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대왕 : 세종 충녕대군 : 1397년-1450년 재위:1418년 8월-1450년 2월. 집권31년6개월.
태종의 양녕에 대한 불신감은 급기야 세자를 폐하는 극단적인 조치로 나타났다. 1418년에 일어난 이 폐세자 사건이 네 번째 선위파동으로 이때 황희 등 조정 대신들 중 일부는 폐 세자를 반대하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업적과 안정된 왕권을 양녕이 제대로 이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무렵 양녕은 궁중을 몰래 빠져나가 풍류생활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궁중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에 태종은 수 차례에 걸쳐 그에게 심한 벌을 내려 군왕이 지켜야할 덕행을 쌓도록 타일렀지만, 양녕은 태종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태종의 마음이 양녕에서 떠났음을 간파한 신하들은 마침내 세자를 폐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1418년 유정현 등의 청원으로 마침내 양녕은 폐위 되었다. 그리고 왕세자의 지위에는 셋째 아들 충녕대군 도가 올랐다. 그가 바로 조선 4대왕인 세종이다.
태종은 충녕이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등도 잘 안다 면서 세자에 책봉했다.이처럼 태종은 충녕의 학문과 능력을 높게 평가하였기에 일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녕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휼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모범이 되는 성군으로 기록되었다.
세종 시대의 권력 구조나 정치적 양상은 세종 19년을 분수령으로 두 시기로 구분된다. 세종은 이 때를 전후하여 국가 기강의 중심이었던 육조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로 변혁하여 왕에게 집중되어 있던 국사를 의정부로 넘기는 한편, 세자로 하여금 서무를 결제하도록 하는 등 이전에 비해 더욱 유연한 정치를 펼쳐 나갔다. 집현전은 고려시대에 이미 설치된 기관으로 조선 정종 시대에도 설치된 일이 있었지만 세종초에 이르러 기능이 대폭 확대되었다. 세종은 명과의 사대관계를 원만히 수행하기위해 필요한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 그리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집현전은 젊고 유망한 학자들이 채용되었고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전이 주어졌다. 집현전 인재들은 주로 책 편찬 사업과 훈민정음 연구 사업에 투여되었다. 천체관측기구인 혼천의, 해시계인 앙부일구, 물시계인 자격루와옥루, 세계뢰초의 강우량계측기인 측우기 등을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국토의 개척과 영토의 확장을 통하여 국력을 신장했다. 박연을 통해 아악을 정리케 하고 금속화폐인 조선통보를 주조했다.
소현왕후심씨(1395-1446년 / 세종의정비)심씨의 아버지 심온이 세종 즉위초에 영의정에 올라 사헌사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정이 군국대사를 상왕인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을 했다가 옥사가 일어 났다. 심온은 이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어 수원으로 폄출되어 賜死 됨.이 때문에 심씨를 폐하자는 논의 가 있었으나 그녀의 내조의 공이 인정 되어 폐비사태는 면하였다.
안평대군(1418 년-1453년 )세종의 셋째 아들.권신,황보인,김종서등 문신들과 긴밀 한 관계 를 유지하고 수양대군의 무신세력과 맞서 인사행정인 "황표정사"를 장악하는 등 조정의 배후 신력자 로 부상.시.서.화.모두 능해 삼절이라 불리웠고 당대 제일의 서예가임.
● 재 상 ●
황희:(1363 년-1452 년 90세 ) 태종시절 이조판서 등 역임. 태종은 황희는 공신은 아니지만 공신대접을 하였고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반드시 불러 접견하였고 하루도 좌우를 떠나지 못하게함.
1418년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하다가 태종의 진노로 유배 세종4년 유배에서 풀려 관직에 복귀.성격이 분명하고 정확 강직함 1449년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87세 라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영의정직에 있었음.병조 이조등 과단성있는 업무에 능했고 학자적 인물이었다.
맹사성: 태조 때부터 예조의량직에 제수 사헌부 수장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역모사건을 치조하는 중에 태종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부마인 조 대림을 고문. 이 사건으로 그는 왕족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처형 직전 까지 간다.당시 영의정 이었던 성석린과 황희의 도움으로 죽음 면함. 그는 어질고 부드럽고 섬세 하여 예조, 공조 등 유연성이 필요한 업무에 능함.예술가적임.
장영실 :
박연 :
김종서: 문신출신으로 태종신록 편찬주관 1433년 함길도 관찰사. 육진개척에 투입 두만강을 국경 으로 확정지음.
이종무: 세종 전반기에 대마도를 정벌하여 왜구의 노략질을 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