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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제국

[옮긴글]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은 누구인가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1.27|조회수437 목록 댓글 1

흔히들 연산군과 광해군을 거론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은 태종 이방원이었으며, 그 다음은 수양대군 세조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쿠데타를 정당화 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폄하되고 조작된 측면이 매우 크다.

사실, 둘 다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조선시대 들어서 최초로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은 바로 이방원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일으켰다.

소위 말하는 '제 1차 왕자의 난'이니, 제 2차 왕자의 난'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이방원이 일으킨 것들이다.

물론,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왕자들간의 치열하고도 더러운 권력의 암투 과정에서 생긴 것들이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방원은 조선 전체를 통털어 가장 패륜아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세조도 그 못지 않은 패륜아였다.

 

아무리 패륜아이기로서니 설마, 큰어머니를 겁탈한 연산군만큼이야 하겠냐는 의문을 가질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 진실 공방이 치열하다. 혹자는 이 사건이 박원종으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도 하나, 그것은 후에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지어낸 각본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임금이 실정을 하였다 하여 반정을 일으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사실이 어떠하든간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태종이나 세조가 저지른 패륜은 어떠했을까. 우선 이방원부터 살펴보자.

방원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 명석함과 용맹함이 아버지 이성계를 가장 닮았다고 전해진다.

이미 20대부터 아버지 이성계를 적극 따라다니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누구나 다 아는

정몽주의 피살이 대표적이다.(사실, 정몽주는 이성계와의 암투 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이 후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몽주가 지었다는 단심가 때문에 그는 만고의 충신으로 평가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데 이 상황은 어딘지 모르게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이성계는 일찌기 아버지 이자춘을 도와 동북면(함경도) 일대에서 그의 집안이 최대 세력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그의 집안이 거느린 사병만 최소 수천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을 기반으로 이성계는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최영과 손을 잡아 이인임을 축출한 후, 위화도 회군으로(사실상의 쿠데타로) 최영마저 몰아낸 후 이성계는 실권을 장악한다.

 

이성계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왕위에 올라 그 이듬해 조선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새로운 그의 시대와 새 세상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육신은 과거 온 세상을 벌벌 떨게 하던 이성계의 몸이 아니었다. 과거 사냥을 다니던 중 말에서 낙마한 후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조선을 건국한지 불과 5년 뒤에 중풍을 앓아 병석에 눕고 말았다. 이 기회를 틈타 이방원은 난을 일으켜 조선조 최대의 대주주인 정도전을 제거하고 세자인 어린 막내동생 방석을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그야말로 늙은 아버지 면전에 대놓고 칼을 겨눈 것이었다.

 

이 일을 놓고 몇 몇 호사가들은 가설을 내놓기도 한다.

만일 이성계가 10년만 일찍 왕위에 올랐거나 혹은, 이성계가 병을 앓지만 않았어도 이방원의 쿠데타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결국 조선은 정도전이 의도한대로 흘러갔을 거란 가설이다. 만일 그리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방원의 패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향 함경도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이성계의 유훈을 무시하여 지금의 경기도 구리에 안장한다.

 

정사와 야사를 통하여 보건데 이성계는 계비 신덕왕후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방원은 신덕왕후의 묘를 파헤쳐 마음대로 이장시키고 원묘에 쓰였던 묘석들을 다리 난간을 보수하는데 쓰도록 하였다. 세인들이 아무나 자신의 계모를 짖밟고 다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지금도 그 흔적은 서울시 청계천 다리 교각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형수인 문종의 정비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쳐 그 유골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순전히 단종의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리했는데, 이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비극적인 역사이다.

 

후에 연산군이 한명회의 묘소를 파헤쳐 부관참시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인수대비와 공모하여 어머니 폐비 윤씨를 죽인데 따른 앙심이었다.

어쩌면 세조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 한 것은 태종이나 세조 모두 조선조의 27명의 임금 중 몇 안되는 매우 유능한 왕들이라는 점이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우리 역사에 두 번 다시 없을 찬란한 문화유산을 곷 피우게 되고, 세조의 뒤를 이은 성종도 태평성대를 구가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할아버지에게서 손자로 왕위가 계승 된 예가 두 번 있었는데, 세조의 손자 성종과 영조의 손자 정조가 그들이다.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blog.naver.com/dominggo66)'   By 강마에(dominggo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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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anginlee | 작성시간 15.12.02 좋은자료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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