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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크릿 독트린 II - 들어가는 말

작성자LOVE-IS-ALL.|작성시간26.06.18|조회수44 목록 댓글 0

나의 교리는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낸 그분 것이다.”

요한복음 7:16.

 

현대 과학은 진화의 독트린을 고집한다; 인간의 이성과 씨크릿 독트린도 그러하다. 그리고 이 사상은 고대의 전설들과 신화들로 확증되며, 그리고 심지어 성서에서도 행간을 읽을 때 확증된다. 우리는 꽃이 서서히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고, 봉오리가 씨앗에서 생겨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 씨앗, 물리적인 변형의 예정된 프로그램, 그리고 형태, 색 그리고 향기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들이 어디에서 오는가? 진화(evolution)라는 단어 자체가 말해준다. 현재 인종의 씨앗은 이번 인종의 부모 속에 선재하였을 것이다. 마치 다음 여름의 꽃이 숨겨져 있는 그 씨앗이 부모 꽃의 씨방에서 발전되었듯이; 그 부모가 약간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미래 자손과 다르다. 현대 코끼리와 도마뱀의 홍수 이전 조상들은 아마도 맘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 인류의 선조들이 베다, 볼루스파, 창세기의 “거인들”이 아니었는가? 물론 “종의 변형이” 진화론자들의 더 물질주의적인 견해에 따라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 명백히 터무니없지만, 연체동물에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각각의 속(genus)이 그것의 고유한 구분되는 원초적인 형태들을 변화시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 “아이시스 언베일드,” I권, p. 153.

 

 

 

예비 설명

태고의 스탠저들, 그리고 네 가지 역사 이전 대륙에 관하여

 

우주의 전체 모습은, 비록 무한한 방식으로 변화하더라도, 그 본질은 언제나 동일하다.”

스피노자

 

 

스탠저들은 본서(2권)에 있는 주석들과 함께 1권의 우주 발생론에 관한 스탠저들과 동일한 태고의 기록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번역이 제시되지만, 일부 스탠저들은 너무 애매해서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1권에서처럼 그랬듯이, 스탠저들이 먼저 있는 그대로 제시되고, 주석과 함께 구절을 다룰 때 그것들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주석에 대한 더 충분한 설명을 기대하면서 괄호 안에 단어들을 덧붙인다.

 

인류의 진화와 관련하여, 씨크릿 독트린은 세 가지 새로운 명제를 주장하며, 그것들은 요즘의 종교 도그마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 모두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친다 (a) 우리 지구의 서로 다른 일곱 지역에서 일곱의 인류 그룹의 동시적인 진화; (b) 육체 이전에 아스트랄체의 탄생: 후자가 전자의 모형이다; 그리고 (c) 이번 라운드에서 인간이 동물 왕국의 모든 포유류—유인원까지 포함하여—보다 선행하였다는 것.[1]

 

