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개 창세기 1장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듯이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너무나 유치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그 사실에 대해서 나누길 원한다.
먼저 히브리 문자는 상형 문자라는 것을 나누기 원한다. 상형문자란 어떤 실제 상황을 직접 보고서 주요 특징 몇 가지만을 간추려서 문자화 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 문자와 다른 주요 특징을 말한다면, 직접 경험한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자.
창세기 1:1의 그 크기와 깊이를 살펴 보기로 할까?
창세기 1장(흠정역)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1:1의 첫 시작에 이미 "처음"이 등장한다. 그럼 처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사야 41장(흠정역)
27 처음이신 이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보라, 그들을 보라, 하리라. 내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야훼 하나님께서 "처음"이시다.
곧 창세기 1:1절은 시작과 동시에 야훼 하나님을 경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믿어지는가?
야훼 하나님의 그 처음 되심을 본 경험이 깃들어 있다. 그분의 크고 깊고 넓고 광대하심이 이미 성경의 시작부터 새겨있게 된다.
고로 창1:1의 첫 단어 "베레슅"에 담긴 그 크기를 측량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야훼를 직접 경험한 자 만이 창조를 경험한다는 매우 단편적이면서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창세기 1장
1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하늘과 (그)땅을 창조하시니라.
고로 창조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는 이들은 야훼 하나님을 이미 만난 것이다. 보지 않고서 행할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장(흥정역)
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분께서 무슨 일들을 하시든지 이것들을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조(bara; choose), 또는 택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 적 없는 이를 찾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전혀 모르는 이를 향해 가는 삶이 아닙니다.
오늘도 야훼 하나님이 기억나는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