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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의 생명 - 매일 죽음으로 넘겨지다 - 죽음에 넘겨지다 - David Wilkerson

작성자사랑을 품은 이|작성시간13.11.25|조회수61 목록 댓글 0

David Wilkerson (Korean)

 

예수의 생명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전서 4:9)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경건한 성도가 죽음의 상황으로 이끌릴 때는, 그것이 더이상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 가지로 구별되는 요원들, 즉 천사들과 마귀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당신이 그 투쟁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어두운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로 인한 비밀스러운 전투에 대해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한편, 그 세 영역의 요원들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마귀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고, 천사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궁금해합니다. “이 하나님의 종이 어떻게 그 시험에 반응할까?”

그렇다면, 그토록 경이로운 시험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왜 이러한 죽음을 통과해야만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천부께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타나심을 방해하는, 우리의 미처 성화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걸림돌,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야망, 우리의 욕망 등—예수님의 온전한 비춰지심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마음의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죽음의 상황들”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만일 당신의 걸림돌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움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사람을 당신의 삶 속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당신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당신의 두려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육체적 통증까지 발생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들 삶을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인해 실제로 그들의 숨통이 막혀서, 급기야는 호흡장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남녀를 당신 삶에 허락하실까요? 왜냐하면, 당신의 자비로운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죽음에 넘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그 두려움은, 네 안에 있는 소중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흐름을 막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맺을 수가 없단다. 네 안에 있는 이 두려움은 끝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너는 그것으로부터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분을 향한 당신의 부르짖음은 이러할 것입니다. “주님, 제발 이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아니다, 나는 죽음이 그 맡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예수의 생명이 네 안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내가 이 모든 것을 허락했단다!”

매일 죽음으로 넘겨지다

경 건했던 사도 바울은 성령과 계시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기도했고 매일 예수님과 친교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핍박과 중상, 멸시와 매도를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험담거리였고, 그의 성품은 모욕당했으며, 그의 이름은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너무도 자주, 그리고 너무도 많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그의 영적 제자들조차 그가 왜 그토록 끊임없는 곤경과 박해를 당해야 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은 멍들어 있었고, 그의 뼈는 부러져 있었으며, 그의 몸은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여기 권능으로 가득하며 신실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자가 있었으나, 그가 가는 곳마다 매도와 모독이 뒤따랐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라는 한 친구만이 그에게 남아있으며 그가 “나의 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16) 바울은 이 친구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그는 나의 투옥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비밀스러운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는 나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한, 바울은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겼다.”는 성도들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서 10:34)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고충을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바울이 시험을 당할 때 그와 함께했던 자들이며, 그들은 “비방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취급받는 자들과 사귀는 자들이 되었으니…” (33절) 이러한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고난의 동역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당했던 일들을 그들도 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깊은 영성을 가진 한 사역자를 아는데, 그는 수년에 걸쳐 다른 성도들로부터 악한 공격과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제가 그를 볼 때마다, 그는 제게 그의 문제들에 대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시련은 그치지 않았고, 저는 그것이 귀찮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항상 왜 그리도 시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은 제가 알고 있는 목회자 중에서도 가장 경건한 분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친밀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당신이 그토록 계속되는 곤경을 겪어야 하는 삶을 허락하실까요?”

그러나 그 경건한 사역자가 매일 죽음의 상황에 넘겨졌야 했던 이유는, 그가 부활생명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력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계속 그를 죽음으로 넘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구현되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바울을 파멸시키려고 작정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나타나심이 그의 삶에서 밝게 빛춰지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넘겨지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1)

사도 바울이 “살아있는 우리”라고 말할 때, 그는 요한계시록 1장 18절 예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자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도 또한 죽음으로 넘겨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독생자를 죽음으로 넘기셨듯이,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도 죽음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손을 잡고 죽음의 문턱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음아, 여기 이 아이도 데려가렴. 얘를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무나!” 그리고 이 시점에서의 하나님의 손은 더이상 보호자의 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손은 우리를 죽음으로 밀어 넣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 독생자를 죽음에 넘기신 똑같은 이유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사망이나 고통, 그리고 슬픔이 더이상 우리를 삼켜버리거나 파멸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즉 그분 자신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는 일이 모험이 아니었듯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도 모험이 아님을 그분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한 승리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자기 독생자를 위해 승리를 계획하셨듯이요. 그러나 이 승리는 오직 죽음을 통과해야만 우리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너희 매일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사도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36) 이 구절의 헬라어 의미는 이렇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죽음으로 넘겨졌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현실을 직면한다.”

여기서 반드시 이해하셔야 할 부분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동행에서 우리가 날마다 감당해야 하는 죽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고 증언했을 때 그는 환난, 고충, 핍박, 위험등 온갖 종류의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는 우리는, 죽음에서 또 다른 죽음으로 끊임없이 넘겨지고 있다. 날마다 새로운 시험이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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