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 2장 49절 박 한경(朴漢慶)이 도주의 부르심을 받고 청주 근방에 있는 청천면 화양동의 만동묘(萬東廟)를 찾으니 건물은 왜정 때에 없어지고 빈터만이 남아있는 사정을 도주께 아뢰었도다. 또 그는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한규(柳漢珪)를 데리고 화양동에 가서 도주께서 거처하실 곳을 마련하고 기다렸으되 다음 기회로 미루신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도다. 신묘년 三월에 있었던 일이니라.
교운 2장 52절 이해 봄 어느 날 도주께서 보수동 산정에서의 공부를 멈추고 대청에 나오셔서 “앞으로 신도들의 동(動)이 두 번 있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그 주변에 사는 신도들의 사정을 물으셨도다. 이때 박 한경ㆍ오 치국ㆍ임 규오ㆍ박 중하ㆍ박 봉상ㆍ이 인호 등이 시좌하였도다.
교운 2장 53절 도주께서 갑오년 가을에 박 한경에게 사략 상하권(史略上下卷)과 사서 삼경(四書三經)의 구판을 구하게 하시므로 이때에 통감(通鑑)ㆍ소학(小學)ㆍ대학(大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시전(詩傳)ㆍ서전(書傳)ㆍ중용(中庸)ㆍ주역(周易)의 구판을 구하여 올렸더니 이 책들은 그 후에 도장에 비치되었도다.
교운 2장 54절 도주께서 다음 달에 박 한경(朴漢慶)과 김 용화(金容和)ㆍ김 해구(金海九)ㆍ오 치국(吳治國)ㆍ류 철규(柳喆珪)ㆍ이 윤섭(李允燮)ㆍ류 한규(柳漢珪)ㆍ김 영하(金永河)ㆍ오 영식(吳永植) 등을 데리시고 해인사(海印寺) 경내에 있는 관음전(觀音殿)이자 심검당(尋劒堂) 뒤편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사흘 동안 공부를 하셨도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말씀은 없으시고 “사명당(四溟堂)의 입적실에 가서 불공이나 드리고 가리라” 말씀하시니 박 한경과 그 외 세 사람이 먼저 그곳을 돌아보고 와서 가시기를 청하니 “너희들이 다녀왔으면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근처에 있는 백련암과 그 외 여러 암자를 돌아보시고 길에 오르셨도다.
교운 2장 57절 병신년 三월에 박 한경은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철규ㆍ박 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이르렀도다. 이 절의 경내에 동계사(東雞祠) 삼은각(三隱閣)과 단종왕의 숙모전(肅慕殿)이 있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추배한 동묘 서묘가 있으니 신라 고려 조선의 삼대 충의지사를 초혼한 곳이로다. 이곳의 관리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 팽년(朴彭年)의 후손이고 정기적으로 청주에서 내왕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도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이날따라 그 후손이 도주께서 불러 나온 듯이 미리 와서 문을 여니 도주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도다. 그리고 동학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레 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神明解冤)을 위주한 것이라”고 이르셨도다.
교운 2장 60절 박 한경이 이해 八월에 충청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화에 힘을 다하고 있던 중에 급히 도장으로 귀환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류 철규와 함께 돌아오니 도주께서 지리산 쌍계사(智異山雙磎寺)에 갈 터인데 배종할 것을 분부하시니라. 다음날에 박 한경ㆍ류 철규ㆍ한 상덕ㆍ김 재복이 도주를 모시고 절에 이르러 정하신 바에 따라 청학루(靑鶴樓)의 뒷계단 위에 있는 영주각(瀛洲閣)의 정결한 방으로 주지의 안내를 받았도다. 도주께서 이레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생각하였던 바와는 달리 쉽게 마쳤다고 하시고
「趙鼎山來智異應 一布衣來白日寒」이라
고 말씀하셨도다.
교운 2장 61절 도주께서 청명한 정유년 가을 어느 날에 감천에서 박 한경에게 “누구의 소유지냐”고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물으시기에 그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고 아뢰니라. 그곳이 훗날에 도주의 묘소(墓所)로 정하여지도다.
교운 2장 63절 박 한경은 이해 섣달에 “도전(시봉) 오 치국을 교체하려 하니 적임자를 말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몇 사람을 아뢰오니 “마땅치 않다” 하시므로 다시 류 철규를 아뢰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므로 응낙하신 줄 생각하고 류 철규에게 지방에 내려가서 모든 일을 정리케 하니라. 다음 달에 박 한경이 류 철규가 올라온 것을 도주께 아뢰니 “그만 두라”고 분부하셨도다.
교운 2장 64절 도주께서 다음 해 二월 하순경에 최고 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 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 종전의 시봉 도전과는 전혀 다르니라”고 분부를 내리셨도다.
교운 2장 65절 박 한경은 도전이 된 후에 지방의 일로 며칠 다녀오기를 도주께 청하였으되 허락을 얻지 못하였도다.