씨크릿 독트린만이 우리 지구의 일곱 구역에서 동시적으로 태어난 원초의 인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헤르메스의 신성한 피만더에서 우리는 동일한 일곱 원초의 인간이[2] 대자연과 “천상의 인간,” 집단적인 의미에서, 즉 창조적인 영들로부터 진화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가 새겨진 칼데아 점토판의 단편들에서 (조지 스미스가 수집한), 쿠타 점토판의 첫 번째 열에서, “위대한 (일곱) 신들이 창조한” 까마귀의 얼굴들을 (검고, 거무스름한 피부색) 가진 일곱 인간들이 언급된다. 혹은 16절과 18절에서 설명되듯이 — “그들은 지구의 한가운데에서 자랐고 위대한 … 일곱 왕, 같은 가족의 형제들”이 되었다. 이들은 카발라에서 언급되는 에돔의 일곱 왕들이다; 첫 번째 인종은 불완전하였기에, 즉, “균형” (성별)이 존재하기 전에 태어났기에, 그래서 파괴되었다. (조하르, 시프라 드제니우타, 이드라 수타, 2928; 카발라, p. 205.) “일곱 왕, 형제들이 나타나서 자녀를 낳았으니, 그들의 백성은 6,000명이었다. (히버트 강연, p. 372) 신 네르가스 (죽음의 신)가 그들을 파괴하였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파괴하였는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들을 평형 (혹은 균형) 속으로 가져옴으로써.” (시프라 드제니우타) 그들은 (삼출에 의해서 혹은 스며나옴으로) 그들 자신의 자손 속에 통합되어서 하나의 인종으로서 “파괴되었다”; 즉, 무성의 인종이 양성의 (잠재적으로) 인종에 재화신하였다; 후자는 자웅동체로; 그리고 이들은 다시 성별로, 나중에 세 번째 인종으로 (더 깊은 설명은 아래 참조). 만약 그 점토판들이 덜 훼손되었다면, 그것들이 상세한 세부사항들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근본적인 사실들에 관하여, 태고의 기록들과 헤르메스 문헌에 주어진 같은 설명을 문자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헤르메스 문헌이 오역으로 상당히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르침들이 겉보기에 초자연주의가 비유적일지라도 최신 과학의 가설들 뿐만 아니라 성서의 사문화된 진술에[3] 정반대로 대립하기에, 그것이 격정적인 부인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컬티스트들은 에소테릭 철학의 전승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장 논리적이며, 모든 어려움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집트의 “토트의 서”와 “사자의 서,” 그리고 일곱 마누를 다루는 힌두 푸라나들, 그리고 칼데아-아시리아 기록들까지 가지고 있다. 그들의 점토판에서 일곱의 원시 인간, 혹은 아담들을 언급하는데, 그 이름의 실제 의미가 카발라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사모트라케 신비 의식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라면 카비리(Kabiri)의 통칭적인 이름이 “거룩한 불(Holy Fires)”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이 엘렉트리아(Electria) (또는 사모트라케) 섬의 일곱 지역에서 “거룩한 렘노스에서 태어난 카비르”를 창조하였다. (그 렘노스 섬은 벌컨에게 신성한 섬이었다.)

 

핀다로스에 따르면 (“필로소포메나,” 밀러 판, p. 98 참조), 아다마스(Adamas)라는 이름을 가진 이 카비르(Kabir)가 렘노스의 전승에서 대지의 품에서 태어난 원시 인간의 유형이었다. 그는 생성의 순서에서 최초의 남성들의 원형이었으며, 인류의 일곱의 자생적(autochthonous) 조상들 또는 선조들 중의 한 명이었다 (같은 책, p. 108). 이것과 함께, 사모트라케가 페니키아인들에 의해서 식민지화되었고, 그들 이전에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펠라스기아인들에 의해서 식민지화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페니키아인, 칼데아인, 이스라엘인의 신비 신들의 동일성을 기억한다면, 노아 홍수의 혼란스러운 설명이 어디서 왔는지 발견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최근에 유대인들이 창조에 관한 원초의 개념을 모세로부터 얻었고, 모세는 그것을 이집트인들로부터 얻었으며, 유대인들이 칼데아-아카드인 기록에서 그들의 창세기와 최초 우주발생론 전승—이것들이 에스라와 다른 이들에 의해서 다시 쓰였을 때—을 편찬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설형문자 비문들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아담(Adam), 아드미(Admi), 혹은 아다미(Adami)[4] 이름의 원래 의미뿐만 아니라, 대지 어머니로부터 물리적으로 그리고 선조들의 신적인 불로부터 영적으로 혹은 아스트랄적으로 태어난 인간의 일곱 뿌리들 혹은 일곱 아담들의 창조를 발견한다. 아시리아 학자들은 에소테릭 가르침을 모르기에 그들이 창세기와 성서에서 같은 것을 발견할 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듯이 바빌로니아 원통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신비스러운 숫자 7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편들의 파손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조상 영들의 수와 그들의 인간 자손의 일곱 그룹들이 피만더와 카발라의 숨겨진 신비의 서(Book of the Concealed Mystery)에서 발견되듯이 분명히 거기에 있다. 후자에서 아담 카드몬은 세피로트 나무이며, 동시에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32절에서 말한다: “그 나무는 주위에 일곱 기둥을 가지고 있다,” 혹은 일곱 행성들의 구체에서 작용하는 일곱 창조 천사들이 우리 지구에 있는 일곱 궁전을 가지고 있다. 아담 카드몬이 집합적인 이름이듯이, 인간 아담의 이름도 집합적인 이름이다. 조지 스미스는 “칼데아인의 창세기 기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런 전승들에서 최초의 인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아담(Adam)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고유명사가 아니라, 단지 인류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아담은 창세기에서 고유명사로 등장하지만, 확실히 어떤 구절들에서는 아시리아인의 단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조지 스미스, 칼데아인의 창세기 기록, p. 86)

