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프)
Vladimir Lamsdorf 러시아 외무상
“1905년 露日전쟁 직후의 사태와 지난 10월 더 한층 극렬하게 전개된 대규모 파업과 모스크바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잇달았던 무장반란 사태를 볼 때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이 나라의 내부적인 사회, 경제, 정치적 요인과 더불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혁명세력이 국외에서 반입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장반란은 말할 것도 없이 반정부 운동과 파업을 주동하는 단체들을 운영하는데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적한 바 어느 외국정부가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국외에 존재하는 모종의 자본가들의 모임이 우리나라의 혁명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공산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정부 세력의 다민족적인 성격으로, 혁명운동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폴란드 등의 여러 소수민족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정부의 전복을 모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유대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은 수괴나 간부의 위치에서 비유대계 반정부단체들을 이끌고 있으며 서부지역의 유대인 분드와 같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통해 체제전복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그 어느 소수민족보다 과격하고 급진적인 요소입니다. 혁명운동에 있어 유대인들의 이러한 주도적인 위치을 감안할 때 외국의 유대인 자본가 서클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단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와관련하여 본다면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외국으로부터 조종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 폭력성에 있어 유례가 없었던 지난 10월의 총파업사태 당시 러시아 정부는 마침 로스차일드 계열의 금융사들을 배제한채 차관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중이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유대인 자본가와 은행가들은 의도적으로 루블을 대량매도하여 외환시장에서 공황사태를 야기함으로서 러시아 정부의 차관도입을 무산시키는 한편 급락하는 러시아 환율에 대한 투기행위로 막대한 이윤을 남겼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미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일련의 사례들은 이 나라의 혁명운동이 국외의 유대인 단체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보국 요원들이 확인했듯이 무기반입의 근원지는 미국이며 영국을 거쳐 이 나라에 들어오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언론은 이미 1905년 6월, 러시아의 유대계 맑스주의적 테러단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목표임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유대인 자본가들의 자금모금 위원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한바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방과 모략으로 잘 알려진 유대인 출판사업가 루시엥 울프는 이 위원회의 주요 인물입니다. 또한 이 위원회와는 별도로 영국에서는 로스차일드卿의 주도하에 또 다른 유대계 자본가들의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은 포그롬으로 인한 유대인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기금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역시 그 의도가 불분명한 러시아 유대인 원조단체들이 현지 유대계 유력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Secret Report to Emperor Nicholas II, January 3, 1906)
러시아 혁명에 자금을 제공한 주요 유태인 금융가들
(제3대 로스차일드 남작,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미국 에이젼트 야콥 쉬프)
(폴 워버그, 미국 FRB 창설)
(워버그 삼형제, 폴, 맥스 - 1차대전시 독일 정보국 총수, 봉인된 기차에 레닌을 러시아로... -, 필릭스 워버그; 책 저자 유태인 체르노프 - "독일과 미국 발전에 기여한 유태인 영웅들!")
(존 D. 록펠러, 모노폴리의 대가, 세파르디 crypto-jew)
(손자 데이빗 록펠러, 뉴욕 FRB회장, 체이스맨하탄 회장; CFR 회장; 유태인 석유재벌 아만드 해머와 함께 소련에 대한 막후 영향력으로 유명; 유명한 家臣,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매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H.W. 부시, 버거, 홀브룩)
("레닌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었다", Occidental Petroleum 회장/국제공산주의자 아만드 해머, 브네이브리스 프리메이슨; 알 고어 1세, 2세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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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is Brasol 러시아 역사가
“1916년 여름 러시아 합참본부는 뉴욕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요원으로부터 비밀보고서를 받았다. 1916년 2월15일에 작성된 이 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를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중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다시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볼 때 모종의 중대한 사태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1916년 12월14일, 뉴욕시의 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 유태인 밀집지역)에서는 러시아에서 제2차 폭력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비밀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모두 62인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이들 가운데 50명은 1905년 혁명의 베테랑들이었으며 나머지는 새로이 가담한 자들입니다. 이 대표단의 대다수는 유대인들로서 이들의 상당수는 의사와 변호사, 언론인 등의 전문직업 지식인 계층이며 나머지는 직업적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입니다...
