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정신자세 '익선관'
익선관의 '선'은 '착할 선(善)' 또는 '매미 선(蟬)'자를 혼용해 썼는데, 매미 날개의 뒷모습은 무릇 왕은 사념(邪念)과 탐욕을 버리고, 검소하고 염치가 있어야 하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익선관을 쓰면서 마음 잣를 가다듬었을 조선시대 왕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익선관은 중국에서 기원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제국 말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익선관을 돌려 뒤를 보면 어떤 곤충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날개 모양이 뒤에 달려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익선관 전체가 흡사 매미를 연상케 합니다. 아마 이런 이유에서 익선관의 ’선’자에 ’착할 선(善)’ 또는 ’매미 선(蟬)’자를 함께 쓰는 것이겠지요.
수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한여름 살다가 죽는 곤충인 매미일까요. 곤룡포의 용무늬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매미 모양으로 익선관 을 만든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매미는 맑은 이슬이나 나무의 진액만을 먹고 살다 죽는다하여 맑음(淸)을 상징합니다. 왕은 사념(邪念)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익선관에 담겨 있지요. 둘째, 매미는 다른 곤충들과 달리 자기 영역을 정하거나 집을 짓지 않습니다. 검소(儉素)해야 함을 뜻하지요. 셋째, 매미는 농부가 애써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습니다. 왕은 염치(廉恥)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넷째, 매미의 입은 곧게 뻗은 것이 선비의 갓(冠) 끈이 늘어진 것 같다 하여 문(文)을 상징합니다. 왕은 항상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라는 뜻입니다. 또 문(文)자의 중국어 연속 발음이 매미의 노랫소리와 비슷합니다. 즉,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를 수 있어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여름 기승을 부리던 매미는 늦가을이면 때를 맞춰 사라집니다. 때를 맞춰 죽으니 신의(信義)를 중히 여기라 는 것입니다. 천상의 자리에 있다하여 왕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임금이 관을 쓸 때마다 몸과 마음가짐을 다잡았을 것을 생각하니, 과거 임금들의 남모르는 고뇌가 어떠했을 것인지 다소나마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아 참. 왕들은 하루 종일 머리에 관을 쓰고 있노라면 여간 답답하고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여름 무더위에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다고 격조 없이(체신머리 없게) 관을 벗어놓을 수도 없었을 것이니 말입니다.
익선관 안을 들여다보지요. 말총으로 꼼꼼하게 안을 두르고 얇은 비단으로 감싼 익선과 내피에 구멍이 ’뽕’ ’뽕’ ’뽕’ 뚫려 있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시는 분들은 아시지요? 헬멧안의 통풍구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렇습니다. 익선관은 말총으로 성기게 짠 내피에, 앞뒤좌우 빙 둘러 구멍을 송송 내고, 그 위를 얇은 천으로 덮어 전체적으로 통풍이 가능하도록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무더위에는 장사가 없지요.


글 = 정계옥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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