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적으로 주변국에 큰 영향력… 종교·농경 분야에 단어들 전파 증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카드(card)’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기원한 것이다. 라틴어로 종이(paper)는 carta(카르타)인데, 이 단어는 지중해를 건너 로마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로 건너갔으며, 그 형태가 ta-carta(타-카르타)로 바뀌었다. 그것은 한 단어가 -ta로 끝날 때 여성 접두사(feminine prefix) ta-가 붙는 사하라 사막 투아레그족(Tuareg people) 사람들의 언어 형태였다.
투아레그족 카라반, 즉 대상(隊商)들은 이 로마 종이를 서아프리카로 운반했으며, 그 단어 형태는 나이지리아와 그 인근 나라들의 하우사어(Hausa language)인 ‘takardaa(타카르다)’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 라틴어 단어는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전하면서 ‘カルタ(카루타, 놀이딱지)’가 되었다.
![]() 고구려 제국과 일본열도는 동해를 지중해 삼아 하나의 언어권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
![]() 대륙 고구려인들은 동해를 건너 일본에 쌀 재배 야요이 문화를 전달했다. 한국인들은 이런 전통을 지금은 러시아의 극동에서 실천하고 있다. 연해주의 한 한인 농장. |
일본 열도는 고대 고구려 영토
이런 식으로 대제국의 문화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들이 종종 세계의 먼 변방으로 차용되었다. 한국인의 기원을 찾는 답사 여행이 끝나갈 무렵, 우리 눈에 고조선(Ancient Korea)과 고구려의 지배 영역은 로마제국의 그것과 더욱더 흡사해보였다. 우리는 이미 답사 전에 고대 일본어가 고구려어와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므로 이것은 특히 더 진실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BC 400년께나 그보다 더 일찍 일본열도가 고대 고구려 영토였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로마제국이 지중해의 북쪽과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이형구 교수도 제시하려고 하는 것 같이, 우리는 대륙 고구려(continental Koguryo)와 열도 고구려(insular Koguryo) 사이에 있는 동해를 고구려의 동지중해(East Mediterranean Sea), 그리고 대륙 고구려의 서남쪽에 있는 발해만을 고구려의 서지중해(West Mediterranean Sea), 혹은 고조선의 지중해(Mediterranean Sea)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답사의 결과 우리는 고대 로마가 유럽의 지중해 제국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지중해 제국이었다고 보게 되었다.
고구려의 영향력은 당시 고대 한국인들이 주변의 만주-퉁구스족 이웃들보다 더 발전해 있었던 여러 분야 중 하나인 종교와 농경분야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 고구려 제국으로부터 차용해온 가장 명백한 단어는 불교의 핵심 단어들이다.
즉‘부처puch- (Bud dha)’와‘절<뎔c r>< ti r (Buddhist temple)’이다. 부처의 열도 고구려어(즉 고대 일본어) 형태는 한국어 접미사 *-ki 가 -ke로 바뀐 ‘ ほとけ hot-o-ke’이다. 대륙에서는 고대 여진어(Old Jurchen) 형태가 *puc-i-ki로 기록돼 있으며, 이것은 나중에 만주어에서 fuc-i-hi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어 접미사 *-ki 는 -ki와 -hi 의 형태로 일본과 만주에서 남게 된 것이다.
레이니 부연-
「 "이 ki라는 한국어 접미사는 현대 한국어에서는 '지'나 '치'로 변형되어 쓰이지만 일본어에서는 'aniki(형)'라는 말에서와 같이 높은 사람을 나타내는 의미로 여전히 쓰인다. 고대 고구려어로 높다는 의미로 '성'을 ki라 했고 왕이나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말 뒤에 키를 붙였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장사-치'등으로 낮은 말로도 변했지만 고대 고구려어의 '막리지'처럼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한국어 '아버-지'도 같은 경우이다. 이 ki는 높다라는 의미가 그대로 남아 나무의 사투리인 '남ㄱ.ㅣ(고어)' 또는 '낭귀' 낭구'에서 '기'로 전승되고 있으며 '기둥'에서도 앞의 '기'는 이 접미사가 접두사로 쓰인 경우이다.
따라서 일본어로 Hoto-ke'는 bud-dha<bot-to<hoto<hoto+ki<hotoke의 순으로 음운 변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buddha의 b음이 hotoke의 h음으로 전환된 것은, 일본어로 大本營(2차대전 당시의 일본의 총본부)을 '다이-혼-에이'라고 음독하듯이 ㅂ음이 ㅎ음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음운법칙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hotoke 이 상태에서 '호토키'로 발음 하는 것 보다는 '호토케'로 발음되는 것이 보다 음운전략상 릴랙스하기 때문에 '접미사 ki'는 'ke'로 발음 됐을 것이다. 또한 buddha의 'u'모음은 언어학적으로 모음 어근이 유동적이기때문에 얼마든지 가변성이 있다 따라서 'o'모음으로 변한 것이다. -(레이니 註)"」 하와이 대학의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레이니 부연-ㅁ음과 ㅂ음은 같은 입술소리로 얼마든지 호환가능하다. 고대어 어근 bur이 후대에 m음으로 바뀐 것을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대륙 고구려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에 바다를 건너 일본에 쌀재배 경작의 야요이 문화를 전달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고구려의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의 한 부분인 일본과 더불어 오늘, 그리고 미래에 동아시아의 형제국으로서 그리고 평화의 동반자로서 남아야 할 것이다.
“불교는 AD 538~552년 사이에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는 AD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하기 전에 이미 불교가 여진족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교가 고구려와 발해, 두 나라에서 번성했기 때문에, 일부 고대 한국어 어원들은 더욱 타당하다 ”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퍼져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대륙과 열도의 고구려 영역에 한국인 승려들에 의해 불교가 모든 고구려 제국에 퍼져나간 것이다.
농업분야에서는 3개의 분명한 차용어들이 있다. 첫 번째는 ‘뿌리ppur-i’다. 중기 한국어 ‘불휘pur-hui’는 만주어 ful-ehe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만주어는 고대 한국어 ‘*pul-eke(root)’에서 기원한 것이다. 두 번째는 ‘무(根菜) mu-u’다. 중기 한국어 ‘무 muzu(radish)’는 여진어 ‘niaju
세 번째는 ‘메주 mi cu(soybean malt)’다. 만주어 형태는 같은 의미를 가진 misu-n이며, 일본어 형태는 ‘味 みそ mis-o(soybean paste)’이다. 이것은 일본인 승려 요시다 켄코우(吉田兼好, 1317~1331)가 쓴 수필 ‘투레두레구사(徒然草)’에 최초로 기록돼 있다. 만주어와 일본어 형태들은 현대 한국어 형태보다 초중기 한국어 형태인 ‘密祖 *mico’에 더 가깝다.
한국어 흔적 만주어·일본어서 발견
이번에 우수리스크를 답사하면서 우리는 한 한국인 농장에 머물도록 초대받았다. 그곳에서는 쌀과 콩을 재배하여 수출하고 있었다. 대륙 고구려의 영향력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런 옛날의 좋은 농업 전통을 한국인들이 러시아의 극동에 여전히 전달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시미즈 키요시| 순천향대 초빙교수 교수, 극동대 겸임교수·언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