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서민귀족(퍼온 글)

작성자선생님|작성시간03.06.10|조회수921 목록 댓글 0
[연출의도]
인간의 허영심, 수직적 신분 상승 욕구...
시대를 불문하고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재산이 많은 상인이 양반 신분을 얻고자 했던 과거에서 현재의 졸부들이 온갖 허영심으로 명품만을 쫓는 모습까지..... 이런 욕구들이 왜 생겨날까? 그는 크게 보면 신분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민귀족]은 이런 사회적인 문제로 인한 한 인간의 허영심과 우스꽝스러움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준다.

몰리에르가 창시한 『발레-희극』장르에 속하는 [서민귀족]...
나는 [서민귀족] 읽고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는 희극적인 요소와 더불어 희곡(text) 전체의 1/3이상을 차지하는 음악과 무용!! 극의 전환시 펼쳐지는 막간극은 무용과 음악을 이용해 극 전체의 줄거리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물론 우리는 원작 그대로 극과 극 사이마다 펼쳐지는 막간극을 모두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용과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발레-희극』의 장르를 내보이고 싶다.

*^^* “웃음”...“볼거리”...“생각할 수 있는 시간”...
내가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다. [서민귀족]은 희극이며 희극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웃음”이다. 그 웃음을 주기 위해선 희곡(text) 속에서 더 많은 희극적 요소를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데, 다행히도 [서민귀족]에는 각각의 성격과 특징을 가진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사 속에서 희극적 요소가 넘쳐난다. 다시 말해, 배우들이 자신의 맡은 인물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자신에게서 그 인물을 얼마만큼 끌어내느냐가 관객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 그 때문에 더 깊은 인물분석을 배우들에게 강요했다.
또한, 무용과 음악으로 펼쳐지는 막간극과 화려함과 우아함이 묻어나는 무대와 의상 등의 많은 볼거리를 연출하고 싶지만, 학생들의 작품이기에 저 예산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작은 17세기이지만 우리는 시대를 19세기로 하여 심플하면서도 화려함과 우아함을 최대한 표현하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많이 볼거리와 웃음으로 즐겁게 공연을 본 관객들이 돌아가는 길에 ‘인간의 허영심과 욕구’에 관해 한번쯤 생각할 시간을 갖길 소망한다.


[작품설명]
몰리에르의 [서민귀족]..
『발레-희극』장르에 속하는 작품인 [서민귀족]은 희곡(text)의 희극성에 무용과 음악을 가미시킨 작품이며, 인간의 허영심과 신분상승욕구에 관한 교훈을 준다.

[서민귀족]은 17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귀족신분이 되고자 하는 허영심 많은 서민(쥬르댕)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귀족적 지예(知藝)를 배우는 과정의 에피소드와 후작부인(도리멘느)을 사모하여 백작(도랑뜨)에게 이용당하는 에피소드, 귀족출신이 아니기에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에피소드 등...이런 에피소드가 대단원에 가서는 모두 해결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허영심 많은 한 인간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모두에게 당하게 되듯, 몰리에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주변의 현존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 인물들의 성격과 특징 중 희극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하고 약간은 과장되게 묘사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등장인물들의 말투, 행동, 버릇과 무용과 음악으로 신나게 표현된 막간극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 공연이 한층 더 재미있을 것이다.

