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람들의 선망 - 한강의 뱃놀이 풍류
모처럼 호사스런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장소는 한강. 경치 좋은 누정에 자리를 잡고 놀다가, 배 한척 빌려 타고 시원한 강바람이라도 쏘이려면 준비할 것이 많겠다. 우선 햇빛 가리개를 갖춘 배는 있을까? 그리고 이참에 평소 어울리고 싶었던 장안의 명기(名妓) 몇 사람은 초청해야 흥이 나겠고, … 또 풍류가 없을 수 없으니 뱃놀이 음악을 연주할 악사(樂士)도 있어야 하겠는데… 누구를 초청하면 좋을까…’ 신윤복의 그림 <주유청강> 속의 뱃놀이를 기획한 누군가는 멋진 한강의 ‘선유(船遊) 놀음’을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한강의 뱃놀이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선망의 풍류였다고 한다. 한강은 송파에서 양화진까지를 경강(京江)이라 하였는데 특히 마포, 서강, 양화도 부근을 서호(西湖), 두모포 일대를 동호(東湖), 용산강을 남호(南湖), 혹은 용호(龍湖)라고 불렀다. 한강변에는 명사들의 누정(樓亭)이 있어, 계절 좋을 때면 뜻 맞는 이들과 어울려 연회를 열었다. 술을 마련하고, 악사와 기생을 초청하여 가무를 즐기며 시를 짓고 놀았다. 그리고 이일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시집이나 그림 작품으로 남겼다.
또 ‘한강뱃놀이’ 를 놓칠 수 없는 풍류로 여겼던 중국 사신들을 위해 융숭한 ‘칙사대접’ 뱃놀이 음악회가 준비되었으며, 서호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잠두봉에는 언제나 관현가무(管絃歌舞)를 즐기는 이들로 시끄러워 새가 나무에 둥지를 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한강변의 풍류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1)
대금소리, 생황소리 어울린 신윤복 그림 속의 작은 음악회
적지 않은 문학작품과 그림으로 남겨진 크고 작은 한강 풍류 중에서 신윤복의 풍속화 <주유청강>은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 신선한 색채감이 빼어나 눈길을 끈다. 기록화 성격의 계회도(契會圖)나 문인화 풍의 한강 뱃놀이 그림2) 에서도 살필 내용이 많지만, 그림 속 뱃놀이에 귀 기울이면 금방이라도 젓대소리, 생황소리 들릴 것 같은 <주유청강>의 생동감은 단연 압권이다.
다시 그림을 보자. 날씨 맑고, 바람 느짓하여 물결 잔잔한 날. 세 남자는 여기 세 명, 대금 주자 한 사람을 초청해 강으로 나섰다. 푸른 강 물결.. 뱃전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멀리 보이는 강안(江岸) 풍경에 눈길도 주고, 소년과 기생이 연주하는 음악에 귀 기울이며 시상(詩想)을 떠올려 볼 법도 하건만, 젊은 두 남자의 마음은 온통 기생에게만 쏠려있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늙수그레한 남자는 뒷짐을 진채 서서 생황 부는 여인 쪽을 바라보고, 대금 부는 소년과 생황 부는 여인은 멀찍이 마주하여 제각기 연주에 빠져있으며, 맨 상투 뱃사공은 묵묵히 배를 젓고 있다.
정조 때의 문인 신택권(申宅權;1722~1801)의 <성시전도시>에,
“부러울 손 저 방년 유야랑(遊冶郞)의 놀음이여
생황 젓대 울리며 포구에 배띄우고
술단지 차고 거리에서 준마를 달리노라
고운 노랫소리 곳곳에서 들보를 맴돌고
길 가득 기생의 향기 날아오른다."
는 구절을 떠오르게 해주는 장면이다.
