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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자료

우리 선조들은 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로 인사했을까?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4.08.08|조회수648 목록 댓글 0

제사 '祀(사)'자에는 뱀(巳)이 모셔져 있다. 성스러워야 할 제사에 징그러운 뱀이 모셔져 있으니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다. 이 이해 할 수 없는 제사 '祀(사)'자에는 무슨 비밀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가? 역사란 결국 사람의 삶의 발자취이기 때문에 참글(眞書: 한자 본래어)의 발생지인 우리 민족의 전래된 풍습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풀어 내야할 것이다

 

 

여러 많은 전래된 풍습 중에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전래해 온 독특한 인사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란 인사말이다. 참으로 염려가 되고 또한 지금의 삶의 역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사말이다.

 

어제 늘상 만나서 지냈던 이웃이 또는 서로가 결코 많은 시간도 아닌데 밤사이에 무슨 일이 도대체 일어나길래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서로 만나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란 인사말을 주고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뱀(巳) 때문이다!


 

인류 역사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삶의 무대가 농촌이었다. 또 서구물질문명으로 인한 화공약독이 세상을 오염 시키지 않는 지구는 그야말로 청정지역이었다. 그러한 삶의 터전에 가공할 만한 화공약독을 뿌려서 자연도 사람도 다 파괴 되어 지구라는 삶의 터전이 멸망의 길로 치달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불행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제사 '祀(사)'자를 바라보면 그 숨겨진 역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는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너무나 유구한 역사가 존재한다. 불(火)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쇠(鐵)가 존재할 수 없고 쇠(鐵)가 없으니 농기구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생활 용품이 있을 수가 없으니 인간의 삶의 상태가 열악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은 자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톱자루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사람의 주거 환경은 얼마나 열악하겠는가? 그저 움막 하나에 의지하여 눈, 비, 바람, 눈보라를 피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뱀이 나오기 시작하는 사월(巳月)부터는 정말 무서운 뱀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낮에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이 되면 움막으로 기어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열악한 주거환경은 움막 주변의 우글거리 뱀들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그로인한 사람의 독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고 나면 죽음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밤새 안녕'은 간곡한 기원이다. 그야말로 巳(사)는 死(사)의 대명어이다. 즉 사람의 죽음(死)은 뱀(巳)으로 인한 것이요 그것은 장례의 절차인 제사(祀)로 이어진다는 의미요, 祀는 사람이 死할 때에 행하는 의식인데 그것이 巳로 인한 역사가 간직되어 있는 문자가 곧 '祀'字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얼마나 흘렀겠는가? 불이 등장하고 쇠(鐵)가 등장하고 그리고 화공약독인 농약이 마구 뿌려대어 농촌 들녘이 죽음의 들녘으로 변하기 전까지만 해도 뱀은 삶의 주변에 공포의 대상이요 경계 대상의 1호 였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래 풍습 속에는 첫해가 시작 되는 정월달에는 뱀날을 두어 일년 내내 뱀으로 부터 안녕하는 뱀날 풍습이 엊그제께 까지만 해도 실행해 왔던 풍습이다.


 

새해가 시작 되는 정초, 뱀날이 되면 모든 삶이 근신을 한다. 밥 지어 먹을 쌀도 하루 전날 미리서 준비해 당일에는 곡식을 보관해 둔 두지나 항아리를 들썩거리지 않았으며 된장, 간장, 김치 등은 물론 해야할 일도 미리서 해 두워 그날 만큼은 일체 행동을 자제하고 모든 일을 삼가하며 한해 동안 뱀의 공포로 벗어나길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뱀 '巳(사)자를 써 붙여 놓고 햇불을 만들어 들고서는 집안 곳곳이 돌면서 비암(뱀) 짓자! 구레이 짓자! 하며 뱀의 공포로 부터 벗어나기를 간구했다. 이러한 전래 풍습을 엊그제께 까지만 해도 실행해 왔던 우리 민족의 전통 풍습이다.


