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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권문세족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1.26|조회수625 목록 댓글 0

고려 말 권문세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요.

고려가 정권을 잡았을 초기에는 문신들이 집권을 하다 후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원나라의 침입으로 고려는 100년간 원의 간섭기를 거쳐야 되었고 이때 등장한게 권문세족입니다.

 

권문세족이란 몽골과 친하게 지내며 권세를 누린 사람들이에요. 몽골 식민지배하에 영향을 받은 관리 신하들로서

후에 자식들은 과거를 보지 않고도 권력을 쥘수 있었어요. 그래서 친원파였어요.

 

 

개요

○원 간섭기 고려 사회 - 왕비님은 원나라 공주

○권문세족 - 대농장을 소유한 친원파세력

 

○원 간섭기 고려 사회 - 왕비님은 원나라 공주

1.몽골의 영토 확장 - 요 금 남송 서하 중원대륙을 통채로 삼켜버린 북방의 신흥세력 몽골의 등장


918년 고려 건국 8년후 북방에선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거란이 세워졌어. 거란족은 야율아보기가 여러 족장을 통일시키고 요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요나라가 10세기부터 12세기 사이에 고려를 3차례나 침입하였다. 거란도 얼마 못가 여진한테 망하게 되는데 12세기에 아골타가 왕위에 오르고 13세기까지 고려를 수차례 침입하게 된다. 고려는 거란과 여진족의 침입에 왕권과 국방력이 약화되고 사회내부적으로도 탐관오리가 득실하는등 엄청 혼란스러웠어. 이런 시기에 중원 대륙에서 신흥세력으로 떠오른게 몽골이었는데 금나라 남송을 모조리 삼켜버리고 고려까지 침략하여 식민지배로 삼았어. 뿐 아니라 몽골은 동유럽의 헝가리까지 영토를 확장했어. 실로 엄청난 몽골 대제국이었지.

 

 

몽골의 세력범위 - 동쪽 고려부터 서쪽으론 동유럽 헝가리왕국까지 세력을 떨친 대몽골제국

근데 왜 인도와 아라비아 왕국은 지배를 못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대몽골제국의 창시자 칭기스칸

 

 

넓어진 영토는 몽골의 풍습에 따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원나라를 비롯한 여러 개의 나라로 나누어졌어. 원나라는 고려에게 군신 사대주의 관계를 강요하면서 원나라에게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하였다. 그래서 고려왕은 독자적인 연호를 못쓰고 강제로왕 앞에 충자를 붙여야 되었다. 한편 고려의 제도와 풍습을 인정하면서도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다루가치라는 몽골 관리를 개경에 두면서 고려내정을 심하게 간섭하였을 뿐 아니라 화주(지금의 함경남도)에 쌍성총관부를 두어 몽골이 직접 지배하였다.

 

 

[사전 풀이]

 다루가치 : 고려 후기에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설치한 민정(民政) 담당자.

 

 

쌍성총관부와 동녕부의 위치 - 몽고가 고려의 이북지역을 식민통치 했다는것을 알수있어요.

 


원나라는 일본까지 침략하고 싶어 고려에 정동행성이라는 관청을 만들고 일본 원정을 위한 군사 훈련과 배 만드는 일 등을 했다. 그런데 2차 일본원정을 가다가 모두 태풍과 거센파도를 만나서 실패했어. 이 후 정동행성은 없어지지 않았고,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는 곳이 되었다.

 

정동행성 : 본래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되었지만 원정이 실패하자 원 간섭기 내내 고려의 내정을 간섭했다.

 

정동행성 src

 

 

 

2.원 간섭기 시대의 왕들 - 원나라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강요하며 독자적 연호를 쓰지 못하게 하고 충자로 통일함.


충렬왕(1274~1308), 충선왕(1298, 1308~1313), 충숙왕(1313~1330, 1332~1339), 충혜왕(1330~1332, 1339~1344), 충목왕(1344~1348), 충정왕(1349~1351)의 약 80년의 기간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 왕들은 어린 시절에 원나라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황제의 사위가 된 후 원나라의 지시에 따라 고려의 왕이 되었다. 원나라에 충성을 맹세한 왕들이기 때문에 ‘충○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왕위를 이어간 연대를 살펴보면, 왕을 하다가 중단했다가 다시 하는 경우가 있어.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의 경우야. 이는 비록 정치는 왕과 문신이 함께 했지만, 왕권은 매우 약했다는 걸 알게 해줘.

 

호칭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고려 시대의 왕

  

원은 고려의 북쪽 지방과 제주도를 자기들 마음대로 가져갔으며, 왕실의 용어와 관청의 명칭도 자기들과 같은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 이름을 전부 바꿔 버렸어. 뿐만 아니라 해마다 수많은 특산물을 바치게 했었다.

 

여자가 특산물? 원은 고려에게 해마다 많은 특산물을 바치게 했다. 그 중에서도 고려 사람을 괴롭힌 것은 사냥에 필요한 매와 젊은 여자였다.

여자가 특산물

  

원나라로 고려 처녀들이 강제로 끌려가니 고려에선 일부다처제를 실시하였다

 

원나라로 끌려간 고려 처녀들

 

  

○권문세족 - 대농장을 소유한 친원파세력 

 

1.권문세족의 등장 - 고려사회는 호족, 문신, 무신 그리고 권문세족으로 이어지다.

 

 원나라에서 자라난 왕들은 고려에 돌아와도 늘 외로웠다. 고려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나라에서 함께 지내던 신하들과 함께 정치를 했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왕이 바뀔 때마다 신하가 바뀌었다. 이제 고려 사회는 지방호족도, 문벌귀족도, 무신도 아닌 새로운 세력에 의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문세족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군사나 관리 출신이나 혹은 그 친척들이다. 그래서 권문세족들은 원나라 사람처럼 옷을 입고, 이름을 원나라식으로 바꾸기도 했어.

우리나라에 아직도 남아있는 몽고풍 전통. 고려풍이라고도 불린다.

몽고풍과 고려양
 
 
권문세족의 대표적 인물 - 이인임
 
고려시대의 문신. 공민왕 서북면도통사로 원나라의 동녕부를 정벌, 광평부원군에 책봉되었다. 공민왕 사후 우왕을 추대했다. 정권을 잡고 친원정책을 취하여 친명파를 추방하고, 전횡을 일삼았다.
 
정도전 명대사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 군주는 가장 가벼운것이라 했습니다"
이인임 명대사 "잘 들으시오, 힘이 없으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헌신하지 마시오"
 


권문세족은 땅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땅을 넓혔다. 이렇게 넓은 땅을 대농장 소유지이라고 해. 요즘이야 땅이 넓으면 기계로 농사지으면 되겠지만, 옛날에는 농사짓는 노비의 숫자가 많아야되었다. 그래서 권문세족은 백성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노비로 부려먹었다. 나라 안의 평민들이 노비가 되면서 큰 일이 생겼는데, 왕에게 세금을 내고 왕을 위해 군대에도 가던 사람들이 권문세족을 위해 일하는 노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니 당연히 국가의 수입이 감소하고, 국고는 텅 비기 시작했었다. 결국 세금이 없으니 왕권도 약해질 수 밖에없었다.
 
권문세족의 대농장

<출처> 네이버카페 정사모(cafe.naver.com/zhengsamo)  작성자: 고구려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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