회의의 초점은 전적으로 러시아에서 대대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단을 강구하는데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혁명을 일으킬 최고의 적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러시아 현지의 사정이 혁명가들에겐 매우 유리한 상황이며 즉각적인 무장봉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내용의, 러시아에서 건너온 편지가 낭독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유일한 고민거리는 재정적인 문제였으나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표단의 특정인사들은 러시아의 혁명운동에 우호적이며 러시아 민중을 해방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충분한 자금을 제공할 계획이니 재정에 관한 문제는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야콥 쉬프라는 이름이 거듭 언급되었습니다.’” (The World at the Cross Roads, Gordon Press Publishers)
Christina Stoddard 미국 역사가
“유대인 분드(Jewish Bund)는 1897년 유대인 노동자총연맹으로 창설되었다. 분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 유대인들의 정치, 경제적인 단체였으며 그들은 이디시어(Yiddish)를 사용하여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했다. 분드는 ‘자유’와 ‘해방’을 외친 러시아의 여러 조직과 단체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사실상 러시아 혁명의 선봉이었다. 광대한 제국에 존재하는 정치결사나 조직들 가운데 유대인이 이끌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단체는 없었다. 사민파(社民派)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들, 그리고 폴란드 사회당의 수뇌부에는 예외없이 유대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많은 정치적 비밀결사들과 오컬트조직들에 대한 방대한 사료를 연구한 바, 한가지 뚜렷한 그림이 드러난다. 모든 증거들은 한결같이 이들 단체와 조직들을 배후에서 사주하고 조종하는 카발라적인 유대인 수괴들이 존재함을 가리킨다. 이들은 쓸만한 허수아비들을 내세워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서구문명의 모든 전통과 관습과 가치관을 말살하기 위한 범 세계적인 음모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통제와 공격을 위한 그들의 무기는 생명의 자기력(磁氣力)으로 生과 死를 결정하고 인간에게 빛을 비춰 해방시킨다는 불의 삼각형이다. 그러나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눈을 가리고 우민(愚民)들로 통합시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외계적인 통치자에게 더욱 확실하게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음험한 의도를 위해 이들은 ‘너 자신을 알라’, ‘인간도 신과 같이 될 수 있다’와 같은 태고적인 유혹으로 인간을 기만하고 덫에 빠뜨리는 것이다. 소위 ‘인간해방’을 추구한다는 일루미니즘(Illuminism)의 그 불순한 목표는 그 거대한 음모의 완성과 절대적인 제왕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서 노예화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Inquire Within: The Trail of the Serpent)
(유태인 혁명분자 게르슈닌)
NATIONAL GEOGRAPHIC - William E. Curtis, The Revolution in Russia, May, 1907
“맑스주의적 체제전복 운동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며 가장 강력한 혁명단체는 유대인 분드다. 러시아 정부는 광활한 이 제국의 그 어느 민족보다도 유대인에게 시달려왔다. 요인암살, 파괴공작 등 테러행위의 주범은 항상 유대인이며 이들 가운데서 제국에 진심으로 충성심을 가진 자는 거의 없다.
제국을 마비상태에 빠뜨렸으며 황제로 하여금 입헌군주제와 의회를 승인하게 만들었던 총파업사태 역시 유대인 크루스탈레프(Krustaleff)가 명령을 내리고 조종한 것이었다. 노동자의회 의장인 그는 약관 30세에 불과한 나이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후에도 그는 3주가 못되어 수형소 직원들의 파업을 주동했다... 발트해 연안지방들에서 무장반란을 조직하고 주도한 막심(Maxim)은 특출난 수완을 소유한 유대인이다. 지난 가을 미국을 방문한 그는 강연회를 열고 러시아의 혁명운동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인 바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종적을 감추었는데 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혁명 테러단의 리더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몽고 국경지대의 은광(銀鑛)에서 종신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수형중이던 게르슈닌(Gerschunin)은 얼마전 물통에 몸을 숨겨 수형지를 탈출했는데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약관 27세의 나이다. 필자는 지금 여기서 혁명주동자 100인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는데 확실한 것 하나는 이들 모두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언제 어디서 발생한 암살이나 테러사건이든 범인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05년 무장폭동 이후 러시아를 가장 떠들썩 하게 한 사건은 지난 10월 27일에 일어났던 유대인 맑스주의자들의 강도사건이었다. 생빼째르부르크의 중심가인 카잔성당 앞에서 네 명의 유대인이 재무부의 현금마차를 습격하여 $270,000를 탈취해 달아났다. 네 명은 강탈한 돈을 한 여자에게 맡겼는데 여자는 그 직후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네 명은 얼마후 체포되어 마땅한 벌을 받았다.