그림속의 뱃놀이 계절은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로 보인다. 신윤복이 쓴 화제 ‘일적만풍청부득(一笛晩風聽不得)3)이라는 문구에 들어있는 ‘만풍(晩風)’을 ‘저녁무렵 부는 바람’이라고 해석한다면 뱃놀이 시각은 늦은 오후 쯤일테고, 주안상(酒案床)을 놓을만한 공간도 없는 작은 배를 띄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들은 근처 누정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가볍게 배에 올랐을 듯하다. 달 뜬 날의 강 풍류가 더욱 멋있었다하니 이들은 이제 막 선유놀음을 시작한 것일까?
풍속화에 등장하는 최연소 악사 - 대금 부는 소년
이 그림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대금을 부는 ‘소년 악사’다. 여러 풍속화에 악사들이 등장하지만, 이 그림에서처럼 머리를 땋아 내린 어린 소년이, 평상복차림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음악원인 장악원 소속의 악사들, 일종의 군악대라고 할 수 있는 세악수(細樂手), 그리고 그룹을 지어 민간의 풍류 공간에 초대받아 연주활동을 주로하던 전문음악가들이 기악을 연주했다. 풍속화나 기록화에 표현된 이 음악가들의 모습은 궁궐의 악사복을 입거나 세악수 복장, 또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등장하는데, 이 그림의 평상복을 입은 어린 소년 악사는 이채롭다.
필자가 본 지금까지의 그림 속 음악가 중에서 최연소다. 그런데 이 소년은 누구일까. 이 소년은 정식으로 초대받은 악사였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옷차림새의 격이 떨어진다. 오히려 신윤복의 다른 그림에서 기생을 수행하거나, 기생이 타고 가는 가마를 메는 이들과 연령과 용모가 비슷하다.

혹시 이 소년은 기방 주변에서 일을 돌봐주다가 연주를 익혀 마침내 연주까지 하게 된 ‘겸업 악사’는 아닐까 생각되지만, 아직 이런 추측을 뒷받침할만한 문헌자료는 보지 못하였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조선시대의 문집 기록에는 종종 양반가의 노비 중에서 음악으로 이름 높았던 이들의 일화가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이정구(李廷龜)의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1603) 에 등장하는 ‘억량(億良)’이다. 억량은 신응구(1553∼16231, 호: 子方)의 노비인데 한양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정구는 신응구와 함께 삼각산에 오르면서 ‘산행에 풍류가 없을 수 없으니 자네의 집 젓대 부는 노비 억량을 좀 보내달라’는 청을 한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인기 있는 연주가인지, 우여곡절 끝에 산중에서 억량을 만나 그의 연주를 감상한 소감을 소상히 적고 있는데, 이 글 중에 주목되는 점은 그를 ‘적노(笛奴)’라 부른 것이다. ‘적노(笛奴)’라는 표현이 남자 음악인을 가리키는 ‘악공(樂工)’이나 ‘악사(樂士)’, ‘악수(樂手)’, ‘공인(工人)’과 같이 일반화된 명칭은 아니지만, 고전 시문에서는 이따금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여자 노비 중에서 음악 잘하던 이들을 ‘가비(歌婢)’, ‘성비(聲婢)’, ‘금비(琴婢)’라 일컬었던 예처럼, 선비들의 풍류놀음 한 켠에는 재능 있는 음악 노비들도 한 구실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윤복의 <주유청강>에 모습을 드러낸 이 소년은 대금 연주를 할 줄 알았던 기생의 수행원이거나, 혹은 어느 양반집의 ‘음악 잘하는 노비’가 주인의 명으로 파견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대금 부는 소년의 연주 자세는 표준일까?
