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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 「적의(翟衣)」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05.04|조회수168 목록 댓글 0
적의(翟衣)는 왕비, 왕세비 혹은 왕대비와 같은 왕실 적통 여성들이 입는 최고의 예복(禮服)·대례복(大禮服)이라고 한다. 즉 쉽게 말해서 즉위식을 거칠때나 국혼을 올리때 국가의 중대행사때 입는 옷이다. 

조선 왕비의 적의는 크게는 세가지로 변화를 거치게 된다. 

조선초에는 고려시대에서 부터 내려온 대삼(大衫), 조선 중반에는 치적의(雉翟衣), 조선말 (대한제국)에는 심청색 적의(翟衣)로 나뉘어짐. 

여기서 더 세세하게 들어가보면, 

고려 말 공민왕 19년 (1370) 명 태조의 황후인 효자황후가 고려의 왕비에게 칠휘이봉관과 대삼을 보냈는데 이때 우리나라 왕비에게 적의 제도를 처음으로 수용 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초 태종 3년 (1403) 조선이 세워지고 난 후 처음으로 명나라가 사여관복으로 보낸 대삼과 주취칠적관을 사용하였고 -이때는 명나라의 것을 그대로 받아서 대삼이라 하는게 옳았으나 조선에서는 적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음- 명나라가 망하고 난 후, 명 복식 제도를 벗어나 조선만의 복식으로 접어들때 조선만의, 조선을 위한 조선식 치적의를 만들어서 사용하였으며 영조때는 국조속오례의보에 적혀져 있는 제도로서 바로 윗단계와는 비슷하지만 약간 변형 된 -일명 치적의 완성(?)단계- 51개의 원적문(圓翟紋)이 부착된 치적의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 말,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서 왕은 황제로, 왕비는 황후로 격상되어 그에 맞게 의복제도를 개혁하여 만들어진 황후의 적의를 사용하였다. 



Ⅰ. 대삼(大衫)과 칠적관(七翟冠)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재현해낸 대삼인데, 이 대삼은 조선에서는 태종 3년때 처음 등장한 이후로 인조때까지 명나라에 총 16여 차례에 걸쳐 사여 받아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왕비의 대례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 대삼은 친왕비나 군왕비의 대삼으로 명나라가 조선을 친왕이나 군왕으로 대했다는 뜻이다. 

치적의와는 다르게 아무 문양도 없고 색은 대홍색을 띄며, 안에는 꿩 무늬의 청색 배자(褙子)를 입고 금색 실로 적계문(翟鷄紋)을 수놓은 짙은 청색의 하피를 목에 둘러 앞가슴에 걸었다. 

이때 머리에 칠적관(七翟冠)을 쓰는데, 이 칠적관도 마찬가지로 명나라의 친왕비나 군왕비의 대례모이다. (명황후는 구적관을 쓴다.)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 - 비취색 진추와 일곱마리의 꿩 장식으로 된 적관.


 

대왕세종에서 재현 한 칠적관.
(종편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재활용되고 있음.)

아쉽게도 이 대삼과 칠적관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물이 하나도 없어 현재 재현되고 있는 것은 대명회전에 근거하여 재현되고 있다.


 
Ⅱ. 치적의(雉翟衣)와 대수(大首)머리



(가운데는 왕의 조복인 강사포)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는 만주식 관복 제도를 따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조선은 크게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서 명복식 제도를 벗어나 진짜 조선식 복식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리하여 왕과 왕비의 대례복 또한 변화를 거치는데, 왕의 구장복은 명나라 것과 얼추 비슷하게 만들게 되나 왕비는 도저히 국내에 만들어 낼 장인이 없어서 새로 만들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치적의는 색은 대삼과 같은 대홍색이고 운봉흉배(雲鳳胸背)를 달았으며 앞뒤에 36개의 원적문(圓翟紋)을 수놓았다. 

이 이후 여러가지 변화를 거친 치적의는 영조때 되어서야 완성되어 지는데, 이때는 51개의 원적문(圓翟紋)을 수놓았고 적운문(翟雲紋)을 수놓은 하피를 어깨에 두르고 운봉흉배를 달았디.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은 짙은 적색으로 대비의 적의이며, 세자빈의 적의는 아청색 적의로 원적문은 36개이며 하피에는 닭문양을 수놓아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음.) 

+) 원적문이라 함은,


이런게 51개가 있다란 뜻. (물론, 왕비의 치적의를 말함.) 


이때 머리에 쓰는 것은 대수머리인데, 칠적관이 명에서 받아 썼던 것으로 국내에는 기술자가 따로 없을 뿐더러 재료 또한 없어서 중국에서 공수해와야하는 악조건인지라 새로 제도화 해서 만들어 낸 것이 이 대수머리이다. 

여기에 대한 기록은 인조왕조실록 인조 23년 (1645)에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인조 23년 책례 도감이 세자빈이 칠적관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칠적관을 만들어 낼 수가 없어 선조때 사용하였던 대수머리를 그때처럼 쓰겠느냐 물어보니 인조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던 것. 


▶ 대수머리의 구성


㉠ 백옥립 봉잠 (봉황모양의 옥비녀) 
㉡ 금봉잠 (봉황모양의 금비녀) 
㉢ 소립봉잠 (작은 봉황모양의 비녀) 
㉣ 가란잠 (난초모양의 비녀) 
㉤ 용잠 (용모양의 비녀) 
㉥ 떨잠 
㉦ 전입계 앞꽂이 
㉧ 마리삭 금댕기 (사진속에는 없음) 
㉨ 진주계 (사진속에는 잘 안보이는구만) 

저 사진에서는 마리삭 금댕기는 확실하게 없고 소립봉잠은 안보이고 진주계도 가려져 있고 해서, 다른거 들고 와봄.