또한 11월 8일에는 폴란드의 라고프(Ragow)에 있는 재무부 산하의 기관에 일단의 유대인 혁명분자들이 침입하여 $850,000를 훔쳐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부류의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은 열이면 열, 유대인이다. 흔히 포그롬으로 불리는 유대인 박해는 실상 유대인 불순분자들의 테러행위에 대한 러시아제국 민관(民官)의 보복이다.”
THE MACCABEAN 시온주의 일간지(뉴욕)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유대민족의 역사를 가름할 유대인의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이 유대인의 혁명인 이유는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중 절반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짜르의 폭압적인 군주독재를 뒤엎는 것은 향후 그곳에 아직 살고 있는 유대인과 더불어 이미 러시아를 등지고 각국에 퍼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일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혁명이 유대인의 혁명인 까닭은 짜르의 제국에서 가장 열성적인 혁명가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November 9, 1905)
조르쥬 소렐
“만약 유대인들이 정직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사회와 문화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갔다면 종교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유대인을 우리 조국의 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유대인 식자들은 스스로를 무슨 메시아로 착각하고 기타 유대인들은 이들의 숭고한 사명에 동참하고 성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변혁의 기수요 건축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유대계 지식인들은 단지 이민이라는 우연으로 그들이 거처하게된 나라의 정신적 유산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음해한다. 그와같은 행태는 당연히 그 나라 국민의 정당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유대인들의 기만적인 선전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민족은 대재앙을 맞아 마땅하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Quelques pretentions juives)
THE FORWARD 뉴욕 유대계 일간지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는 피로 얼룩진 지난 3년 동안의 지긋지긋한 전쟁 통에서 날아온 유일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소식으로 모든 노동자들의 가슴은 환희와 기쁨으로 터질 듯 하다. 니콜라이가 퇴출되었다. 두마(Duma, 의회)가 정권을 획득했으며 이제는 자유주의적 정부가 러시아를 통치한다. 만세!” (March 15, 1917)
(볼셰비키들에게 정권을 넘겨준 과도정부 수반 유태인 케렌스키,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
M. Oudendyk 駐러시아 네덜란드 대사
“지금 이곳의 사정은 너무도 위급하여 본인은 이 위협의 중대함을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 알리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경고하건데, 만약 러시아의 볼셰비즘을 현재의 시작단계에서 근절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문명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볼셰비즘의 확산을 진압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서 지금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끌어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혁명을 막아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볼셰비즘을 싹의 단계에서 잘라내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혁명은 어떻한 형태로든 유럽과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악한 모의는 자신들만의 목표를 위해 모든 기존질서를 파괴하려는 조국도 없는 유대인들이 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elegram to British Government dated September 6, 1918; A Collection of Reports on Bolshevism in Russia;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18. Russia, Published by U.S. State Dept., Vol. I, pp. 678-9; British White Paper "Russia" No. 1, April 1919." p. 6, on Bolshevism in Russia)