 

더욱이, 칼데아의 홍수나 성서의 홍수는 (시수트루스와 노아의 이야기) 보편적인 홍수나 인도 푸라나의 바이바스바타 마누 우화에 기록된 아틀란티스 홍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사모트라케의 에소테릭 신비 의식에 기반한 외적인 비유이다. 만약 고대 칼데아인들이 푸라나 전승 속에 숨겨진 에소테릭 진리를 알았다면, 다른 민족들은 사모트라케의 신비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우화로 재구성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천문학적 그리고 인류학적, 혹은 오히려 남근숭배적 개념에 맞게 각색하였다. 사모트라케는 고대에 홍수로 역사적으로 유명하였으며, 그 홍수가 나라를 잠기게 하였고, 가장 높은 산 정상까지 도달하였다; 이 사건은 아르고나우테스 시대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것이 당시 호수로 여겨졌던 흑해의 물이 매우 갑작스럽게 범람하면서 발생했다.[5]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우화의 기초를 둘 또 다른 전승을 가지고 있었다: 약 1만~1만 2천 년 전에, 현재의 고비 사막을 마지막으로 바다로 바꾸어 버린 그 “홍수”로, 수많은 노아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주변 산들로 피신하게 만들었던 홍수이다. 바빌로니아 기록들이 수십만 개의 부서진 조각들에서 이제 복원되었기에 (쿠윤직 언덕에서만도 레이어드의 발굴로 2만 개가 넘는 비문들이 나왔다), 여기서 인용된 증거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그렇더라도, 그것들이 우리의 가르침의 거의 모든 것을 확증한다. 확실히 적어도 세 가지.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

 

(1) 발생 속으로 최초 떨어진 인종은 어두운 인종이며 (잘마트 가구아디:Zalmat Gaguadi), 그들은 이것을 아다미(Adami) 혹은 어두운 인종이라 불렀고, 그리고 사르쿠(Sarku), 혹은 밝은 인종은 그 후로 오랫동안 순수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2) 바빌로니아인들은 추락 시기에 두 가지 주요한 인종을 인식하였는데, 신들의 인종이 (피트리들의 에텔 복체들) 이런 두 인종을 선행하였다. 이것은 H. 롤린슨 경의 견해이다. 이런 “인종들”이 신지학에서 말하는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근원인종이다.

 

(3) 이런 일곱 신들은 그들 각자가 한 인간 혹은 그룹의 인간을 창조하였기에 “갇힌 혹은 화신한 신들”이었다. 이런 신들은 다음과 같다: 지(Zi) 신, 지쿠(Ziku) 신 (고귀한 생명, 순수성의 감독자); 미르쿠(Mirku) 신 (고귀한 왕관), “죽음에서 신들을 구원하는 자,” (나중에) 갇히고, “그의 손이 만든 어두운 인종”의 창조자”; 립주(Libzu) 신 “신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 니시(Nissi) 신 . . . 그리고 수하브(Suhhab) 신; 그리고 이들의 종합, 헤아(Hea) 혹은 사(Sa), 지혜와 심연의 신으로 추락 시기에 오안네스-다곤(Oannes-Dagon)과 동일시되며, (집합적으로) 데미우르고스(Demiurge), 혹은 창조자라 불렸다. (칼데아인의 창세기 기록, p. 82 참조)

 

바빌로니아 단편들에는 두 가지 “창조”가 있으며, “창세기”도 이것을 따랐기 때문에, 1장과 2장이 엘로힘 창조와 여호와 창조로 구분된다. 그러나 그것들의 적절한 순서가 이것이나 어떤 다른 외전인 기록에서 보존되지 않았다. 오컬트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창조들”은 선조들 (피트리를 혹은 엘로힘)이 원초의 일곱 일간을 형성한 것 그리고 추락 후에 인간 그룹의 형성을 각각 말한다.

