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카페앨범

이스라엘 성지순례 다섯째 날: 쿰란, 사해, 유다광야(2019년 2월 25일) ②

작성자김향보 젬마|작성시간19.04.01|조회수458 목록 댓글 1

사해 북서쪽에 에세네파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쿰란 공동체의 유적이 있다. 쿰란 공동체는 BC 150년경에 형성되어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존재했다.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며 세속과 떨어져 금욕생활을 하며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살았던 유다인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경건하였던 공동체였다.

이 쿰란 근처 동굴에서 사해 사본이 발견되었다. 19475월 어느 봄날, 한 베두인(Bedouin) 목동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고 있었다.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에 염소가 들어가 있는지 돌멩이를 던져보았는데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 다음날 사촌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8개의 항아리가 놓여있었는데 그 중 한 개의 항아리에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어 펼쳐 보니 이사야서, 시편, 공동체 규율서, 전쟁 문서, 하바쿡 주해 등 히브리어로 된 7개의 사본이 들어있었다.

그때까지는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기원전 135-기원후 68년 사이에 기록된 것이었다. 2000년 동안 성경의 내용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마카베오 시대에 새로운 종교를 형성하여 쿰란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에세네파 사람들이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성경을 필사했던 것이다. 이들은 AD 70년에 유다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로마 군대가 이곳까지 진격해오자 그들의 소중한 성경필사본을 사람의 발길이 잘 닿을 수 없는 절벽 동굴 속 항아리에 숨겨놓았던 것인데 1900여년이 지난 1947년에야 찾게 된 것이다.


황토빛 산이 보이는 쿰란, 이곳이 사해 사본을 남긴 에세네파의 수도지이다. 



그 후 학자들이 쿰란 주변의 동굴들을 대대적으로 뒤진 결과 11개의 동굴에서 850여 종류의 쿰란 문서라고 하는 사해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쿰란 동굴 중 4번째 동굴이 유명하다. 쿰란의 도서관이라고 할 정도로 이 동굴에서 가장 많은 필사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4동굴에서만 500여 점이나 되는 성경 필사본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구약사본은 에스테르기만을 제외하고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발견된 모든 구약성경이 히브리어(이스라엘 말)로 쓰여져 있었다. 개신교에서 가톨릭 구약성경 46권 중 7권이 히브리어로 쓰여 있지 않다고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된 구약사본이 발견됨으로써 가톨릭 성경이 올바르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인류역사에 가장 뛰어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본들이 2천년 동안 보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동굴 속에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햇볕이 들지 않았던 모든 기후 조건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쿰란 영상실 옆으로 이어지는 기념관에 사해 사본이 담겨있던 항아리와 같은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예루살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쿰란에서 사해사본이 발견됨으로써 계속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쿰란공동체의 신앙과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주지도 발굴되었다. 대규모의 모임 장소와 식당, 1,000개의 식기류가 저장되어있는 방, 토기 작업장, 사본 제작과 필사를 위한 필사실, 물 저장소, 수로 등 다양한 구조물들이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이들의 마구간과 방앗간, 철공장, 수로를 이용하여 산의 빗물을 끌어서 저장했던 7개 저수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또 거주지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1,100기 정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발굴된 유해는 대부분 남자의 것이고 머리가 남쪽을 향해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쿰란 유적지 입구에 각 나라 말로 쿰란 공동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다. 마침 대기하는 순례 객들이 없어서 우리는 가자마자 곧바로 에세네파의 진지한 종교생활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정결례를 행하는 장소 모형, 계단을 내려가서 정결례를 행하고 올라오는데 내려 가는 계단과 올라오는 계단이 다르다고 한다.


쿰란공동체 생활용품 토기들의 모형


이사야서 두루마리 복사본, 폭이 30cm 길이가 7,2m에 달하는 이사야서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필사실에 있었다는 바위를 깎아 만든 필사대

                               사진  김영근 요셉


쿰란공동체가 사용했던 야자 잎으로 만든 바구니, 계량컵 조각, , 샌달, 야자섬유로 만든 끈의 잔재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나와 쿰란공동체 마을 유적지로..


나무 그늘막 아래 직사각형 자리가 공동식당 겸 집회 장소이다.


정결례 장소, 내려가는 계단과 올라오는 계단이 따로있다.


물 저장소, 물 저장소 왼쪽에 수로가 보이는데, 수로를 따라 흐르던 물이 물 저장고에 뚫어진 구멍으로 흘러 떨어져 고인다.


가운데 첫 번째 표지판 자리가 공동식담 겸 집회장소, 두 번째 표지판 자리가 식기류가 저장되어 있던 장소, 세 번째 표지판 자리가 부엌이다.


많은 식기류가 저장되어 있는 방과 부엌


제4동굴이다. 마을을 다 통과하고 나면 사해 사본이 발견된 동굴들이 나오는데 제4동굴에서 가장 많은 사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삼종기도


유다 광야는 석회질의 토양이라서 비가 오거나 물리 흘러간 자리, 풍화에 견디지 못한 지반에 수많은 자연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점심식사 하러~ 아래에 사해가 보인다. 사해는 이곳에서 2km도 안 되는 거리다.