- 작품 줄거리
부자가 된 서민 쥬르댕은 상류계급으로의 참여를 원하게 되면서 음악, 무용, 철학, 검술 선생으로부터 과외를 받는다. 그러나 각각의 선생들은 돈 많은 쥬르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에 급급하다. 결국 선생들은 자신의 학문과 능력이 우수하다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고 쥬르댕의 저지로 일단락 된다. 양복장이에게 옷을 맡긴 쥬르댕은 귀족들과 같이 입으려하지만, 양복쟁이와 사동의 농간에 놀아나고 만다. 분수를 모르는 쥬르댕의 행동을 쥬르댕의 부인과, 니꼴 등의 하인이 비웃지만 어리석은 쥬르댕은 오히려 그들을 보고 무식하다며 나무란다.
쥬르댕의 돈을 뜯어 내고자하는 도랑뜨 백작은 쥬르댕이 도리멘느 후작부인을 사모하는 점을 이용해 친구인척 접근해서 그둘을 도와주는 시늉을 해 결국엔 도랑뜨 자신이 도리멘느 부인에게 접근한다. 쥬르댕의 부인이 도랑뜨에게 돈을 빌려주려는 쥬르댕을 말리려 하지만 도랑뜨의 계획대로 쥬르댕은 계속해서 도랑뜨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고 쥬르댕은 그 대가로 도리멘느 부인과의 만남을 약속받는다. 쥬르댕 부인은 어렴풋이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다. 하지만 그보다 딸의 결혼 문제가 급했던 차에 일단, 딸 뤼실을 사랑하는 끄레앙뜨를 딸과 결혼 시키려하고 니꼴을 시켜 그레앙뜨를 부른다. 아침에 뤼실이 자신을 모른척 지나쳤던 일에 화가나 있던 끄레앙뜨와 꼬비엘은 니꼴에게 냉담하게 대하고 니꼴은 이 사실을 뤼실에게 알린다. 뤼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끄레앙뜨를 찾아가고 결국 둘은 화해하게 된다. 끄레앙뜨는 뤼실과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뤼실의 집으로 찾아오지만 끄레앙뜨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쥬르댕은 그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도랑뜨와 도리멘느, 쥬르댕이 저녁을 하는 동안 쥬르댕 부인이 돌아오고 저녁 만찬은 엉망이 된다.
변장한 꼬비엘의 계책으로 쥬르댕은 끄레앙뜨가 터키왕자라 믿고 마마무쉬라는 직책을 받고는 딸과의 결혼을 공증 받으려 하고 그 기회에 도랑뜨는 도리멘느 부인과 자신의 결혼 또한 공증 받으려 한다. 어리석은 쥬르댕은 결국 모두에게 소아 넘어간다.

