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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290)

작성자far-reaching spirit|작성시간26.06.15|조회수77 목록 댓글 1

[권지1장12절]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과 함께 동곡으로 가시는데 길이 진흙으로 심히 험하거늘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던 길이 곧 굳어지니라. 마른 짚신을 신고 동곡에 가실 수 있었도다. 그 당시 쓰신 치도령은 “어재 함라산하(御在咸羅山下)”의 여섯 글자인바 상제께서 이것을 불사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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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在咸羅山下' 라는 표현이 있다...이것을 <치도령> 이라고 이름붙였다....

 

(참고)

치도령(治道令) : 권지 1장 9절/264쪽, 1장 12절/266쪽.

길을 닦으라는 명령. 

 

<治道令> 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구절이 하나 더 있다...마저 보자....

 

(참고)

[권지1장9절] 상제께서 언제나 출타하시려면 먼저 글을 써서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시니라. 상제께서 계셨던 하운동은 원래 산중이라 길이 매우 좁고 험하고 수목이 우거져 길에 얽혀 있느니라. 치도령을 내리시면 여름에는 나무에 내린 이슬을 바람이 불어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흙길이 얼어붙기도 하고 쌓인 눈이 녹기도 하였도다.

 

두 구절을 살펴보면 <治道令> 이 어떤 명령인지는 짐작이 된다.....

 

이제 "御在咸羅山下" 에 관하여 생각해보면 될 듯 싶은데...."御在咸羅山下" 는 <御 가 咸羅山 아래(下)에 있다(=在)> 는 뜻이다...

 

 

(1) "(御在)咸羅山(下)"

 

함열 회선동과 김보경 종도 - 대순회보 174호 전경 지명 답사기

 

만인 함열(萬人咸悅) - 대순회보 260호 전경 속 이야기

 

<그림1> 상제님께서는 1897년 금구군 내주동(현재 전북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내주마을)에서 팔도 주유를 시작하셨다. 위쪽으로 익산군 이리(현재 전북 익산시의 중심 시가지 지역)를 거쳐 향적산(香積山: 현재 충남 계룡시의 산)에 있던 후천 정역을 밝힌 인물인 김일부를 만나셨다. 다시 계속하여 팔도를 두루 유력하시다가 주유의 마지막 길을 함열(현재 전북 익산시의 일부 지역)에서 마치시고, 고향인 고부군 객망리(현재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로 돌아오셨다.
( Google Earth 지도 위에 행적지 표시 )

 

<그림2> 해동지도 함열현도(1872년)
함열현을 감싸고 흐르는 큰 강줄기인 백마강(白馬江)이 금강이다.(백마강은 금강의 하류 구간을 일컫는 이름),
[지도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그림3> 대동여지도(1861년)
금강 아래의 오른쪽 네모난 구역에 있는 함열 영역이 상제님 당시의 함열군이다. 함열의 상단에 있는 ‘조운(漕運, 우측 상단 황색 동그라미) 성당창’은 17세기에 설치된 것으로 전라도 함열을 포함한 인근 8읍의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를 관장했는데, 현재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에 있다. (김승대, 「1872년 ‘함열현지도’를 통해 본 역사 읽기」, 《전북문화살롱》 35호, 2021. 11.)

 

<그림4> 물길이 비단결 같다는 뜻의 금강(錦江)
전북 장수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와 만나며 북쪽으로 흐른다. 다시 남서 방향으로 돌아 백제의 심장부였던 공주와 부여, 익산 등을 지나며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면서 군산을 통해 황해로 흘러나간다.

 

 

<그림5> 현 익산시의 함열
함열읍과 성당, 웅포, 함라, 황등면 일대가 상제님 당시의 함열군에 해당한다. 함열 일대의 지형을 보면, 왼쪽의 함열 땅의 주산인 함라산과 오른쪽 하단의 미륵산이 마주 보고 있고, 경사가 완만하고 연중 유량 차이가 작아 잘 범람하지 않는 금강이 함열 일대를 감싸 안고 천천히 흐른다. 여기에 지역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함열천이 산북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서 함열 일대는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적고 흙이 쌓이는 위치로 지리적으로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 네이버 지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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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을 보여주는 중간 쯤에 아래 이야기가 나온다...

 

(아래)

  함열의 또 다른 별칭은 ‘함라(咸羅)’인데, 함열의 서쪽에 있는 함라산(咸羅山, 240.5m)은 풍수적으로 함열 지역을 보호하는 주산(主山)이다. 함라산 중턱에는 약 500m에 걸쳐 일렬로 서 있는 바위가 있고 가운데 염주바위가 있는 나산괘염(羅山掛念)이 있어서, 이로 인해 함라산은 마치 승복을 입은 승려가 염주를 가지고 함열 땅 쪽을 향해 팔을 벌리고 안으려는 것처럼 보인다.05 특히 함라산 아래의 함라마을은 풍수에서 전형적인 부자 터로 함라산을 등지고 뿌리인 미륵산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들도 함열 일대를 감싸 안듯이 돌아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덕분인지 이곳은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다른 곳보다 현저히 적다고 한다.06 게다가 상제님 당시의 함열은 육모폭포와 청류정, 나산괘염 등 함라팔경으로 산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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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悅= 咸羅> 임을 기억하고 가면 된다....

 

또한 주역의 31번째 괘인 <택산 咸 >괘의 내용에 의하면.  咸 이나 感 이나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神人相合 이나 <택산 咸 >이나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함열은 성사께서 천지공사를 하시기 전에 3년간의 주유를 마치신 곳이다... <萬人咸悅> 이 천지공사의 결론이라는 뜻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참고)

[행록2장4절] 주유하시다가 상제께서 함열(咸悅)에 이르셔서 「만인 함열(萬人咸悅)」이라 기뻐하셨도다.

 

 

(1)-1  萬人咸悅

 

[행록2장4절] 주유하시다가 상제께서 함열(咸悅)에 이르셔서 「만인 함열(萬人咸悅)」이라 기뻐하셨도다.

