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Vision

[글]복음의 마지막 주자 동방의 독수리 -유석근 목사-

작성자사랑을 품은 이|작성시간10.04.02|조회수446 목록 댓글 0

복음의 마지막 주자 동방의 독수리
지난 5월 8일(월)~11일(목)까지 올림픽 홀에서 열린 “대적의 문을 취하라” 성회에서 주강사인 신디 제이콥스는 “유대민족은 한국인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아주 놀라운 예언을 했다.

집회 첫째 날 밤 스캇 브래너가 인도하는 찬양과 경배의 시간이 끝나고 등단한 신디는, "기도할 때에 한국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 서쪽의 중국으로 가고 이어서 온 아시아를 덮고 마침내 예루살렘까지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다”면서, 하느님은 한국인 선교사들을 이스라엘로 보내어 유대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특별계시인 구약성경 이사야서에는 하느님께서 말세에 한국인 선교사들을 이스라엘로 파송하시어 유대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이미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눈이 열리지 않아 그동안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기록된 계시인 성경의 증거는 신자의 체험이나 간증보다 훨씬 중요하다. 성경은 '최종 권위'이다.

아래의 글은 이에 관해 수년 전 KIBI 기도 모임에서, 그리고 지난 겨울 광주 어게인 1907 집회에서 전한 메시지로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유석근 저, 예루살렘 간) 제8장 <우리가 마지막 주자이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신 형제자매님들은 우리 겨레가 마지막 때에 감당해야 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복음의 마지막 주자 동방의 독수리


성경상의 기원으로 볼 때 한국인과 유대인은 뗄 수 없는 유대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조상 ‘에벨’(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로부터 분리된 형제족속이기 때문이다(창 10:21; 25; 30, 11:10~32). 에벨의 큰 아들 벨렉의 후손이 유대민족이요(창 10:21; 25; 11:10~30),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한 작은 아들 욕단의 후손이 우리 한민족이다(창 10:21; 25; 30).

그런데 성경은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고 말씀한다. 형제란 자기의 형이나 아우가 위경에 처했을 때 끝까지 돕는 존재란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느님은 유대민족을 구원할 도구로 우리 한국 백성을 사용하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구약성경 이사야서가 말세에 유대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동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할 자들이 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마지막 때에 알이랑 민족 한국인으로 하여금 유대민족에게 능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어(롬10:10~15) 마침내 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게 하실 것이다. 바울이 예언 한 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은 그렇게 성취될 것이다.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이사야 46:10-13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동방의 먼 나라’에서 시온으로 사람을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하고 있다.

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12.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13.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 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먼저 12절 말씀을 살펴보자.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여기에서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뜻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느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참조 10:2~4). 또한 “마음이 완악하여”란 말씀은 유대인들이 완고하게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하).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 졌느니라”(롬 11:7). 즉 12절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마음이 완악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유대인들아 나에게 청종하라”는 뜻이다.

왜 하느님은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내게 청종하라’고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는 13절에 있는데,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여기에서 ‘나의 의’란 ‘하느님의 의’로서 ‘복음’을 뜻 한다: “복음에는 하느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즉 12~13절 전체의 뜻은 하느님께서 마음이 완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가까이’ 가져가시어 그들을 구원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12절에 있는 “의에서 멀리(far) 떠난 너희여”라는 구절과 13절에 있는 “나의 의를 가까이(near) 할 것인즉”이란 구절은 ‘대구’를 이루는 말씀이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떻게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실 것인가? 그 구체적인 하느님의 계획이 11절 말씀이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여기에서 ‘동방(the east)'이란 말과 ‘먼 나라(a far-off land)’라는 말, 두 곳에 밑줄을 치라. 하느님은 ‘동방의 먼 나라’에서 그분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냥 ‘동방’이 아니고 ‘먼 나라’ 동방이다! 즉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가 뜨는 ‘동방’에 있는 나라로서 그 나라는 ‘멀리 떨어진 땅'(a far-off land)에 있는 동방의 나라다. 그곳은 어디인가? 한반도, 즉 코리아이다!

