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상징 "옥대"
왕의 신발 "목화"
조선시대 임금님들의 허리띠는 특별합니다. 기능성보다는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제작하였지요. 바로 ’옥대(玉帶)’입니다. 비단으로 싸고 옥으로 만든 장식을 붙였다고 해서 옥대입니다. 옛날에는 왕은 물론 조정 신하들이 일종의 근무복인 공복(公服)을 입을 때 허리에 두르는 허리띠를 통해 관직의 고하를 나타냈습니다. 허리띠의 재질과 문양을 보면 지위의 고하를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간혹 고관대작 중에서는 밋밋한 장식의 허리띠를 둘러 자신의 소박함을 오히려 드러내곤 했다고 합니다.
옥대의 ’옥’을 자세히 보면 용이 다섯 발톱의 발로 여의주를 쥐고 있는 형상입니다. ’오조롱(五爪龍)’의 상징물로 왕을 나타낸 것인데, 특별한 점은 옥을 깎아 만든 용문양의 뒤판에 금박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금박 판 위에 옥 문양을 대었으니, 먼 걸음에서도 허리띠가 번쩍번쩍 빛났을 왕을 쉽게 알아보게 한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곤룡포의 앞가슴과 양어깨에는 금색 실의 용 무늬가, 그리고 허리띠에는 빛이 옥 문양의 사이를 뚫고 금박 판에 반사되었던 왕의 모습을….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왕과 문무 관리들이 관복을 입을 때 목이 긴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것이 ’목화(木靴)’입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으로 오해하지는 마세요. 목화에서 ’화(靴)’는 목이 길어 장화 같은 신발을 말하며, 발목이 낮은 신발에는 ’리(履)’ 라는 한자를 씁니다. 왕의 목화는 바닥은 나무로 하고 겉은 검은 사슴가죽, 아청색 금단, 융(絨) 등으로 만들고 안은 흰 공단으로 하며 가장자리에는 홍색 선을 둘렀습니다. 사슴 가죽은 부드럽고 질기지요. 혹시라도 왕이 미끄러질까봐 목화 바닥에는 굵은 실로 열십자 (+)를 그어 놓았습니다. 영친왕이 남긴 목화는 마른 땅을 밟을 때 신었던 건신발인데, 왕들이 진창을 밟을 일은 별로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혹시 모를 일이어서 건신발이라해도 바닥의 종이 가죽은 기름을 먹이고 겉의 틈새는 석회를 발랐다고 합니다. 한편, 왕이 입고 쓰고 신고하는 물품들은 상의원(尙衣院)이란 부서에서 만들었습니다. 상의원은 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일용품, 보물 따위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로, 고종 32년(1895년) 그 명칭이 상의사(尙衣司)로 바뀌었습니다. 자 그럼, 옥대와 목화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뽑아 게재할 것이니 차례로 감상하세요.


글 = 정계옥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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