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자정서(無字情書) -나뭇잎으로 전하는 사랑
운남의 경파족(景頗族)은 남녀간에 연애를 할 때, 자주 식물잎으로 “사랑편지”를 대신한다. 이 사랑편지에는 글자가 없기는 하지만,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포사(蒲謝)”라는 이파리는 “네가 어디에 숨더라도 나는 너를 찾아내겠다.”는 의미가 있고, “석근합(石根哈)”이라는 이파리는 “나는 진심으로 너에게 청혼하니 제발 나를 거절하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있고, “목극(木克)이라는 이파리는 ”우리 둘이 영원히 서로 사랑하고 절대 변심하지 말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막나(寞那)“라는 이파리는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상대방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의미이다.
- 꽃송에 담긴 사랑의 성공 여부
원난 서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하니족( 尼族)의 남녀는 연애할 때, 남자가 한 다발의 생화(生花)를 여자에게 보내는데, 여자는 다시 한 다발의 생화를 남자에게 보낸다. 만일 받은 꽃이 홀수이면 여자측이 동의한다는 것이고, 받은 꽃이 짝수이면, 남자측이 거절한다는 의미이다.
-착벽담혼(鑿壁談婚) - 벽을 사이에 둔 사랑
귀주 여파(荔波)의 흑고요족(黑褲瑤族)의 사람들은 여자가 16,17살이 되면, 부모는 그녀를 단독으로 대문곁의 “담혼방(談婚房)”으로 옮겨 거주하게 한다. ‘담혼방’은 바깥벽과의 사이에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어 놓는데, 이것을 ‘담혼동(談婚洞)’이라고 부른다.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남자는 한밤중에 여자를 깨워서 두 사람은 ‘담혼동’을 통해서 벽을 사이에 두고 연애를 하는 것이다. 만일 여자측도 마음에 들면, 계속 논의해서 혼인을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얘기를 그만두게 된다.
- 혼전실습(婚前實習) - 남자친구 집에서 ‘결혼 실습’
대만의 아미족(阿美族) 남녀는 일정기간 연애를 하고 나면, 여자측이 남자의 집으로 가서 한동안 일을 해주게 되는데, 이를 “미달별(米達別)”이라고 부른다. 그 뜻은 결혼적의 한 난관이라는 의미이다. 이 풍습은 여성의 가정에서의 지위에서 비롯되었다. 관례에 따르면, 아미족 사람들은 가정경제생활과 집안 일을 모두 주부가 책임지는데, 결혼전에 여자가 남자네 집으로 가서 ‘실습’을 하는 것은 애정을 공고히 할 뿐아니라 여자가 집안살림을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지를 시험하고 단련시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새로운 가족이 될 며느리와 가족 간의 사랑과 시댁의 가풍을 이해하고 몸으로 익히는 ‘결혼 실습’을 통해 철저한 신부 수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습’기간동안 여자는 남자집에서 함께 먹고 함께 일하지만, 잠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잔다. 실습기간의 장단은 남자집에서 결정하는데, 2,3개월에서 1년까지 서로 다르다. 만일 실습기간동안 남자집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드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고 일정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아주 적고, 대부분은 순조롭게 관문을 넘겨서 결혼에 이르게 된다.