하느님이 ‘동방의 먼 나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스라엘을 중심해서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가장 먼 땅’에 있는 나라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게 해석상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가장 먼 땅을 ‘땅 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행 1:8, 사 41:9). 세계지도를 펴놓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정동쪽’에 있는 땅 가운데 가장 먼 땅, 즉 ‘땅 끝’이 어디인지 찾아보라. 바로 극동의 한반도이다! 그러니까 11절이 의도하는 ‘동방의 먼 나라’는 우리나라를 지목한 것이다!

지나(支那=중국)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의 먼 나라’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나는 영토가 광활하여 서쪽 국경이 이란과 국경을 같이 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동부 국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거리라면 이스라엘에서 결코 ‘먼 땅(a far-off land)’이라고 할 수 없다. 인도 역시 ‘동방의 먼 나라’로 해석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도는 국토의 대부분이 동방보다는 남방으로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처럼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땅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바사의 고레스 왕 때에 성취되었다고 해석해 왔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0절을 보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10절 이하의 예언은 문맥 속에서 해석할 때 ‘종말’에 성취될 예언인 것이다. 바로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을 통해서!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가? 본문 11절이 의도하고 있는 ‘동방의 먼 나라’는 욕단의 후손이 살고 있는 나라, 코리아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그들을 일컬어 ‘독수리’를 부른다고 말씀 하시는가? 어떤 하나의 성경 구절은 반드시 문맥 속에서 해석 되어져야 한다. 그 해답은 13절에 있다: “…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은 ‘빨리’ 구원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빨리’ 구원하시기 위해 시온에 복음을 전할 자들을 ‘빨리’ 가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독수리’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큰 날개를 가지고 높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누구보다 빨리 이동하기 때문이다(애 4:19).

하느님은 ‘합당한 때’를 지키신다. 그러므로 때가 차면 ‘서둘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때에 하느님은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할 자들을 독수리처럼 빠르게 동방의 먼 나라, 즉 극동의 대한민국에서 시온을 향해 달려가게 하실 것이다! 이사야 52:7~10은 바로 이것을 예언한 것이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느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 다운고

여기 이사야 52장 7절에 기록된 ‘좋은 소식’ ‘평화’ ‘복된 좋은 소식’ ‘구원’ 이라는 말들은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사도 바울에 의해서 로마서10:10~15에 인용 되었다. 거기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전도자들이 가야 한다면서 이사야 52:7 말씀을 인용하였다. 이 구절은 앞서 설명한 이사야 46:10~13과 병행구절이다.

그러나 이 구절도 역시 주석가들은 바사의 고레스 왕 때에 성취된 예언이라고 설명해 왔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을 해석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하나의 성경 구절은 반드시 전후 문맥 속에서 해석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이 7절 말씀을 문맥의 흐름 속에서 해석하면, 이것은 결코 과거에 성취된 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10절을 살펴보자.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박윤선 박사는 이 구절에 있는 “땅 끝까지도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는 말씀을 “이는 신약시대의 만민구원운동을 예언한다”라고 설명한다(박윤선 ․ 성경주석 이사야서). 그렇다! 모든 땅 끝까지 구원을 받는 것은 신약시대의 일이다. 물론 여기 10절에 언급된 ‘땅 끝’은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우선적으로 7절에 있는 ‘시온’, 즉 ‘예루살렘’을 뜻한다.

이것은 문맥상으로도 그렇지만 복음 전도의 마지막 과제로서의 땅 끝이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이요, 민족적으로는 유대 민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롬 11:25-26). 예루살렘에 다시 복음이 들어가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구원을 받을 때, 비로소 “모든 땅의 끝들이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10절의 예언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야 52:7~10은 신약시대에 성취될 예언인데, 그것은 말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는 전도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에 대한 회화적 묘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음전도자들은 어디로부터 시온을 향해 가는 자들인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앞서 살펴본 이사야 46:10~13에 근거해 볼 때 그들은 동방의 먼 땅, 즉 극동의 대한민국에서 시온으로 달려가는 복음전도자들인 것이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한국교회 성도들은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라는 복음성가를 부를 때, 그 가사에 등장하는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이란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갈 욕단의 후손 우리 한국인 전도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자각하며 노래해야 할 것이다.

