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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자료

[아제리]아제르바이잔

작성자백경수|작성시간08.07.01|조회수450 목록 댓글 1

아제르바이잔 개관(槪觀)


♠ 국명의 의미

고대부터 아제르바이잔은 천연가스가 많아 지표면으로부터 가스가 분출되어 불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을 숭배했으면 거룩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 말은 페르시아어(adhar)아자르-불-, 아랍어(beyqan)바이잔-땅-,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의 땅(나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이곳에 배화교가 성행했다.

수도 바쿠는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연중 바람이 불기 때문에 “바람의 도시”라 불려진다. 


♠ 위치 및 자연환경

  아제르바이잔은 트랜스카프카즈(자카프카즈)에 위치한 세나라중에 하나이다(아제르바이잔,그루지아,아르메니아). 북쪽으로는 카프카즈 산맥, 동쪽으로는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터어키, 남쪽으로는 이란과 접해 있다. 총 면적은 약 19만 8,000㎢이며 그 중 현재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아제르바이잔령은 86,600㎢를(남한과비슷)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란령에 속해 있다.

북부지역은 카프카즈산맥과 접해 있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중부는 농사를 경작할수 없는 건조한 스텝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귤이 재배되어지고 있다. 세계 12개 기후중 이 작은나라에 9개의 기후대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아르메니아에 빼앗긴 가락박지역은 이 나라지형중에 산수가 빼어난 곳이며 광물이 많이 매장되어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유전은 압쉬론 반도를 중심으로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아제리족이 살고있는 카프카즈 지역은 슬라브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충돌하는 영적 최전선중의 하나이다


♠ 인구(소수민족포함)

  아제리민족의 숫자는 약4천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에 본토에 살고 있는 인구가 8백만이며, 이란북부지역에 2천5백만, 그외 러시아와 중앙아시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현재 독립된 아제르바이잔인구의 90%는 아제리족이며 그외 소수민족으로는 동북부지역에 레즈기민족(16만),타트민족(1만), 남부지역에 탈스쉬민족(13만), 서북부지역에 아바르민족(4만5천)등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러시아인(15만정도-98년통계)


♠ 언어

  튀르크어 중 오구즈 계열의 아제리 튀르크어를 사용한다. 오구즈 그룹 튀르크어는 현재 터어키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터어키어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아제리(Azeri)어, 튀르크멘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튀르크멘(Türkmen)어와 불가리아의 북동 지방, 도브루자, 몰다비아의 남부 지방, 우크라이나의 남서 지방에서 사용되는 가가우즈(Gagauz)어 등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각 언어에 속한 방언(shive)과 함께  우즈벡키스탄의 콰레즘(Kwarezm)의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콰레즘 방언과 이란 북부와  호라산(Horasan) 지역에서 사용되는 호라산 방언도 오구즈어에 속한다. 이러한 언어들이 공통적인 특징을 갖게 된 것은 거대한 셀축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오구즈족이 지배했던 곳으로, 수세기 동안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어는 터어키어와 매우 비슷하여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투르멘스탄어와 약 60%이상 비슷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쉽게 서로의 언어를 습득할수 있다.

2001년 7월달부터 국가의 공식적인 문자를 키릴에서 라틴으로 바꾸었다.


♠ 역사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인에 의해, 기원전 5세기에는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당한 이래 이 땅의 주인으로 많은 민족들이 거쳐갔다. 로마시대에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고대 원주민인 알바니아인이 이곳에 독립국가를 세워 알바니아라고 하였다. 그 후 3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 7세기 중엽부터는 아랍-이슬람제국, 11세기에는 셀출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 중엽이후 13세기까지 아랍-이슬람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 지역 사람들이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다. 그후 1256년 몽골제국의 지배와 함께 이 지역의 말라가라는 도시가 시리아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일 칸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몽골지배 후에는 타브리즈(Tabriz)의 수도가 되어 터어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후에 이란계 사파비왕조(1502 -1722)가 설립되는 바탕이 되었다. 이란계 하자르(Hazar)왕조(1796-1924) 초기에 재정 러시아가 카스피해 연안 지방으로 진출함에 따라 양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 이로인해 귤르스탄조약(1813),투르크멘차이조약(1828)이 체결되어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로 속하게 된다. 타브리즈는 러시아군이 계속 남아 통치하다가 1921년 페르시아의 통치권이 회복되어 아라크스강을 경계로 하여 남부는 이란령으로 남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지역은 러시아 10월 혁명 전까지 계속하여 러시아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혁명 후에는 ‘트랜스 카프카즈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영역에 귀속되었다. 1936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개편되어 독립해 소연방의 구성 공화국이 되었다.