 

[행록4장27절] 六월에 이르러서도 가뭄이 계속되어 곡식이 타 죽게 됨에 김 병욱이 김 윤근(金允根)으로 하여금 상제께 이 사정을 전하게 하니라. 사정을 알아차리시고 상제께서 덕찬에게 그의 집에서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고 종도들과 함께 그것을 잡수셨도다. 이때 갑자기 뇌성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윤근은 “선생이 곧 만인을 살리는 상제시니라”고 고백하였도다.

 

[권지2장35절] 이때에 오랫동안 가물었도다. 상제께서 갑칠에게 청수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신 후 일러 말씀하시기를 “아래와 웃옷을 벗고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어라.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와서 만인의 갈망을 풀어주리라.” 갑칠이 말씀대로 옷을 벗고 동이 앞에 합장하여 서니 문득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큰 비가 내리니라. 이때 상제께서 갑칠에게 “청수를 쏟고 옷을 입으라”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니라. “너희들도 지성을 다하여 수련을 쌓으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류 찬명이 “이런 일은 세상 사람이 다 모르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깨닫게 하여 주소서” 하고 아뢰었도다.

 

[예시1장50절] 상제께서 화천하시기 전해 섣달 어느 날 백지에 二十四방위를 돌려 쓰고 복판에 혈식천추 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를 쓰시고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고 하시고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 천추 도덕 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고 이르셨도다.

 

[예시1장54절] 이 헛도수를 말씀하신 후 어느 날 상제께서 이 치복과 여러 종도에게
 “불가지(佛可止)는 불이 가히 그칠 곳이라는 말이오. 그곳에서 가활 만인(可活萬人)이라고 일러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건지리라”
고 말씀하시고 교자를 타고 그곳으로 가시는 길에
 金屋瓊房視逆旅 石門苔壁儉爲師
 絲桐蕉尾誰能解 竹管絃心自不離
 匏落曉星霜可履 土墻春柳日相隨
 革援瓮畢有何益 木耜耕牛宜養頣
라고 외우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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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人> 이 들어가 있는 구절들이다....

 

<萬人> 과 더불어 같이 보아야 할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 萬國> 이다... [공사2장23절] 에서 '만국 창생' 이라는 표현은 결국 <萬人> 이다......

 

(아래)

[공사2장23절] 상제께서 만국 창생들의 새 생활법으로서 물화상통을 펼치셨도다. 종도들이 상제의 명을 좇아 공신의 집에서 밤중에 서로 번갈아 그 집의 물독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 우물에 쏟아 붓고 다시 우물물을 반 바가지씩 독에 붓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여러 우물과 독의 물을 번갈아 바꾸어 갈아 부었도다.

 

[공사3장35절] 상제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들어 패면(牌面)에다 “만국의원(萬國醫院)”이라고 글자를 새겨 그 글자 획에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바르시고 “이 약패를 원평(院坪)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공우(公又)에게 명하셨도다. 공우가 약패를 갖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 하느뇨” 하시니 공우 여쭈길 “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하고 죽은 자를 재생케 하며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 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고 아뢰니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 하시고 그 약패를 불사르셨도다.

 

[예시1장14절] 금산사에 상제를 따라갔을 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후 천하지 대금산(天下之大金山)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 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이라
 만국 활계 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 명월 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花三千國) 도술 운통 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
란 구절을 외워 주셨도다.

 

[예시1장27절]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고 말씀하시더니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고 허공에 벌여 있더니 사라지는도다.

 

[예시1장38절] 어느 날 상제께서 차 경석의 집 서쪽 벽에 二十四장과 二十八장을 써 붙이고 박 공우의 왼팔을 잡고 “만국 대장(萬國大將) 박 공우(朴公又)”라고 음성을 높여 부르셨도다. 이후에 공우가 어디에 떠나려면 문밖에서 방포성(放砲聲)이 갑자기 울리곤 하였도다.

 

[예시1장51절] 천지에 수기(水氣)가 돌 때 만국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통어(通語)하게 되나니 수기가 돌 때에 와지끈 소리가 나리라.

 

[예시1장72절] 또 말씀하시기를
 “스물네 가지 약종만을 잘 쓰면 만국 의원(萬國醫員)이 되리라”
하셨도다.

 

[예시1장80절]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로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

 

[예시1장82절] 이제 너희들이 지금은 고생이 있을지라도 내가 단식하여 식록을 붙여 주고 여름에는 겹옷을 겨울에는 홑옷을 입어 뒷날 빈궁에 빠진 중생으로 하여금 옷을 얻게 함이니 고생을 참을지어다. 장차 천하 만국을 주유하며 중생을 가르칠 때 그 영화는 비길 데가 없으리라.

 

 

(1)-2 萬國

 

주역전의 - 주역상경(周易上經) - 1. 건(乾)

성사께서 이야기한  '萬人咸悅' 은 결국 아래 주역의 글귀를 의미한다....붉은 색으로 표시했다....

 

(아래)

주역상경(周易上經)

 

【本義】 周는 代名也요 易은 書名也라 其卦는 本伏羲所畫이니 有交易變易之義라 故로 謂之易이요 其辭則文王周公所繫라 故로 繫之周라 以其簡帙重大라 故로 分爲上下兩篇하니 經은 則伏羲之畫과 文王周公之辭也요 幷孔子所作之傳十篇하여 凡十二篇이라 中間에 頗爲諸儒所亂이러니 近世晁氏始正其失이나 而未能盡合古文이라 呂氏又更定著하여 爲經二卷, 傳十卷하여 乃復孔氏之舊云이라.

 

주(周)는 대(代)의 이름이고 역(易)은 책의 이름이다. 그 괘(卦)는 본래 복희씨(伏羲氏)가 그은 것인데 교역(交易)·변역(變易)의 뜻이 있으므로 역(易)이라 이르고, 그 글은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단 것이므로 주(周)라고 단 것이다. 간질(簡帙)이 크고 무거우므로 나누어 상(上)·하(下) 두 편으로 만들었으니, 경문(經文)은 복희씨(伏羲氏)가 그은 괘(卦)와 문왕(文王)·주공(周公)의 말이요, 공자(孔子)가 지은 전(傳) 10편을 합하여 모두 12편이다. 중간에 자못 유자(儒者)들이 어지럽혔는데, 근세(近世)에 조씨(晁氏)가 처음으로 그 잘못을 바로잡았으나 고문(古文)에 모두 합하지는 못하였다. 여씨(呂氏)가 또다시 교정(校訂)하여 경(經) 2권, 전(傳) 10권으로 만들어 마침내 공씨(孔氏)의 옛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1. 건(乾)

 

乾은 元, 亨, 利, 貞하니라.