 

이 모든 것이 과학의 관점에서 조사될 것이고 우리가 나아가면서 성서를 포함해서 고대의 모든 민족들의 경전들과 비교될 것이다. 한편, 우리가 역사 이전 인종들의 인류발생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아담 인종을 선행하였던 네 개의 거대한 인종들이 태어났고, 살았으며, 죽은 대륙들에게 주어진 이름들을 일치시키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것들의 태고의 그리고 비의적인 이름들이 많으며 연대기와 경전에서 그것들을 언급한 민족의 언어에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벤디다드에서 에어리넘 바이자(Airyanem Vaego)라고 (분다히쉰, 79, 12 참조) 언급되는 그것으로, 그곳에서 원래의 조로아스터가[6] 태어났다고 하며, 푸라나 문학에서는 “스베타-드위파(Sveta-Dwipa),” “메루 산(Mount Meru),” 비쉬누의 거주처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씨크릿 독트린에서 “이 행성의 영들” 그들의 우두머리들의 지배 하에 있는 단순히 “신들의 땅”으로 언급된다.

 

그러므로 생길 수 있는 가능한 그리고 심지어 매우 그럴듯한 혼란을 고려하여, 꾸준하게 언급되는 네 개 대륙 각각에 대하여 교양 있는 독자에게 더 친숙한 이름을 채택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첫 번째 인종이 신성한 선조들에 의해서 진화된 그 첫 번째 대륙, 혹은 첫 번째 육지를 다음과 같이 부르기로 제안한다: —

 

I. “불멸의 성스러운 땅(The Imperishable Sacred Land)”.

이 이름의 이유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이 “성스러운 땅”—그것에 대해서 나중에 더 다룬다—은 다른 대륙들의 운명을 결코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라운드 동안 내내 만반타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되는 운명을 가진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첫 번째 인간의 요람이고, 인류의 미래 씨앗을 위한 시쉬타(Sishta)로써 선택된 마지막 신성한 필멸자의 거주처이다. 이 신비롭고 성스러운 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주석서 중에 하나에서 시적인 표현을 따르면, “북극성이 위대한 숨결(GREAT BREATH)의 ‘낮’의 새벽부터 황혼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7]

 

II. “하이퍼보리안”이 두 번째 대륙을 나타내는 이름이 될 것이다. 이 땅은 그것의 곶들을 북극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뻗어서 두 번째 인종을 받아들였으며, 지금 북아시아로 부르는 것의 전체를 구성하였다. 그것이 가장 오래된 그리스인들이 먼 북쪽의 신비로운 지역에 붙인 이름으로, 그들의 전승에서 아폴론, 즉 “하이퍼보리안”이 매년 그곳으로 여행하였다고 한다. 천문학적으로, 아폴론은 물론 태양을 의미하며, 그가 헬라스의 성소들을 떠나서 태양이 반년 동안 지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그 먼 나라를 매년 방문하기를 좋아하였다. [밤과 낮의 길이 서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 (10권 86)에서 말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혹은 아마도 더 정확히 말해서 민족학적으로 그리고 지리학적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 하이퍼보리안들의 땅, 리파우스 산 산맥에서 육중하게 뒤척이는 것을 좋아한 눈과 폭풍의 얼어붙은 심장의 신, 보레아스의 영역 너머로 뻗은 그 나라는 신화학자들이 추측하듯이 이상적인 나라도 아니었고, 스키티아나 다뉴브 강 인근의 땅도 아니었다.[8] 그것은 실제의 대륙으로, 초기 시절에 겨울을 몰랐으며, 심지어 지금도 그것의 잔존 지역들이 1년에 단 하루와 단 하룻밤만을 가지고 있는 진짜 대륙이었다. “밤의 그림자들이 그 위로 결코 드리워지지 않는다”라고 그리스인들이 말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신들의 땅, 빛의 신 아폴론이 가장 좋아하는 거주처이고, 그곳의 주민들은 그가 사랑하는 사제들과 봉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은 시적으로 꾸며진 허구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에는 시적으로 표현된 진실이었다.

