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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한국의 '엮기풍속' 考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1.30|조회수131 목록 댓글 0

한국의 '엮기풍속' 고(考)

천공(天工) 솜씨의 기본, 쑥,마늘,시래기 엮기


짚으로 엮어 말리는 시래기(충남예산)-위
새끼로 엮은 마늘(강원도 삼척)-아래


 엮기의 가장 기본은 아마 처마 끝에 가지런히 매달린 쑥, 마늘, 시래기 타래일 것이다. 두 가닥 또는 그 이상의 매끼로 엮어 매단 가장 기본적인 엮기 기법이다. 손재주 많은 한국인의 천공 솜씨는 아마 오월단오에 쑥 엮기, 초여름에 마늘 엮기, 가을에 무, 배추 시래기 엮기 등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무엇인가 말려서 오래 보관해야할 물건이 있으면 주위에 지푸라기 몇 개로 엮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끝 음지나 광에 줄줄이 매달았다. 무엇을 엮는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이지만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었다. 이 엮는 기술이 좀더 발달하면 다양한 짚,풀 공예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오날 이른 아침에 쑥을 베어다가 다발을 짚으로 엮어서 문 옆에 세워두거나 걸아두면 재액을 물리친다고 한다. 쑥을 뜯어서 한 손아귀에 잡히는 한 줌씩 짚으로 엮어 적당한 길이가 되면 쑥 한 타래가 되는 것이다. 단오날 뜯어 말린 쑥은 뜸을 뜨는 데 이용되며, 부싯깃으로도 이용된다. 농부들이 논밭에서 일할 때 약쑥으로 긴 홰를 만들어 불을 붙여두고 종일 담뱃불들을 댕기는 데에도 쓴다. 일반적으로 여름철에 쑥으로 불을 피워 모기를 쫓는 데 이용한다. 농가의 뒤곁 처마 밑에는 짚으로 엮어 달아놓은 쑥 한두 타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나물을 저장하는데 이 짚으로는 엮는 방법이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제철에 수확되는 나물을 그대로 또는 살짝 데쳐서 말린다. 특히 줄기가 있는 4월의 쑥, 5월 중순경에는 햇고사리, 6월의 마늘, 10월에 무, 배추의 시래기는 짚으로 엮어 말린다. 쑥, 고사리, 시래기는 한 줌씩 짚으로 엮어 타래로 셈하고, 마늘은 100개 한 접 단위로 엮는다. 짚으로 엮은 나물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또한 필요한 만큼 적당량 빼도 엮은 매듭이 풀어지지 않아 편리하다.


새끼줄에 엮인 굴비 ,청어


 소금에 절인 다음 새끼줄로 한 두름씩 엮어 보관하면서 먹는 고기는 굴비와 청어이다. 새끼줄에 엮인 굴비, 청어는 자린고비의 구두쇠이야기나, 강강술래같은 여성놀이에서 자주 등장한다.


짚으로 엮어 단 메주(국립민속박물관)


 구두쇠 영감이 자반 생선을 한 마리 사서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식구들에게 밥 한 숟가락 떠먹고는 자반을 한 번씩 쳐다보게 하였는데, 아들이 어쩌다가 자반을 두 번 쳐다보니 구두쇠 영감이 "얼마나 물을 켜려고 그러느냐." 하고 아들을 야단쳤다는 내용이다.


 조기는 서해안일대에서 생산되는데, 고기를 갈라서 말린 가조기와 통째로 말린 굴비가 있다. 특히 영광지방의 굴비가 유명하다. 굴비는 전라남도 영광군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를 말린 것이다. 산란 직전의 조기를 잡아 소금으로 간을 하여 말린다. 동지나해역에서 월동한 조기떼가 산란하기 위하여 연평도 근해까지 북상한다.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는 4∼5월경 특히 곡우사리 때 알이 차고 맛이 좋은 산란 직전의 조기를 잡을 수 있다. 고려 인종 때 처음으로 진상되었으며, 명·청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일설로는 법성포에 귀양온 이자겸이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영광굴비를 진상하면서 ’비굴’의 글자를 바꾸어 ’굴비’ 라고 하였다고 한다.