그는 해 돋는 곳에서 오리라

말세에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할 자들이 ‘동방’으로부터 오리라는 예언은 이사야 41:25~27에도 기록되어 있다.

25. 내가 북방에서 일으키며 그는 해 돋는 곳에서 오리라 그는 내 이름을 부를 것이며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라

26.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27.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먼저 27절 말씀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하느님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기쁜 소식’은 앞서 설명한 이사야 52:7의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라는 말씀 가운데 있는 ‘좋은 소식’과 같은 히브리 원어 ‘basar’를 사용하고 있다. ‘바사르’는 현대 히브리어로도 ‘복음’이라는 뜻이다. 52:7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10~15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전도자가 가야 한다는 것을 교훈할 때 인용한 말씀이다.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공포하며 “네 하느님이 통치하신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기 위하여 산을 넘는 그 아름다운 발길은 바로 ‘동방의 먼 나라’ 사람들의 발길인 것이다(사46:10~13). 그 ‘동방의 먼 나라’는 물론 욕단계 선민의 나라인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본문 25절에서도 역시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할 자들은 ‘해 돋는 곳’ 즉 ‘동방’에서 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북방에서 일으키며 그는 해 돋는 곳에서 오리라. 그는 내 이름을 부를 것이며…” 한글 개역성경은 25절 첫 부분이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로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북방에서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북방에서 ‘일으키며’라고 되어 있으며, ‘한 사람’이라는 말은 없고 단지 해 돋는 곳에서 ‘온다’는 동사를 3인칭 단수 남성을 받도록 사용하였을 뿐이므로 그를 반드시 사람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one)’로 번역하였다: “I have raised one from the north, and he shall come from the rising of the sun."(KJV) 따라서 이 ‘하나(one)’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나라’라는 뜻의 ‘고이(goi)’도 히브리어에서 3인칭 단수 남성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25절이 말하는 ‘북방’이란 어디인가? 그곳은 ‘하느님의 처소’를 뜻한다(시 48:2, 사14:13, 시 75:6-7). ‘해 돋는 곳’이란 어디인가? 물론 그곳은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할 자들이 출동하는 땅이다. 바로 이사야 46:11에서 예언한 ‘동방의 먼 나라’ 곧 극동의 한반도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 해석의 기본 원리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보라”(27절)고 한 말씀에 있어서 ‘그들’이라는 것이 누구를 의미함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 복음전도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자’를 바사의 고레스로 보는 주석가들이 많다. 이러한 견해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왜냐하면 고레스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아닌데, 25절의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점이다. 고레스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자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자”는 신 ․ 구약 전체를 통하여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느님을 찾고 따르며 예배하는 자를 말한다(창 4:26, 사 64:7, 행 2:21). 따라서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자”는 고레스가 될 수 없다. 본문이 의도하는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자”는 하느님께서 말세에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도록 “동방의 먼 나라”에서 보내시는 하느님의 백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통치자를 마치 회반죽을 이김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같이 하리라”(25절 하)고 하였으므로, 그는 강하여 군사적으로도 이스라엘을 도울 수 있는 자이다. 사탄의 한결같은 목표는 유대인을 이 땅에서 전멸시키고 이스라엘 나라를 없애버리는 것이다(시 83:3~4). 만약 어떤 나라가 사탄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이 구원코자 하시는 이스라엘을 히틀러의 독일이나 후세인의 이라크처럼 멸절시키려고 애쓴다면 그 나라는 신적인 징벌이 불가피하다.