 

III. 세 번째 대륙은 “레무리아(Lemuria)”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이름은 P. L. 스클레이터 씨의 생각 혹은 고안으로, 그는 1850과 1860년 사이에 동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선사 시대에 마다가스카르부터 실론과 수마트라까지 뻗어 있었다고 보여준 대륙의 실제 존재를 주장하였다. 그것은 현재의 아프리카의 일부를 포함하였지만, 그 외에는 이 거대한 대륙이 인도양에서 호주까지 뻗었으며, 지금은 태평양 아래로 완전히 사라졌고, 그것의 고지대의 일부만이 이제는 섬들로 여기 저기 남아 있다. 자연학자 A. R. 월리스는 “제3기 시대의 호주가 뉴기니와 솔로몬 제도까지, 그리고 어쩌면 피지까지 확장하고,” 그리고 그곳의 유대류 유형들에서 그는 “중생대 동안에 북쪽 대륙과의 연결을” 추론한다고, C. 굴드 씨가 “신화적 괴물들,” 47쪽에서 쓰고 있다. 그 주제가 다른 곳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9]

 

IV. “아틀란티스”가 네 번째 대륙이다. 만약 고대인들의 전승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면, 이것이 최초의 역사적인 대지일 것이다. 플라톤이 말한 그 이름의 유명한 이 거대한 대륙의 한 조각에 불과하였다. (“에소테릭 붓디즘,” 참조)

 

V. 다섯 번째 대륙은 아메리카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아리안 오컬티스트들이 다섯 번째 대륙으로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그것과 거의 같은 시대의 유럽과 소아시아이다. 만약 그들의 가르침이 지질학적 그리고 지리학적 순서로 대륙의 출현을 따랐다면, 그러면 이 분류가 수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륙들의 순서가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 인종, 우리의 아리안 근원인종까지 인종들의 진화 순서를 따르기 때문에, 유럽이 다섯 번째 대륙으로 불려야 한다. 씨크릿 독트린은 섬이나 반도는 고려하지 않으며, 현대의 육지와 바다의 지리적 분포도 따르지 않는다. 가장 초기 가르침의 시절과 거대한 아틀란티스의 파괴 이후에, 지구의 모습은 한 번 이상 바뀌었다. 지브롤터 해협의 형성과 대륙의 또 다른 융기 전에, 유럽에 속한 이집트의 삼각주와 북아프리카가 유럽 대륙의 지도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던 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변화가 약 12,000년 전에 일어났고,[10] 플라톤이 말한 작은 아틀란티스 섬의 침몰이 따랐으며, 그는 그 섬의 모대륙을 따라서 그 작은 섬을 아틀란티스라 불렀다. 고대에는 지리학이 신비학적 비밀의 일부였다. “조하르(Zohar)” (III권, 10a면)에서 말한다: “땅과 바다의 이런 비밀들은 지질학자들이 아니라, 비밀 과학의 사람들에게만 밝혀졌다.”

 

육체적 인간이 원래 제3기 이전의 거대한 거인이었으며, 1,800만 년 전에 존재하였다는 주장은 현대 학문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생물학자들의 전체 민병대가 중생대의 이 세 번째 인종의 타이탄, 당시에 공중, 바다 그리고 땅의 거대한 괴물들과 성공적으로 싸우기에 적합한 존재의 개념을 외면할 것이다. 그의 조상들—아틀란티안의 에텔 원형—은 그를 해칠 수 없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현대의 인류학자는 성서의 아담을 비웃듯이 그리고 신학자가 그의 유인원 조상을 비웃듯이, 우리의 타이탄들을 비웃을 것이다. 오컬티스트들과 그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제 상당히 상호적으로 모든 계산을 마쳤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오컬트 과학은 모든 경우에 다윈의 인류학이나 성서의 신학보다 덜 주장하고 더 많은 것을 제시한다.

 

에소테릭 연대기학은 누구를 겁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숫자들과 관련해서, 오늘날 가장 권위자들조차 지중해 파도처럼 변덕스럽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시대의 지속 기간만 보더라도, 왕립학회의 학자들은 완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런 비교에서 한 번 이상 보게 되듯이, 100만 년에서 5억 년까지 아주 쉽게 오르내린다.