 굴비 만드는 법은 토굴 속에 조기 한마리씩을 소금에 절여 3일간 돌로 눌러 놓았다가 물이 빠지면 열마리씩 한두름으로 새끼로 엮어 걸대에 걸어 7∼14일 동안 해풍에 건조시킨다. 돌로 눌렀기 때문에 석수어(石水魚)라고도 하였다.


 이런 새끼로 엮인 굴비와 청어는 여성들의 놀이에서도 재현된다. 청어엮기놀이가 그것인데, 달밤에 여자들이 손과 손을 잡고 청어를 엮듯이 엮었다 풀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주로 강강술래의 한 과 정으로 놀이된다.


위에서 아래로

짚으로 굴비 엮기
강강술래-청어엮기(광주시립민속박물관)
짚으로 주렁주렁 엮은 남근
-강원 삼척 원덕-
신남 해신당내부


 전라남도 서남해안 지방에서는 팔월보름 무렵이 되면 달밤에 소녀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여러 놀이가 있어 이때에 청어엮기가 놀이된다. 또 성숙한 처녀와 젊은 부녀자들이 모여 강강술래놀이를 할 때에는 여러 춤사위의 하나로 청어엮기를 즐겨 한다. 앞에 선 선소리꾼이 "청청 청어엮자, 엮자 엮자 청애엮자. 위도 군산 청어엮자. 위도 군산 청애엮자."하고 고운 목소리로 구성지게 앞소리를 하면 청어 엮기 놀이로 들어가고 노래에 맞추어 손발의 동작이 시작된다. 열을 지어 서거나 둥근 원을 그려 서로 손과 손을 잡고 서는데, 맨 앞사람이 둘째 사람과 셋째 사람이 맞잡은 팔 밑으로 빠져나가는데 청어를 꿰는 시늉이다. 이렇게 차례차례로 꿰어나가는데, 이 때 오른손은 왼쪽 어깨 위에 감기게 되어 청어를 엮은 형태가 된다. 다 엮으면 엮을 때와는 반대로 꿰어가는데 청어풀기라고 한다. 어로작업이 무용화한 일종의 모의무용(模擬舞踊)으로 풍어에 대한 기원을 놀이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엮기의 절정은 남근엮기다. 남근을 짚으로 주렁주렁 엮어 마을 수호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 원덕의 신남리 해신당은 바로 그 곳이다.


 신남리 마을 동북쪽 바다에 닿아 있는 야트막하나 길게 뻗은 해산(日山) 끝바위 틈에 해랑당이 있다. 이 향나무 신수는 바다를 향해 무성한 가지를 드리우고 해풍을 맞고 있다. 해산 자체가 동해 푸른 물결 속으로 뻗어 있고 끝머니 용두에 해신당 신수가 청정하게 서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좌우 사방의 바다가 멀리까지 보인다. 예전에는 이 언덕에 마을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렸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비바람이 불 때는 바다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서 해신당을 오르내렸다. 특히 비바람 부는 날에는 바다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온 동네사람들이 오르내렸다. 이 해신당에 남근을 깎아 바치는 사연은 이렇다. 지금부터 400여 년전 마을처녀가 미역을 따기 위해 앞바다 바위섬에 가고자 했다. 장래를 약속한 젊은 사고이 배를 태워주었으나 저녁에 심한 풍랑이 일어 다시 태어올 수 없었다. 처녀는 바위섬에서 애태우다가 죽었으므로 이곳을 애바위라고 부른다. 처녀가 죽은 다음부터 흉어가 되고 해난사고가 잦자 주민들은 그녀의 원혼을 모시고 매년 정월 대보름과 10월 오일(午日) 제단에 향나무로 정성껏 깍은 남근을 짚으로 주렁주렁 엮어 바치고 풍어와 안녕을 빈다. 멋있는 현대적 당집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남근을 바로 향나무의 신수에 바쳤다. 그래서 향나무 주위에는 남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오래 된 것은 썩어 떨어져 있었다.


 정월 도가 치성을 드릴 때 제관들이 남근을 깎는다. 정월 14일 밤에 당주집에 모여 제물이 다차려지고 나면 제관들이 남근을 깎는다. 홀수로 3, 5, 7개를 바치나, 보통 5개를 깎는다. 예전의 남근을 보면 소나무도 있으나, 최근에는 모두 향나무이다. 해신당에 올라가기 직적에 바닷물이 들어와 고사는 향나무가 있는데 이 향나무 가지를 이용해서 특별한 도구가 니라, 보통 낫으로 깎는다. 남근의 크기는 2, 30cm정도이다.