  고르바쵸프 등장 이후, 아제르바이잔 내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 자치구 카라바흐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발발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민족분규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의 개방화 정책에 힘입어 1989년 10월 5일 주권선언을 하였으며, 1991년 2월 6일 국명을 아제르바이잔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소련 붕괴와 함께 드디어 1991년 8월 30일 소연방으로부터 완전 독립하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 12월 CIS형성시 발틱 3국과 함께 유일하게 제외된 구소련 튀르크계 국가이었으나 1993년에 가입하였다.


♠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1918년 러시아로부터 잠시 독립(볼세비키혁명,10월혁명) 하였으나 1920년 4월28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고 1922년 트랜스 코카서스사회주의 공화국을 형성하여 소연방에 가입했다.

  * 1923년 나고르-카라바흐 자치주 설립

  * 1924년 낙치반 자치공화국 설립

그후 1932년 12월5일 트랜스크 코가서스사회주의가 폐지되고 아제르바이잔으로 독립된 소비  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90년 9월 13일 공화국의회가 소련내 15개 공화국중 8번째로  공화국 주권선언을 선언했으며 그후 1990년 12월 1일 국명을 아제르바이잔(이전국명:아제르바이잔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991년 8월30일 독립을 선언한후 10월18일 공식적으로 독립을 회복했다


♠ 정치체제

  정부형태는 대통령제이며 임기는 5년이다. 전 대통령 헤이델 엘리에브의 아들 일함 엘리에브가 2003년 집권한후 지금까지 정부를 이끌고 있다. 집권당은 Yeni azerbaijan party이며 20개 이상의 야당이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제1야당:Müsavat party)


♠ 산업 및 경제

  과거 구소련당시 아제르바이잔은 전력과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지하 자원이 풍부하여 공업이 발달되어 있었다. 주요 생산품들은 석유 채취 장비, 석유 제품, 천연가스, 알루미늄, 전동기,냉장고,철물 재료 등이었다. 면화, 실크 가공업, 낙농업과 쌀, 차, 메론, 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업도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붕괴인해 석유와 관련된 생산시설만 가동되고 있으며 그외 설비등은 가동한지 않은채 남아 있다. 현재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시추 컨소시엄에는 전세계의 주요 석유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나라의 경제는 낙관적이라 할 수 있으나 석유 체굴에 대한 이권으로 인한 열강의 각축장이 됨으로 인하여 아제르바이잔 일반 민중의 기대도는 그리 높지 않다. 현재 오일달러의 영향으로 인해 바쿠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는 더욱 늘어나고있는 실정이다.

참고: 화폐- 마나트(1달러-4,900마나트*2002년)

      석유생산능력-20세초 매년 10만톤(전세계의 50%에 해당)

                   1943년 매년 2천3백만톤(구소련연방의 70%에 해당)

                   2001년 매년 5천만톤


♠ 사회 및 문화

  중앙아시아의 다른 튀르크계 무슬림들처럼 노래와 춤, 무도회, 시낭송 등을 즐기는 예술성과 낭만이 있는 민족이며 주로 차이집이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서 사회적 접촉의 기회를 갖곤 한다. 주식은 쌀로 만든 밥과 빵, 양고기, 채소, 낙농품, 과일 등이며 차이를 자주 마신다. 또한 이들은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민족임을(Qonaq pǝrvǝr)자랑스럽게 여긴다.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의 계속된 처참한 전쟁으로 인해 현재 이들의 사회, 경제 상황은 매우 피폐되어 있고 이슬람문화가 전반적으로 확산되며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높다. TV채널은 모스크바, 터키, 아제리 등의 채널이 있다.

바쿠는 구소련시대 5번째로 큰도시였다. 현재 인구는 약 3백만명정도이며 25개정도의 대학이 있으며, 도시는 많이 서구화됐다.