 

현재 목적을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 크롤 씨의 계산이다. 이 권위자에 따르면, 한 미국 지질학자가, 그가 말하게 하듯이,[11] 250만 년이 제3기 혹은 에오세 시대의 시작 이후의 시간을 나타내는지, 혹은 어떤 영국 지질학자가 인용하듯이,[12] 다시 크롤 씨가 “에오세 시대의 시작 이후 1,500만 년을 허용하는지,” 두 조합의 숫자들이 씨크릿 독트린에서 주장한 기간들을 망라한다.[13] 왜냐하면 씨크릿 독트린은 레무로-아틀란티안 대륙에서 네 번째 근원인종의 초기의 진화와 마지막 진화 사이에 400만~500만년을 할당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아리안 인종에서 현재까지 약 100만 년을, 그리고 거대한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큰 반도의 침몰 이후 약 85만 년으로 잡기 때문이다—이 모든 것이 크롤 씨가 제3기 시대에 허용한 1,500만 년 안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연대학적으로 말하면, 이 기간의 지속 기간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결국 몇몇 미국의 과학자들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터무니없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고, 인간이 중생대까지 거슬러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암석 위에 형성된 인간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M. 드 콰트르파지 박사는 인간이 중생대 동안에 존재하지 않았을 타당한 과학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지질학에서 “시대(Ages)”와 “기간(periods)”은 냉정히 말해서 순전히 관습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아직 거의 명확하게 구분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지질학자들이나 자연학자들 중에 어느 두 사람도 그 수치들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식한 학자들이 오컬티스트에게 제공한 폭넓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근거 중에 하나로 T. 멜라드 리드 씨를 들어볼까? 그는 1878년 왕립학회에서 발표한 “지질학적 시간의 지표로서 석회암”이라는 논문에서, 퇴적층의 형성과 석회질 물질이 제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대략 6억 년이라고 주장한다 (왕립학회 회보,” 런던, XXVIII, p. 281); 혹은 다윈 씨의 저작에서 우리 연대기의 지지를 요청할 것인가, 거기서 그는 그의 이론에 따르면 유기적인 변형에 3억~5억 년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C. 라이엘 경과 호턴 교수는 캄브리아기의 시작을 각각 2억 년과 2억 4천만 년 전으로 놓는 것에 만족하였다. 지질학자와 동물학자들은 가능한 최대 시간을 주장한다. 비록 헉슬리 씨가 한때 지구의 지각의 형성 시점을 10억 년 전으로 잡았으며, 그것의 1천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된 요점은 지질학적 기간의 길이에 대한 자연학자들의 의견 일치 혹은 불일치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상하게도, 한 가지 요점에 대한 그들의 완전한 일치에 있으며, 그리고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다. 그들은 모두 “마이오세 시대” 동안—그것이 100만 년 전이든 1,000만 년 전이든—그린란드와 스피츠베르겐, 우리의 두 번째 대륙 혹은 하이퍼보리안 대륙의 잔존 지역들이 “거의 열대 기후를” 가졌다고 하는 것에 모두 일치한다. 이제 호메로스 이전의 그리스인들은 이 “영원한 태양의 땅”에 대한 생생한 전승을 보존하였으며, 그곳으로 아폴론이 매년 여행하였다고 믿었다. 과학은 말한다, “마이오세 시대 동안에, 그린란드가 (북위 70도) 주목(Yew), 레드우드, 캘리포니아 종의 세쿼이아, 너도밤나무, 플라타너스, 버드나무, 참나무, 포플러, 호두나무, 그리고 목련과 자미아 같은 나무들을 풍부하게 계발하였다”; 즉, 그린란드는 북방 지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남방 식물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만약 그리스인들이 호메로스 시대에 하이퍼보리안 땅, 즉 겨울과 폭풍의 신 보레아스의 미치는 범위 너머의 축복받은 땅, 후대 그리스인들과 고전 작가들이 스키티아 너머에서 그것을 헛되이 찾으려 했던 이상적인 지역, 밤이 짧고 낮이 길며, 그 땅 너머에는 태양이 결코 지지 않고 야자수가 자유롭게 자라는 나라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면, 그러면 누가 그들에게 그것에 대하여 말하였는가? 그들의 시대에, 그리고 그 이전 수많은 시대 동안에, 그린란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영구적인 눈과 결코 녹지 않는 얼음으로 이미 뒤덮여 있었음에 틀림없다. 모든 것이 짧은 밤과 긴 낮의 땅이 노르웨이나 스칸디나비아였으며, 그 너머에 영원한 빛과 여름의 복된 땅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위해서, 그들의 전승이 그들 자신보다 더 고대의 어떤 민족들로부터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졌어야 한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결코 알 수 없었던 그런 기후의 세부사항들을 잘 알았다. 심지어 우리 시대에, 과학은 북극해 너머, 북극의 가장자리에서 결코 얼지 않는 바다와 언제나 푸른 대륙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 태고의 가르침과 푸라나—그것의 우화를 이해하는 사람에게—가 같은 진술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들이 현대 과학의 마이오세 시대 동안에, 그린란드가 거의 열대 대륙이었던 시기에, 살았다는 강력한 가능성으로 충분하다.