 해신당에서 이루어지는 의례는 마을공동체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바닷일을 하는 사람은 개별치성을 드린다. 개별치성은 도가치성 후에만 가능하다. 최근 이 해신당에 기자치성의 모습도 보인다. 몇 년전 서울의 관광객이 이 마을에 묵으면서 아이를 가졌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아예 "신남"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런 소문들에 의해 요즘은 심심챦게 아들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해신당 입구에 마련된 남근조각상을 부녀자들이 만지면 좋다하는 이야기기도 생겼다. 예전 향나무 해신당에 걸린 오색 천조각이나, 새로 지운 해신당 문구멍으로 지폐를 끼워넣고 치성을 드리는 모습은 최근에 나타난 모습이다.


짚,풀을 이용한 엮기의 명장(名匠), 한국인


 짚은 곡식의 알곡을 털어낸 줄기로 볏짚, 보리짚, 밀짚, 조짚 등을 말한다. 이 짚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어왔다.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는 멀리 신석기 시대에까지 올라간다. 이때에 이미 벼농사가 시작되어 청동기 시대에 이르면 그 흔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짚의 이용 특히 볏짚의 이용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짚에 둘러싸여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조상대대로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갈한 짚가리인 삼신짚 위에다 우리들을 낳으셨다. 사람이 세상에 나와 제일 먼저 떨어지는 곳이 짚 위였다. 애를 낳으려는 산모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짚을 깔아주었다. 이것은 삼신짚으로 순산을 도와주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또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왼새끼를 까고 소나무 가지와 숯 고추 등을 끼워 금줄을 대문 밖에 쳐서 부정을 막았다. 짚은 농산물의 부산물로서 짚에는 곡령(穀靈)이 깃들어 있고, 그 곡령이 주력(呪力)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 이엉엮기(국립민속박물관) 같다.


이엉엮기(국립민속박물관)


 자라면서 우리 조상들은 거의가 초가집에서 살아왔다. 갈라지고 떨어지지 말라고 흙벽을 칠 때에 짚을 잘게 썬 짚여물을 듬성듬성 잘라 넣고, 보온력이 강한 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은 우리의 자연환경에 안성맞춤의 보금자리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정서에는 초가는 아늑함과 감싸안은 편안함, 그리고 굴뚝에 피어나는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가을추수 후에 동네는 초가의 이엉엮기에 바빠진다. 지붕잇기는 주인 혼자서 하기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동리의 장정들이 저녁을 먹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두레협동으로 이엉을 엮는다. 짚으로 엮은 멍석을 마당에 펴놓고 둘러앉아 가을추수의 푸근함과 풍성함의 정담을 나누면서 이엉을 엮는다. 밤이 이슥해지고 저녁에 먹은 음식이 다 소화될 때쯤 주인집에서 김장김치에 따스한 밥이나 국수를 참으로 내어 놓았다.


 경상북도 문경지방에서 신축가옥의 지붕이기를 할 때 마을사람들이 무보수로 공동작업을 하여주는 일종의 협동관습인 우살미가 있다. 함경북도 명천지방 부근과 경상남도 내륙지방 울력과 비슷한 관행으로 마을사람들이 노동의 교환이나 임금에 관계없이 노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살미는 추수가 끝난 뒤 짚이나 억새풀·대마 등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이기를 할 때 행하여 진다.


 농부들이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배우듯, 우리네 조상들은 아버지 또는 형님으로부터 마당에서 혹은 초당방에서 자연스럽게 짚을 엮는 기술을 익혔다. 짚으로 만드는 생활도구는 몇가지 기법만 배우면 되기 때문에 솜씨가 좋은 사람은 좋은대로 나쁜 사람은 나쁜대로 짚을 꼬고 엮어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썼다.


