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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의 철학이야기

언어철학

작성자황선만(날도래)|작성시간11.01.16|조회수267 목록 댓글 5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버트란드 러셀은 추론을 부분으로 분해함으로서 논리의 진위를 판단하는 법을 발명했는데 이를 논리 철학이라고 한다. 러셀을 비롯해 당시의 언어분석 철학자들은 기존 철학이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가장 정밀한 언어, 곧 이상적인 언어를 만들어서 애매한 용어나 부정확한 언어를 제거하면 명확한 의미로 제대로 사고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러셀에게 3학기 강의를 듣고 몇 년에 걸쳐 쓴 책 <논리철학 논고>가 나온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를 언어의 문제로 보고,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를 밝힌다. 이런 원리로 모든 언어들의 의미를 평가하는데, 이 작업은 의미론으로 모든 철학적 문제를 완전히 설명하는 뛰어난 예를 보여준다.

 

 

그의 사상은 <논리철학 논고>를 중심으로 한 전기와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한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 이론인 ‘그림이론’은 논리원자론을 바탕으로 삼아 세계를 언어로 기술한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즉, 세계와 언어가 구조적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언어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는데 세계는 사실들로, 언어는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명제는 세계 안에 있는 사실을 표현한다. 언어를 이루는 기본단위는 요소명제들이고 언어는 이런 명제들의 전체집합이다. 그리고 이런 명제들이 그리는 대상은 세계를 이루는 사실 또는 사태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 전체가 세계이다. 또 명제는 이름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태는 대상들이 결합하여 성립된다. 따라서 이름이 대상들에 대응한다.

언어

세계

명제(요소명제)

사실(사태)

이름

대상들

 

 

그는 지금까지의 철학적 명제들과 질문들이 거짓은 아니지만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많은 철학자들이 세계의 사실을 뛰어넘는 어떤 근본적인 진리를 찾아왔는데 비트겐슈타인인 볼 때 이런 철학적 문제들은 대부분 언어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생긴 가짜 문제라고 보았다. 그가 볼 때 자연과학의 명제들은 세계를 설명하는 의미 있는 명제들이지만 형이상학이나 윤리·종교적인 명제들은 무의미한 명제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은 모두 무의미하다고 선언한다. 그의 선언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바로 형이상학이 사용해 온 언어 자체에 있었다. 형이상학에서는 의지, 존재, 진리 등에 과장되고 독자덕인 의미를 담아왔다. 예를 들면, 하이데거는 “세계 안의 존재는 실존의 근본 기능이다”라는 명제를 제안했는데, 세계, 안, 존재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실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말을 늘어놓는 명제는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 확인할 길이 없는 말을 명제로 하여 이야기해 온 것이 형이상학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그에게 철학은 철학명제들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명제들을 명료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철학은 흐릿한 사고를 명료하게 하고, 모호한 것들 때문에 생기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명확하게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라고 보았다. <논리>에서의 유명한 한 구절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말은 말할 수 있는 것, 말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형이상학은 이런 말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며, 이런 시도는 ‘헛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기존의 철학에 대한 통렬한 몰락을 선언한 것이다.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본다. 언어의 의미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즉, 언어의 쓰임이 그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쓰임 이론’은 언어가 바로 삶의 형식을 배경으로 삼고있다고 본다. 그동안 전기에는 언어가 대상을 가리킨다고 보아서 언어의 의미를 대상에서 찾고, 언어가 대상과 일치한다고 잘못 믿었다는 것이다. 책상, 아프다, 사랑 등 어떤 낱말이란 쓰임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며, 유사한 의미를 갖는 ‘가족유사성’으로 설명한다. ‘수’의 경우에도 자연수, 실수, 허수, 유리수, 무리수, 분수 등의 ‘수 가족’에서 이것 모두에 통용되는 어떤 본질이나 공통성은 없고 다만 가족 유사성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본질에 관한 사람들의 뿌리 깊은 신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 수, 아름다음 따위의 말들이 어떤 본질 때문에 공통성을 지닌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본질이란 말에 속아서 있지도 않은 본질을 찾아 지적 방황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본질이 없다면 철학의 과제가 더 이상 본질 찾기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들이 쓰는 낱말들이 그것의 고향에서 실제로 얼마나 그렇게 쓰이는지를 묻는다. 일상언어에서는 낱말들이 그 바탕인 말놀이 안에서만 쓰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떠나서 낱말 자체를 놓고 낱말이 지시하는 본질에 대새서 물으면 풀리지 않는 난제를 안게 된다. 이제 철학이 할 일은 말의 배후에 있는 것을 찾거나 새로운 철학적 문제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두고 조금 다르게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해진다. 비트겐슈타인은 새로운 언어관으로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물론 이것은 언어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똑같은 사실을 다른 눈으로 보면 우리의 태도와 삶의 방식도 바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실천적 활동이다. 따라서 말놀이의 말들은 자기 의미를 찾기 위해서 대상과 짝을 지을 필요가 없다. 또한 이 말들이 그들 나름의 마을을 만들어서 불변적 본질이나 모든 말들 위에 군림하려는 ‘잘난 말’들을 마을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말놀이: 가족유사성을 설명하는데 ‘놀이’를 예로 들어서 설명; 농구, 축구, 끝말잇기, 기차놀이 등 다종다양한 놀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성이나 본질이 있을까?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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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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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석주 | 작성시간 11.01.16 잘 읽고 많은 배움 가져갑니다.
    지금 나오는 철학 책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주요 내용들-철학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철학과 우리 삶과의 관계-이 말씀하신 접근 방법과 유사합니다.
    철학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우리 인간들의 삶과의 구체적인 활동과 삶에 실질적인 설명이 가능해져야 한다. 또한 언어와 개념이 부정확하기 보다는 확실한 언어로 전달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이럴때만이 인간과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인간 삶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철학을 위한 철학이 아닌 참된 삶을 위한 철학,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비트켄슈타인의 언어철학~
  • 작성자안학수 | 작성시간 11.01.16 철학?....처락?.......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노곤해지는.....우찌 그리 어려운 책을.......언어철학....어너처락......내겐 너무 어려워서...^^
  • 작성자김은수 | 작성시간 11.01.17 형님!! 짱입니다요..^^
  • 작성자겨냠(장윤성) | 작성시간 11.01.19 제가 무지해서 잘모릅니다. 철학은 왜 공부해야 하나요?
  • 작성자임창석 | 작성시간 12.03.27 비트겐쉬타인은
    신은 있다 - 그러나 그릴수 없으니 말할수 없다
    즉 신은 언어의 세계밖에 존재하므로 말할수 없는것에 대하여 침묵한다
    결국 신이 있다 없다 논의하지 않고 말할수 없으니 침묵한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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