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 만권 지음 『새로운 가난이 온다』
풍요 속 빈곤
요즘 책들의 제목이 비슷한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가 온다’라는 제목 역시 낯설지 않다. 혁명의 시대답게 앞으로 ‘온다’는 게 왜이리 많은지. 도대체 새로운 가난은 무엇인가.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움츠려든다. 나는 원래 가난한데 새로운 가난이 또 온다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결국 나를 두 번 죽일 셈인가. 제목에 이끌려 그냥 읽었다. 그러나 정치철학자인 이 책의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단순히 호기심으로 바라볼 문제들이 아니었다.
저자는 반문한다. 팬데믹 사태가 우리를 위기로 몰고 가지만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위기가 없던 시기가 있었던가. 우리는 단지 그동안 우리에게 닥친 그리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확연히 드러난 이후에나 인식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맞물린 자본주의가 부의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풍요의 시대에 노동을 통해 필사적으로 증명한 사람만이 파이 조각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실제로 소득불평등에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불만의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것일까? 시대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그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체 자신만을 탓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인생은 내가 책임 진다
과거에는 우리가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신자유주의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안정적으로 시장 안에 살게 해주면 성장이라는 열매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국가의 복지는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의 해체를 이끌고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기 책임의 윤리’로 인한 자책감을 가지고 지구적 시장에 내던져지고 있다.
게다가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자본의 본질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자본의 본질이 바뀌면 노동의 본질이 변화하고 과거에는 명확했던 경계들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양극화 문제는 심화된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들의 층위는 겹겹이 쌓여 서로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도저히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다. 누군가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바위와도 같다고 했다. 이제 이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기술발전의 무분별한 질주를 늦추고 그에 걸맞은 윤리의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대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위로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차피 세상은 돌아가고 나는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살아내야 하는 삶이 계속되는 한 세상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나아가는 일도 계속되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는 지점에는 끝과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동안 믿었던 시대의 논리가 끝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새로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서로의 손을 맞잡길 원하는 사람 모두 ‘평범한 우리’로 정의한다. 연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굳이 ‘평범한 우리’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악한 본성은 위기의 시기에 드러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위기가 닥쳤을 때 연대를 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하는 것이 결국 우리들이 본성적으로 원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본성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가. 저자는 이것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현재 상황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층위의 문제들 속에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저자는 국가가 점점 부유해지고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있음에도 사회적 보호망은 점점 더 부실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 저자의 궁극적인 명제는 확고하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이들이 없게 하라." 저자의 주장처럼 더 이상 모든 문제를 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치부하지 않고, 문제의 근본과 원인을 바로 알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국가의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것의 첫걸음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진단이다.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삶에 진단을 내려보길 바란다.
책 익는 마을 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