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남덕현 산문 『슬픔을 권함』
슬픔의 미학
은유와 수사를 버리고 묻자. 왜 작가는 '슬픔을 권'하는가? 작가는 말한다. '어설픈 희망과 기쁨보다는 차라리 절절한 슬픔과 절망이 고단한 삶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과 절망이 절절한 당신의 오솔길 그 끝에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틀간 비 내리다」를 읽는다.
"..고대 설화가 이르기를 창조주가 한 번 웃을 때마다 세상을 다스리는 신들이 하나씩 나왔다고 한다. 모두 일곱 번을 웃었고 마지막 웃음 뒤에는 눈물이 흘렀으니 그 눈물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프시케(Psyche)', 곧 영혼이다. 결국, 궁극의 슬픔이며 그 속에서 영혼은 피어난다."
통속의 가치
영혼은 각 자의 삶과 같이 하므로 무엇이 어떻다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기준을 만들고 진선미를 논한다. 내 삶과 내 영혼이 세상 속에서 재단을 당하고 평가를 당한다. 무엇과 비교해서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마르크스도 옳고, 스님도 옳다」를 읽는다.
"..산은 산이건만, 매일 달라지니 '그 산이 아니라서 산은 그냥 산이고 역시 산은 산이 아니다. 실체가 매일 다르니 정해진 실체가 없고 그것에 이름 붙이는 일 또한 방편일 따름이다. 오로지 실체가 있다면,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영원한 운동일 뿐. 그래서 스님도 옳고 마르크스도 옳다."
그래서 본질과 현상의 존재론적 사유는 틀렸다. 그저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한 인식론적 방편들에 불과한 것들이다. 존재는 양면성과 이중성을 가지고 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지지고 볶고 사는 가면(페르소나)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통속'을 노래한다. 나에게 '가면의 인정'으로 읽힌다.「너는 나의 통속이다」를 읽는다.
"..이눔아. 사상이네, 이념이네, 우주네 하는 것 따위는 없어도 산다. 그런데 사람이 통속 없이는 못 사는 것이다. 아침에 눈 떠서 천장 벽지 무늬를 멍하니 보는 그 잠시의 시간,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그 '한마디'가 통속이다. 사상과 이념과 우주의 무한함이 그 한마디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사람이 살면서 겪어내는 모든 일상적 사건의 재구성이요. 철학이며, 사유의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위대하든, 사소하든 진짜인 것이다."
다시 오는 4.16 세월호
지금 하이마트 자리에 있던 보령해양경찰서가 세월호 사건이후 보령해양안전서로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약간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때 든 생각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는 또 다시 반복된다.’였다.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지. 우리 지역에 사는 김환영작가님의 절절한 팽목항 추모활동을 보며 희망과 열정보다는 슬픔과 외로움을 짙게 느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월호가 다시 왔다. 세월호 아이들과 동갑인 내 딸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믿는 기업에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고2때 아이가 울면서 어른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냐고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원산도에 촉탁의 진료를 하기 위해 출항 배를 기다리며 대천항 대합실에 머문적이 있었다. 노인 두 분의 대화를 무심코 들었다. 그 분들은 단지 사고로 죽은 아이들을 왜 국가가 그렇게 나서서 비용을 대야 하냐고 뭐라 했다. 그 때 들은 감정은 분노보다는 슬픔이었고 연민이었다.
작가도 세월호 아이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이제 오월을 맞이하는데 잔인한 봄 사월이 이제 겨우 간다고 절규한다. 평론가 배기찬씨는 세월호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치전도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즉, 사익 추구 만능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주의, 강자와 대세 편승주의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책익는 마을 회원인 김춘선씨는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그러한 분위기에 아이들의 죽음에 내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만 우리 의식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우울해 했다. 이 것은 결국 슬픈 사회적 정서를 낳는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잘 살아야 하는 존재가 우리여야 한다는 것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책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