♠ 나고르노-가라박분쟁

   아제르바이잔 서남부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인구의 75%가 아르메니아인으로 구   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와 통합 및 독       립을 요구하며 1987-88년 대규모의 통합시위를 벌였다. 초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내전      형태로 발발하였으나 1992년 아르메니아가 직접 분쟁에 참여하므로 인해 양국간의 전면     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4년 5월 양국가는 휴전에 합의 했다. 나고르노-가라박분쟁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은     영토의 20%를 아르메니아에 빼앗기게 되었으며,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 종교

  이들은 자신들을가리켜 글르즈(qılınc)무슬림이라고 한다. 이 말은 칼에 의해 이슬람을 받아들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아파 이슬람이 70%, 순니 이슬람이 30%이며 아제르바이잔 내에서는 이들 두 파의 심각한 갈등은 없으며, 형식적인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식적으로는 현지인들의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1996년 6월부터 대통령령에 의해  외국인의 종교 전파가 금지되었다.


♠ 기독교 상황

  기독교인의 숫자는 약  5~6,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새 종교법에 의해 4개의 현지교회(개신교)가등록 되었다(종교성 관할). 그리고 외국 사역자들에 의한 10 개정도의 지하모임이 있다. 지방은 갠제비롯해 주요지역에서 교회가 개척되어지고 있으며 그외 지역에는 소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 번역은 신약 전체가 1982년에 구약은 2005년 처음으로 출판되어 현지인들에게 배포되어졌다. 예수 영화 비디오 테잎이 아제리어로 번역되어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선교역사 및 영적상황


1.들어가말

아제르바이잔 쉐키북부지역에 키쉬(Kish)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바쿠에서 버스로 약 5시간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키쉬는 소카프카즈 줄기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산수가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길이 험하기 때문에 일반차량으로 가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바로 이곳에 아제르바이잔 최초의 전도자 엘리세위(Elisey)통해 건축되어진 교회건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초기기독교역사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지역들중에 하나이다. 다시한번 이 지역을 주님앞에 올려드리며 초대교회의 부흥을 기대해본다.


2.선교역사

AD1.5세기 아제르바이잔 북부지역에(알바니야국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인 Taday(다대오), Bar-Tolmay(바돌로메)가 이곳에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후 다데오의 제자 옐리세위(Yelisey)가 계속해서 알바니아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옐리세위(Yelisey)에 대해 역사학자 무사 칼란카틀르(Musa Kalankatlı)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옐리세위(Yelisey)는 예루살렘에서 이란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우디(Yti or Ydi)자치지역인 Kiş kǝndi(세키지역에 위치)에 와서 교회를 세웠으며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당시 이곳은 교회들의 중심지역이었으며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곳이었다.

알바니야에서 급속하게 전파된 기독교는 AD 313년 우르나위르(Yrnayr)통치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국교로 인정된다.

이렇게 아제르바이잔이 기독교의 초기 거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두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이 지역에 많은 분산된 유대인(Diaspora Jews)이 있었다. 신약시대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탄인 바깥지역에서 살았다. 초기에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인들에 의하여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주변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기타 많은 유대인들은 자진해서 소아시아와 코카서스를 포함한 여러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 조상들의 신앙을 정상적으로 이어갔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 조국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며, 연중 큰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 사도행전 2장에“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중에 남부 아제르바이잔에 살았던 엘람(Elamites)인은 아마 분산된 유대인 기독교인 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교도들이였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이외지역에서의 유대인의 영향은 항상 초기 기독교전파에 대한 중요한 가정(전제조건)으로 여겨져 왔다.

또하나 아제리바이잔이 사도시대이후 기독교와된 최초의 지역들중에 하나였을 것 이라는  확신을 주는 근거는 그의 전략적 위치, 즉 중동, 중앙아시아 및 유럽과의 교차로라는 점이다

(미국전략가 브레즌스킨의 저서 체스게임에 세계지정학적 요충지에대해 언급하고 있다-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우즈벡키스탄,한국)


초기 기독교중심지에서 카프카즈 산맥으로 가는 근접한 지역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초기 교회들이 오늘날의 그루지아,아르메니아 및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데 몇일이 걸리지 아니하였다. 카프카즈로 가는 많은 무역로가 흑해를 경유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알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자 알반통치자 자반쉬(Cavanşir,616-680)는 성경과 일반 신앙서적들을 알반언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초기 선교거점이었던 이 지역에 7세기 아랍세력이 들어옴으로 인해 서서히 이슬람화되기 시작한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후 이 지역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2년 HOPE에서 파송한 S목사님이 한국인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이 지역에 들어와 문서사역을 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아제리모임은 극히 미약하였으나 러시아침례교회 및,오순절교회

