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관촌수필>을 읽고

작성자임명옥|작성시간12.09.06|조회수280 목록 댓글 3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노라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관촌수필’이다.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이다.

더구나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고 또 다시 돌아와 터전을 잡아 살아가고 있는 한내가 아닌가 말이다.

그 중에서도 흔히 갈머리라 불리는 관촌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도 코앞이요 일터인 학원에서도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위치해 있다.

 나는 ‘관촌수필’을 세 번째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문장이 감칠맛 있어서 마음 속에 정감있게 와 닿았고,

회한과 슬픔과 그리움으로 그려져 있지만 충청도 방언이 너무도 구수하고 나긋하고 의뭉스러워서 찰진 재미가 있었다. ‘관촌수필’은 총 여덟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우선 공간적 배경이 한내에 있는 관촌이고 그 동네 사람들과 작가의 어린 시절이 얽힌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우선 작가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첫 번째다.

<일락서산>이라 이름 붙여진 단편을 읽노라면 작가의 표현대로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한산 이씨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행간 곳곳에서 느껴진다.

“페엥 - 숭헌 ……” 이라는 감탄사는 되잖은 말, 같잖은 꼴, 어리석은 짓에 꾸중을 대신 하던 할아버지 고유의 말버릇으로 생생한 상황을 전달해 주는 대화글을 읽는 동안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는 대목들이었다.

할아버지의 가치관은 조선의 신분질서 속에 있고, 아버지는 좌익운동을 하는 평등주의자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회적 활동과 집안에서의 부재는 오히려 작가에게 할아버지를 육친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게 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렵고 상처받은 마음만 회상되나 보았다.

아버지를 잡아가기 위해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제집처럼 드나드는 경찰들 때문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작가에게는 어렸기에 그 자체로써 상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옹점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옹점이는 식모로 들어와 살게 된 아이다. 옹점이는 눈썰미가 있어서 일을 잘 하고 손이 커서 인정도 많다.

더구나 마음이 넓어 어린 나에게는 동무이자 누나이고, 친구이자 만만한 상대이기도 하다.

옹점이는 성격이 시원시원한데다가 노래를 잘 부르고 의뭉스러운 구석도 있다.

그런 옹점이가 시집을 갔는데 불행한 삶을 살다가 장날 시장에 나와 약장수를 따라 다니며 노래 부르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옹점이를 생각하는 서술자의 마음은 딱히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거 같다.

그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그리고 어려운 일들을 함께 겪은 사람들끼리의 정을 넘어선 유대감,

더는 예전 옹점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안타까움, 행복한 삶을 살지 못 하는 옹점이의 삶에 대한 서글픔이 아니었을까.

 

<녹수청산>의 주인공 대복이,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망나니로 내 논 아이지만 대복이는 어린 나의 친구였다.

나이가 비슷해서 친구라기 보다는 신분이 층하가 져서 친구가 된 사이였다.

6.25전쟁을 겪으며 좌와 우를 오락가락한 대복이를 작가는 이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를 서술한다.

그 밖에도 피난민 가족들의 애환과 비극을 그린 <화무십일>의 윤영감네 가족들,

궂은 일만 도맡아 하다가 불치병에 걸려 돌아간 석공 신 씨에 대한 추억을 그린 <공산토월> 등

작가는 ‘관촌수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 갔는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갔는지 친근하고 구수한 충청도 입말을 살려

현장감 있게 상황을 그려 내고 생생함을 살려 내고 있다.

 

‘관촌수필’의 주인공인 그들은 우리와 거리가 먼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동네 할아버지일 수도 아저씨일 수도 형일 수도 누나일 수도 언니일 수도 동생일 수도 있다.

그저 지금은 사라져 버려 옛 추억이 되어버린 빛바랜 사진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문구 선생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리도 맛깔스럽고 정겹게, 구수하고도 의뭉스럽게,

그리고 펄펄 살아 숨 쉬듯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관촌수필’에서 작가가 바라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정겹고 친근하고 포근하다.

그래서 소설읽기를 다 끝마쳤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경숙(들꽃과토분) | 작성시간 12.09.07 책을 또 한번 스케치 하듯 읽은 느낌이네요~ 정겹고 포근하고 따듯합니다.
  • 작성자미로샬(안세환) | 작성시간 12.09.08 잘 읽었습니다. 관촌수필에 나타나는 감칠맛 나는 사투리는 정겨움이 있습니다.
    이제 충남에서 산지 20년이나 되어서 그런지 충남사투리에 정이 갑니다.
    그냥 눈으로 읽어서는 뜻이 들어오지 않지만, 사투리로 자꾸 읽으면 그 뜻을 알 수 있지요.
    갈머리도 몰랐는데, 보령에 대한 지명이 조금씩 와 닿습니다.
  • 작성자임명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9.09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