻게 어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마음의 빛이란 내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곧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닮아 간다. 그래서 무엇을 빛으로 삼아 바라보느냐가 그 사람의 전부를 결정한다. 하늘을 빛으로 삼으면 그 사람 안이 환해지고, 세상 것을 빛으로 삼으면 빛이라 여기던 그것이 도리어 어둠이 된다. 빛이 어둠이라는 것은, 내가 빛인 줄 알고 좇는 그것이 실은 나를 삼키는 탐욕이라는 뜻이다. 옛 영성가들은 이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 불렀고, 풀어 말하면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이다.

이 어둠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어느 반려견 훈련 프로그램에 순하기로 소문난 레트리버 한 마리가 나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겁을 먹고 드러누워 배를 보일 만큼 소심한 개였다. 그런데 그 착한 개가 유독 가족만은 물었다. 물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에 올라 재롱을 떨었다. 가족은 이 개가 본래 착한데 어떤 상처 때문에 그런다고 믿으며, 개가 화내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했다. 심지어 개가 좋아하는 화분은 개가 없을 때만 몰래 닦았다. 보다 못한 훈련사가 말했다. 그것은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데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어" 하며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고.

이 개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랑도 받고 싶고 지배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어서 가족을 두렵게 만들어 지배하고, 다시 애교로 사랑을 받아 냈다. 화분을 제 것으로 여겨 손대지 못하게 으르렁대다가, 자기 뜻대로 따라 주면 다시 예뻐했다. 이만큼만 받들어 주면 착한 개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가족은 개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개를 섬기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련사가 이런 개에게는 순종하기 전까지 결코 잘해 주지 말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어설픈 애정이 도리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개에게 "앉아"를 시키면 한참을 버틴다.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는 사람 앞에 앉아 칭찬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칭찬이란 자기보다 높은 이에게 들어야 기분 좋은 법이니까.

성경은 이 어둠을 일찍부터 고발한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봉헌물로 바치라 명하신 전리품 가운데, 그는 값진 외투 한 벌과 은과 금덩이를 보고 탐이 나 몰래 자기 천막 땅속에 묻어 두었다. "탐이 나서 가졌습니다"(여호 7,21 참조)라는 그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 작은 어둠 하나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아이 성 앞에서 무너졌다. 빛인 줄 알고 끌어안은 금덩이가, 실은 그를 삼킨 어둠이었던 것이다. 게하지도 그러하다. 스승 엘리사가 한사코 거절한 나아만의 선물을, 게하지는 몰래 뒤쫓아 가 받아 챙겼다. 그러자 나아만에게서 떠난 나병이 게하지에게 옮겨붙었다(2열왕 5장 참조). 소유욕이라는 어둠은 결국 제 몸에 병을 새긴다.

삼구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절대 칭찬하면 안 된다. 예수님도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라고 하셨다.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끝내 빛으로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거룩한 진주가 들어가도 짓밟힐 뿐이다. 그런 이를 어설피 잘해 주어 성당으로 끌어들이면, 그는 하느님까지 가스라이팅한다. 자기가 잘나서 받는 줄 알지, 결코 순종하지 않는다. 세례를 받아도 합당하지 않게 성체를 모시는 자리에 머물고 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까지 당신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던 유다에게도 당신 살과 피를 떼어 주시고 그 발을 씻어 주셨다. 그 유다는 끝내 스승을 발로 짓밟았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러셨는가. 그가 원하였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에게 주지 않을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내어 주셨기에, 이제 그의 멸망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우리가 본받을 자리도 여기다. 어둠을 빛이라 우기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와 잘해 줄 필요는 없으되, 그가 진정 원할 때는 끝까지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가. 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를 두고 평하는 말을 엿듣게 했다. 한 사람은 줄곧 헐뜯기만 했고, 한 사람은 줄곧 칭찬만 했다. 또 한 사람은 헐뜯다가 끝에 가서 칭찬으로 맺었고, 마지막 사람은 칭찬하다가 끝에 가서 헐뜯음으로 맺었다.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 상대는 누구였겠는가. 줄곧 칭찬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엔 헐뜯다가 마지막에 칭찬해 준 사람이었다. 가장 미운 사람은 누구였는가. 줄곧 헐뜯은 사람이 아니라, 좋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헐뜯은 사람이었다.

까닭은 이렇다. 마지막 말은 그 사람을 향한 기대를 담는다. 시종 좋은 말만 하거나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부족함을 짚은 뒤에 건네는 칭찬은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 준다. 다만 여기에도 분별이 필요하다.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을 살찌우는 칭찬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칭찬은 상대를 나를 부리는 가스라이터로 키울 뿐이다. 우리가 칭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그 사람이 참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그 모습이다.

여기 합당한 칭찬의 본보기가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이다. 까다롭고 오만한 강박증 환자가 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다 칭찬을 한 가지 해 보라는 청을 받는다. 그가 머뭇거리다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의사 말도 듣지 않던 자기가 약을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인이 그게 무슨 칭찬이냐 되묻자 그가 답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여인은 그것이 생애 최고의 칭찬이라 한다. 돈과 교만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탐욕에서 끌어내 주었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연 것이다. 누군가를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 그보다 큰 칭찬은 없다.