-남자출가(男子出嫁) - 데릴사위 맞기
광서의 서림(西林), 전림(田林) 일대의 산지에서는 지금까지도 옛날식의 ‘데릴사위’풍습이 전해져 온다. 남자가 여자네집으로 장가드는 것이다. 자손은 모친의 성을 따른다. 아들, 딸이 모두 있는 집안에서도 아들은 장가보내고, 딸이 사위를 맞이하게 된다. 데릴사위풍속은 남자측에서는 혼인에 필요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모두 여자측에서 준비하게 된다. 결혼하는 날 밤에 여자측의 성씨를 사위에게 주어 사위는 성을 바꾸게 된다. 사위와 여자집의 같은 배분사람은 형제간으로 칭한다. ‘매부’ ‘제부’와 같은 칭호는 금기시되고, 대신 친형제처럼 형님, 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주가영친(酒歌迎親) - 결혼을 위한 노래 ‘주가’
호남성 성보묘족(城步苗族) 자치현과 광서 용승(龍勝)지방에서는 묘족청년이 결혼할 때, 쌍방에서 반드시 가수를 한명씩 초청ㅇ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집에서 주가(酒歌)를 부른다. 주가는 고정된 곡조와 가사가 있으며 모두 360행이며, 15000자이고 9개 부분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하루밤낮을 부르게 된다. 첫부분은 “난문가(攔門歌)”로서 남녀측의 가수가 산채문앞에서 서로 겸손과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둘째부분은 “십절(十切)”로서 쌍방이 10곡을 서로 부르는데, 각 산채와 족속의 풍속을 반영한다. 셋째부분은 “마야진지(麽爺陣地)”로서 묘족의 기원과 이주과정을 서술하는 노래이다. 넷째부분은 “결친로(結親路)”로서 묘족의 혼인과 기원과 범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섯째부분은 “삼대근기(三代根基)”로서 쌍방의 조상3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여섯째부분은 “봉친(鳳親)”으로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일곱째 부분은 “과정(過定)”으로 쌍방의 가수는 어른의 말투로 신랑, 신부에게 훈계하는 내용이다. 여덜째부분은 “사주가(謝主家)”로서 남자측 가수가 남자측을 대신하여 여자측에 감사하는 내용이다. 아홉째부분은 “용선가(龍船歌)”로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매 곡을 노래할 때마다 사람들은 뒤쪽을 따라불러서, 아주 요란하다. 주가를 다 부르고 나면 영친하는 사람들이 신부를 맞이해서 웃으면서 돌아가게 된다.
-담리변색(談籬變色) - ‘이혼’은 가장 불행한 인생
동북지방의 다오얼족은 남자가 결혼할 때, 반드시 태양이 떠오를 때 신부를 맞이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가정이 떠오르는 해처럼 영원히 행복하고 아름답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다오얼족은 이혼을 아주 불길한 일로 여겨서 이혼의 ‘이’자만 꺼내도 안색이 변한다. 그래서 속담중에도 ‘이혼장을 쓴 곳은 3년간 풀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만일 남자측에 이혼을 고집하게 되면, 반드시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 의식은 여자집에서 주최하는데, 남편은 땅위에 엎드리고, 처는 남편의 목을 지나간다. 그 후에 남자집의 부뚜막과 굴뚝에 백포(白布)를 덮는다. 그 의미는 남편이 이미 죽었으므로 정식이혼한다는 뜻이다.
꺄오산족
꺄오산 족은 일부 다처제로 한 명의 추장이 30여명의 부인을 데리고 산다.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보다 대개 양측 부모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특징을 보이고, 결혼 적령기의 아들을 두고 있는 부모는 중매쟁이를 통해 며느리 감을 물색하는데 여자측 부모와 먼저 상의하고, 중매인과 합의가 이뤄진 후, 양측이 결혼을 결정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따이족
결혼 제도는 1부 1처제이고, 남녀간의 교제는 매우 자유스러운 편이다. 일반적으로 13살부터 마을 사회활동에 참석하며, 17살 이후부터 정식으로 결혼을 위한 교제를 한다. 연애이후 정식으로 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예물을 보내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결혼의사를 양쪽 부모에게 알리고 난 후 남자의 부모가 결혼에 동의하면 친지 중 한 사람을 여자 집에 보내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
이때 남자 쪽에서는 노래로 청혼을 알리고 동의를 기다리며, 여자 쪽에서도 역시 노래로 대답한다. 동의가 이루어지면 이어 남녀 서로간의 궁합을 맞춰본다. 만약 궁합이 맞으면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맞지 않으면 도중에 중단된다. 최종적으로 여자 쪽의 동의가 이루어지면 남자 쪽에서는 미리 준비한 예물을 여자 부모에게 주는데, 이때 일반적으로 사탕이나 파초, 담배, 술등을 준다. 특히, 사탕을 주는 의미는 사탕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란 뜻을 내포한 것이다. 따이족의 결혼의식은 민족적 특색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기 또한 대단하다.
