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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자료

[조선] 제2대왕 : 정종(1357년-1419년)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6.04.22|조회수167 목록 댓글 0

2대왕 : 정종. 1357-1419년 재위기간 : 13989-1400. 11. 기간 22개월 61.

 

정종은 원래 왕위에 뜻이 없었다. 세자 책봉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그는 "당초부터 대의를 주창하고 개국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업적은 모두 방원의 공로인데 내가 어찌 세자가 될수있느냐"?고 반문 하며 세자 되기를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방원의 양보와 권유로 세자로 짹봉되었고, 1개월 후 태조가 물러나면서 왕위에 올랐다. 비록 왕좌에 있긴 하였으나 권력이 방원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정종 때의 정치는 거의 방원의 뜻에 따라 진행 되었다. 그는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그 후 제2차 왕자의 난 이 일어나자 방원을 세제에 책봉했고, 재위시에는 정무 보다는 격구 등 오락에 탐닉했는데, 이는 그 나름의 보신책 이었다. 그리고 140011월 방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 났다.

 

 

1차 왕자의 난 : 1396년 세자 방석과 정도전의 배후세력인 신덕왕후 강씨가 병으로 죽자, 방원의 정계복귀노력은 한층 가속화 되었고, 병권 집중운동을 벌여 오던 정도전 일파는 1398년 진법 훈련 강화를 내세우며 왕족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88년 세조가 계비강씨 소생 여덟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결정하자, 방원 등은 방석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 남은 등을 제거하고 일곱째 방번도 함께 살해함. 이때 이성계는 와병 중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몹시 상심한 나머지 그 해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되었다.

2차 왕자의 난 : 방원은 정도전에게 병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제거했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자 세력강화를 위해서 왕족들의 사병 혁파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400. 동복형인 넷째 방간이 박포와 함께 사병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키자, 방원과 그의 사병들이 조기에 진압, 이일로 방원은 세제 자리를 확보. 방원의 심복 하륜의 주청으로 정종은 상왕 태조의 허락 을 얻어 14002월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고 11월에 왕위를 물려줬다.

 

 

태상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옥새를 넘겨주지 않은 채 소요산으로 떠났다가 다시 함흥에 머물렀다. 이때 함흥차사란 말이 생겨남. 태조가 물러난 것은 타의에 의한 면이 짙다. 이미 조정은 방원의 세력이 포진해 있었고 태조는 와병중 이라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태조는 방원이 보낸 무학의 간청으로 2년 후인 1402년 한양으로 와 불도에 증진. 1408524일 창덕궁별전에서 74세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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