의 내에 아제리모임이 형성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해 갔다.(예-아제리침례교회, 아제리오순절교회) 또한 국력을 마땅으로 서구사역자들중에는 인터내셔날(International church)교회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인터내셔날(International church)교회내에서도 아제리모임 형성되어 이제는 따로 예배를 드릴정도로 많은 현지인들이 참석하고 있다. 현재 아제르바이잔내에 약10,000명정도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영적상황

1996년 대통령령에 의해 외국인의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된 이후 TV와 언론매체을 통해 선교사의 활동에 대해 방송으로 보여주었다. 실제적으로 정부는 외국인단체가(IACD) 종교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단체를 폐쇠시켰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1999년 경찰은 침례교회를 기습하여 몇몇 서구사역자를 추방함과 동시에 현지리더자를 감금했다. 이 사건을 통해 인권문제가  대두되면서 서구로부터 압력이 가해 오기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미국대사가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교회탄압에 대한 공식적인 정부의 개입은 없을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으며 추방당한 사역자가 재입국해 사역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개기로 공개모임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1년 10월 종교성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 기존의 교회등록을 법무부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종교성 관할로 넘어갔다. 그래서 기존등록된 종교단체들을 포함해 새롭게 활동하고 있는 종교단체들은 종교성에 재등록신청을 해야만 했다. 현재 4개의 교회가 동록됐다.

이렇게 공개모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방면 선교단체의 모임은 극히 미약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제리모임을 포함해 3-4개의 그룹이 선교단체을 통해 개척되어지고 있다. 지방사역은 갠제를 중심으로 서서히 일어나고 있으나, 아직은 미미한 상태이다.

이러한 영적인 변화 가운데에서도 이슬람을 옹호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론과 방송매체를 통해 선교사의 행위와 기독교에 대한 편파적인 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특별히 한국인에 대한 편파적인 방송을 몇번내보낸적이 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에서 더욱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기를 소원하다.


4.카프카즈의 관문국가 아제르바이잔

  북카프카즈에 위치한 나라들을 카스피해 연안에서부터 흑해 연안까지 위치한 순서대로 보면 다게스탄 (Dagestan)자치공화국, 체첸(Chechen)자치공화국, 잉귀쉬(Inguish)자치공화국, (북)아세티아(North Ossetia)자치공화국, 카바르디노-발카르(Kabardino-Balkar)자치공화국, 까라차이-체르케스(Karachay-Cherkes)자치공화국, 아디게(Adygey)자치공화국 등이 있으며 카스피해 북단에 칼묵(Kalmyk)자치공화국이 있다. 트랜스카프카즈에는 과거 구소련 연방이 붕괴되면서 독립한 인구 800만명의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과 550만명의 그루지아(Georgia), 350만명의 아르메니아(Armenia) 세 국가가 있다. 그리고 그루지아 內에도 압하즈(Abkhaz)와 (남)아세티아(south Ossetia)등 두개의 자치공화국이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카프카즈국가중에 가장큰 민족이며, 경제,정치적으로 가장안정되어있는 나라 이다. 더불어 카프카즈이슬람센터가 바쿠에 있을정도로 종교의 중심지역이다.

종족별로도 쿠믹,노가이,카라차이,발카르 민족 또한 아제리 민족과 같은 튀르크계이며  쿠믹,노가이어는 아제리어와 상당부분 유사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하기에 카프카즈의  최대종족인 아제리민족이 변화되면 이 지역의 영적인 판도가 달라질수 있다. 


5.초대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며

아제르바이잔 교회사는 1세기에 예수님의 제자 바돌로매가가 알바니아국가에 복음을 전했다고 씌여져 있다. 실제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바쿠까지 육로로 3-4개월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알바니아 때에 베르데라는 곳이 기독교활동의 중심이 될 정도로 복음이 번성했다. 그러나 아랍의 침략과 더불어 강제적으로 믿게된 이슬람은 지금까지 이들의 문화와 가치관의 세계를 바꾸어 버렸다. 아직도 예수를 단순한 선지자로만 알고 있는 이 민족, 그러나 초대교회성도들이 세웠던 세키에 위치한 키쉬교회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며 예배를 드렸다. 다시한번 초대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며 이 민족을 주님앞에 올려드린다.