【本義】 元亨하고 利貞하니라

 

건(乾)은 원(元)하고 형(亨)하고 이(利)하고 정(貞)하다.

【본의】 크게 형통하고 이롭고 정하다.

 

【傳】 上古聖人이 始劃八卦하니 三才之道備矣요 因而重之하여 以盡天下之變이라 故로 六劃而成卦라 重乾爲乾이니 乾은 天也니 天者는 天之形體요 乾者는 天之性情이라 乾은 健也니 健而无息之謂乾이라 夫天은 專言之則道也니 天且弗違是也라 分而言之면 則以形體謂之天이요 以主宰謂之帝요 以功用謂之鬼神이요 以妙用謂之神이요 以性情謂之乾이라 乾者는 萬物之始라 故爲天, 爲陽, 爲父, 爲君이라 元亨利貞을 謂之四德이니 元者는 萬物之始요 亨者는 萬物之長이요 利者는 萬物之遂요 貞者는 萬物之成이라 唯乾坤이 有此四德이요 在他卦則隨事而變焉이라 故로 元은 專爲善大요 利는 主於正固요 亨貞之體는 各稱其事하니 四德之義 廣矣大矣라.

 

상고(上古)의 성인(聖人)이 처음 팔괘(八卦)를 그으니 삼재(三才)의 도(道)가 구비되었고, 그리하여 이것을 거듭하여 천하의 변화를 다하였으므로 여섯 번 그어 괘(卦)를 이루었다. 건(乾)을 거듭한 것을 건괘(乾卦)라 하니, 건(乾)은 천(天)이니, 천(天)은 하늘의 형체고 건(乾)은 하늘의 성정(性情)이다. 건(乾)은 굳셈이니, 굳세어 쉼이 없음을 건(乾)이라 한다. 하늘은 전일(專一)하게 말하면 도(道)니, ‘하늘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나누어 말하면 형체로서는 천(天)이라 하고, 주재(主宰)로서는 상제(上帝)라 하고, 공용(功用)으로서는 귀신(鬼神)이라 하고, 묘용(妙用)는 신(神)이라 하고, 성정(性情)으로서는 건(乾)이라 이른다. 건(乾)은 만물(萬物)의 시초이다. 그러므로 천(天)이 되고 양(陽)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군주가 되는 것이다. 원(元)·형(亨)·이(利)·정(貞)을 사덕(四德)이라 하니, 원(元)은 만물의 시초이고 형(亨)은 만물의 성장이고 이(利)는 만물의 이룸이고 정(貞)은 만물의 완성이다. 오직 건괘(乾卦)·곤괘(坤卦)만이 이 사덕(四德)을 모두 소유하였고 다른 괘(卦)에 있어서는 일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원(元)은 오직 선(善)과 대(大)가 되고, 이(利)는 정고(正固)함을 주장하고, 형(亨)·정(貞)의 체(體)는 각기 그 일에 맞게 하니, 사덕(四德)의 뜻이 넓고 크다.

 

【本義】 六畫者는 伏羲所畫之卦也라 一者는 奇也니 陽之數也요 乾者는 健也니 陽之性也라 本註乾字는 三畫卦之名也라 下者는 內卦也요 上者는 外卦也라 經文乾字는 六畫卦之名也라 伏羲仰觀俯察하여 見陰陽有奇耦(偶)之數라 故로 畫一奇以象陽하고 一耦以象陰하며 見一陰一陽有各生一陰一陽之象이라 故로 自下而上하고 再倍而三하여 以成八卦하며 見陽之性健而其成形之大者爲天이라 故로 三奇之卦를 名之曰乾而擬之於天也라 三畫已具하여 八卦已成이면 則又三倍其畫하여 以成六畫而於八卦之上에 各加八卦하여 以成六十四卦也라 此卦는 六畫皆奇요 上下皆乾이니 則陽之純而健之至也라 故로 乾之名과 天之象이 皆不易焉이라 元亨利貞은 文王所繫之辭니 以斷一卦之吉凶이니 所謂彖辭者也라 元은 大也요 亨은 通也요 利는 宜也요 貞은 正而固也라 文王以爲乾道大通而至正이라 故로 於筮에 得此卦而六爻皆不變者는 言其占當得大通而必利在正固니 然後에 可以保其終也라 此는 聖人所以作易하여 敎人卜筮하여 而可以開物成務之精意니 餘卦放此하니라.

 