대금(젓대)은 대나무 관대에 취구와 지공과 청공(淸孔)을 뚫어 옆으로 부는 관악기다. 전해 오는 여러 관악기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길고 관이 굵은 축에 들며, 다른 악기에 없는 청공(淸孔)을 통해 다양한 음악성을 구사한다. 대금은 정좌(正坐)하거나 선 자세로 연주하는데, 허리와 가슴을 ‘쭉’ 펴고 대금 아래쪽이 취구보다 쳐지거나 올라가지 않는 평행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바른 자세를 얻기 위해서는 대금 끝에 무거운 것을 매달아 놓고 그 무게를 지탱하면서 연습할 만큼 평행상태를 중시한다. 그런데 이런 표준자세에 비해 소년의 대금 부는 자세는 좀 다르다.
위 그림의 맨 왼편은 현존하는 대금연주가 이생강 명인의 2009년 창덕궁에서의 연주모습이고4) 두 번째는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근세의 대금명인 김계선의 초상이며, 맨 오른쪽은 신윤복의 <상춘야흥>에 등장하는 대금연주가의 뒷모습이다.
이 연주모습들과 비교해보면, 소년의 대금 연주 자세는 지극히 편해 보인다. 그리고 대금이 취구(吹口)에 입김을 불어넣으려면 ‘젓대는 가로 부니 늑대 목 밉상이고’라는 말처럼,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돌려 아랫입술이 취구에 닿게 해야 한다. 보통 취구에 김을 넣으면 반쯤은 새 나가고 나머지 반쯤이 취구에 들어가 ‘소리’가 되기 때문에 소리 얻는 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금의 경우 취구가 크기 때문에 음정을 맞추는 데도 김의 조절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저런 연주 자세에 주목하여 다시 그림을 바라보자면 신윤복이 이 그림에 화제에서 말한 ‘젓대 소를 들을 수 없었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는 조심조심.. 아주 작게 생황소리에 반주하는 정도로만 소리를 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연주한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인 그림 소개에서 슬쩍 지나치게 되는 <주유청강> 속의 ‘대금 부는 소년’ 은 뜻밖에도 여러 가지 정황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는 누구일까. 기생의 생황연주에 맞춰 그가 연주한 음악은 무엇일까. 화가 신윤복도 들을 수 없었다는 소년의 젓대소리를 상상하며 옛 느낌, 요즘느낌의 대금소리가 담긴 연주곡을 골라 들어본다.
1) 사숙재(私淑齋) 강희맹(1424~1483)은 1471년에 쓴 ‘서호잠령계음서(西湖蠶嶺契飮序)’에서 “예전 잠두봉에는 까마귀와 솔개, 갈매기와 해오라기가 살았지만, 지금은 시끄러운 관현가무(管弦歌舞) 때문에 나무에는 새집을 찾을 길이 없다”라고 하였다.
2) 김석신(1758~?)이 그린 <가고중류도>
3) 신윤복은 이 그림에 "일적만풍청부득(一笛晩風聽不得) 백구비하랑화전(白驅飛下浪花前)"이라는 화제(畵題)를 쓰고 낙관 하였다. ‘젓대소리는 늦바람에 들리지 않고 흰 갈매기가 물결 앞에 날아드는구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0)
이종묵, “16세기 한강에서의 연회와 시회,” 『韓國詩歌硏究』제9집. (서울: 한국시가학회, 2001), 5-28쪽.
음악자료 : 1) 대금독주 ‘상영산’ (연주: 홍종진, 음원출처: 국악방송)
2) 조용욱 작곡 ‘에메랄드 에이레’ (숙명가야금연주단 연주와 대금연주가 김동근의 대금연주, 음반 미발매)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0)
이종묵, “16세기 한강에서의 연회와 시회,” 『韓國詩歌硏究』제9집. (서울: 한국시가학회, 2001), 5-28쪽.
음악자료 : 1) 대금독주 ‘상영산’ (연주: 홍종진, 음원출처: 국악방송)
2) 조용욱 작곡 ‘에메랄드 에이레’ (숙명가야금연주단 연주와 대금연주가 김동근의 대금연주, 음반 미발매)

글 : 사진 = 송혜진/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출처] 본 게시물은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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