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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조선시대 양반문화 - 사상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4.09.30|조회수94 목록 댓글 0

조선시대의 양반은 유교, 특히 주자학(朱子學)을 신봉하였다. 주자학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사대부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주자학은 우주론(宇宙論)과 심성론(心性論)을 결합시킨 송나라의 성리학(性理學)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조선의 양반사회는 유교의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였고, 그것을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인륜(人倫)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였다.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해서 충()보다도 효()를 더 중시하였다.

 

도덕적 수양은 우선 개인의 수양에 집중되었다. (), (), (), (), ()이 그것이다. 이는 수기(修己)의 덕목이요, 치인(治人)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였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이러한 덕목의 실천순서였다. 5(五倫;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3(三綱; 父爲子綱君爲臣綱夫爲婦綱)은 그 강목에 해당하였다.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친족으로, 친족에서 사회와 국가로 관계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유교의 윤리였다. ‘친친이쇄(親親而殺)로서 가까운 곳에서 소원한 곳으로 인간관계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회를 안정시키는 안전핀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교경전은 이러한 원리를 강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것은 군주와 가부장(家父長)이 중심이 되는 수직적 유교사회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주자학은 이학지상주의(理學至上主義)의 중앙집권적 문치주의를 합리화하는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집중적으로 발달시켰다.

 

퇴계와 율곡의 철학은 이러한 이기심성론의 이론을 정리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남명(南冥)은 이론보다는 경의(敬義)의 실천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퇴계와 율곡이 조선적 주자학을 이론화하는 데는 기여하였지만 또한 주자학을 교조화 독선화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주자학이 국가의 지배사상이기는 하였지만 불교도교음사(淫祀)와도 조화하는 다종교사회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16세기 퇴계와 율곡의 순정주자학이 정립됨에 따라 주자학은 독선화의 길을 걸었다. 건국 초기에 정도전의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이 있었고, 조광조가 도교의 소격서(昭格署)를 혁파시키려는 운동이 있었으며, 퇴계의 양명학(陽明學) 비판 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독선화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우암(尤庵)이 북벌론(北伐論)과 주자학 지상주의를 표방한 이후 사상계는 더욱 경직되었다. 불교노장사상뿐만 아니라 같은 유교라도 양명학(陽明學)이나 주자의 경전해석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탄되었다. 이는 사상의 유연성을 상실하였음을 뜻한다.

 

실학(實學)은 실로 이러한 노론(老論)의 주자학 지상주의를 배격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소론(少論)은 인조반정 공신들이 혁명논리로 내세운 존명사대(尊明事大)가 정묘(丁卯), 병자(丙子)난으로 깨지자 명분보다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양명학(陽明學)을 신봉해 강화학파(江華學派)를 형성하였다. 노론의 소외세력은 북벌론의 허구성을 공격하고 오히려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른바 북학론(北學論)이 그것이다. 남인(南人)은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정계에서 쫓겨나자 반체제적인 사고로 서학(西學)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당파별 실학사상은 노론의 계속적인 집권과 외척 세도정치의 만연으로 근대화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반면 노론의 정통 주자학은 북벌론을 지지하는 충청도계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과 이를 반대하는 경기도계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으로 갈려 대립하였으나, 안동김씨 세도정치 아래에서 후자가 우세하였다. 즉 경직적 사고보다는 유연성이 있는 동론 쪽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조선 말기에 유학자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으로 개화(開化)에 반대하고 수구(守舊)의 길을 걷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말았다. 일부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 나와 동양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키자는 주장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서양의 기술을 배우면 서양의 정신도 함께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학(西學)이 천주교(天主敎)를 앞장세워 들어온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근대 서양학자들 가운데 일본한국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이 후발자본국인데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 것은 유교의 장점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왜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이나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 근대화에 성공하였겠는가? 유교의 골수화가 오히려 근대화를 저해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유교의 가치관이 인간됨에 치중되어 있는 데 반해 자본주의의 가치관은 철저히 돈이나 효율성에 치중되어 있어서 둘이 꼭 부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교가 덜 골수화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반면 유교에 더 골수화한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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