6획은 복희씨(伏羲氏)가 그은 괘(卦)이다. ⚊은 기수(奇數)이니 양(陽)의 수(數)이고 건(乾)은 건(健)이니 양(陽)의 성질이다. 본주(本註)의 건자(乾字)는 3획괘의 이름이다. 아래란 것은 내괘(內卦)이고 위란 것은 외괘(外卦)이다. 경문(經文)의 건자(乾字)는 6획괘의 이름이다. 복희씨(伏羲氏)가 우러러 천문(天文)을 보고 굽어 지리(地理)를 살펴서 음(陰)과 양(陽)에 기수(奇數)와 우수(偶數)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하나의 기(奇)를 그어 양(陽)을 상징하고 하나의 우(偶)를 그어 음(陰)을 상징하였으며, 하나의 음(陰)과 하나의 양(陽)이 각각 하나의 음(陰)과 하나의 양(陽)을 생성하는 상(象)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다시 배(倍)로 세 번 그어 팔괘(八卦)를 이루었으며, 양(陽)의 성질이 굳세고 형체를 이룸이 큰 것이 하늘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세 기수(奇數)의 괘(卦)를 건(乾)이라 이름하여 하늘을 모방하였다. 3획이 이미 갖추어져 팔괘(八卦)가 이루어지면 다시 그 획을 3배로 하여 6획을 이루어서 팔괘(八卦)의 위에 각각 팔괘(八卦)를 더하여 64괘(卦)를 이루었다. 이 괘(卦)는 6획이 모두 기수(奇數)이고 위와 아래가 모두 건(乾)이니, 양(陽)이 순수하고 굳셈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건(乾)이라는 이름과 천(天)의 상(象)이 모두 바뀌지 않은 것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문왕(文王)이 붙인 말로 한 괘(卦)의 길흉(吉凶)을 결단한 것이니, 이른바 단사(彖辭)라는 것이다. 원(元)은 큼이요 형(亨)은 통함이요 이(利)는 마땅함이요 정(貞)은 바르고 굳음이다. 문왕(文王)은 건도(乾道)가 크게 형통해서 지극히 바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점을 쳐서 이 괘(卦)를 얻고 육효(六爻)가 모두 변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점(占)이 마땅히 대통(大通)함을 얻고 반드시 이로움이 정고(正固)함에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그 종(終)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어 사람들에게 복서(卜筮)를 가르쳐서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게 하신 정(精)한 뜻이니, 나머지 괘(卦)도 이와 같다.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초구(初九)는 못에 잠겨 있는 용(龍)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傳】 下爻爲初라 九는 陽數之盛이라 故로 以名陽爻라 理는 无形也라 故로 假象以顯義하니 乾은 以龍爲象이라 龍之爲物이 靈變不測이라 故로 以象乾道變化와 陽氣消息과 聖人進退하니라 初九는 在一卦之下하여 爲始物之端하니 陽氣方萌하고 聖人側微하니 若龍之潛隱하여 未可自用이니 當晦養以俟時니라.

 

아래에 있는 효(爻)를 초(初)라 한다. 구(九)는 양수(陽數)가 성(盛)한 것이므로 양효(陽爻)라 이름하였다. 이(理)는 형체가 없으므로 상(象)을 빌어 뜻을 나타내었는데, 건(乾)은 용(龍)을 상(象)으로 삼는다. 용(龍)이란 사물은 신령스럽고 변화불측하다. 그러므로 건도(乾道)의 변화와 양기(陽氣)의 소식(消息), 성인(聖人)의 진퇴(進退)를 형상하였다. 초구(初九)는 한 괘(卦)의 아래에 있어서 사물을 시작하는 단서가 되니, 양기(陽氣)가 바야흐로 싹트고 성인(聖人)이 미천한 때이니, 마치 용(龍)이 못에 잠겨있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쓸 수 없으니, 마땅히 숨어 기르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本義】 初九者는 卦下陽爻之名이라 凡畫卦者는 自下而上이라 故로 以下爻爲初라 陽數는 九爲老요 七爲少니 老變而少不變이라 故로 謂陽爻爲九라 潛龍勿用은 周公所繫之辭니 以斷一爻之吉凶이니 所謂爻辭者也라 潛은 藏也요 龍은 陽物也라 初陽在下하여 未可施用이라 故로 其象爲潛龍이요 其占曰勿用이니 凡遇乾而此爻變者는 當觀此象而玩其占也라 餘爻放此하니라.

 

초구(初九)는 괘(卦)의 아래에 있는 양효(陽爻)의 명칭이다. 무릇 괘(卦)를 긋는 이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므로 맨 아래의 효(爻)를 초(初)라 한다. 양수(陽數)에 있어 구(九)는 노양(老陽)이 되고 칠(七)은 소양(少陽)이 되는데, 노양(老陽)은 변하나 소양(少陽)은 변하지 않으므로 양효(陽爻)를 일러 구(九)라 한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주공(周公)이 단 말씀으로 한 효(爻)의 길흉(吉凶)을 결단한 것이니, 이른바 효사(爻辭)라는 것이다. 잠(潛)은 감춤이요, 용(龍)은 양(陽)의 물건이다. 초양(初陽)이 아래에 있어서 아직 시용(施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상(象)은 못에 잠겨있는 용(龍)이 되고, 그 점괘는 쓰지 말라 한 것이니, 무릇 건괘(乾卦)를 만나고 이 효(爻)가 변한 이는 마땅히 이 상(象)을 보고 그 점괘를 완미(玩味)해야 한다. 나머지 효(爻)도 이와 같다.

 

九二는 見(현)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구이(九二)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傳】 田은 地上也니 出見於地上하여 其德已著하니 以聖人言之하면 舜之田漁時也라 利見大德之君하여 以行其道요 君亦利見大德之臣하여 以共成其功이요 天下利見大德之人하여 以被其澤이니 大德之君은 九五也라 乾坤은 純體라 不分剛柔하고 而以同德相應이니라.

 

전(田)은 지상(地上)이니, 지상(地上)에 출현(出現)하여 그 덕(德)이 이미 드러났으니, 성인(聖人)으로 말한다면 순(舜)임금이 농사짓고 고기잡던 때이다. 대덕(大德)의 군주를 만나보아 도(道)를 행함이 이롭고, 군주 역시 대덕(大德)의 신하를 만나 함께 공(功)을 이룸이 이로우며, 천하는 대덕(大德)의 사람을 만나 혜택을 입음이 이로우니, 대덕(大德)의 군주는 구오(九五)이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순양(純陽)·순음(純陰)의 체(體)라서 강(剛)·유(柔)를 나누지 않고 같은 덕(德)으로 서로 응(應)한다.

 

【本義】 二는 謂自下而上第二爻也니 後放此하니라 九二는 剛健中正하고 出潛離隱하여 澤及於物하니 物所利見이라 故로 其象이 爲見龍在田이요 其占이 爲利見大人이라 九二雖未得位나 而大人之德已著하니 常人은 不足以當之라 故로 値此爻之變者는 但爲利見此人而已니 蓋亦謂在下之大人也라 此는 以爻與占者로 相爲主賓하니 自爲一例라 若有見龍之德이면 則爲利見九五在上之大人矣니라.