마리삭 금댕기 화살표가 떨잠으로 가있는데, 저게 아니고 ㅋㅋㅋ 떨잠이 달린 머리띠임. 진주계는 가체 전면 이마에 꽂아 놓은 비녀고 소립봉잠은 안보이긴 하다만 용비녀 뒤에 보이는 비녀같음. (비녀 끝부분만보이네)


 

Ⅲ. 심정색 적의(翟衣)

황후의 적의를 유일하게 입어 본 순정효황후의 적의를 재현한 모습. 


(명성황후는 대한제국되기 전에 이미 생을 마감하였고, 대한제국이 되고 난 후에 왕후에서 황후로 격상되었던 것. 참고로 순종의 정비인 순명효황후도 있는데 순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에 생을 마감함.)



▶ 적의의 구성


이 적의는 황후의 적의인 12등 적의로 꿩 148~154쌍을 12등분하여 수놓았으며 양어깨, 가슴, 등에 오조룡보를 달았고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두르고 운룡문(雲龍紋)을 수놓았다. 

적의 : 심청색 바탕의 저사(紵紗) ·사(紗) 및 나(羅)를 수용(隨用)하였는데, 여기에 12등분하여 적문(翟文) 148쌍을, 사이사이에는 윤화(輪花:梨花)를 넣었으며 홍색 깃과 도련 및 수구의 홍색 선에는 운룡문(雲龍文)을 직금하였다. 

중단 : (적의 속에 착용하는 옷)옥색의 사(紗)나 선라(線羅)로 하였으며, 홍색 깃에는 불문(黻文) 13개를 직성하였고, 도련과 수구에는 홍색 선을 둘렀다. 

폐슬 : 무릎을 가리기 위한 천으로 적의와 같은 색. 적문을 황후는 3등분, 황태자비는 2등분으로 나뉘어 소륜화(小倫花) 배치하였다. 홍색으로 연(緣)을 하였는데 황후는 운룡문(雲龍紋)을 황태자비는 운봉문(雲鳳紋)을 수놓았다.


이게 12등 적의 폐슬인데 황태자비 적의인 9등 적의 폐슬과 차이가 있음. 

하피 : 적의를 입을 때 목에 걸어 늘이는 장식물로 검은색 공단에 분홍색 안(緣)을 넣었다. 금실로 운하(雲霞) 28개, 적문(翟紋) 26개를 수놓았고, 둘레에 두 줄의 금선을 둘렀다. 대한제국 황후,황태자비,의친왕비의 적의는 봉문(鳳紋)을 수놓았다. 

대대 : 겉은 대홍단이며, 안은 흰 색 비단이고, 둘레에 옥색 비단으로 가선(加線)을 둘렀다. 끈은 남색 실로 꼬아 만들었으며 끝 부분에 같은 색의 술을 달았고 대한제국 황후의 것은 안팎이 청.홍으로 되어 있다. 

후수 : 훈색을 바탕으로 하여 황 ·적 ·백 ·표 ·녹의 5채(采)로 직성한 것이었고, 여기에 옥환(玉環) 2개를 간시(間施)하였으며, 또한 대수와 같은 색의 소수 3개가 딸려 있었다. 

혁대 : 청색 기정(綺鞓)으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옥장식 10개와 금장식 4개가 있었고 운룡문을 그려 묘금(描金)하였다. 

규 : 길이가 주척(周尺)으로 7촌이었는데, 위는 뾰족하고 곡문(穀文)을 새겨 넣었으며, 아래는 황색 기(綺)로 맺었고 따로 황대로 쌌다. 

말(버선)과 석(신) : 말은 청색 나(羅)로 지었으며, 석은 청색 기(綺)로 만들었음. (치적의는 적색)


꿩문양과 조선왕조의 상징인 이화문양 

여기서 황태자비의 적의는 140~160쌍의 꿩이 9등분 하여 나눠어져 있고 (그래서 9등 적의라고 함)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두르고 운봉문(雲鳳紋)을 수놓는다.
 
+) 이런 식으로 이화문양과 꿩문양이 9등분으로 나눠어져 있다. 
깃과 도련을 보면 봉황이 수놓아져 있다. 그래서 황태자비의 적의는 9등 적의라고 한다.

 
 
 대표적인 고증오류

 

왕과 나에서 정현왕후 윤씨.
(...말고도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도 입었음.)

성종의 비이고 중종의 생모인데, 대한제국에 입을 법한 -그것도 황태자비- 심청색 적의를 입었음.


 

여인천하의 문정왕후 윤씨.
간단하게 말해서 시대상으로 보면 위 둘은 대삼과 칠적관을 입어야 마땅함.
(...은 거의 모든 사극에서 시대 상관없이 치적의가 나와서 그려려니 하는데 심청색 적의는 참;;;)


마지막으로 참 따지기 애매하긴 한데



드라마 궁처럼 대한제국이 온전히 있다라는 가정하에 따지자면, 채경이가 심청색 적의를 입는 건 맞긴 함.

그런데 뭐가 문제냐면 채경은 황태자비. 자세히 보면 적의에 깃과 도련(은 사진상에서는 안보임)에 수놓아져 있는게 용. 황태자비라면 봉황이 수놓아져 있어야 정상이고 내가 꿩의 수를 일일히 세룰 수가 없지만 일단, 깃에 새겨진 무늬로 봐서는 저건 황후의 적의로 추정함. 

 

 

 

 

출처 : 이글루스 블로그   마음가는대로    madoria.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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