 

일러두기.

 

독자는 첫 번째 섹션과 다음 섹션들이 엄밀하게 시간 순서대로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첫 번째 섹션에서 설명의 골격을 구성하는 스탠저들을 제시하고, 어떤 중요한 요점들을 해설하고 설명한다. 이후의 섹션들에서는 다양한 추가적인 세부사항들이 모아지고, 주제에 대한 더 충분한 설명이 시도된다.

 

 


[1] 창세기 2장 v. 19절을 보라. 아담이 7절에서 형성되며, 1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ground)에서 주 신(Lord God)이 들판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아담이 그들을 무엇이라 부르나 보려고 그것들을 아담에게 데려왔다.” 이렇게 인간은 동물 이전에 먼저 창조되었다; 왜냐하면 1장에서 언급된 동물들은 황도대의 사인들을 의미하며, 한편 인간,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세피로트의 무리이다; 힘들(Foreces) 또는 천사들로 “그의 (신의) 형상과 그의 모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담, 즉 인간은 그 형상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성서에서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두 번째 아담은 비의적으로 일곱 인간 혹은 인간의 일곱 그룹을 나타내는 칠중이다. 첫 번째 아담—카드몬—은 열 개의 세피로트의 종합이다. 이것 가운데, 상위 삼개조가 미래의 “삼위일체”로서 원형계에 남아 있고, 반면에 하위의 일곱 세피로트가 현현된 물질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이 칠중이 두 번째 아담이다. 창세기와 그것이 제작한 신비들은 이집트에서 유래하였다. 창세기 1장의 “신(God)”은 로고스(Logos)이며, 2장의 “주 신(Lord God)은 창조적 엘로힘(Creative Elohim)—더 낮은 창조적 힘들—이다.

[2] 이렇게 피만더가 말한다 — “이것이 오늘날까지 숨겨져 있던 신비이다. 대자연이 천상의 인간 (엘로힘 또는 디야니들)과 섞여서, 어떤 경이를 가져왔다 . . . . 일곱 인간, 모두 남성과 여성 (자웅동체) . . . . 일곱 통치자들의 성질에 따라서”—제2권, v. 29절—혹은 그를 투사한 혹은 창조한 피트리들 혹은 엘로힘의 일곱 무리(Hosts)들에 따라서. 이것이 매우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현대 신학자들, 지적이고 학식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해석을 보라. 옥스퍼드 오리엘 대학의 존 데이비드 챔버스가 편찬한 작품,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기독교 신플라톤주의자의 신학적 그리고 철학적 저작들”에서, 번역자는 “이 일곱 인간이 누구를 의도하는지” 의아해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림으로써 이 어려움을 해결한다. “원형적 패턴의 인간 (창세기 1장의 아담 카드몬)이 남성-여성이었기에, 이 일곱은 창세기에 이름 붙여진 후대의 장로들을 의미할 수 있다.” (p. 9) 진실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신학적인 방식이다.

[3] 창조, 추락, 그리고 홍수에 대한 비유적인 묘사, 심지어 바벨탑의 전설까지도 제공하는 칼데아 점토판들이 “모세 시대 이전에” 쓰여 졌다고 이제는 주장되기에, (조지 스미스, “칼데아인의 창세기 설명,” p. 86 참조), 그렇다면 모세오경을 어떻게 “계시”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

[4] 본서의 2부의 “아담-아다미” 참조.

[5] 플리니, 4, c. 12; 스트라보, 10; 헤로도투스, 7, c. 108; 파우사니아스, 7, c. 4, 등.