 

이(二)는 아래에서 위로 두 번째 효(爻)를 말하니, 뒤에도 이와 같다. 구이(九二)는 강건(剛健)하고 중정(中正)하며 잠겨있던 곳에서 나오고 숨어 있던 곳에서 떠나 혜택이 사물에 미치니, 사물이 만나봄이 이롭다. 그러므로 그 상(象)은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음이 되고, 그 점괘는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운 것이다. 구이(九二)가 비록 지위를 얻지 못했으나 대인(大人)의 덕(德)이 이미 드러났으니, 보통사람은 이에 해당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효(爻)의 변함을 만난 이는 다만 이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울 뿐이니, 역시 아래에 있는 대인(大人)을 이른다. 이는 효(爻)와 점치는 이를 서로 주빈(主賓)으로 삼은 것이니, 따로 한 예(例)가 된다. 만약 현룡(見龍)의 덕(德)이 있다면 구오(九五), 즉 위에 있는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울 것이다.

 

九三은 君子終日乾乾하여 夕惕若하면 厲하나 无咎리라.

【本義 】 夕惕若이니

구삼(九三)은 군자(君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본의】 저녁까지 두려워함이니,

 

【傳】 三雖人位나 已在下體之上하니 未離於下而尊顯者也니 舜之玄德升聞時也라 日夕不懈而兢惕이면 則雖處危地而无咎라 在下之人而君德已著하여 天下將歸之면 其危懼可知라 雖言聖人事나 苟不設戒면 則何以爲敎리오 作易之義也라.

 

삼(三)은 비록 사람의 자리이나 이미 하체(下體)의 위에 있으니, 아직 아래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높게 드러난 것이니, 순(舜)임금의 숨겨진 덕(德)이 위로 올라가 알려진 때이다.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운 곳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서 군주의 덕이 이미 드러나 천하가 장차 그에게 돌아오려 한다면 그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알 수 있다. 비록 성인(聖人)의 일을 말하였으나 만일 경계의 뜻을 베풀지 않는다면 어찌 가르침이 되겠는가. 이는 역(易)을 지은 본의(本義)이다.

 

【本義】 九는 陽爻요 三은 陽位니 重剛不中하고 居下之上하니 乃危地也라 然性體剛健하여 有能乾乾惕厲之象이라 故로 其占如此라 君子는 指占者而言이니 言能憂懼如是면 則雖處危地而无咎也라.

 

구(九)는 양효(陽爻)이고 삼(三)은 양위(陽位)이니 거듭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며, 하괘(下卦)의 위에 있으니 위태로운 자리이다. 그러나 성(性)과 체(體)가 강건(剛健)하여 힘쓰고 힘써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상(象)이 있으므로 그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군자(君子)는 점치는 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九四는 或躍在淵하면 无咎리라.

【本義】 或躍在淵이니

구사(九四)는 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본의】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음이니,

 

【傳】 淵은 龍之所安也라 或은 疑辭니 謂非必也니 躍不躍을 唯及時以就安耳라 聖人之動은 无不時也니 舜之歷試時也라.

 

못은 용(龍)이 편히 여기는 곳이다. 혹(或)은 의문사이니, 반드시 하는 것이 아님을 이른다. 뛰어오르거나 뛰어오르지 않음을 오직 때에 미쳐서 편안한 곳으로 나아갈 뿐이다. 성인(聖人)의 동함은 때에 맞지 않음이 없으니, 순(舜)임금이 시험을 거칠 때이다.

 

【本義】 或者는 疑而未定之辭라 躍者는 无所緣而絶於地니 特未飛爾라 淵者는 上空下洞하여 深昧不測之所라 龍之在是에 若下於田이나 或躍而起면 則向乎天矣라 九陽四陰이니 居上之下하여 改革之際요 進退未定之時也라 故로 其象如此요 其占은 能隨時進退則无咎也라.

 

혹(或)은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말이다. 약(躍)은 인연한 바가 없이 땅에서 떠남이니, 다만 날지 못할 뿐이다. 못은 위는 비고 아래는 뚫려 있어 깊고 어두워서 측정할 수 없는 곳이다. 용(龍)이 이곳에 있을 때에는 밭보다 아래에 있는 듯하나 혹 뛰어 일어나면 하늘로 향한다. 구(九)는 양(陽)이고 사(四)는 음위(陰位)이니, 상괘(上卦)의 아래에 있어서 개혁의 즈음이요 진퇴를 결정하지 못한 때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으며, 점은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구오(九五)는 나는 용(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傳】 進位乎天位也라 聖人이 旣得天位면 則利見在下大德之人하여 與共成天下之事요 天下固利見夫大德之君也라.

 

천위(天位)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이미 천위(天位)를 얻었으면 아래에 있는 대덕(大德)의 사람을 만나보아 함께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고, 천하 사람들은 진실로 대덕(大德)의 군주를 만남이 이롭다.

 

【本義】 剛健中正으로 以居尊位하니 如以聖人之德으로 居聖人之位라 故로 其象如此하고 而占法은 與九二同하니 特所利見者 在上之大人爾라 若有其位면 則爲利見九二在下之大人也라.

 

강건(剛健)하고 중정(中正)함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성인(聖人)의 덕(德)으로 성인(聖人)의 지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치는 법은 구이(九二)와 같은데, 다만 만나봄이 이로운 이가 위에 있는 대인(大人)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군주의 지위를 소유하고 있다면 구이(九二), 즉 아래에 있는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울 것이다.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상구(上九)는 끝까지 올라간 용(龍)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

 

【傳】 九五者는 位之極中正者니 得時之極이요 過此則亢矣라 上九는 至於亢極이라 故로 有悔也니 有過則有悔라 唯聖人은 知進退存亡而无過하니 則不至於悔也라.

 

구오(九五)는 지극히 중정(中正)한 자리이니, 때를 얻음이 지극하고, 이것을 지나면 지나치게 높음이 된다. 상구(上九)는 지나치게 높은 곳에 이르렀으므로 뉘우침이 있는 것이니, 지나침이 있으면 뉘우침이 있다. 오직 성인(聖人)은 진퇴(進退)·존망(存亡)의 때를 알아 지나침이 없으니, 뉘우침에 이르지 않는다.

