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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자료

조선을 뒤흔든 하룻밤의 승부 계유정난(癸酉靖難)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1.10|조회수803 목록 댓글 0

 


 

1. 계유정난(1453)이란?

계유년(1453)년에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김종서, 안평대군 등을 죽이고 강제로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입니다.

 

2.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정의 

어떤 사람들은 계유정난을 계유정란이라고 하시던데 여기서의 그 난(亂)과 난(難)의 구분을 잘 해야 됩니다. 계유정난의 정의는 '계유년의 어지러운 세상을 편안케 한 일'입니다. 즉,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관점에서 나온 단어이죠. 그러니 여기서 계유정란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3. 계유정난의 흐름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는 1453년 10월 10일 밤,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수하 무사 홍숭손, 양정, 유수는 철퇴를 숨기고 수양대군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는 김종서의 집에 도착하고, 그의 아들 김승규에게 이야기 할 것이 있다고 하여 김종서를 집밖으로 나오게 한 뒤 동래 온천에 놀러갔다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 영응대군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때, 수양대군의 관모에서 사슴뿔이 떨어졌습니다. 김종서는 자신의 아들 김승규에게 자신의 관모를 가져오게 하였고, 무사들은 그 틈을 노려 김종서를 철퇴로 죽이고, 아들 김승규까지 죽였습니다.

최대의 정적인 김종서를 제거한 수양대군은 왕명이라며 대신들을 대궐로 오도록 하였습니다. 대궐 입구에는 수양대군의 편인 한명회가 살생부를 들고 대신들이 들어올때마다 생과 살을 외쳤습니다.

생은 살린다는 의미이고, 살은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여 황보인을 비롯한 대신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김종서 등의 지지를 받고 있던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보낸 뒤,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4. 계유정난...그 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후 스스로 영의정과 이조판서, 병조판서, 병마도통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조정을 독차지한것이지요. 그 후 수양대군은 단종을 위협하여 강제로 왕위를 빼았았습니다. 단종이 스스로 물러가는 형식을 취했지만, 명백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이였습니다. 1년 후 사육신 사건이 터지자 단종은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그 후 금성대군이 단종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수양대군은 이를 핑계로 단종에게 사약을 내려 어린 조카를 죽여버리고야 말았습니다.

 

5. 계유정난을 보면서 느낀점

계유정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권력이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어찌 동생도 모자라 형이 유언까지 남기며 부탁한 어린 조카까지 죽여버릴수 있는걸까요... 한번 더 느끼는건데 권력이 무섭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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