- 작가소개
몰리에르 (Moliere1622-1673)
-생애-
*1622: 빠리에서 1월 15일 .당시 타바랭이 그의 익살 광대질로 영원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퐁네프다리의 근처에서 태어남. 궁정 실내 장식가인 쟝 포크랭의 아들로 출생. 본명은 쟝 바티스트 포크랭(Jean Baptiste Poquelin)
*1637: 루이 대왕 학교에 입학
*1640: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률학 공부
*1643: 희극 배우 마드렌느 베자르와 사귀게 되어 1월 30일, "일뤼스트-테아트르(L'illustre Teatre)극단"을 설립. 몰리에르라는 이름으로 단장이 됨.
*1644: 1월 처녀 공연을 했으나 관객 유치 실패.
*1645: 3월 31일 빚 때문에 투옥. 8월 2일 출감한 이후 뒤프렌느 극단에 가담하여 파리를 떠나 13년 동안 지방을 돌아다니며 <코메디아 테라르테>를 공연함. 남부 지방에 있을 때 이탈리아 희극의 영향을 받음.
*1658: 다시 파리로 돌아와 [연애하는 학자]를 써서 극단에 데뷔. 5월 9일 루앙에 도착. 10월 파리로 돌아와 루이 14 세 앞에서 공연.
10월 24일 <니코메드>와 자신의 단막극<사랑에 빠진 박사>를 공연. 프티 부르봉 극장 사용 허락.
*1659: 11월 18일, <우스꽝스런 재녀들>로써 뷔르레스크적인 풍속 희극을 개척하여 성공을 거둠. 프티 부르봉 극장에서 초연.「정신없는 여인」이란 희극(1막)으로 명성을 얻게되자 파리에 정주하며 당시의 리슈류가 운영하던 발레․로와이야르, 즉 <왕립궁정극장>을 처음 자신의 극장으로 만듬.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극장을 그의 집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코메디․프랑세스의 시초가 됨.
*1660: 1월 19일, <우스꽝스런 재녀들> 출판.
5월 28일, <스가나렐 또는 상상 속에서 오쟁이진 남자>를 프티 부르봉 극장에서 초연.
10월 11일, 프티 부르봉 극장에서 철거 통보. 왕의 도움으로 팔레 -르와얄 극장 얻음,
*1661: 6월 24일, <남편들의 학교>를 팔레 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성공을 거둠.
*1662: 2월 20일, 같은 극단의 배우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 그렇지만 만년에 그 아내의 부정으로 무척 고통스러운날들을 보내게 되었음. 12월 26일, <아내들의 학교>를 팔레 -르와얄 극장에서 초연이 작품은 이후 격렬한 희극 논쟁을 일으킴.
*1663: 6월 1일, <아내들의 학교>의 논쟁에 답하는 <아내들의 학교 비판>을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0월 16일과 21일 사이 <베르사이유의 즉흥극>을 씀. 베르사이유에서 초연. <몰리에르> 작품집 출판.
*1664; 1월 19일, 장남 루이 출생.
1월 29일 루브르궁에서 <강제 결혼>초연.
4월 17일, 당시의 신앙을 비판한<위선자>를 종교 결사 단체인 생 사크르망에서 "<위선자>라는 고약한 희극"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제출함으로써 <위선자>사건-논쟁의 단초가 됨.
5월 8일, 베르사이유에서 <엘리드 공주>초연.
5월 12일, <위선자> 초연.곧 일반인을 위한 극장 공연 금지.
6월 20일 라신느의 데뷔작<라 테바이드>를 팔레 -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665: 2월 15일, 산문 희극<돈 쥬앙>을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5회 공연 이후 금지 당함.
9월 14일, 베르사이유에서 <사랑이라는 의사>초연.
12월 4일, 라신느의 <알렉상드르>를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666; 6월 4일, 자신의 불행을 반영했다고 생각되는 <인간 혐오자>를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그 평은 냉담.
8월 6일, <본의 아닌 의사>를 팔레 -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연극의 도덕성 논쟁 벌어짐.
*1667: 2월 14일, <시실리인 또는 사랑이라는 화가>를 생-제르맹에서 초연.
3월 4일, 코르네이유의 <아틸라>를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8월 5일, <타르튀프>를 수정, 개제한 <파뉠프 또는 사기꾼>의 공연 시도가 단 1회 공연으로 무산. 즉각 플랑 드르에 있는 왕의 캠프로 찾아가 두 번째 진정서를 냄.
*1668: 1월 13일, 팔레 -르와얄 극장에서 <앙피트리옹>을 초연.
7월 18일 , 배르사이유 궁에서 <조르쥬 당뎅 또는 쩔쩔매는 남편>을 초연.
9월 9일, 그의 최대의 걸작인 <수전노>를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669: 세 번째 진정서를 올린 직후인 2월 5일. 마침내 <타르튀프>인 일반 공연이 시작.
10월 6일, <푸르소냑>을 샹보르에서 초연.
*1670: 2월 4일, <멋진 연인들>을 생-제르맹에서 초연.
10월 14일, <부르조아 귀족>을 샹보르에서 초연.
*1671: 1월 17일 ,<프시케>를 튈르리 궁에서 초연.
5월 24일, <스카펭의 간계>를 팔레-르와얄 극장에서 초연.
*1673: 2월 17일<상상병 환자>의 4회 공연 중 발작을 일으킴. 집으로 옮겨진 후 밤10시경에 사망.
2월 21일 생-조세프 묘지에 묻힘.
이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서 노력하다 숨져간 작자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극장경영주였던 그는 한 평생을 가정의 불화, 물질상의 궁지, 나아가서는 주위의 멸시와 음모 가운데서도 용맹하게 이들에 도전하고, 혹은 비웃어가며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작품을 대개 소극, 풍속희극, 성격희극 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만큼 부자연스런 것은 없다. 이 세 가지의 희극적 요소가 극적 합당성에 따라 갖가지 정도로 섞여 있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의 작품들로는 아내들의 학교 (L'ecole des femmes), 타르튀프(Tartuffe)(1664 - 1669), 돈 주앙(Don Juan)(또는 돌의 잔치)(1665), 인간 혐오자(Le misanthrophe) (1666),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 (Les Pre'cieuses Ridicules) (1659), 억지의사 (Le medecin maigre' lui ) (1666), 수전노 (L'Avare) (1668),, 서민귀족 (Bourgeois Gentilhomme) (1670) 여학자님들(Les Femmes savantes) (1672), 상상병 환자 (1673) 가 있다.

몰리에르는 극의 줄거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단원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그는 오로지 성격모사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는 등장 인물들을 동시대의 사회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그들은 17세기의 독특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들이 하나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눈에 띄게 하는데도 능한데, 이런 점에서는 그들은 영원한 인간형들이다.
몰리에르는 진실을 그려 낼 줄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희극적인 것을 만들어 낼 줄도 알았다. 그는 등장인물들이 처해있는 어떤 상황에서 이따금 발생 할 수도 있을 고통스러운 인상을 언제나 피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 속에 조금이라도 희극적인 부분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을 확대해 보인다. 그의 도덕관은 아주 실제적이고 완전히 세속적이다 이 도덕관은 각 개인이 자기의 본성을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각자는 남에 대해서도 똑같은 권리를 존중한다는 조건이 거기에는 따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