 

【本義】 上者는 最上一爻之名이요 亢者는 過於上而不能下之意也라 陽極於上하여 動必有悔라 故로 其象占如此하니라.

 

상(上)은 가장 위에 있는 한 효(爻)의 명칭이고, 항(亢)은 높음이 지나쳐서 내려오지 못하는 뜻이다. 양(陽)이 위에서 지극하여 움직이면 반드시 뉘우침이 있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用九는 見群龍하되 无首하면 吉하리라.

【本義】 見群龍无首니

구(九)를 씀은 여러 용(龍)을 보되 앞장서지 말면 길(吉)하리라.

【본의】여러 용(龍)이 머리가 없음을 봄이니,

 

【傳】 用九者는 處乾剛之道라 以陽居乾體하여 純乎剛者也라 剛柔相濟爲中이어늘 而乃以純剛하니 是는 過乎剛也라 見群龍은 謂觀諸陽之義니 无爲首則吉也라 以剛爲天下先은 凶之道也라.

 

용구(用九)는 건강(乾剛)에 대처하는 도(道)이다. 양(陽)으로 건체(乾體)에 거하여 강(剛)에 순수한 것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도와주는 것이 중도(中道)가 되는데 순강(純剛)을 쓰니, 이는 강함이 지나친 것이다. 여러 용(龍)을 본다는 것은 모든 양(陽)을 살펴보는 뜻을 이르니,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 길(吉)하다. 강함으로써 천하의 먼저가 되는 것은 흉한 도(道)이다.

 

【本義】 用九는 言凡筮得陽爻者皆用九而不用七이니 蓋諸卦百九十二陽爻之通例也라 以此卦純陽而居首라 故로 於此發之而聖人因繫之辭하여 使遇此卦而六爻皆變者로 卽此占之라 蓋六陽皆變하니 剛而能柔는 吉之道也라 故로 爲群龍无首之象이요 而其占은 爲如是則吉也라 春秋傳曰 乾之坤曰 見群龍无首吉이라 하니 蓋卽純坤卦辭牝馬之貞先迷後得東北喪朋之意라.

 

용구(用九)는 점을 쳐서 양효(陽爻)를 얻은 것은 모두 구(九)를 쓰고 칠(七)을 쓰지 않으니, 모든 괘(卦) 192 양효(陽爻)의 통례이다. 이 괘(卦)는 순양(純陽)이면서 맨앞에 있으므로 여기에서 이것을 말하였고, 성인(聖人)이 인하여 말을 달아서 이 괘(卦)를 만나고 육효(六爻)가 모두 변한 것으로 하여금 이것을 가지고 점치게 한 것이다. 육양(六陽)이 모두 변하였으니, 강하면서 능히 부드러움은 길(吉)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여러 용이 머리가 없는 상(象)이 되고, 점(占)은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한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 “건지곤(乾之坤)에 이르기를 ‘여러 용이 머리가 없음을 보니 길하다.’했다.” 하였으니, 곧 순곤괘(純坤卦)의 괘사(卦辭)에 ‘빈마(牝馬)의 정(貞)함이니, 먼저하면 혼미하고 뒤에 하면 얻으며 동북에서는 벗을 잃는다’는 뜻이다.

 

彖曰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 乃統天이로다.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 이에 하늘을 통합하였도다.

【本義】彖은 卽文王所繫之辭요 傳者는 孔子所以釋經之辭也니 後凡言傳者는 倣此하니라.

단(彖)은 문왕(文王)이 붙인 말이고 전(傳)은 공자(孔子)가 경문(經文)을 해석한 말씀이니, 뒤에 전(傳)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이와 같다.

 

○ 此는 專以天道로 明乾義하고 又析元亨利貞하여 爲四德하여 以發明之而此一節은 首釋元義也라 大哉는 歎辭라 元은 大也, 始也라 乾元은 天德之大始라 故로 萬物之生이 皆資之以爲始也요 又爲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이라 故로 曰統天이라

 

○ 이는 오로지 천도(天道)로써 건(乾)의 뜻을 밝히고 또 원(元)·형(亨)·이(利)·정(貞)을 나누어 사덕(四德)으로 만들어서 발명하였는데, 이 1절(節)은 먼저 원(元)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대재(大哉)는 감탄사이다. 원(元)은 큼이요 시작이다. 건원(乾元)은 천덕(天德)의 큰 시작이므로 만물의 생성이 모두 이것에 의뢰하여 시작되며, 또 사덕(四德)의 머리가 되어 천덕(天德)의 처음과 끝을 꿰뚫으므로 하늘을 통합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雲行雨施하여 品物이 流形하나니라.

구름이 가고 비가 내려 만물이 형체를 갖춘다.

【本義】此는 釋乾之亨也라.

이는 건(乾)의 형(亨)을 해석한 것이다.

 

大明終始하면 六位時成하나니 時乘六龍하여 以御天하나니라.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면 육위(六位)가 때로 이루어지나니, 때로 여섯 용(龍)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本義】 始는 卽元也요 終은 謂貞也니 不終則无始요 不貞則无以爲元也라 此는 言聖人이 大明乾道之終始면 則見卦之六位 各以時成하여 而乘此六陽하여 以行天道하니 是乃聖人之元亨也라.

 

시(始)는 곧 원(元)이요 종(終)은 정(貞)을 말한 것이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정(貞)하지 않으면 원(元)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聖人)이 건도(乾道)의 종(終)과 시(始)를 크게 밝히면 괘(卦)의 육위(六位)가 각기 때로써 이루어져서 여섯 양(陽)을 타고 천도를 행함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곧 성인(聖人)의 원(元), 형(亨)이다.

 

乾道變化에 各正性命하나니 保合大和하여 乃利貞하니라.

건도(乾道)가 변(變)하여 화(化)함에 각각 성명(性命)을 바루니,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여 이에 이롭고 정(貞)하다.

【本義】 各正性命하여 保合大和하나니 乃利貞이니라.

