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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의 철학이야기

이(理)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주희 vs 왕수인)

작성자권익현|작성시간13.04.08|조회수578 목록 댓글 3

이(理)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주희 vs 왕수인)

철학vs철학 동양편 20강을 읽고 정리 (발제일 2013년4월1일)

 

 

 

0.理란 무엇인가

理는 있음의 의미? 존재의 근거 이유? 모든 존재에는 뜻이 있으며 그 뜻을 구연 하기위하여 태어났다. 본성? ( ........ )

 

1. 理는 우리에게 사물과의 조화를 보장해 준다.

주희에게 理란 개체들의 동일성으로서가 아니고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원리로 이해되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 한데에는 만물의 근원을 陰陽의 관계 즉 太極이라는 하나의 법칙과 같은 틀 속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유학의 전통 중 오륜은 유학에 있어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인데 다섯 가지 모두 짝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모두 고립된 상태가 아니고 원초적인 짝 관계로 사유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희는 理라는 것을 한 사물의 본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특정 사물의 理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태극의 원리처럼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의자의 다리가 네 개 있어야 의자로써 앉으려는 개체와 관계 맺을 수 있는데 다리가 하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않을 수 없어지고 앉는 기능을 할 수 없는 의자는 앉으려는 개체와 더 이상 관계 맺을 수 없으므로 의자로써의 존재근거 즉 理를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희는 이렇게 理라는 것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파악 될 수 있다고 한다.

 

2. 주희: 사물 속 에 내제 된 理를 찾아야 한다.

주희는 불교에 맞서서 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업데이트 하려고 했던 철학자 였다. 그는 불교를 주관적인 관념론으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유 체계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그가 강조한 격물치지의 공부, 즉 대상을 직접 대면하고 현실에서 대상을 탐구하고 이치를 연구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불교의 관념적 수양론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공부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주자어류’에서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배 한 척을 육지에서 밀어보라” 고 했는데 그렇게 해보면 사람들은 분명 배가 육지가 아니라 물에서만 움직이는 理를 가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의 고유성을 가진 사물들의 理는 마음을 수양 한다고 해서 곧바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직접 사물과 관계를 맺고 바라보며 격물치지 하여야 사물의 理를 찾을 수 있다고 주희는 생각 한 것이다.

 

3. 왕수인: 理는 사물이 아닌 마음에 있다.

왕수인은 21살 무렵 자신이 근무하던 관청의 뜰에 심어진 대나무를 대상으로 격물공부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주희의 말대로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여 성인이 되겠다. 마음먹었지만 이치를 알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심신이 피폐해지는 경험만을 하게되었다고한다. 그 후

왕수인은 주희의 격물 공부가 결국 내 마음과 사물의 이를 둘로 나눈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의 사례를 말했다. 孝의 理는 과연 나의 외부에 있는 부모 자신에게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인가? 주희의 격물공부의 논리에 따르면 孝의 理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를 통해 나는 孝의 이치를 찾아낸 다음 그 이치로 부모를 섬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가령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이제 孝의 理는 부모와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왕수인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제사를 지내며 孝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기시키고 있다. 주희의 생각이 옳다면 일반 사람들이 지내는 제사는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만다. 분명 유학자로서의 주희도 제사를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희도 제사를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부모가 외부에 존재하느냐를 떠나 부모에게 孝를 실천 하려는 마음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추론 끝에 왕수인은 孝의 理가 부모 즉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맺음말

장제와 주희는 당제국의 불교적 이념을 대신하여 새로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불교 비판의 핵심을 관념론적 사유로 여겼으며 불교는 현실의 사태나 인류적 관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내면에만 집착하는 유아론적 사유 체계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장재는 氣 라는 범주를 강조 하였고 주희는 인간의 관념을 초월 하는 理를 강조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왕수인에 이르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의 원리였던 氣 혹은 理 가 이제 인간 내면의 마음 속 으로 수렴되어버린 것이다.

 

 

 

 

 

●왕수인(王守仁) 1472-1528*진리는 내 마음 안에 있다.왕수인(1472∼1528). 자 백안(伯安). 절강성 여요 출신. 양명선생(陽明先生). 저서 [전습록(傳習錄)], [왕양명선생문집(王陽明先生文集)].왕수인은 명나라 병부상서로 신호의 반란을 평정하는 등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유근에게 미움을 사서 좌천하는 등 고난 속에서 자기 사상을 형성했다. 왕수인은 도덕 법칙인 이(理)는 마음속에 선험적으로 내재한다고 보았다. 마음이 바로 이치[心卽理]이며 마음의 밖에 이치란 없다[心外無理]는 이론을 제기했다. 왕수인은 주희의 격물치지(格物致知)도 다르게 해석했다.즉 격물이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는 행위이고, 치지도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선천적인 양지(良知)에 이르는 치양지(致良知)의 의미로 해석했다. 주희의 격물치지는 객관적 공부였으나, 왕수인에게는 마음을 바로잡아 선천적 양지에 이르는 내면의 성찰 이론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을 실천할 때 도덕을 알게 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이론을 주장했다. 개인의 마음에 주목했고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강조한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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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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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권익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4.08 정리가 미숙하여 알송달송 합니다.
  • 작성자박종택 | 작성시간 13.04.08 저는 머리가 미숙하여 알송달송 합니다만
    이렇게 정리글 올려주시면 제 머리속의 체계가 잡히겠지요.
    고맙습니다.
  • 작성자임창석 | 작성시간 13.05.04 송나라 와 명나라는 각자 그나라에 상황과 필요에 따라 왜 내가 너를 통치해야하는지. 그리고 너희딜은 이런방식으로 살아가라고 정리해준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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