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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22|조회수20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정말 필요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식별력!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오 복음 7장 13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이며 친지, 세상의 부귀영화 다 버리고 깊고 깊은 사막으로 들어간 수도자들의 삐쩍 마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초췌한 얼굴, 그러나 깨달음의 기쁨에 빛나는 얼굴!


세상에 살던 그들은 어느 순간 느꼈을 것입니다. 갖은 유혹거리들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한가운데 있다가는 평생 헤매도 진리를 못 찾겠구나, 일생일대의 깊은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떠나는 수밖에...그들은 결연히 세상을 등지고 혈혈단신으로 아무도 없는 깊은 사막 어두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진리 중의 진리이신 하느님을 보다 더 잘 파악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하느님의 말씀의 핵심을 깨닫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겠지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에너지의 99퍼센트를 기도와 묵상에 쏟아 부었을 것입니다. 나머지 1퍼센트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러니 아마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거의 포기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니는 맛집이며, 골프 투어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사막에서의 단독 수도 생활의 필수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섭생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묵상에 묵상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취미가 단식이요, 특기가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극단적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실체를 손에 잡힐 듯이 바라보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달고 단 것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에 도달한 그들은 이제 하산할 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그 소중한 깨우침을 고통당하는 백성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강한 확신과 함께 사막을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보다 큰 선이요 아름다움이요 절대적 가치관이신 하느님을 향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옛날 사막의 교부들처럼 가족과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사막으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매일의 삶 안에서도 사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매일 매 순간 ‘좁은 문’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일상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 시대 참된 영성가들은 바로 이 선택과 집중을 잘 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좋은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빨리 오라고 우리를 손짓합니다. TV나 컴퓨터를 켜면 즉시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외치는데,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꼭 필요한 물건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영성가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많은 것들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식별력, 그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고 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영성입니다. 자신이 꼭 서 있을 자리에 반드시, 그것도 항상, 기쁜 얼굴로 서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청소년 자모회 어머니들이 주방에서 아이들을 위해 스파게티를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양파를 열심히 썰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십니다. 양파를 썰며 생긴 화학 반응으로 자극성 기체가 만들어져 눈이 매운 것입니다. 옆에 약간 떨어져 있었던 저 역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바로 앞에서 양파를 써는 어머니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칼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계속 칼질을 해야 나중에 바라던 결과인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눈이 맵다고 양파 써는 것을 포기하고 양파를 넣지 않으면 당연히 스파게티의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맛있는 스파게티를 위해, 또 아이들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면서 눈물을 쏟으면서도 양파를 썰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도 이렇지 않을까요? 주님과 함께하는 길에 항상 기쁨과 행복이 충만할까요? 이 길에 갈등도 또 아픔과 상처도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과 시련이 있다고 곧바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 수 없고, 나중에 얻게 될 하느님 나라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서 우리 자신 안에 거룩한 불을 지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흔히 황금률이라 하는 가장 위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주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당시 유다교의 랍비들이나 동양의 공자 등 많은 사람이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소극적인 형태의 윤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적극적인 선행과 사랑의 명령으로 뒤집으십니다. 즉,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머무는 무관심을 넘어서, 자기가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행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마태 7,13)

 

넓은 문, 널찍한 길은 세상의 가치관, 안락함,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여기에는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좁은 문, 비좁은 길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들어갈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셔서일까요? 아닙니다.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철저한 자기 비움이 요구되는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좁은 문, 비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문이고 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또 불편한 이 문과 길을 선택할 용기가 있나요?

 

오늘의 명언: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다보면 어느 길이든 행복하지 않은 길은 없습니다(조지.E.베일런트)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22.월.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

산은 스스로 높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들보는 남의 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과 교만,
고정관념과 자기중심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교만을 탓하면서도
우리 역시 교만했고,
이기심을 비난하면서도
우리 역시 이기적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성찰과 기도입니다.

정화의 출발점은
남을 판단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평가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남을 바꾸려는 노력보다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서
시작됩니다.

들보를 빼내는 일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영적 여정입니다.

자신 안의 들보를 깨닫고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인간다워집니다.

그리고 타인의 부족함 앞에서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참된 겸손은 자신의
들보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고,
참된 사랑은 그 들보를
내려놓는 데서 완성됩니다.

오늘도 교만과 편견의 들보를 내려놓고,
겸손과 자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날 되십시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1독서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과 다윗 때문이다.>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9,9-11.14-21.31-35.36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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