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려

[옮긴글] 고려 4대왕 광종의 무자비한 공포정치와 숙청되는 호족들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06.23|조회수373 목록 댓글 0

광종의 무자비한 공포정치와 숙청되는 호족들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광종은 왕권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며 공포정치를 실시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960년(광종 11년) 권신의 역모에 대한 고변으로부터 광종의 공포정치는 시작됐다. 평농서사 권신은 대상 준홍과 좌승 왕동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참소했던 것이다.

 

  당시 광종은 개경을 황도라고 하고 ‘준풍’ 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공포하면서 스스로 황제의 위상을 갖추고자 하였다. 이는 곧 절대왕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대신들 중에는 광종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불만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대상 준홍과 좌승 왕동은 유력한 지방호족 출신으로 중앙의 고급관리였다. 준홍은 혜종 원년에 세워진 정토사의 법경대사 비문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로 충주의 호족이었다. 또한 왕동은 왕씨 성을 가진 것으로 보아 태조와 의가족관계를 맺은 공신의 후손일 것이다. 따라서 왕동과 준홍은 당시 조정의 핵심 인물로 볼 수 있다.

 

  광종은 쌍기의 등용 이래 중국 남북조 출신의 귀화인이나 후주의 관료 출신들을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끌어들였다. 노비안검법 실시 이후 호족들은 광종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 때문에 광종은 귀화인들을 이용하여 호족들을 경계하면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조정 대신들은 광종의 귀화인 중용정책과 개혁에 불만이 많았는데, 특히 대호족 출신 신하들은 노골적으로 광종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선대 왕의 처족이거나 광종의 외가였기 때문에 왕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광종의 개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그에 따라 호족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평농서사 권신의 고변은 바로 이 때 일어났다. 고변의 내용은 준홍과 왕동이 중심이 된 일단의 무리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지만 『고려사』는 왕동과 준홍이 내쫓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모죄를 저지른 그들이 죽지 않고 쫓겨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이 사실이 왕동과 준홍의 배후 세력이 막강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들은 쫓아낼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선대 왕들의 처족 세력이자 호족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역모에 가담한 많은 관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관직에서 내쫓겼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고려사』에도 왕동과 준홍을 비롯한 역모자들을 내쫓았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동, 준홍과 함께 쫓겨난 관료들은 광종의 개혁에 반기를 든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역모죄로 고변한 평농서사 권신은 과거제 도입 후 등용된 신진세력일 것으로 보인다. 평농서사(平農書史)가 어떤 일을 하는 관료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명칭으로 봐서는 농업과 관련된 소임을 맡고 있는 관리일 것이다. 따라서 중앙의 고급관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조정의 권신들을 역모죄로 고변한 것으로 봐서는 광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일 공산이 크다. 따라서 왕동과 준홍의 역모에 대한 고변은 광종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일일 가능성이 높다.

 

  광종은 이 일로 대부분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집과 노비, 재산을 몰수하는 등 정적에 대한 가혹한 행위와 귀화인들에 대한 우대책으로 인해 호족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진다.

 

  서필 등의 강직한 신하들과 조정에 남아 있던 일부 호족들은 광종의 지나친 처사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종은 남아 있는 호족 세력을 완전히 조정에서 몰아낼 마음을 먹게 되고, 964년 여름 고려 조정은 또다시 피비린내에 휩싸인다.

 

  태조 이래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던 박수경 일가를 몰락시킨 사건이 그것이다. 박수경은 고려 건국 이전부터 태조의 충직한 부하였을 뿐 아니라 건국 이후에는 서경 세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의 가문은 황해도 지역의 유력한 호족인 평산 박씨를 대표하며 세 명의 후비를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왕식렴과 더불어 정종의 집권을 후원했고, 광종의 즉위를 적극 지원한 공로도 있었다.

 

  그런데 졸지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박수경의 세 아들이 한꺼번에 역모죄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모두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로, 큰아들 박승위는 좌승, 셋째 박승례는 대상의 위치에 올라 조정 내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한 세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참소를 당해 죽은 것으로 봐서 역모죄로 몰린 것이 분명하다. 준홍, 왕동 등과 마찬가지로 박수경의 아들들 또한 광종의 개혁정책에 반기를 들었을 것이고 광종에겐 그들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적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공신 박수경은 화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박수경 일가의 몰락 이후에도 죽음의 행진은 계속된다. 이제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어진 광종은 눈에 거슬리거나 반항의 조짐이 있는 신하들을 대부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왕족들까지도 눈 밖에 나면 가차없이 목이 달아났다. 혜종과 정종의 아들도 이 때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는 태자 왕주(경종)까지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만약 이 때 태자를 대신할 왕자가 있었다면 그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포정치 시대였다.

 

  감옥마다 사람이 넘쳐나서 임시 감옥을 설치해야 했고, 역모에 대한 고변이 줄을 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이었다.

 

  광종은 그들의 반란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그러나 광종은 자신의 총신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대접을 했다. 귀화인들이 중심이 된 개혁 세력을 위해 자주 연회를 베풀고 많은 하사품을 내렸다.

 

  개혁을 통해 광종이 절대권력을 움켜쥔 이면에는 귀화인들의 견인차 역할과 함께 호족들의 처참한 죽음과 몰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965년 강직하고 신임이 두터웠던 서필의 죽음 이후 광종은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자신의 칼날에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우고,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여러 가지 민심 안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대해 『고려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혜거를 국사로 삼고 탄문을 왕사로 삼았다. 왕이 아첨하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내심으로 가책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자기 죄악을 덜기 위하여 법회를 광범위하게 가지게 되니, 많은 무뢰배들이 가짜로 중이 되어 배부르게 먹을 것을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떡, 쌀, 시탄 등을 가지고 왕성과 지방의 길거리에서 일반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수없이 많았다. 또 방생소를 많이 설치하여 부근 사원에서 불경을 강연하게 하였다.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고 왕궁에서 쓰는 고기도 시장에서 사들였다.”

 

  이외에도 972년(광종 23년) 가을에는 대사령을 내렸고, 조정에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기용하기 위해 972년, 973년, 974년에 지속적으로 과거를 실시한다. 이것은 광종이 애초부터 귀화인으로 조정을 이끌어갈 생각이 없었음을 대변한다. 귀화인들을 통해 개혁을 완성한 다음 과거를 거친 새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조정을 메워 다시 귀화인들을 몰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광종 11년 이후 약 10년 동안 실시된 공포정치는 짧은 기간 내에 개혁을 완성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희생된 호족들은 원래 광종의 지지기반이었지만, 왕권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이 오히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광종시대의 세계 약사

 

  광종시대의 중국은 5대10국 시대를 종결하고 송이 일어나 중원을 안정시킴으로써 동북아시아는 송을 맹주로 하는 새로운 외교관계를 정립한다. 한편 유럽에서는 오토대제가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에 따라 신성로마제국과 교황청의 대립이 증폭되고, 오토대제는 교회를 교황 요한 12세로부터 분리 독립하게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