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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를 읽고

작성자원진호|작성시간12.05.24|조회수132 목록 댓글 0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나에게 흥미를 주었다. 첫째는 이 책의 저자는 30대 초반까지 서울의 잘 나가는 잡지사의 기자로 살다가 모든 걸 때려치고 이딸리아로 요리유학을 간다. 누구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가? 바로 우리 마을의 백 정현. 인생 이모작이란 50대 명퇴를 하고 90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중,장년의 화두이지만 한창 자기 자리에서 깃발을 꽂고 일할 나이에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모든 걸 전복시키는 용기-물론 무한한 책임이 따르지만-, 아니 거창하게 혁명이라 하자-도 필요하다. 조기이모작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근거는 없지만 저자와 정현이에게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

 저자는 98년부터  이딸리아에서 3년간 요리와 와인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1년간 근무했다. 이책은 1년간의 그 곳 생활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엮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저자가 시칠리아의 '파또리아 델레 또리'라는 전통식당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주방장-주인이다- 주제뻬 바로네이다. 그의 요리에 대한 생각이 앞의 책의 슬로푸드,슬로라이프와 연관이 되어 흥미로웠다. 그가 바로 슬로푸드 운동의 씨칠리아협회 창립자이다. 슬로푸드운동은 이딸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저자가 쥬제뻬를 요리를 가르쳐준 아버지같은 존재로 존경한다고 하는데 그의 글로 통해 묘사되는 쥬제뻬의 음식에 대한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씨칠리아의 시골 식당의 주인인 그는 로마의 특급호텔의 미슐랭평가 별3개의 주방이나 온갖 소스가  들어가는 미국식  퓨전 이탈리아 음식을 거부하고, ' 이딸리아 식당이란 산골이나 해안가 구석에 있어서 펄펄뛰는 생선이나 갓 캐낸 버섯 따위로 요리해야 진짜라고 믿는' 요리사다. 또한  이딸리아에서  요리사의 지위는 상당하고 자존심도 강해서  손님과  음식을 가지고 다툼이 있으면 줄곧 이렇게 외친다고 한다.  

   "내 요리가 맘에 안 들면 오지 말란 말이야. 집에 가서 네 마 라가 만들어주는 미트볼 스빠게띠나 먹으라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민원이 들어 가거나 불친절한 집으로 소문이 나 문닫을 일이다. 

 

 그는 또한 유기농 농산물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저자의 글을 인용해 본다.

  [ 유기농이라는 개념에는 무신경했다. 오히려 그 의미를 뛰어 넘는 '원래'하던 방식으로 만든 먹을거리를 찾아 내는 데

    온 신경을 썼다.

    미국의 거대 유기농 기업이 최저임금의 멕시칸들을 고용하여 땡볕 아래서 샐러드용 채소의 벌레를 손으로 잡도록 하

  고 그것을 기름을 펑펑 써 가면서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미국 동부로 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유기농인가? 인간과 자

  연의 조화라는 건강한 개념의 진짜 유기농일까? 우리는 샐러드를먹는 걸까? 기름을 마시는 걸까? 그는 그러한 거창한

  개념보다 오랫동안 씨칠리아 땅에서 재배하고 기르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했다.

      "로베르또..먼바다를 건넛 온 유기농 농산물이 진정한 의미의 유기농일까? 기를 때는 유기농일지 몰라도

       기름을 물 쓰듯 하면서 물을 건넜는데도?"

   그는 오이를 휘두르면서 "이것 보라구 한 겨울에 웬 오이야? 이게 오이로 보여? 오이 부피보다 몇 배의 기름으로 기른

   이게 오이냐구? 오이 속에 기름이 가득 차 있어 이건 진짜 오이가 아냐." 