 

그런데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주거 환경이 열악해 움막에서나 의지하며 삶을 영유해 왔던 너무나 길었던 유구한 역사 속에서는 뱀의 공포는 어떠했겠는가? 그 뱀으로 인한 피해는 사람의 죽음(死)이란 뱀(巳:사)으로부터 시작해서 뱀으로 끝나는 역사가 진행이 되는 것이니 뱀은 바로 죽음의 대명사요, 장례날 까지도 근신해야할 뱀(巳)이기에 제사 '祀(사)'字에 까지 뱀(巳)이 들어있는 것이다.


 

정초에 뱀날을 두어 일년 내내 뱀(巳)으로 부터 안녕하기 위한 뱀날 풍습을 행하여 일체 행동을 자제하고 모든 일을 삼가하며 근신만으로 한해 동안 뱀의 공포로 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적으로 뱀(巳)의 침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책의 1호로 뱀(巳)의 천적인 돼지를 집안에 키워서 돼지로 하여금 뱀만 보면 잡아 먹게 해 뱀(巳)를 물리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집 '家(가)'자 돼지(豕)가 들어 앉아야 할 절실한 이유인 것이다.

 

태고 시대 때의 돼지는 지금처럼 먹걸이 위주로 키우는 덩치 큰 개량 돼지만 있었던게 아니다. 아주 작고 귀여우며 옛날 어린시절 시골에 집집 마다 키우던 토종 돼지처럼 날쌔고 빠르며 해독력이 강한 뱀에 대한 천부적인 포획 능력이 있는 토종 돼지 종류가 많았다. 이러한 애완용 토종 돼지를 지금의 애완용 개를 집안에 키우듯이 집안에 키움으로써 뱀의 침해로 부터 사람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유구한 역사가 없는 중국의 학자들에게 참글(眞書: 한자 본래어)이 진정으로 중국글이라면 '집 '家(가)'자 돼지(豕)가 들어 앉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해 답변을 해보라고 하면 다른 글자에 대해서는 거의다 이유에 대한 답변을 하는데 집'家(가)'에 돼지(豕)가 들어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답변은 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유구한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토종 돼지(豕)란 참으로 해독력이 탁월하다. 약초 중에 '부자'는 매우 독성이 강한 약초 있데 그래서 옛날에 임금이 죄인에게 死藥(사약)을 내릴 때에 부자탕을 썼을 정도로 맹독성 독초인데 이러한 부자를 토종 돼지는 한가마니를 먹여도 끄떡이 없으니 정말 해독력이 강하다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토종 돼지가 해독력이 강한 이유는 하늘의 28수(宿) 중에 허성정(虛星精)이라는 별정기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토종 돼지의 해독력은 뱀독이나 부자독에 만이 강한 것이 아니다. 농약독(農藥毒)인 수은독에게도 해독력이 매우 탁월하다. 그래서 이러한 토종 돼지의 해독력은 토종 돼지창자에 그 해독력의 비밀이 간직 되어 있으니 가끔씩 토종 돼지창자국을 끓여서 먹어서 몸 속에 쌓인 독을 씻어내는 식생활은 독안개가 자욱하고 하늘에서 농약비까지 내리어 공해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내는 비결 중에 한가지이다.

 

개량돼지의 작은 창자국은 토종 돼지창자국에 비해 효과가 1/5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이러한데도 우리는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그 동안 우리의 토종 돼지를 씨까지 멸망시켜 왔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요, 민족의 비극이다. 또 과학과 선진이라는 속임수는 천혜의 맑은 들녘에 화공약독을 뿌려대어 이제는 하늘에서 농약비까지 내리는 비극적인 현실을 자아냈다. 온통 땅과 하늘이 독안개로 가득찬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불과 4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선진이요, 과학이다. 오히려 사람과 생물을 지구를 멸망 시키는데 전력 질주하고 있는 주범이다. 토종 돼지를 살려 공해로 죽어가는 세상을 살려야 한다. 그게 진정 선진이요 과학이다. 집 '家(가)'에 토종 돼지가 다시 들어와 있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나린다 나린다 흰눈이 나린다. 주역의 중심이 된 산, 천하의 명산 승달산 자락에 흰눈이 나린다. 1만5천년의 黃草家(황초가) 아궁이 장작불 너무 정겹고 흰눈은 솟구쳤다 휘몰아 치는데 저녘은 깊어만 가고 처마 밑에 풍경소리는그윽하구나! 田祖(전조)님을 모셨던 지석(祭石: 고인돌)은 벌써 하얀 찻상(茶床)이 되었네 강강수월래 하던 님들은 다 어데 가고 빈 찻상(茶床)에 하얀 눈만 나리는가!