바로 그 악한 나라들을 하느님은 알이랑 민족 대한민국의 군대를 동방에서 보내셔서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계시를 통해 장차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때에 우리나라는 주님의 은총으로 열방에 정의를 펴며 복음을 전하는 부국강민(富國强民)의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한 민족(a nation)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

하느님께서 말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도록 동방(the east)에서 보내실 백성은(사 46:10~13, 41:25~27, 52:7) 여러 민족이 아니라 ‘한 민족(a nation)’ 이라는 사실이 이사야 55:1~9에 예언되어 있다.

하느님은 먼저 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느님 앞으로 나아와 청종하라(listen to me ‧ NIV)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죄값을 치르셨으니 돈 없이 값없이 와서 거저 구원을 받으라는 것으로서(1절), 이사야 46:12의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자들아 내게 청종하라(listen to me ‧ NIV)”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오면 그들의 혼이 살 것이며, 다윗에게 약속하시고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혜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와 영원한 언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삼하 7:14상; 히 1:5하),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이루신 새 언약이다(렘 31:31, 겔 36:24~27). 따라서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그의 속죄 사역으로써 이미 성취가 된 것이다. 다만 현재 유대인들이 마음이 완악하여 메시아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음으로 새 언약의 효과 밖에 놓여 있으나, 그들도 장차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으면(롬 11:25~27) 그 영원한 언약의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4절에서 말하는 ‘그’는 세상의 명령자와 인도자가 되시는 메시아를 뜻한다. 그런데 5절에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예언되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윗의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하느님의 구체적인 계획이다.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나라(a nation)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원문은 ‘못하던’이다) 한 나라(a nation)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느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 55:5)

이 구절은 이사야 41:25~27, 46:10~13, 52:7과 병행구절로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민족(a nation)’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그 이방의 나라를 부를 것이며 그 ‘한 나라’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구절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말은 한글 개역 성경에 그냥 ‘나라’로 번역되어 있어 단수, 복수의 개념이 애매하나 히브리 원문에서는 복수형인 ‘고임(goim)’이 아니라 단수형의 단어 ‘고이(goi)’로 되어 단수의 ‘한 나라(a nation)’로 번역해야 정확한 의미가 된다. 영어 성경 NASB는 단수로 번역해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Behold, you will call a nation you do not know, And a nation which knows you not will run to you.”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단수와 복수를 언제나 명확히 구별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 땅 끝 예루살렘에 능히 복음을 전하도록 ‘동방’에서 보내실 백성은 ‘여러 나라’가 아니고 ‘한 나라(a nation)’가 분명하다. 그러면 그 ‘한 나라’는 어느 나라를 말함인가? 그 나라는 ‘동방의 먼 나라’(사 46:11)라고 했으므로 당연히 극동의 대한민국이다.

고대로부터 용을 숭배하는 지나인들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지나 사람을 부를 때 ‘시노(Sino)’ 족이라고 한다(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라).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 된다(창 10:17). ‘시노’의 어원이 ‘신’인 것이다(강해설교의 대가인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의 창세기 강해서인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다(창 10:6; 15).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그러니까 지나 사람은 셈의 자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것이다.

더욱이 함은 범죄 함으로 인해 셈, 야벳과 형제 관계가 단절 되었다. 창세기 10:21이 ‘셈’을 “야벳의 동생”으로만 말씀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한 함의 후손 지나인들이 셈의 후손 유대인을 구원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한참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아닌가? 하느님께서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사41:1)고 미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55장 5절은 ‘한 나라(a nation)'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나라는 ‘동방의 먼 나라’이니, 곧 셈족 욕단의 후손이 살고 있는 나라인 극동의 대한민국이다(이스라엘의 구원은 여러 나라가 함께 몰려가서 전도하는 이른바 '글로벌 프로잭트'에 의해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6~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7)

동방의 ‘한 나라(a nation)’에서 전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달려와서 복음을 전할 때, 바로그때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라는 것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나아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라는 예언이다.