   그가  오이를 마구 흔들더니 뚝 잘려 나가자 

    " 이것 보라구 기름 먹고 자란 오이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 ]

 

 그는 뭐든 직접 만들거나 '아는'재료를 가져다가 쓰는 걸 최고로 쳤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그곳에서 알베르또로  지칭)를  데리고-요리 제자니까 동행하지 않았을까?- 버섯을 사러 활화산 에뜨나에 직접 오르거나, 양 한마리를 통채로 사러 대형 재래시장에 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추억을 만들어 준 쥬제뻬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그는 돼지도 자신이 아는 농장주에게서 직접 구입하고 직접 이딸리아 소시지를 만든다. 제철에 나오는 토마토를 가지고 직접 시럽을 만든다. 겨울에 토끼가 잡히면 기뻐서 시칠리아식 토끼요리를 특별 메뉴로 식탁에 올린다. 토끼요리가 비싸고 좋다고 해서 사육된 집토끼나 다른 지역에서 공수한 토끼로 항시 요리를 내오지 않는다는 것일텐데 요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된다.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진짜 요리사가 되려면 시장과  들판을 알아야 해.오징어와 참치가 언제 올라오는지,토마토가 가장 잘 익는 때가 언제인

   지 알아야 하지.식당에 앉아 손가락만 써서는 절대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없다구. 좋은 재료는 요리의 전부야."

 

  책에서는 그의 요리에 대한 철학적 태도가 엿보이는 내용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는데 몇 문장을 인용해 본다.

 ' 돼지의 엉덩이 살을 가지고 쏘시지를 만드는데 그는 슈퍼마켓용 소시지를 경멸했다.쌀라미(이탈리아 소시지의 일종)를

   만들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고기에 밀가루를 섞고 각종 인공첨가물을 버무린 그런 음식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믿

   었다. 육식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돼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세상에 쓸모있게 해 주는 것이 요리사의 몪이라고 그는 생

   각했다.'

 ' 요리사는 단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 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관찰자 역할을

   해야한다.'

 ' 우리 식탁에 올라와 있는 스테이크는 우리 미래 세대에게 빌려온 것이다.  " --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언제까지 값싸게 공

   급될 것이라 생각해? 고기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거지. 초지가 말라가고 아마존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게 다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에게 고기를 줄 수 없을 거야" '

  ' 그가 쓰지 않는 재료. 철갑상어알인 캐비아와 오리간 푸아그라. 캐비아는 비싸기도 하지만 불법 어획되거나 양식된 것

    이 많고 오리간 푸아그라는 사육과정의 윤리적 문제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궁금했던 이딸리아 요리에 대한  상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도 하고 이딸리아  식당  주방에서 일어나는  여자에 대한  차별과 수컷들의 전쟁에 대한 비화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딸리아인들이  말보다  제스츄어를 많이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으나 그 정도인줄은 몰랐다. 저자의 개구장이같고 호기심 많으며 또한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집중력이 돋보이는 삶을 엿보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바는 저자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된 쥬제뻬 바로네의 요리 철학이다. 사실 우리 시골 식당에도 이런 분들을 가끔 만나는 것 같다. 직접 채소를 재배하고 보리농사를 져서 보리밥 식당을 하는 곳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그냥 하니깐 하는 거지~ 정도?  

  김종덕님이 지은  책과 이 책의 내용과 주장이 일맥상통한 것이 있다.  앞의 책은 슬로푸드에 한식이  최고라 하는  거고 쥬제뻬는 이딸리아 전통 시골음식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맞붙으면? 당연히 둘 다 최고다. 각각의 토양과 문화에 적합한 음식이  최고가 아니겠느냐? 대량생산하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뿌리고 약탈적 사육을  행하고 먼거리를 기름을 쏟아가면 운송한 식재료를 이용하지 않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앞  글은  소비자입장에서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면 뒷 글은  공급자입장에서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간 요리는 주어지는 대로 먹는 거지 누가 만들고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요리되는지를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거기에 정성이 들어간 것도 몰랐다. 심지어 안사람의 정성어린 된장찌개도 내가 먹기 싫으면  먹기 싫은 것 뿐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쥬제뻬같은  요리사를 만나는 것도 나 같은 소비자에게도 행운일 것 같은데 제대로된 소비자 행동을 가져야 그 같은 행운도 누릴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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