그러니 공부를 잘한다, 돈을 잘 번다, 얼굴이 곱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조심하여라. 그런 말은 나를 길들이려는 계략이거나, 나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에 더 깊이 빠뜨려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속삭임일 때가 많다.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참된 칭찬은, 어둠을 빛이라 여기던 사람이 참 빛을 향하도록 돌이켜 세우는 칭찬이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빛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빛나고, 그 빛이 눈을 통해 흘러나와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게 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마태 6,19-23: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19이 말씀은 세상의 재물과 부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씀이다땅의 재물은 한시적이며손에서 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여기면마음은 재물에게 사로잡혀 어두워지고결국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다반면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20)라는 말씀은 영적이며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참된 보물은 하늘에 있다마음이 하늘을 향할 때만 인간은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Enarrationes in Psalmos, 23,1 요약재물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선행과 기도로 하느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길이다유다인 모노바스는 조상들로부터 받은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친척들이 비난하자자신은 하늘에 보물을 쌓았다고 하였다이것은 영원한 가치를 선택한 삶의 표징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눈은 몸의 등불이다.(22)라고 하셨다여기서 눈은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우리의 마음과 영적 지각을 상징한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마음이 선으로 빛나야 우리의 모든 행위가 빛을 얻는다마음이 어둡다면아무리 외적으로 착한 일을 해도 그 빛이 어둠에 가려진다.(Homiliae in Matthaeum, 46,1 요약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올바른 곳에 집중되어 있을 때삶 전체가 빛나고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23)라는 말씀은마음의 방향이 삶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려준다마음이 하늘을 향하고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둘 때삶의 모든 선택이 선으로 조율된다분별력과 마음의 정결함을 지키는 것은 영적 건강과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길이다.

우리는 이제재물재능시간 등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세상의 유혹보다 하늘의 가치를 선택하여야 한다그리고 정신과 마음을 밝히고영적 빛을 통해 삶 전체를 선으로 이끌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재물을 나누라.”는 윤리적 지침이 아니라마음의 지향과 영적 빛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신학적·영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땅의 보물은 한시적이지만하늘의 보물은 영원하다즉 마음이 밝으면 모든 삶이 선으로 비추어지고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우리가 오늘도 마음을 하늘에 두고재물과 마음의 주인을 하느님께 두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아무래도 젊음과 힘이 있는 20대 청년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70대 노인의 행복도가 더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행복도는 20대부터 하락하다가 40대에 최저점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대가 되면서 행복도가 회복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 연구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20대는 연예인, 기업가, 정치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70대는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가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20대의 젊을 때는 성취가 우선순위에 있었고, 나이가 든 70대는 관계가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는가가 중요합니다. 성취를 위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집중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위한 사랑의 삶 속에 행복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마태 6,21)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궁극적인 대상의 상태에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히 ‘가난하게 살아라’, ‘저축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신 우리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 6,19.20)

 

땅의 소유를, 이웃을 향한 자선과 사랑, 무엇보다 하느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에 두고 있을 때, 사라질 세상의 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23)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어둠에 눈이 멀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100권의 책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더 크다(벤저민 프랭클린)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19.금."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심 가치인
보물은 금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참된 보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물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었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사랑이었으며,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무엇을 보물로 삼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보물을 닮아가고,
그 보물이 우리 삶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두면
불안이 따르고,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참된 보물은
하느님을 향해
머무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이
인격을 만들고,
인격이 결국
그 사람의 삶을
완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 머물 때,
우리의 삶은 은총과 축복으로
빛나게 됩니다.

마음의 방향이
곧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비추시는 빛이시며,
우리 삶의
가장 귀한 보물이십니다.

오늘도 하느님이라는
가장 큰 보물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며,

감사와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복되고 아름다운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1독서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1,1-4.9-18.20

그 무렵 아하즈야 임금의 1 어머니 아탈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서는,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2 그러자 요람 임금의 딸이며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아탈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두었으므로, 요아스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3 아탈야가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유모와 함께 주님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4 칠 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어

카리 사람 백인대장들과 호위병 백인대장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있는 주님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주님의 집에서 맹세하게 한 다음,

왕자를 보여 주었다.

9 백인대장들은 여호야다 사제가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안식일 당번인 부하들뿐만 아니라

안식일 비번인 부하들까지 데리고 여호야다 사제에게 갔다.

10 사제는 주님의 집에 보관된 다윗 임금의 창과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내주었다.

11 호위병들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주님의 집 남쪽에서 북쪽까지 제단과 주님의 집에 서서 임금을 에워쌌다.

12 그때에 여호야다가 왕자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서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13 아탈야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주님의 집으로 가서 14 보니,

임금이 관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대신들과 나팔수들이 임금을 모시고 서 있었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탈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 하고 외쳤다.

15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가 군대를 거느린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 죽이시오.”

여호야다 사제는 이미

주님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 하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16 그들은 그 여자를 체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탈야가 왕궁의 말 문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거기에서 그 여자를 죽였다.

17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하였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하였다.

18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에 몰려가 그것을 허물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웠다.

20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탈야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은 뒤로 도성은 평온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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