 아이가 좀 자라면 짚으로 엮은 꼴망태가 소년의 어깨에 매어진다. 망태기 하면 꼴망태 이외에 땔감을 하러 갈 때의 나무망태, 낫을 담아두는 낫망태, 연장을 담는 연장망태, 짚신골을 담은 신골망태, 엽전을 담는 돈망태, 개똥을 줍는 개똥망태, 돼지새끼 팔러 갈 때 메는 돼지망태, 씨를 뿌리거나 비료를 줄 때 메던 심금망태 등등 있는데, 망태기 하면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앞서 이야기한 꼴망태이다. "꼴망태 둘러메고 이랴 어서 가자...."의 노래가사처럼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한두 번 메어본 기억이 다 있다. 소먹이는 꼴은 대개 자라는 소년의 몫이어서 꼴망태도 작은 것이 보통이다. 이들 모두가 새끼를 가늘게 꼬아 그물처럼 성글게 엮었다.


짚으로 엮은 닭둥우리(국립민속박물관)


 짚을 사용하여 다소 큰 도구를 만드는 시기는 겨울철 농한기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사랑방에 가마니틀이나 자리틀을 메고 이듬해에 쓸 가마니와 자리, 멍석을 짠다. 또 동네 초당방에 짚을 가지고 밤새 새끼를 깐다. 같은 또래 장정들이 모여 새끼를 까다가 출출해지면 동리에 나가 서리를 한다. 짚단으로 막아놓은 무우 구덩이에서 무우서리를 하거나, 짚으로 싼 김치독싸개를 살며시 열어서 김치를 서리하고 부엌에 들어가 식은 보리밥을 훔쳐다가 동짓달 긴긴 밤의 젊은이의 왕성한 식욕을 채웠다.
 초당방에 나가면 그중에서도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농사도구를 만들고, 손재주 없는 사람은 새끼를 꼬거나 짚을 추려주고 밥서리해서 요기거리를 장만해 온다. 이때 짚으로 만들어지는 도구를 보면 종자를 보관하는 씨오쟁이, 씨를 뿌릴 때의 종다래끼나 다래끼, 흙이나 거름 또는 수확물을 나를 때 쓰이는 삼태기, 곡식을 갈무리 할 때 쓰는 둥구미, 짚독 등이다


 우리 선조들이 매우 다양한 부분에서 짚을 이용하여 왔음은 먹음새에도 나타난다. 누룩틀 메주틀 콩나무시루 시루밑은 짚으로 만들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고, 계란꾸러미 계란바구니 독뚜껑 항아리뚜껑 김치깍 짚도시락 짚수저통 등은 음식을 보관 저장하고 운반하기 위해 짚으로 만든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가축을 키울 때에도 짚은 필수적이다. 우선 농가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인 소의 여물이 짚이며, 소의 주둥망 소등솔 쇠짚신 등도 짚으로 만들었고 마구의 바닥도 짚으로 깐다. 돼지새끼우리 닭둥우리 개집도 짚으로 엮어 만든다.


 정초가 되면 풍년을 기원하며 짚으로 줄을 만들고 고를 만들어 줄당기기도 하고 고싸움도 했다. 악귀 질병 등과 같은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을 목적으로 동제를 지낼 때는 왼새끼로 금줄을 쳤고, 한해의 액을 면하려고 종종 씨오쟁이에 흙 돌 등을 넣어 개천에 징검다리 놓기도 하며, 제웅을 만들어 정월 개보름 저녁에 길가에 버려 액운을 면하려 했다.


 볏짚의 일생은 씨나락에서 모, 모에서 벼, 벼에서 짚, 짚에서 생활용구, 생활용구에서 거름으로 등으로 변하며 마감한다. 씨나락 한 톨이 썩어 모가 되고 쌀이 되어 온백성의 식량이 되고, 그것으로 만족 못해 줄기는 갖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생활도구가 된 뒤에 살신성인으로 거름이 되어 다시 땅의 힘이 되어 주는 이 볏짚이야말로 우리의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짚은 이제 나날이 사라져가고 있다. 수천 년 뿌리를 가진 짚문화가 우리의 시대에 와서 소리도 없이 망각의 늪으로 빠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가 되고 거름이 되면서 말이다.


천진기


글 사진 = 천진기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민속학전공),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고전문학전공) 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밟았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를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재직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에서 제와장, 평택농악, 전통장, 강릉농악, 경주교동법주, 윤도장 등을 집필했으며, 저서로는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한국말민속론`, `한국동물민속론` 등이 있다.

 

[출처]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 '전문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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