【본의】 각기 성명(性命)을 바루어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나니, 이에 정(貞)함이 이롭다.

 

【本義】 變者는 化之漸이요 化者는 變之成이라 物所受爲性이요 天所賦爲命이라 大和는 陰陽會合沖和之氣也라 各正者는 得於有生之初요 保合者는 全於已生之後라 此는 言乾道變化하여 无所不利어늘 而萬物各得其性命以自全하니 以釋利貞之義也라.

 

변(變)은 화(化)의 점진(漸進)이요, 화(化)는 변(變)의 완성이다. 물건이 받은 것을 성(性)이라 하고 하늘이 부여(賦與)한 것을 명(命)이라 한다. 대화(大和)는 음양(陰陽)이 모여 조화로운 기운이다. 각정(各正)은 만물이 태어나는 초기에 얻는 것이고, 보합(保合)은 이미 생겨난 뒤에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건도(乾道)가 변화하여 이롭지 않은 바가 없는데 만물이 각기 그 성명(性命)을 얻어 스스로 온전히 함을 말하였으니, 이(利), 정(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首出庶物에 萬國이 咸寧하나니라.

만물에서 으뜸으로 나오니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傳】 卦下之[一无之字]辭爲彖이요 夫子從而釋之를 通謂之彖이라 彖者는 言一卦之義라 故로 知(智)者觀其彖辭면 則思過半矣라 大哉乾元은 贊乾元始萬物之道大也라 四德之元은 猶五常之仁하니 偏言則一事요 專言則包四者라 萬物資始乃統天은 言元也니 乾元은 統言天之道也라 天道始萬物하니[一更有萬字] 物資始於天也라 雲行雨施品物流形은 言亨也니 天道運行하여 生育萬物也라 大明天道之終始면 則見卦之六位 各以時成하니 卦之初終은 乃天道終始라 乘此六爻之時는 乃天運也니 以御天은 謂以當天運이라 乾道變化에 生育萬物하여 洪纖高下가 各以其類는 各正性命也라 天所賦爲命이요 物所受爲性이라 保合大和乃利貞은 保는 謂常存이요 合은 謂常和니 保合大和라 是以利且貞也라 天地之道常久而不已者는 保合大和也라 天爲萬物之祖요 王爲萬邦之宗이니 乾道首出庶物而萬彙亨하고 君道尊臨天位而四海從하니 王者體天之道면 則萬國咸寧也라.

 

괘(卦) 아래의 말을 단(彖)이라 하고 공자(孔子)가 따라서 해석한 것을 통틀어 단(彖)이라 한다. 단(彖)은 한 괘(卦)의 뜻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가 단사(彖辭)를 살펴보면 생각이 이미 반을 넘는 것이다. ‘대재건원(大哉乾元)’은 건원(乾元)이 만물을 시작하는 도(道)가 큼을 찬양한 것이다. 사덕(四德)의 원(元)은 오상(五常)의 인(仁)과 같으니, 한쪽으로 말하면 한 가지 일이요, 오로지 말하면 네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만물자시내통천(萬物資始乃統天)’은 원(元)을 말한 것이니, 건원(乾元)은 하늘의 도(道)를 통합하여 말한 것이다. 천도(天道)는 만물을 시작하게 하니, 사물이 하늘에 의뢰하여 시작하는 것이다. ‘운행우시품물유형(雲行雨施品物流形)’은 형(亨)을 말한 것이니, 천도(天道)가 운행하여 만물을 낳아 기른다. 천도(天道)의 종(終)과 시(始)를 크게 밝히면 괘(卦)의 육위(六位)가 각기 때에 따라 이루어짐을 보게 되니, 괘(卦)의 초(初)와 종(終)은 곧 천도(天道)의 종(終)과 시(始)이다. 이 육효(六爻)의 때를 타는 것이 곧 천운(天運)이니, ‘이어천(以御天)’은 천운(天運)에 맞게 함을 이른다. 건도(乾道)가 변화하여 만물을 낳고 길러서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이 각기 그 유(類)를 따르는 것이 각기 성명(性命)을 바루는 것이다. 하늘이 부여한 것을 명(命)이라 하고, 사물이 받은 것을 성(性)이라 한다. ‘보합대화내이정(保合大和乃利貞)’에서 보(保)는 항상 보존함이요 합(合)은 항상 화(和)함이니,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기 때문에 이(利)롭고 또 정(貞)한 것이다. 천지(天地)의 도(道)가 상구(常久)하고 그치지 않음은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만물의 원조(元祖)이고 왕(王)은 만방(萬邦)의 종주(宗主)이니, 건도(乾道)가 만물에서 으뜸으로 나옴에 만물이 형통하고, 군도(君道)가 천위(天位)에 높이 임함에 사해(四海)가 따르니, 왕자(王者)가 하늘의 도(道)를 체행하면 만국(萬國)이 다 편안하다.

 

【本義】 聖人在上하여 高出於物은 猶乾道之變化也요 萬國各得其所而咸寧은 猶萬物之各正性命而保合大和也니 此는 言聖人之利貞也라 蓋嘗統而論之하면 元者는 物之始生이요 亨者는 物之暢茂요 利則向於實也요 貞則實之成也라 實之旣成이면 則其根蔕脫落하여 可復種而生矣니 此는 四德之所以循環而无端也라 然而四者之間에 生氣流行하여 初无間斷하니 此는 元之所以包四德而統天也라 其以聖人而言하면 則孔子之意는 蓋以此卦로 爲聖人得天位行天道而致太平之占也니 雖其文義 有非文王之舊者나 然讀者各以其意求之면 則竝行而不悖也라 坤卦放此하니라.

