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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애치슨라인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다

작성자원진호|작성시간14.01.04|조회수111 목록 댓글 0

 한국전쟁의 김일성, 타이완 해방의 모택동에게 스탈린의 군사실무적 지원을 결심하게 한 미국의 정책. 애치슨 라인.

 49년 12월에 모택동이 소련을 방문했다. 그가 수 개월 모스크바에 머물며 스탈린에게 요구했던 것은 타이완 해방을 위한 소련의 정치,경제,군사적 지원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 우려하여 애매모호한 입장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01월 05일 미국의 애치슨라인발표 후 바로 '중.소 우호동맹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였다.

 김일성도 그 해 3월 30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금 9톤,은 40톤,광석 1만5천톤,1억 3800만루블에 해당하는 무기장비를 인계 받았다. 이는 3개 보병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5월 13일에는 모택동을 방문하여 한국전쟁 계획을 알리고 상의를 했다.모택동은 일찌기 김일성에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속한 조선족 출신 2개 사단 병력을 넘겨주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지원하에 7개 보병사단, 1개전차여단,1개 기계화사단,1개 국경경비여단의 병력을 갖춰 남한을 침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애치슨라인을 통해 한국과 타이완을 배제하려 했을까?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보자.  " 미국이 한국에서 챙길 이익은 없었다. 다만 미국이 원하는 바는 한국이 소련의 일본 침공을 저지할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다"(30쪽). "사실 미국의 본심은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서 손을 떼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미군의 정치적 수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졌기 때문이다."(54쪽)

 48년 남북한 단독 정부가 세워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상태에 이미 전쟁은 예고되고 있었다. 미군도 1억9천만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장비를 공급했고, 소총 15만정,대포 2천여문도 공급했다. 전쟁용 도로정비,공항개설,항구를 정비했고 2년내 국방군 15만 구축을 선언했기도 했다. 이승만은 연일 북진통일론을 주장했다. 50년 5월 17일에는 트루먼대통령의 고문 존 포스터 덜레스가 38선 전방을 방문하는 상징적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말 뿐인 한국. 군사적 지원은 하면서 정치적으로 뒤로 빼고자 했던 미국. 그 결과는 김일성의 오판과 전쟁의 비극이었다.

 

 자 그렇다면 타이완은 왜그랬을까? 미국은 장제스 국민당정부에 대해 실망이 컸다. 그렇게 지원을 했어도 오합지졸인 인민해방군에 밀렸으니 말이다. 타이완으로 장제스가 밀려나자 미국의 정책적 태도는 "신중국을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이미 희망이 사라진 장제스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 상원의원과 합동참모본부가 계속 타이완을 지원하자고 주장했지만 애치슨국무장관은 그렇게 지원해봤자 타이완 함락을 1년 정도 지연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타이완 지원을 반대하는 이유로 다섯가지를 든다. " 첫째 미국을 다시 세계적으로 영향을 줄 실패로 몰고가 국가의 위신에 타격을 줄 것이다. 둘째, 모든 중국인의 일치된 원한을 미국이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세째, 소련에게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네째, 미국이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패하고 위신이 땅에 떨어진 국민당 정부의 지지자로 새겨질 수 있다. 다섯째, 타이완이 공산당 손에 떨어지면 미국의 극동 방어선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6월 25일 한국전쟁은 발발했고,6월 26일 저녁 7시 15분 백악관 만찬후 백안관과 국방부 고위관료들이 회의후 세가지 안을 발표했다. "첫째, 극동 주재 미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권한을 위임해 한국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둘째,미 공군에 명령을 내려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민,한국에 체류중인 미국인들을 철수시키고 북한 인민군 지상부대를 폭격할 것. 세째, 미 제 7함대에게 즉각 타이완 해협으로 가서 중국 공산당군의 타이완 공격을 저지할 것," 이 회의의 내용을 주재한 것은 애치슨. 한국전쟁이 나자 즉각 타이완 보호에 나서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다. 왜 그랬을까? 책의 64쪽에 이를 분석한 내용이 실려 있다.  미정부의 입장변경에는 맥아더의 비망록이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 비망록이 이 회의에서 낭독되었었다고 한다. 그 내용의 핵심은 " 타이완이 공산당 수중에 들어가고 소련이 이를 이용하면 미국의 맞수에게 항공모함 수십 척으로 조직된 함대를 내어주는 셈이며 오키나와와 필리핀의 미국기지를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제 세계 공산화를 위한 계획적인 행동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타이완 해협을 봉쇄하면서 한국 문제를 국부적으로 국한시키고 미국의 힘을 드러내어 공산당을 한국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타이완해협 봉쇄는 마오쩌둥을 분노케 했고,장제스를 흥분케 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군대 3만3천명을 파병하겠다고 제안했고 한반도 대륙을 통해 중국 본토 진출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마오는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내전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국이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미국의 타이완 간섭으로 한국전쟁은 국제전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하여 북한군의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38선 이북을 유엔군이 위협하게 되자 수차례 중국은 경고하기에 이른다. 한반도가 유엔군에 의해 점령되면 압록강 두만강을 두고 자유주의 진영과 대립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김일성의 요청에 의해 중국군은 참전을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당시 국제정치와 동향을 짚어 보면 하나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 정책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한 각 부처간의 힘겨루기도 있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왔다 갔다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결국 정책이 사건과 사고를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 가며 수습하는 꼴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미국입장에서 대만과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인 것이다. 근데 애치슨은 그러한 정책을 왜 제시했을까? 눈에 보이는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대만의 장제스가 얼마나 미웠으면 그러했을까 싶다. 그러한 감정선이 앞서면서 이성적 태도가 뒤로 처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해는 된다. 속 썩이는 후레자식을 둔 아비의 심정이랄까? 미워 한 번 내치니 오갈데 없는 그 놈은 저자거리 깡패에게 휘둘림을 당하는 꼴이니 다시 집에 들어앉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애치슨라인을 통해 결국 누가 이익을 보았는지. 남,북한,미국,중국,아니면 소련? 삼백만이상이 죽은 그 전쟁에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국제공산주의이념이? 아니면 자유주의 진영이? 이념은 실체가 없고 자기 위안의 헛된 합리화에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결국 군산복합체. 전쟁놀이로 돈을 버는 자들. 그들이 최대의 수혜자고, 그 다음은 일본이었다. 한 나라의 정책도 쉽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세력이 군산복합체라 하지 않는가? 애치슨라인의 우연곡절 상황에 혹시 이들이 주도적인 일을 했다면? 더 나아가 애치슨이 그들의 스파이였다면 너무 과대망상일까? 아마 그렇긴 할 것이다. 설마이기도 하고 그런 근거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책을 평가할 때 일련의 다른 정책들과의 연관성, 정책이 생산하게 되는 근거인 여러 사태들과의 관련성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정책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누가 돈을 벌고 누가 권력을 나눠 갖게 되는지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한다.  대학에 이런 말이 있다.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그 앞과 뒤를 잘 따져 아는 것이 진실이다.". 그 한국전쟁의 진실은 이념이 아니라 권력과 돈에 있었다. 아니 인간사 모든 사물과 사태가 그렇다. 이념을 가진 자 이념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을 것이고 돈을 가진 자 돈으로 돈 놓고 돈 먹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 같은 국민과 인민,대중과 서민은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그냥 알고라도 있자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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