교운 2장 66절 도주께서 정유년 十一월 二十一일 자시부터 무술년 三월 三일까지 도장에서 불면 불휴하고 백일 도수를 마치시니라. 五일에 심히 괴로워하시므로 한의사와 양의사를 불러왔으되 “때가 늦었도다”고 이르시니라. 도주께서 이튿날 미시에 간부 전원을 문밖에 시립케 한 후 도전 박 한경을 가까이 하고 도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고 “오십 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문밖을 향하여 “도적놈”을 세 번 부르시더니 화천하시니라. 무술년 三월 六일 미시요 양력으로 一九五八년 四월 二十四일이오. 수는 六十四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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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서 <한경> 으로 검색해서 나온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은 모두 < 敎運 2장 > 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敎運 2장 > 은 보다시피 도주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찾아보는 이유는 도주님과 우당께서 관련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추정컨데 이 부분은 우당께서 깊이 관여하셨을 것으로 보인다. ....
그런데, 위의 구절들에는 알핏 보아도 <도호(道號) > 와 관련된 부분은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각 구절들을 연도별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연도별 정리
마지막 구절에 의하면 화천하신 해가 1958년이고, 간지로는 무술이다.
간지 년도
교운2장49절 신묘 1951년
교운2장52절 갑오 1954년
교운2장53절 갑오 1954년
교운2장54절 갑오 1954년
교운2장57절 병신 1956년
교운2장60절 병신 1956년
교운2장61절 정유 1957년
교운2장63절 정유 1957년
교운2장64절 무술 1958년
교운2장65절 무술 1958년
교운2장66절 무술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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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부터 1958년까지 8년간의 기록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우당의 말씀중에 " 또 도주님 화천 당시 유명으로서 연원의 맥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의 근거는 <교운2장64절>과 <교운2장66절>의 붉은 색으로 굵게 표시되어 있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아래)
4. 본 종단의 맥(脈)은 상제께서 강세하셔서 교운을 펴신 데에 그 시원(始元)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상제께서 화천하시고 난후 상제님의 계시로 득도(得道)하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 연원(淵源)의 맥이 이어지고, 또 도주님 화천 당시 유명으로서 연원의 맥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89. 3. 18) (87. 4.)
이제 그림감상하면 될 것 같다.
(2) 그림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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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줄> 이 모두 2개가 그려져 있다.
<2번째> 도통줄은 "1번째 원과 2번째 원을 잇는 <1번째> 도통줄과 같은 방식으로" 맥이 이어졌을 것 같은데 어찌들 생각하시는지?
왜냐면? 도통줄(=脈)은 이어져야하니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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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건달 작성시간 24.10.03 시료공부반에서 태을주 수련을 합니다 단~5박6일간 딱 한 시간만 시료방에서 시료를 순감분들이 영적으로 공부반의 수도인들을 담당하는 한 분씩 한 시간 동안 시료를 해 주십니다 굉장히 오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직도 그 기운이 오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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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건달 작성시간 24.10.03 그러하니 21일동안 잠 않자고 않먹는 공부를 해 보시죠~먹는것 좋아 하시는 분인데 과연 잘할지를 아무것도 하질않으면서 네 그럴것이다 그럴것이다 뭐가 그렇타는 건지 아마 2일째 부터는 배고프고 잠도 오고 했어 못 견딜걸요 ~뭘 주장을 하고싶으시면 본인이 직접 함 해보신 근거로써 주장을 하셨스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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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건달 작성시간 24.10.03 만약에 21일동안 잠 않자고 않먹는 공부를 했다고 한다면 그대를 비인정이 아닌 인정을 하겠습니다 언감생심 도전 하지를 마세요 그대는 못 견디고 못 버팁니다 100%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인이 아니고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대인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상재는 7일 중재는 14일 하재는 21일 이것을 가르쳐 주려면 21일동안 잠 않자고 않먹는 공부를 하므로써 그 증표를 하늘에서 인정이면 도통줄을 주실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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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건달 작성시간 24.10.03 박우당 도전님께서는 안양 수리사에서 49일 공부를 친히 마치시고 하명하시길 참 힘들고 어렵더라 하셨고 또한 책임자의 책임은 아무나 한다고 되는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못 버텄다고 하명을 하셨습니다 책임 앞으로 포덕에 꿈을 가진 각 전도인이여~ 어떤 책임감으로 포덕천하를 꿈 꾸시나 포덕호수가 많아지면 월성으로 돈을 만지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돈에 집착을 하게 된다 수도인들도 마찬가지 ~박우당 도전님께서는 남겨두신 통장에 그 큰 돈이 화천하신 연후에 혼돈에 연속성을 지닐때 화합하면 그 큰 돈을 쓸수있게 해 두셨습니다 그 큰 돈이 동두천 제생병원의 개원을 하겠금 해 두셨습니다 저는 박우당 도전님께서 하신 공사를 보면 대단하시다 라고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상도방면의 월성금은 어떻케 쓰여졌나요~어떤 책임감이 들어서 포덕하는 전도인들이 되었나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도는 무엇을 남겨둔건가?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앞으로는 재리가 어둡지를 않코 밝게 움직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