 

선교명령, 소명 그리고 헌신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기독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첫번째 대화에서 그들이 어떻게 순례의 길을 떠나기 시작했는지를 묻는다. 다시 말하면 간증을 함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간증을 통해 그 삶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 갈 수 있다.

♣간증을 통해 알수 있는 것

  1.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

  2.영혼이 곤고할 때 회복하는 곳

  3.가장 확실한 성령의 증거 방식


♣우리는 어떻게 헌신하는가?

1.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2.선교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선교 훈련의 의미는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의 감동이다. 지식적인 훈련은 사람을 알게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선교로 보내지 않는다.

3.언어와 물질이 잘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헌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것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헌신은 어떤 사람 혹은 선교사에 의해서 감동을 받거나 그를 사랑하므로 일어 날 수 있다.


♣소명을 확인하는 방식

  구약의 부르심과 신약의 부르심은 다르다.  구약에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고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신다. 행7장. 이 사람 모세, 그 모세, 등의 반복. 한사람 모세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인도하신다.


♣선교명령

1.첫사람 아담의 창조-하나님의 만족, 하나님이 교제 할수 있는 완전한 인격. 아담이 하와와 짝을 짓는 방식. 사람을 지으신 목적 :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며 영광을 투영하고 거룩함을 계시하게 하시기 위함. (엡 1:3-14)민족을 구분하지 않으셨다.

2.아담의 범죄와 죄의 확산-최고의 범죄 : 바벨탑의 대적, 교만함- 민족의 분산의 계기. 사람이 범죄할 때 아파하신 것은 하나님이 더 깊었다. 죄를 지은자 보다 그 부모는 더 아프다. 언어의 혼란. 흩어진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3.아브라함을 통한 계시

창12:2 ; 17;4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음

4.모세를 통한 계시

출 19:5 열국이 다 그의 것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계시하신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어떤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신인가를 계시함. 율법을 통해 그의 성품을 계시함.

5.다윗을 통한 계시

시 2:8 ; 22:27-28 열방을 유업으로 주시려 함

6.예수 그리스도

눅 2:29 시므온의 기도 ; 이방의 비추는 빛

마 4:15-16(사 9:1-7)흑암에 앉은 백성이 빛을 본다.

눅 4:43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리니

마 24:14 천하 만국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리니

주님의 관심은 모든 민족이 회복되고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떨어진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벗어난 것(롬8:21)이다.

7.바울의 부르심의 이유

행 9:15내 이름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을 주시는 것은 모든 민족을 믿어 순종케 하려는 것이었다.(롬 16:26) 이를 통해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자 함이었다.(고전 15:45) 이제 말세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비밀은 이방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엡3:6)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마 28:19-20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우리는 더 이상 불순종 할 수 없다. 창세전부터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아들의 순종이 예비되고 아들이 아버지의 계명을 사랑함을 인하여 스스로 낮아져 모든 고난과 능욕 가운데 있다가 십자가을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심판의 무서운 것을 구속하셨다. 하나님은 한 민족과 여러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모든 민족을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구속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였다. 이제 우리로 이 영의 직분을 지니고 이방에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오늘도 이방의 땅에서는 구속을 기다리는 피조물의 탄식 소리가 있고 전쟁과 폭력과 억압과 불의, 불경건함이 온땅을 지배하고 있다. 체첸과 카프카즈야,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벡키스탄, 타직스탄, 아프가니스탄, 위구르, 티벳, 수많은 민족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전쟁 중에 혹은 혼란중에, 어두움 중에서 그들의 생명을 다하고 있다.


마 25:31-46 마지막 날 심판에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심판하실 것이다. 한국 민족은 어느 편에 서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어느 편에 서게 될 것인가? 지극히 작은 자 중의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이 민족들의 벗은 것과 아픈 것을 그냥지나칠 때 결코 양의 편에 서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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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랑을 품은 이 | 작성시간 08.08.15 효임언니가 품은 땅, 아제르바이잔~! 주님을 속히 만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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