[6] “원래(original)”는 “그 땅에서 이마(Yima)가 만든 바라(Vara)의 주이자 통치자, 자라투스트라,” “암샤스펜드”를 의미한다. 여러 명의 자라투스트라 혹은 제루투스트(Zertusts)가 있으며, 다비스탄은 13명으로 나열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첫 번째 자라투스트라의 화신들이었다. 마지막 조로아스터는 아자렉쉬의 불의 신전의 창건자이며, 알렉산더가 파괴한 원초적 성스러운 마기 종교에 관한 저작들의 작가였다.

[7] 인도에서는 “브라흐마의 낮(Day)”으로 부른다.

[8] 볼커, “신화적인 지리,” pp. 145~170. 참조.

[9]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월리스 씨가 스클레이터 씨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스클레이터 씨는 이전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인도를 결합하는 육지나 대륙을 추정한다 (호주와 인도는 제외); 월리스 씨는 그의 “동물의 지리적 분포”와 “섬의 생명”에서 그런 육지의 가설이 동물학적 근거로 상당히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인도와 호주가 훨씬 더 가까웠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하였고, 그것은 “확실히 제3기 이전”이었던 매우 먼 때였다고 인정하며, 그리고 개인 편지에서 “어떤 이름도 추정된 이 육지에 붙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그 땅은 존재하였으며, 물론 제3기 이전이었다. 왜냐하면 “레무리아”는 (세 번째 대륙의 이름으로 이 이름을 받아들인다면) 아틀란티스가 완전히 발달하기도 전에 사라졌고, 아틀란티스가 침몰하였고 그것의 주요한 부분들이 또한 중신세 말기 이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10] 한 가지 더 “우연의 일치” — “지질학적으로 최근의 시기에, 북아프리카 지역은 사실 스페인의 반도였으며, 그것이 아프리카와 결합되는 것이 북쪽에서 지브롤터의 파열로 그리고 남쪽에서 사하라가 생겨나게 된 융기로 일어났다는 것이 이제 증명되었다. 이전의 사하라 바다의 해안이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동일한 복족류의 조개껍데기로 여전히 표시된다.” (오스카 슈미트 교수, “강하의 독트린과 다윈주의,” p. 244.)

[11] A. 윈첼, 지질학 교수, “세계-생명(World-Life)”, p. 369.

[12] 찰스 굴드, 타즈메니아 지질 조사관, “신비한 괴물들,” p. 84.

[13] 제3기의 세 구분을 표시하기 위해서 “에오세, 마이오세, 플라이오세라는 용어들을 행복하게도 발명한 것으로” 평가받는 찰스 라이엘 경은 실제로 그의 “마인드-자식”의 대략적인 시대를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시대들의 기간들을 전문가들의 추측에 맡겨버렸기에, 극심한 혼란과 당혹감이 그 행복한 생각의 결과이다. 한 저서에서 제시된 숫자를 인용하고, 같은 저자가 이전의 저서에서 혹은 이후의 저서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위험 없이 인용하는 것이 가망 없는 일이다. 현대 권위자들 중에 가장 저명한 한 사람인 톰슨 경은 태양의 나이와 지각의 석화의 시기에 대한 그의 의견을 여섯 번 가까이 바꾸었다. 톰슨과 테이트의 “자연 철학”에서, 지구의 온도가 식물 생명이 나타나게 허용한 시간 이후 단 1,000만 년을 감안한 것을 본다; (부록 D 이하. 또한 에딘버러 왕립 협회의 회의록, xxiii, Pt. 1, 157, 1862. 그곳에서 847이 삭제된다). 다윈 씨는 톰슨 경의 추정치를 “지각의 경화 이후 최소 9,800만 년에서 최대 2억 년”으로 제시한다 (찰스 굴드 참조). 같은 저서에서 (자연 철학) 초기의 지각 형성부터 현재까지 8,000만 년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보여 주었듯이, 그의 마지막 강연에서, 톰슨 경은 태양은 1,500만년을 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1887). 한편, 태양열의 시대의 한계에 대한 그의 주장을 톰슨 경이 세운 이전 수치에 놓으면서, 크롤 씨는 캄브리아기 시작 이후 6,000만 년을 허용한다. 이것이 정확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이다. 이와 같이, 오컬트 과학이 어떤 수치를 제시하더라도, 권위자들로 간주되는 현대의 과학인 사이에 어느 누군가의 숫자들과 반드시 일치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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