결혼식이 있기 전 신랑과 신부는 먼저 사원에 가서 불상에게 절을 한다. 그리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결혼 의식을 행한다. 결혼식은 먼저 신부집에서 거행된다. 신랑이 신부집 앞에 도착할 때가 되면 신부측에서는 미리 통로를 막고 문을 닫는다. 이때 신랑측에서는 돈을 주며 그때야 비로써 여기저기에서 폭죽이 터지며 문이 열린다. 신랑이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신부측에서는 다시 한 번 길을 막는다. 이때 신랑측에서는 또 한번 돈을 주면서 길을 비켜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비로써 신랑은 신방에 들어가게 된다.
두롱족
두롱 (獨龍) 족은 씨족을 단위로 마을이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가족이 한 집 안에 거하는 대가족제이다.
결혼은 가족 밖에서 배우자를 찾는다.
젊은 남녀들은 꽁팡 (公房; 마을 공동의 방) 을 찾아 자유롭게 연애를 한다. 성생활이 질서가 없어서 혼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혼전의 성생활이 무질서하기 때문에 유산은 막내에게 물려주는 습관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젊은 남녀가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자기의 배우자를 찾는데 부모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라후족
라후 (拉祜) 족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성교제를 하며, 부모가 결혼에 간섭하는 일도 적다. 그렇지만 다른 민족과 통혼하는 경우는 아주 적다. 라후족의 남자가 결혼할 연령에 이르면 결혼할 대상을 자신이 찾는다. 대상을 찾는 방법은 구혼가(求婚歌)를 불러서 찾는다. 만약 청년이 연애할 대상을 찾게 되면 이들은 강가나 숲 속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다져간다.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게 되면 서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약을 한다. 이때 이들의 서약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서약을 한 후에 어느 한쪽에서 위반하는 경우 모든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때문에 서약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한다. 서로간의 애정이 확인된 후, 남자 편에서 중매인에게 선물을 들려서 여자의 집으로 보내 결혼을 의논한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부모들은 남자의 가정에 대해 묻고 크게 문제가 없는 경우는 반대하지 않는다. 여자의 부모들이 결혼에 동의했을 경우 중매인은 갖고 온 선물을 여자의 부모에게 전한다. 중매인을 통해서 결혼이 확정되면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며칠이 지난 후 여자의 집에 가서 3년을 지낸다. 3년 후에는 일반적으로 독립을 하고, 적게는 다시 남자의 집으로 간다.
리쑤족
일반적으로 소가족 제도를 취한다.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다. 모든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분가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고, 막내가 결혼하여 부모와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유산을 물려주더라도 막내가 물려받는 제도가 시행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리쑤족의 결혼제도와 관계가 깊다.
봉건주의 사회 제도 하에서 리쑤족의 성생활은 무질서한 편이었다.
결혼 전에 '공동의 방'이라는 곳에 모여 연애를 하는데, 무질서한 성생활로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는 것이 별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더라도 첫아이가 다른 사람의 아이인 경우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자신의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막내와 함께 살고, 막내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제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리쑤족도 부자 연명제 (할아버지의 이름 끝 자를 아버지의 이름 첫 자로, 아버지의 이름 끝 자를 아들의 이름 첫 자로 사용하는 제도)가 있다. 이름은 남자아이일 경우 생후 7일만에 여자아이일 경우 생후 9일만에 이름을 짓는다. 현재는 기본상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연애결혼이 많아졌으나 이전의 결혼 풍습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런 모습들이 남아 있다.