 

뱀의 침해로 부터 막아내는 일은 집에 돼지만 키우면 다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뱀을 쫓아 내는 禁巳花(금사화)를 심는 것이다. 禁巳花(금사화)란 봉숭화를 일컬은 말이다. 일제의 통치가 가혹했을 때에 언 만주땅에서 독립 투사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러나 조국 광복의 날은 이루워지지 않고 길고 긴 암흑의 천지 속에서 변절자들은 늘어만 가고 희망은 희미해 지고 민족의 혼이 혼미해 졌다. 이때에 부르던 노래 '울밑에 선 봉선화야.....' 가혹한 일제의 탄압에 형체가 없어질지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환생된다는 독립에 대한 강한 염원의 노래 봉선화!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봉선화를 심어 사독한 뱀으로 부터 역사를 지켜왔던 우리 민족의 저력은 결국 그 저력의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일제라는 사독한 뱀도 부르고 왜웠던 주문 '봉선화'를 통해 물리치게 된다. 우리 민족의 끈질긴 역사의 혼이 깃들은 봉선화인 것이다. 이러한 봉선화에는 사실적으로 뱀이 싫어하는 냄새가 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울밑에다 봉선화를 심었고 장독대 주변이나 밭 주변에도 심어 뱀을 쫓았다.


 

뿐만아니라 손톱, 발톱에도 봉숭화로 물들여 뱀독으로 부터 생명을 지켜왔다. 집안에 돼지를 기르고 집 주변에 봉숭화를 심드레도 뱀을 다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밤중에 갑자기 침입해서 해서 해를 가하는 그래서 순식간에 몸에 퍼지는 뱀독으로 부터 어떻게 생명을 지킬 것인가? 손톱, 발톱에 물들이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봉숭아를 '독풀이'라고 한다. 즉 독을 해독해 주는 약초라는 뜻이다. 또 일전에 어느분이 말씀하시기를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갔는데 손톱에 봉숭아가 물들여져 있는 것을 보고 의사가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를 지우고 오라'고 했다 한다. 왜냐하면 몸에 마취가 잘 돼지 않기 때문이란다. 손톱, 발톱에 봉숭아가 물들여 있으면 몸을 마취하는 약기운이 해독 되어 버리는 것이다. 손톱, 발톱은 온몸으로 기운이 순식간에 강하게 통하는 혈점이다. 그래서 손톱 발톱이 다치면 신체의 다른 곳이 다치는 것 보다 매우 아프다. 그만큼 인체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만이 전래해 온 풍습 손톱,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기에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와 지혜가 담겨져 있다.


 

불과 40여년만에 공해가 온세상에 가득찼다. 나날이 하늘과 땅과 공간에는 그 화공약독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불(火)이 등장하기 이전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죽음(死)의 대명사 뱀(巳)의 공포 보다 무서운 세상이 도래 된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막아낼 비책이 세상은 있는가? 아무리 둘러봐도 현대 서구물질문명에게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선진과 과학이란 탈만 쓰고 지구문명을 멸망의 길로 가속시키고 있는 주범일 뿐이다. 독(毒)안개가 가득찬 세상! 숨을 들여 마시면 절반은 독(毒)이다. 손톱, 발톱에 봉숭아로 물들여 몸속의 공해독을 씻어내는 지혜로 공해의 세상을 이겨 나가기를 기원한다.


 

봉선화(鳳仙花)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봉숭아는 한해살이 풀이다. 그 원산지는 불()이 등장하기 이전의 역사에서 심어온 우리 민족의 꽃이다. 꽃잎의 생김새가 마치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펄떡이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봉선화(鳳仙花라고 한다. 또 약성과 모양새가 붉은 복숭아를 닮았다 해서 소도홍(小桃紅)이라고도 한다./정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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