그러나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는 하느님’(시 139:2)은 유대인들이 이방의 한 나라를 통해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데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리라는 사실을 잘 아신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을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유대인들은 선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유대인들로서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한 나라(a nation)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가당치 않는 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하느님의 길과 생각은 사람의 길이나 생각보다 높은 것이다.

모형과 원형

여호와 하느님은 과거에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동방에서 ‘한 나라’를 택하여 사용하신 적이 있다. 바로 고레스 치세 아래 있던 ‘페르시아’이다. 이 또한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었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45:1-4)

여기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4절)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를 불렀다고 말씀하신다. 고대에 왕은 나라(왕국)와 동일시되는 개념이었다. 즉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레스 왕이 다스리는 ‘페르시아’라는 ‘한 나라’에 국가적으로 기름 부어 주셨으며, 그 나라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는 도구로 페르시아를 쓰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이사야 45:13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역대하 36:22~23에 보면 과연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로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구출하였다. 그때에 비로소 유대인들은 긴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시 126:1~3).

하느님은 고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노예생활로부터 능히 구원할 수 있도록 그의 띠를 동이셨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45:5).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힘을 돋우는 것을 상징한다(시 18:32 ; 잠 31:17). 여기에서 “네 띠를 동일 것이요”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고레스로 하여금 전쟁에 승리하도록 힘을 주시리라는 뜻이다. 즉 조그만 나라 유다를 위하여 제국의 역사까지 미리 섭리하셔서, 고레스에게 해방자로서의 능력을 갖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킬 고레스에게 큰 재물도 주셨다: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사 45:3). 이것은 고레스가 그가 정복한 열국 중에서 막대한 재물을 전리품으로 얻은 것을 뜻 한다. 유명한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고레스 왕처럼 전쟁에 의하여 많은 보물을 가져온 자는 없다고 하였다(Alexander).

과연 주께서 기름 부어 주신 나라 페르시아는 역사의 무대에 강대국으로 등장하여 열국을 항복시키고 엄청난 재물을 소유한 나라가 되었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출해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옛날에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는 동방에서 ‘한 나라’를 선택하여 사용하신 사례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말세에 이스라엘의 보다 크고 완전한 구원을 위해 동방에서 다시 지명하여 부르실 또 하나의 나라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였다. 그것은 이사야 45장 17절 말씀으로 인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7절은 페르시아에 의해 귀환한 이스라엘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이며,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 해방된 이스라엘은 귀환 자체도 충분하지 않았고 다시 헬라, 시리아, 애굽, 로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나라들로부터 핍박과 수치와 모욕을 당하였다. 17절이 말하는 ‘영원한 구원’이란 종말론적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인 것이다.

따라서 고레스의 페르시아는 “예표의 나라”이다. 즉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속박에서 구출했던 페르시아는 말세에 등장할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보다 크고 완전한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키실 또 하나의 나라에 대한 ‘그림자’인 것이다. 그 ‘동방의 한 나라’는 마지막 때에 땅 끝 예루살렘까지 달려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능히 복음을 전할 것이며(사 41:25~27, 46:10~13, 52:7, 55:5 ; 계 7:1~8),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스라엘이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롬 11:25~26). 바로 그 ‘동방의 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즉 페르시아는 모형이요, 대한민국은 원형인 것이다.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파멸과 종말론적 세계 멸망을 같이 보셨다(마 24:15~28). 그러나 그 두 사건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적 격차가 있다. 앞의 것을 ‘근접 성취’라고 하고, 뒤의 것은 ‘원접 성취’라고 한다. 그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도 페르시아에 의한 이스라엘의 구출(육)과 대한민국에 의한 이스라엘의 구원(영)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많은 성경 기자들처럼 이사야는 고레스 시대와 종말(End- time)이 함께 섞이는 것으로 보았다. 시간의 전후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선지자는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는 이런 일들이 어떤 순서로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한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만큼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다른 사건이 일어날는지에 관해 알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의 도래는 확실하지만, 그 전후 관계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다(반즈 성경 주석 이사여서 하, 760쪽).