먀오족
먀오 (苗) 족의 가정제도는 일반적으로 3대를 넘지 않는다. 4 - 5대가 함께 사는 대 가족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윈난 핑삐엔 (屛邊) 먀오족의 경우 20 - 30여 가구의 대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른이 집안의 일들을 주관하며, 함께 생산한 양식은 공동관리하고, 밥 짓는 것은 나누어서 한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 전문적으로 물건을 사거나 파는 사람이 있다. 모든 관리나 분배하는 것은 주로 여자 중에서 한 사람이 책임을 맡는다. 자녀가 결혼하면 부모와 따로 살며, 부모는 결혼하지 않은 자녀와 함께 산다.
일반적으로 일부 일처제이다.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는 형식과 연애 결혼 하는 형식 등 두 가지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연애 결혼이 성행하고 있다.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 꾸이조우(貴州) 동남부 지역에서는 '요우팡(游方)', 후난(湖南) 서부나 꾸이조우(貴州) 쏭타오(松桃) 지역에서는 '촨꾸냥 (串姑娘) ', 윈난 동북부 지역에서는 '깐화샨(Gan花山)', 윈난 난핑삐엔(南屛邊) 현에서는 '차이화샨(Cai花山)' 이라고 부른다.
각 지역마다 지정된 날짜와 장소가 있다. 예를 들면, 윈난 동북 지역의 '깐화샨'은 음력 5월 15일과 7월 중 돼지 띠 날에 행사를 갖는다. 그리고 웨이닝롱(威寧龍)지역의 경우 유명한 '화샨(花山)'이라는 장소에서 행사를 갖는다. 이 밖에 쟈오통(昭通),이량(Yi良),웨이닝(威寧),허차오(赫章) 등 4개 현의 경우 역시 정한 기일이 되면 남녀 모두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행사에 참석한다. 이 때 남자들은 생황(취관 악기)을 불면서 춤과 일문일답식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나타내며, 마음에 드는 사람을 향해서 사랑을 표현한다. 만약 이 때 남녀가 서로 마음에 들면,남자 쪽에서 중매인을 여자 집으로 보내거나 혹은 품행이나 태도가 단정한 사람을 찾아 함께 모이는 장소로 가서 여자를 데리고 남자 집으로 간다. 그 다음날에는 반드시 사람을 여자 쪽 집으로 보내 소식을 전해주고, 3일째 되는 날은 술과 닭 두 마리를 가지고 여자 쪽 집으로 가서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 만약 이 때에 여자 쪽에서 반대하면, 일종의 약탈혼인을 하게 되는데, 먀오족의 혼인 방법 중의 '챵훈 (Qiang婚 : 약탈혼인)'이 있다. 이는 남녀가 서로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여자 쪽 부모가 반대하거나 혹은 남자 쪽의 경제 사정으로 인해 혼인이 어려우면 쌍방이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남자는 친구 몇 명과 약속하여 여자와 약속한 장소로 가서 여자를 약탈해 남자 쪽 집으로 데리고 온 다음 3일 후에 중매인을 여자 쪽의 집에 보내 결혼 성사를 이루게 하는 방법이다.
윈난 핑삐엔(屛邊) 먀오족은 대상을 찾는 '차이화샨(Cai花山) '을 음력 5월 2일부터 시작하여 5,6일 간 행사를 갖는다. 이 날이 되면, 청년 남녀가 대상을 찾기 위해 정해진 장소에 측령대를 세워 놓고 그 위에 홍색, 녹색 리본을 가로로 걸어 놓고, 그 밑에는 술통을 놓는다. 여자들은 울긋불긋한 주름 치마를 입고, 남자들은 홍녹색 리본을 단 금색 생황을 메고 측량대 밑에서 마음껏 춤을 춘다. 이때 남녀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연인을 찾는다.
먀오족의 혼인에는 많은 제한이 있다.
첫째, 동성 동본일 경우 결혼하지 못하고, 조상이 같은 사람인 경우 역시 사돈을 맺지 않는다.
둘째, 언니 자녀와도 결혼하지 못한다.
셋째, 다른 민족과도 결혼하지 않는다.