 

성인(聖人)이 윗자리에 있어 만물보다 높이 나옴은 건도(乾道)의 변화함과 같고, 만국(萬國)이 각기 그 살 곳을 얻어 모두 편안함은 만물이 각기 성명(性命)을 바루어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함과 같으니, 이는 성인(聖人)의 이(利), 정(貞)을 말한 것이다. 일찍이 통합하여 논하면, 원(元)은 사물이 처음 생김이요, 형(亨)은 만물이 번창하고 무성함이요, 이(利)는 열매로 나아감이요, 정(貞)은 열매가 완성된 것이다. 열매가 이미 완성되면 그 뿌리와 꼭지가 떨어져서 다시 심어 날 수가 있으니, 이는 사덕(四德)이 순환하여 끝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덕(四德)의 사이에 생기(生氣)가 유행(流行)하여 애당초 간단(間斷)함이 없으니, 이는 원(元)이 사덕(四德)을 포함하여 하늘을 통합하는 소이(所以)이다. 이를 성인(聖人)으로써 말하면, 공자(孔子)의 뜻은 이 괘(卦)를 성인(聖人)이 천위(天位)를 얻어 천도(天道)를 행해서 태평성대를 이루는 점(占)이라 여긴 것이니, 비록 그 글 뜻은 문왕(文王)의 옛것이 아님이 있으나, 독자(讀者)가 각기 뜻으로써 찾는다면 함께 행해지고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곤괘(坤卦)도 이와 같다.

 

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以하여 自彊不息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傳】 卦下象은 解一卦之象이요 爻下象은 解一爻之象이니 諸卦皆取象以爲法하니라 乾道覆(부)育之象이 至大하여 非聖人이면 莫能體하니 欲人皆可取法也라 故로 取其行健而已니 至健은 固足以見天道也라 君子以自彊不息은 法天行之健也라.

 

괘(卦) 아래의 상(象)은 한 괘(卦)의 상(象)을 해석한 것이고, 효(爻) 아래의 상(象)은 한 효(爻)의 상(象)을 해석한 것이니 모든 괘(卦)가 다 상(象)을 취하여 법(法)으로 삼는다. 건도(乾道)가 덮어주고 기르는 상(象)은 지극히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체행할 수 없으니, 사람이 누구나 모두 취하여 법(法)을 삼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그 운행이 굳셈을 취했을 뿐이니, 지극히 굳셈은 진실로 천도(天道)를 볼 수 있다. 군자(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음은 하늘의 운행이 굳셈을 본받는 것이다.

 

【本義】 象者는 卦之上下兩象과 及兩象之六爻니 周公所繫之辭也라.

상(象)은 괘(卦)의 위아래 두 상(象)과 두 상(象)의 육효(六爻)이니, 주공(周公)이 붙인 말이다.

 

○ 天은 乾卦之象也니 凡重卦는 皆取重義로되 此獨不然者는 天一而已라 但言天行則見其一日一周而明日又一周하여 若重複之象이니 非至健이면 不能也라 君子法之하여 不以人欲害其天德之剛이면 則自彊而不息矣리라.

 

○ 하늘은 건괘(乾卦)의 상(象)이니, 무릇 중괘(重卦)는 모두 거듭의 뜻을 취하였으나 이것만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은 똑같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의 운행이라고만 말하면 하루에 한 번 돌고 다음날 또 한 번 돌아 중복의 상(象)을 볼 수 있으니, 지극히 굳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군자(君子)는 이를 본받아 인욕(人慾)으로써 천덕(天德)의 강함을 해치지 않으면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을 것이다.

 

潛龍勿用은 陽在下也요.

잠겨있는 용(龍)은 쓰지 말라는 것은 양(陽)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傳】 陽氣在下하고 君子處微하여 未可用也라.

양기(陽氣)가 아래에 있고 군자(君子)가 미천한 자리에 있어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本義】 陽은 謂九요 下는 謂潛이라.

양(陽)은 구(九)를 이르고,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잠겨있음을 이른다.

 

見龍在田은 德施普也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德)을 널리 베풂이요.

【傳】 見於地上하니 德化及物하여 其施已普也라.

지상에 나타나니 덕화(德化)가 만물에 미쳐 그 베풂이 이미 넓은 것이다.

 

終日乾乾은 反復道也요.

종일토록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반복하기를 도(道)로써 함이요.

【본의】 도(道)를 반복함이요.

【傳】 進退動息을 必以道也라.

나아가고 물러나며 움직이고 멈춤을 반드시 도(道)로써 하는 것이다.

【本義】反復은 重複踐行之意라.

반복(反復)은 거듭하여 실천한다는 뜻이다.

 

或躍在淵은 進无咎也요.

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나아감이 허물이 없다는 것이요.

【傳】 量可而進[一有也字] 하여 適其時則无咎也[一無也字] 라.

가함을 헤아려 나아가서 시기에 적당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本義】 可以進而不必進也라.

나아갈 수는 있으나 반드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飛龍在天은 大人造也요.

나는 용(龍)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大人)의 일이요.

【본의】 대인(大人)이 일함이요.

【傳】 大人之爲는 聖人[一无人字] 之事也라.

대인(大人)의 함은 성인(聖人)의 일이다.

【本義】 造는 猶作也라.

조(造)는 작(作)과 같다.

 

亢龍有悔는 盈不可久也요.

끝까지 올라간 용(龍)이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가득함은 오래 갈 수 없다는 뜻이요.

【傳】 盈則變이니 有悔也라.

가득하면 변하게 마련이니,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用九는 天德은 不可爲首也라.

용구(用九)는 천덕(天德)은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傳】 用九는 天德也라. 天德은 陽剛이니 復用剛而好先이면 則過矣라.

용구(用九)는 천덕(天德)이다. 천덕(天德)은 양강(陽剛)인데, 다시 강(剛)을 쓰고 앞서기를 좋아하면 지나치다.

【本義】 言陽剛은 不可爲物先이라. 故로 六陽皆變而吉이라.

양강(陽剛)은 사물의 먼저가 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육양(六陽)이 모두 변하여 길한 것이다.

 

○ 天行以下를 先儒謂之大象이요 潛龍以下를 先儒謂之小象이니 後放此하니라.

○ 천행(天行) 이하를 선유(先儒)들은 대상(大象)이라 이르고 잠룡(潛龍) 이하를 선유(先儒)들은 소상(小象)이라 일렀으니, 뒤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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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far-reaching spiri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https://www.youtube.com/watch?v=R3OKXNoVz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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