2000년 전에 성경필사와 성경을 소중히 여겼던 에세네파들의 정신을 묵상해보며 성경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쿰란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사해체험을 하기 위해 사해로 이동을 했다.


사해


사해는 오랜 세월 동안 북쪽 갈릴래아 호수의 물이 요르단 강을 흘러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증발해버려서 만든 곳으로 염도가 무척 높다. 보통 바다의 염도가 4% 정도인데 반해 사해는 26%가 소금이다. 그래서 수영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둥둥 뜨는 곳이다. 길이도 77킬로미터나 되고, 폭이 제일 넓은 곳은 16킬로미터이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해는 소금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타슘이라고 하는 칼륨, 마그네슘, 칼슘 등 각종 좋은 미네랄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 신경통, 관절염, 피부 질환에 좋다. 그래서 휴양과 치료를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이 연간 1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사해의 머드로 피부를 마사지하면 주름살이 펴져 너무 매끄럽고 예뻐져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식구들이 못 알아볼 수도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안타까운 것은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자원의 보고인 사해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물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의 기온은 27도로 수영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낙타가 사진을 찍으러 다가가니까 내가 등에 타려는 줄로 생각했는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아서 깜짝 놀랐다. 아니면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서 쉬려고 그랬는지도..  




사해는 요르단과 국경을 이루고 있어서 너무 멀리 헤엄쳐 가면 요르단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멀리 가지 말라는 안내자의 당부 때문에 사해 가장자리에서만 놀았다.



멋있습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사해에서도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바오로 형제님, 인간이 맞나 싶었다..ㅎ..


둥둥~ 신난다~ 나이는 들었어도  동심~

누워도 배가 나왔다..ㅎ..


시커먼스 여인들..


갈릴래아에 있을 때보다 배들이 나오지 않았다. 사해의 고도가 낮아 기압이 높아서 배가 기압에 눌려 쑤욱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내일 해발 777미터인 베들레헴에 가게 되면 도로 배가 쑤욱 나올 거라는~



무좀 치료 중..




사해체험 후 샤워실로 가기 전에 먼저 민물 샤워로 진흙을 씻어내는 곳(오른쪽 4사람 서 있는 곳)

사해체험 후  짐 정리하는 뒤쪽으로 흐리하게 대추야자나무 숲이 보인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사막의 끝자락에 나무들이 곳곳에 조림되어있는 것을 보면 유다인들의 물을 끌어들이는 기술이 놀랍다.



즐거운 사해 체험 후 사해 북동쪽 15킬로미터 지점,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있는 유다광야로 갔다.


유다 광야


광야로 접어들자 길가에 베두인들의 천막이 보이고 양떼들도 보였다. 유다광야는 둥글고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광야는 역시 젖과 꿀은커녕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광야 그 자체였다. 물론 우기이다 보니까 소량의 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꽃 피워서 녹색이 군데군데 보이기는 하였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버스가 내려 준 광야에서 우리들은 조망하기 좋게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능선에 오르자 끝이 없을 것 같은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인간 스스로 생존해낼 수 없는 이러한 혹독한 환경 속에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느님의 성실한 보호하심을 받으며 하느님의 현존을 만났다. 예수님 또한 공생활을 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셨다. 그 전통을 따라서 초대교회의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기 위해서 사막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역시 광야에 흩어져 하느님 앞에 홀로 서서 내 안의 광야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때로는 영혼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오늘 척박하기 그지없는 광야를 실제로 바라보면서 내 안의 광야가 무엇인지 깊이 보고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더 삶을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그 때쯤엔 나를 힘들게 하는 인생의 광야를 건너간 나이기를 바라면서 광야를 내려왔다.







오직 당신에게서만, 나의 하느님, 내 영혼이 평안해지나이다.”

 

 

어느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무엇에도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지닌 자

부족함 없나니.

 

어느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무엇에도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만으로 충족하여라.

 

-떼제 노래-


모세의 무덤(가묘)

사진  김영근 요셉



광야를 떠나가는데 이슬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세의 무덤이 있었다. 신명기에 모세가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예언자 모세를 너무도 존경을 하다 보니까 모세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장소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내일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 순례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나자렛이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장소라면, 베들레헴은 우리의 구원이 일어난 장소이다. 순례의 절정을 향하여 가게 된다. 오늘 우리는 갈릴래아 호수를 출발해서 먼 길을 내려와 이곳 광야까지 왔다. 오늘 하루 순례하느라 얘를 쓴 우리 모두는 서로를 위해서 박수를 보내며 오늘 밤 머무를 예리코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야생화 | 작성시간 19.04.01 이스라엘 성지 순례기라기 보다는 성경 해설서라고 할 정도로 자세하고 깊이 있게 설명 되어 있어 성경과 함께 보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시간과 자세한 순례기를 작성 준비를 하고 있는 젬마 자매님을 위해 감사의 기도와 많은 격려의 말씀 부탁 드립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