넷째, 같은 민족 안에서도 복장이 다르면 사돈을 맺는 경우가 매우 적다.
다섯 째, 미신을 믿는 성질(신앙 형태)이 다르면 그 역시 사돈을 맺지 않는다.
과부는 재가 할 수 있다. 만약 가족중 형이 죽었을 경우, 동생이 형수를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과부 형수가 다른 곳으로 가길 원한다면, 반드시 남편의 가족 중에 제일 웃어른한테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모쑤어족
루구 (瀘沽) 호수의 모쑤어 (摩梭) 인의 결혼풍습은 일종의 독특한 "아씨아(阿夏
: 혹은 阿注)'혼인 제도이다. '아씨아'는 "친밀한 관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혼인관계로 이루어진 남녀는 서로간의 호칭 역시 '아씨아'라고 부른다. '아씨아'혼인제도의 특징은 남녀간의 서로를 위한 공동의 가정을 이루지 않는다. 남자는 밤에만 여자 집에 가서 잠을 자고 그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가 생활한다. 이러한 '아씨아'혼인제도는 일종의 모계 형태이다.
모계형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정에서 연령이 가장 많은 여자가 家長의 임무를, 즉 권한(재산권 포함)을 가지고 있다. 가족구성원은 외할머니와 그 외 형제자매, 어머니와 그 외 형제자매, 형제자매와 자매들의 자녀들로 구성되며, 한 가정에 일반적으로 2-4대(약 20-30명 정도)가 함께 모여 산다.
바이족
1부1처제이며, 동성간에는 결혼을 금하고 있다.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비교적 개방적이다. 과거에는 부모중심으로 중매인을 통해 서로 소개를 받아서 결혼하였으나 지금은 자유 연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이(白) 족은 음력으로 11월과 12월에 결혼하는 것을 좋아한다.
1) 결혼식
바이 (白) 족 결혼 풍습 중에 특이한 것은 결혼 당일에 신부는 자기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신랑측에서 사람들을 보낸다. 신랑측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선물을 갖고 비교적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지금은 자동차를 이용하든지, 농촌일 경우는 경운기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를 타고 가서 신부를 데려온다. 이때 말의 머리에 붉은 천으로 둘러 장식을 하는데, 이는 길상을 뜻한다. 그리고 신부가 신랑의 집이 있는 마을까지 오면 마을 입구에서 마차에서 내리고 신랑이 신부를 업고 집으로 간다. 어떤 지방에서는 등을 서로 맞댄 모습으로 업고 간다. 그 의미는 결혼해서 일생동안 떨어지지 말고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라는 뜻이다. 집에 도착해서는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한바퀴 돌고 들어가는데, 그들의 생활이 불꽃처럼 타오르라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서는 신부가 희고 통통한 아이를 낳으라는 의미로 땅콩과 커다란 대추를 먹는다. 그런 후 신랑 신부 두 사람이 부모에게 인사를 한다.
와족
와족의 가족 형태는 1부1처제와 핵가족 중심제이다. 부모의 재산은 대부분 작은아들이 상속하고 딸은 상속권이 없다. 부자 연명제(父子連名制 - 아버지의 이름자 끝자를 아들의 이름자 첫 자로 삼는다)의 습관이 있다. 그리고 모든 가정의 첫 조상의 이름은 '쓰깡(司崗)'이라고 짓는다. 그 의미는 조상이 호로병에서 나왔거나 석굴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와족은 일반적으로 1부1처제를 택하고 있으나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두기도 한다.
