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려

[고려시대] 정동행성(征東行省) - 上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4.12.09|조회수91 목록 댓글 0

이는 원래 일본 원정을 준비하고 실행하기 위해 고려에 설치되었던 기관이었다. 정식명칭은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다. ‘정동’은 일본정벌을 뜻하는 것이고, ‘행중서성’은 중앙정부 중서성(中書省)의 지방파견기관을 뜻하는 것이다. 원은 지배지역에 지방행정기관으로 행중서성을 설치했다. 이것이 현재까지 성(省)이라는 행정단위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 원정을 포기하면서 필요 없어진 정동행성이, 고려를 통제하는 기관으로 변했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동행성이 고려를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라고 보지 않는다. 고려에 대한 통제 기능은 일시적으로 발휘되는 경우가 있었을 뿐, 대부분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점은 정동행성의 구조와 여기서 활동한 인물들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정동행성에는 기관의 수장으로 승상(丞相 : 종1품)이 있고 그 아래 평장정사(平章政事 : 종1품)·우승(右丞 : 정2품)·좌승(左丞 : 정2품)·참지정사(參知政事 : 종2품)·낭중(郎中 : 종5품)·원외랑(員外郎 : 종6품)·도사(都事 : 종7품) 등이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정동행성의 수장인 승상에는 고려왕이 임명되었다.

 

또 몇 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평장정사 이하 참지정사까지의 고급직위(종1품에서 종2품까지)에 대한 임명은 없었고, 낭중·원외랑·도사와 같은 하급직위(종5품 이하)만이 채워져 있었다. 하위직 마저도 대부분 고려인으로 충원했고, 원의 관리가 임명되는 평장정사·좌승·우승·참지정사 등의 요직을 비워두는 것이 관례였다. 더욱이 원(元)이 간섭할 필요가 있는 문제가 생기면 정동행성을 통하지 않고 사신이 직접 와서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내정간섭을 위해 설치된 기관이라면 이런 식으로 운영되었을 리가 없다.

정동행성보다는 그 부속기구인 이문소(理問所)가 폐단이 더 컸다. 원나라의 다른 행성들에도 설치되어 있던 이문소(理問所)는, 본래 개경에서 원과 관련된 범죄행위를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다.

 

정동행성 안에는 죄인을 가두어 둘 감옥도 있었다. 원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이런 행성옥(行省獄)에 가두고 심문했다. 혐의자들에 대한 처벌은 고려 측으로 넘겨지든지 직접 원나라로 보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문소는 원에 밀착된 자들의 횡포를 비호하는 행각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이문소 관리들의 횡포는 사회가 혼란해졌던 고려 말에 더욱 심해졌다. 1356년에 반원개혁의 첫 조처의 하나로 행성이문소(行省理問所)가 철폐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행성의 역할과 기능은 다른 차원에서 찾는다. 우선 형식상으로나마 고려 땅에 한 행성을 설치해 두고 고려왕을 승상으로 임명함으로써, 고려의 지위를 원 제국 안의 행성으로 규정해두는 의미가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