David R. Francis 駐러시아 미국대사
“볼셰비키혁명 지도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며 이중 90퍼센트가 외국에서 들어온 자들 입니다. 이들은 러시아나 그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애정이 없는 인터내셔널리스트들로 이들은 지금 러시아를 거점으로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각 지역의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민중 사이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근접해 있는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Telegram to U.S. State Department dated May 2, 1918(#861.00/1757); Russia From the American Embassy, 1921)
Montgomery Schuyler 시베리아 파병 미군장교
“아마도 미국에서 이런 얘기를 큰 소리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만, 볼셰비키혁명 운동은 처음부터 가장 교활하고 저급한 부류의 러시아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한 자들로 이들은 미국 문화의 가장 천박한 일면들 만을 습득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리버티(liberty)’를 눈꼽만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Military intelligence report dated March 1, 1919 to Lt. Col. Barrows in Vladivostok; U.S. National Archive)
JEWISH CHRONICLE 런던 유대계 일간지
“볼셰비즘의 본질적인 지향점을 유념할 때, 또한 대다수의 볼셰비키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볼셰비즘의 이상향들은 많은 부분에서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이상향들과 일치한다.” (April 4, 1919)
Catherine Radziwill 로마노프 일족, 러시아 작가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카메네프(Kamenev)란 이름의 남자였다. 후일 그의 이름은 브레스트-리토브스크 조약의 서명란에 등장하게 되는데, 어쨌든 그는 그 때 자신을 레닌과 트로츠키의 측근으로 소개했었다. 이 카메네프란 자는 또 하나의 메스꺼운 유대인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빠른 시일내에 자신의 배를 채우는게 유일한 목표인, 두 말할 나위없이 매우 영리한 짐승이었다. 그는 항상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그래야만 러시아의 국고에 그의 탐욕스런 손을 델 수 있었을 테니까. 얼마후 루스텐베르크 대위에게서 듣자하니 독일이 러시아를 볼셰비키들에게 넘기기 위해 제공한 수백만 달러 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자는 카메네프였다고 한다.” (The Firebrand of Bolshevism, 1919)
(페드로그라드 소비에트 서기장 지노비에프, 유태인 실명 아펠바움)
Zinoviev - Hirsch Apfelbaum 볼셰비키 지도자
“우리는 적의 피바다 앞에서도 절대로 떨지 않으며, 그 어떤 자비나 동정심도 느낄수 없도록 우리의 가슴을 잔혹하고 강퍅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피바다에 잠기게 할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우리의 적들을 도륙할 것이다. 수백, 수천만이라도 상관없다. 그들을 그들이 흘린 피에 빠져죽게 만들자! 레닌과 유리츠키, 지노비에프, 그리고 볼로다르스키를 위해 부르조아지들의 피로 홍수를 만들자. 우리는 더 많은 피를 원한다! 많을수록 더욱 좋다!” ("Blood for Blood", Krasnaya Gazeta, September 1, 1918)
볼셰비키 혁명과 관련하여 권위를 인정받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로버트 컨퀘스트, 리처드 파이프스를 비롯, 1997년에 출간된《Le Livre Noir du Communisme(공산주의 흑서》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53년 스탈린의 사망시까지 소비에트 정권의 공포정치, 인위적 기근, 그리고 굴라그 강제노동수용소 시스템 등을 통해 목숨을 잃은 러시아인을 비롯한 기타 소수민족의 숫자는 3천만에서 5천만명으로 추정된다.