동성(同姓)간의 혼인을 절대로 금한다. 만약 동성간의 성 관계만 발견되어도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이는'귀신'을 노하게 하는 것이며 귀신이 노하면 그들과 한가지 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는 물론 마을에도 재난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에 어떤 재난이 닥치면 제일 먼저 이쪽 방면에서 조사를 실시한다. 실제의 기록에 의하면 1957년 봄 시멍(西盟) 지역의 용꽝(永廣)이라는 마을에 가뭄이 있을 때 마을의 지도자는 그 원인을 동성간의 성 관계에 있다고 보고 사람들을 시켜 곳곳에서 감시를 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동성간의 성 관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무구(木鼓; 나무북)'을 두드려서 전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칼을 들고는 닥치는 대로 가축들을 죽였다(이것은 이들의 일종의 풍속이었는데, 이렇게 죽이고 난 후에 범행자의 집에서 그 모든 가축들의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때 발각된 사람들은 도망을 했고, 그 집에서 마을의 모든 죽임을 당한 가축 값을 배상했다.
와족에게는 '촨꾸냥(串姑娘)' 이라는 구혼방법이 있다. '촨꾸냥'시에 남자는 여자에게 '삥랑(檳Lang)'을 주고 서로 '칭꺼(情歌;-사랑을 주고받는 노래)를 부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단체 활동 중에서 마음이 맞아 개별적인 연애를 하려 할 때는 공방(公房; 혼기에 이른 남녀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연애를 할 때 여자의 집에 가거나 여자의 집 근처에서 함께 잠을 잔다. 이때 좋은 꿈(큰 나무숲이나 바나나 숲을 보는 등)을 꾸면 결혼을 하고, 나쁜 꿈(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등)을 꾸면 서로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선다. 이때 함께 잠은 자지만 성 관계는 갖지 않는다. 만약 성 관계를 가져 임신을 하게 되면 엄한 처벌(가산을 몰수하기도 함)을 받고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런 연애과정을 거쳐 서로가 결혼하기를 원하면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인사를 가서 허락을 받는다. 여자의 부모가 허락을 해야만 결혼을 할 수 있다.
이족
이족은 역사상 다양한 결혼형태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일부 다처제, 내혼제, 같은 계급끼리의 결혼, 동성간의 결혼금지, 고모의 딸과는 결혼할 수 있지만, 이모의 딸과는 결혼할 수 없는 규정 등 다양한 형태를 지녀왔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1부1처제를 지키고 있다.
이족 사회에서는 내혼제(內婚制)가 성행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민족과의 결혼은 금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같은 이족(支系) 사이에도 결혼을 금하고 있다.
결혼은 주로 부모에게 결정권이 있으나,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청춘남녀들은 15, 6세가 되면 사랑의 노래와 각종 악기들을 배우기 시작하며, 매년 농한기 혹은 결혼식, 장례식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리를 지어 하루종일 초원이나 숲속 가운데에서 약속한 시간에 모여 "츄안샨(串山)", "츄안쟈이(串寨)"라는 활동을 한다. 이때 모두가 노래와 춤을 추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며, 연애를 하는데, 어떤 경우는 서로가 증표로써 물건을 교환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면, 부모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쳐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訂婚(약혼식), 迎親(신랑측에서 사람을 보내 신부를 맞이함), 회문(回門: 결혼식이후 신부 집으로 인사하러 감) 등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중매인이 술과 일부의 장신구(팔찌나 붉은 천)을 가지고 여자 집에 가서 혼담을 꺼내고 동의가 이루어지면 바로 약혼식, 즉 "츠띵지우(吃訂酒)"의식을 거행한다. 이때 여자 측에서는 가족, 친척들과 협의하여 결혼날짜, 예물, 결혼규모, 참석자 수 등을 결정한다. 결혼식이 다가오면, 신랑측에서는 신부측에 사람을 보내 신부를 맞이하며, 신랑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신부측에서 따라온 청년남녀들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와 춤을 추며 신부를 배웅한다. 도착이후 결혼식이 이어진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신부가 바로 같은 방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결혼 이틀째 되는 날까지 신부측에서 따라온 친척들과 함께 있다가 3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게 되면, 신랑측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 신부를 맞이한다. 그러나 다시 3일이 지난 후 신부는 집으로 돌아간다. 또다시 한 달이 지난 후 신랑측에서 사람을 보내어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신부가 신랑집으로 돌아가면서부터 정식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된다. 퍼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