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즈카르야 노래의 작곡자는 하느님, 작사자는 성령이십니다!
가끔 수녀님들 연피정을 동반해드리는데, 저희 남자 수도자들보다 훨씬 침묵을 잘 지키십니다.
사오십 명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는데, 정말이지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잘 적응이 안 되는 저는 소화가 잘 안되, 끼니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은 그럭저럭 참을만한데, 일주일, 8박9일, 30일 대 침묵 피정,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괴로움입니다.
특히 차 한 잔 앞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술 한잔 씩 들이키며 술술 풀어놓아야 쌓인 것이 풀리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 침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10개월간의 대 침묵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그 10개월 동안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요?
억울한 심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타의에 의해서 10개월 동안 말을 못 하게 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더불어 10개월 만에 혀가 풀리고 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0개월 만에 말을 하게 된 즈카르야가 내뱉은 첫마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 대한 투덜거림이었을까요?
강한 분노의 표출이었을까요?
자신이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강한 벌칙을 주셨냐며, 하느님께 따졌을까요?
모두 아니었습니다. 즈카르야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마디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찬가 즈카르야의 노래였습니다.
저희 수도자들은 매일 아침기도 때 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바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구약을 완성하기 마지막 대 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동시에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이런 희망과 환희와 감사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노래와 더불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아침마다 이 노래를 바치는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세례자 요한 탄생 사화의 결론입니다.
즈카르야 노래의 작곡자는 하느님이십니다.
작사자는 성령이십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신앙고백입니다.
즈카르야의 깨어남은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미하는 즈카르야의 노래로 연결됩니다.
즈카르야가 찬미가를 부르는 순간은 그간 지니고 있었던 모든 불신과 의혹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입니다.
즈카르야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자기중심적 삶을 넘어 참된 하느님의 사제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눈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은 또 다른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를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다시금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새 출발의 순간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루카 1,57-66.80: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다.
오늘 교회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교회 전례 안에서 탄생 자체를 축일로 기념하는 이는 주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요한 세례자 세 분뿐이다. 이는 요한이 구원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한 마지막 예언자이자 새로운 계약의 문을 여는 분이었다.
1. 이름과 정체성: “요한”=하느님의 은총
루카 복음은 요한의 이름 선포와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는 사건을 긴밀히 연결시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율법과 예언의 시대가 닫히고, 복음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라고 해석한다. “요한의 이름이 선포되자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이는 율법이 끝나고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함을 뜻한다.”(Enarr. in Ps. 85,4) “요한”이라는 이름이 “은총”을 뜻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복음의 무상성과 선물임을 드러낸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 그것이 바로, 요한의 이름 안에 담겨 있다.
2.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
요한 세례자는 태중에서 이미 주님을 인식하고 기뻐 뛰었다(루카 1,41).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그의 생애 전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Hom. in Matth. 의역) 즉, 요한의 사명은 출생 이전부터 하느님께 의해 준비된 것이었다. 이는 교회가 가르치는 소명의 신비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며, 우리 삶 전체를 당신 계획안에서 준비해 주신다.(예레 1,5 참조)
3. 예언자적 위대함: 자신을 비움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요한의 위대함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자신을 비운 겸손에 있었다. 그는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줄이고 오시는 분을 드러내는 데 온 삶을 바쳤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강조한다.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님을 고백하였다. 참된 겸손이야말로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세운다.”(In Ioann. Evang. Tract. 의역)
4.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본 세례자 요한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분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고리이다.”(523항 요약) 요한은 율법과 예언이 복음으로 이어지는 다리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자리를 열어 주는 봉헌이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요한 세례자는 진리를 증거하다 목숨을 잃은 예언자였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삶과,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세상의 권력과 불의 앞에서도 진리를 숨기지 않는 용기와 우리의 존재와 이름이 ‘요한’, 곧 ‘하느님의 은총’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6. 맺음말
오늘 우리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축일로 기념하면서, 그의 존재가 전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새긴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고, 오직 오시는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살았다. 우리 또한 요한 세례자처럼 주님의 길을 닦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가정과 일터, 교회와 사회 안에서 겸손과 용기로 주님을 드러낼 때, 우리도 요한 세례자의 삶을 이어가는 “하느님의 은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소금 장수와 솜 장수가 등에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강이 깊어지면서 등에 짊어진 짐이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이 등에 짐을 지고 있지만, 한 사람은 무사히 강을 건넜고 다른 사람은 그만 강에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누가 살아남았을까요? 소금 장수일까요? 솜 장수일까요?
소금이 물에 녹으니 당연히 소금 장수가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솜 장수였습니다. 솜 장수는 짐이 점점 무거워지자 감당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강물에 짐을 던져버렸지만, 소금 장수는 짐이 점점 가벼워지니까 소금이 물에 녹는 것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간수하려고 허둥대다가 힘이 빠져서 강에 떠내려가고 만 것입니다.
버려야 될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미련을 가지면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집착에 빠져서 더 안 좋은 상황을 만들곤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을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것보다 세상 것을 놓지 못합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하느님 것을 쫓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요한 세례자와 그의 부모입니다.
요한 세례자의 명명식입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첫아들에게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줬습니다. 친척들이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했던 것은 가문의 전통과 과거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적인 계획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단호히 ‘요한’이라는 이름을 주장합니다. 요한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요한의 부모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라야 하기에 인간의 혈통이나 관습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처음에 천사가 전한 아기 잉태 소식을 믿지 못해 열 달 동안 벙어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이 긴 침묵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인간적인 잣대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신비 순명하는 법을 배우는 정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석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고,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성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요한 세례자는 사제의 아들로서 성전에서 편안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락한 삶을 떠나 광야로 향합니다.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 무엇을 쫓아야 할까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것을 쫓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평생 갇힐 인생의 사슬을 스스로 만든다(찰스 디킨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24.수.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낮 미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루카 6,63)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은총의 여정입니다.
성 요한 세례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냈습니다.
즈카르야는 처음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늙은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침묵의 시간을 지나며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즈카르야는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씁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의 뜻이
흐르게 한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인 마음의 변화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은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나
하느님을 가리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삶은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계획과 다르고,
우리의 기대를 넘어섭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처럼
자신은 작아지고
하느님의 은총은 커질 때,
우리의 삶은 빛이 되고
하느님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