예루살렘 심판은 종말론적 세계 심판의 예표였다. 그것과 똑같이 하느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해 특별하게 사용하신 동방의 한 나라 페르시아는, 말세에 이스라엘의 보다 크고 완전한 구원을 위해 기름 부어 쓰실 또 하나의 동방의 나라에 대한 예표였던 것이다. 바로 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페르시아는 ‘그림자’이고, 대한민국은 ‘실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고레스(페르시아)에게 주셨던 기름부음 및 힘과 부는 마지막 때에 대한민국에서 더욱 위대하게 다시 성취가 될 것이다. 페르시아는 동방 한국을 예시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느님은 우리나라가 예루살렘 땅 끝까지 열방 모든 족속들에게 능히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장차 국가적인 기름을 부어 주실 것이다. 그 결과 동방 한국에서 2천 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던 위대한 하느님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며, 더불어 부(경제력)와 힘(군사력)이 함께 따라올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대한민국은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며, 능히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격발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 앞에는 ‘통 속의 물 한 방울’이나 ‘저울의 적은 티끌’에 비유될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다(사 40:15~17). 모든 나라는 하느님에 의해 운명과 미래가 결정돼 간다(렘 18:1~10). 바로 그분이 우리나라에 국가적으로 기름 부어 주시어 대한민국을 부국강민(富國强民)의 나라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동방 한국은 페르시아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말세에 한국은 세계에 정의를 펴며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느님은 우리나라도 “흑암의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을 재물”을 반드시 주실 것이다. “흑암 중의 보화”란 “바다 속의 석유”를 말하며,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이란 “땅 속 및 해저 깊은 곳의 천연 자원”을 뜻한다. 실로 그것은 과거에 고레스가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재물이다. 그 막대한 재물을 하느님이 말세에 동방 한국에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장차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페르시아는 ‘그림자’요, 대한민국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1세기의 사건이 마지막 세기에 재연 됨

마지막 때에 동방의 한 나라(a nation), 곧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찾아가 유대민족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천 년 전에도 하느님은 그러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곧 동방의 한 나라에서 일단의 현자(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메시아가 오셨음을(이것은 복음이다) 유대 백성에게 선포했던 것이다. 정작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말이다. 실로 그것은 주객이 전도 되어도 한참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이 기막힌 사건이 재연될 것이다. 바로 ‘동방의 먼 나라’ 대한민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따라서 그들은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이라 할 것이다. 할렐루야! (1세기의 동방박사들이 신라인이었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들이 있다).

결론: 열방과 예루살렘에 복음을 실어 나를 동방의 독수리 한국교회

예루살렘은 사단의 견고한 진으로 포위되어 있다. 맨 안쪽으로 아랍의 회교 문화권이 둘러싸고 있고, 그 다음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힌두교 및 불교문화권이 울타리를 치고 있으며, 가장 바깥쪽으로는 지나(支那)의 공산주의 문화권이 포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가 말세에 땅 끝 예루살렘까지 달려가 복음을 전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이 모든 사단의 진을 쳐부수며 서쪽으로 진격하여 이스라엘까지 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곧 동방의 성민 알이랑민족이 마지막 대추수의 도구로 쓰임 받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하는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으로 부상했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차 통일한국은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제1위의 선교강국이 될 것이다).

이로 보건대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실로 “동방의 독수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공중의 제왕인데, 한민족은 말세에 예루살렘 땅 끝까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함으로서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나라에 치명타를 가할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알이랑민족 한국 백성은 하늘의 제왕 독수리와 같은 존재이다! 동방의 독수리 코리아여! 복음의 나래를 활짝 펴고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열방을 향해 비상하라!


* 출처:「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유석근 저, 예루살렘 간) 제8장 <우리가 마지막 주자이다> 에서 발췌


유석근 목사(알이랑민족회복운동)
club.cyworld.com/alilang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