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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자료

[옮긴글] 매품팔이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04.07|조회수84 목록 댓글 0
흥부전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흥부가 하루는 생각다 못해 읍내로 들어가서 나랏곡식 한 섬 꾸어다 먹으리라 마음 먹고 관청에 가보니 이방이 있었다. "환곡(換穀)이나 좀 얻어먹자고 왔는데 처분이 어떠할는지?" 이방 하는 말이, "가난한 백성이 막중한 나랏곡식을 어찌 달라고 하는가? 그런데 연 생원은 매를 맞아 보았소?" 이방이 다시 말하기를, "환곡을 얻으려 하지 말고 매를 맞으시오. 이 고을 김 부자를 어느 놈이 영문(營門)에 없는 사실을 꾸며 송사(訟事)를 일으켜 김 부자를 압송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김 부자는 마침 병이 나고 친척도 병이 있어 누구를 대신 보내고자 하여 나를 보고 의논합디다. 연 생원이 김 부자 대신에 영문에 가서 매를 맞으면 그 값으로 돈 삼십 냥은 예서 환을 내어 줄 터이니 영문에 가서 매를 대신 맞고 옴이 어떠하오?" 흥부는 이것도 횡재라 싶어 허락하고 이방에게 주선금 닷냥을 먼저 받아, "여보 이방, 다녀오리다." ...

네, 가난한 흥부가 먹고 살 방도를 생각하다가 환곡을 꾸러 갔는데 신용등급이 낮은 흥부는 환곡도 못 꾸어요 크크. 그래서 어쩔까 했는데 공무원이 말하기를 대신 빵에 들어가... 아니 대신 맞아주는 일이 있는데 해볼테냐 하지요. 무려 30냥짜리 일입니다. 그리고 선금으로 닷냥도 받지요. 뭐... 흥부전의 뒤를 보면 아내는 말리지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던 흥부는 매를 맞으러 가는데 정작 가서 맞으려고 하니까 나라에서 살인자 빼고는 다 사면해 줘버리죠. 흥부는 어떻게든 매를 맞아야 한다(!!!)며 매달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죠.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매품팔이는 의외로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가진게 몸밖에 없는 무산자들이 몸으로 떼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중에 하나였죠. 거지왕자 이야기에서도 왕자가 잘못하면 매를 대신 맞아주는 소년이 있었고 중세 귀족들의 성에도 항상 대신 맞아주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당연히 조선에도 그런일이 있었죠. 그런데 사실 조선에서 양반은 함부로 매를 칠 수 없는 계급이었습니다. <예기>에 나온 원칙에 따라 "형별은 대부 위로는 x , 예는 서인 아래로는 x" 라는 예법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형벌을 대신해 벌금을 내고 나올 수 있는 수단도 있었고 말이죠.
<요즘이라고 많이 다를건 없습니다만>

애시당초 양반이란 권력계급인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을 했다가 나중에 뒷감당이 두려운 관리들의 "좋은게 좋다"라는 식도 한 몫 했습니다. 권력없는 양반이라고 불러다가 죄를 물어 매를 쳤는데 그 사람이 중앙권력자의 친인척이면 이제 그 사또는 제대로된 승진은 절벽 클라이밍이 되는거죠. 혹시 앙심을 품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면 그것도 난감해지고 말입니다.

아무튼간에 양반이 중죄가 아닌 다음에야 <대명률>에 따라 속전을 내고, 혹은 오승포를 내고 나올 수 있는데 매를 맞을 사람을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요? 벌금이 비싸서 싼 값에 때우려고 매품팔이를 구할 수도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체면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매품팔이 찾다가 깍여나간 체면은 어디서 구하려고요. 더더구나 돈이 없어도 지역에서 뿌리내린 향반의 힘은 중앙에서 내려온 사또 따위(?) 보다 강력했습니다.

그럼 매품팔이는 전설(?)에 불과할까요?

그건 아니에요. 조선 후기로가면 양반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거 아시죠? 실질적으로 양반이라고 불리지만 양반 사회에서는 양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공명첩을 사거나 혹은 나라에 공을 세워 양반의 직첩을 받았지만 자기가 사는 곳에서는 양반 취급을 못 받는 사람이 흔했죠. 나중에 기회되면 이야기 하겠습니다만 양반임에도 지방 향반 사회에 끼려고 무려 3대를 걸쳐 허리를 숙이고 작업을 한 사례가 나옵니다. 이때의 양반은 문무 양반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귀족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자기들의 카르텔이 공고했던거죠.

아무튼간에 이렇게 양반이 늘다보니 끝발이 서지 않는 양반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은 속전을 내려고 해도 인정해 주지 않거나 혹은 일부러 군기 잡는다고 때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신 맞아줄 사람이 필요했던거죠. 그리고 뇌물에 관련되어 매를 때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돈을 내면 흉내만 내고 넘기고 안주면 때리는 일도 있었고 말이죠. (조선 말기의 상황은 정말 안망하면 이상할 정도로 사회가 썩어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양반이 아니라 중인이나 평민 혹은 노비임에도 상업활동이나 대토지를 소유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부로 실질적으로는 양반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지만 신분적으로는 분명 하층민에 속했죠. 이런 부류들을 삥땅치기 위한 수령들의 노력은 실로 가상할(?) 지경이었습니다. 필요없는 공명첩을 두번 세번 사라고 하고, 알지도 못하는 죄를 물어 협박하기도 하고 말이죠.

결국 있는건 돈이니 대신 맞아줄 사람들을 찾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들의 매값은 굉장히 후해서 눈 딱 감고 맞아주는 것도 괜찮다 싶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서얼출신 학자 성대중의 <청성잡기>에는 매 맞아주는 사례가 두가지가 있는데 아전을 대신해 군영에서 곤장 일곱대를 맞아주고 엽전 다섯꿰를 받기로 한 사례와 마누라가 강요해서 매 맞으러 갔다가 맞아죽은 이야기가 나오죠.
<군영의 곤장은 무지막지 하오>

군영의 곤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일곱대에 다섯 꿰미면 할만하다 싶었겠지만 군영의 곤장은 관청의 곤장과는 급이 다르죠. 결국 못 버티고 되려 엽전 열 꿰미를 바치고 손해보고 나온 이야기지만 그래도 맞아죽은 사람보다는 낫겠죠. 사실 매를 맞아주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인데 건강할리가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매를 맞으면 뻔한거지만 그래도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상관없으면 이런 선택도 하게되는거죠.

결국 힘없는 사람들이 힘없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뭘 가져오는지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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