Robert Wilton 더 타임즈 러시아 특파원
"1918년 현재, 384명의 소비에트 정치국원들 가운데 두 명이 흑인, 13명이 러시아인, 15명이 동양인, 22명이 아르메니아인이며 300명 이상이 유대인들이다. 이들 300명 중에서 264명은 황제의 정부가 붕괴된 직후 미국에서 건너온 자들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무지에 호소하여 러시아를 무너뜨린 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허수아비를 내세워 인류가 일찍이 목도한 적이 없는 폭정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볼셰비즘에는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이방민족의 정복이란 성격이 봉인되어 있다. 유대인 스베들로프가 계획하고 명령을 내렸으며 유대인 골로셰킨, 사이로몰로토프, 사파로프, 보이코프, 그리고 유로프스키가 수행한 짜르와 그의 전 가족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학살극은 러시아 민중이 아닌, 적개심으로 가득찬 침략자들의 소행이다.” (The Last Days of the Romanovs)
(소비에트 공화국 대통령, 스베들로프)
(1920년 폴란드의 한 시사지 표지에 실린 유태인 리바 브론슈타인 - aka 레온 트로츠키)
THE TIMES
“러시아 혁명에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유대계 투자은행 쿤앤로엡(Kuhn & Loeb)이 독일의 유대계 은행 라이니쉬-베스트팔리안 신디케이트(Rheinisch-Westphalian Syndicate), 파리의 라자드 프레레(Lazard Freres), 그리고 페트로그라드, 도쿄, 파리의 귄즈보그(Gunzbourg) 은행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또한 이전에 언급한 무역회사들이 런던, 뉴욕, 프랑크푸르트의 슈페이어(Speyer & Co), 볼셰비키들 후원으로 널리 알려진 스톡홀름의 유대계 은행 엔야방켄(Nya Banken)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볼셰비키 국제공산주의는 계층과 국적을 초월한 유대인들의 범세계적 정치운동이라 해석할 수 있으며 일부 특정 유대계 투자은행들은 이 운동을 조직, 확산시키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ebruary 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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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초, 미국 육군참모부는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공화국의 고위인사들에게 러시아 공산혁명의 준비와 집행과정에서 재정을 담당한 미국의 주요인사들의 명단을 제공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1916년 2월, 우리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조직되고 있다는 정보를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러시아를 파괴하기 위한 공작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은행가는 야콥 쉬프(Jacob Schiff), 필릭스 워버그(Felix Warburg), 오토 칸(Otto Kahn), 모티머 쉬프(Mortimer Schiff), 히로노머스 하나우어(Hieronymus H. Hanauer), 구겐하임(Guggenheim), 맥스 브라이퉁(Max Breitung)으로 이들은 모두 유대인입니다.” (-7-618-6 Provided by the General Staff; 0 of the 20th Army; N. 912-S.R.2. copy; Maurice Pinnay, The Secret Force)
"서방의 주요 유대계 금융가들과 마찬가지로 야콥 쉬프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자신의 개인자금 2천만 달러를 헌사했다. 그가 사망한지 1년 뒤 볼셰비키 정부는 6억 루블을 쉬프의 투자은행인 쿤앤로엡에 예치했다.” (New York Journal American, February 3, 1949; Andelman, M.S. (1974). To Eliminate the Opiate, New York-Tel Aviv: Zahavia, Ltd. 26)
George A. Simons 러시아 미국선교사
“우리가 듣기론 뉴욕시의 로워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로부터 수백명의 선동꾼들이 트로츠키(브론슈타인)를 따라 러시아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페트로그라드에서 만났던 이들 중 일부는 내가 미국인임을 알게되자 영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어실력은 미국인으로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초청으로 본인은 혁명가들의 집회에 수차례 참석했는데 처음부터 웬지 모르게 모든 것이 유대적이어서 저로서는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얼마지나지 않아 선동가들의 대다수가 유대인들이며 소위 말하는 이 볼셰비키 운동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운동이 유대인들의 운동이며 그 근거지는 뉴욕시의 이스트사이드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본인이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들은 놀라운 얘기에 의하면 1918년 12월 당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서기장은 아펠바움(지노비에프)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이었는데 그의 휘하에 있는 388명의 정치위원들 중에 진짜 러시아 사람은 16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 명은 예외로 그 자는 스스로를 고든 교수로 부르는 미국에서 온 흑인이었습니다...
상원의원님, 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1917년 겨울 혁명이 끝난 직후 거리에는 벤치나 비누상자 위에 올라가 입이 부르틀 때까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본인은 ‘전부 유대인들 아냐?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라고 여동생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혁명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입성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페트로그라드에는 유대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끝나자마자 유대인들이 이곳에 무리를 지어 몰려왔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산주의 선동가들이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페트로그라드가 볼셰비키들에게 점령당한 뒤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도시 요소에 내걸린 대형 포스터나 플래카드들도 전부 이디시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이제 러시아의 공용어는 이디시어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러시아 사람들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olshevik Propaganda Hearing Before the Sub-Committee of the Committee on the Judiciary, United States Senate, 65th Congress; U.S. National Archive)
출처 : 다음블로그 "유대인에 대한 진실" http://m.blog.daum.net/midshipsnake/3?tp_nil_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