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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민속(1) - 계모임, 고무신 자동차놀이, 금줄 등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2.01|조회수192 목록 댓글 0

계모임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며 결속력이 강한 협동조직이 계모임이다. 계는 시집장가 가는 잔치나 사람이 죽은 큰일, 마을길을 닦거나 다리를 놓을때, 혹은 같은 나이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모으고 유지되다. 그래서 계모임은 다른 어떤 협동조직보다도 그 활동이 활발하고 마을사람들의 참여도 높다.

평소에 몇몇이 모여서 쌀이나 돈을 조금씩 계기금을 내고 그것을 이자놓아 늘렸다가 계원들이 어려울때 목돈으로 도와준다. 계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공통된 욕구나 관심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만 그 구성원들은 서로 비숫한 나이와 신분, 형편이 비숫한 이웃끼리 모여 만든다.

상포계는 나이가 많이 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자녀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서 만들고, 동갑계는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친목과 오락을 도모하고 어려울때 돕기 위해서 조직한다. 혼인계는 결혼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식들 시집장가 갈때을 대비해서 모은다.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일은 많은 비용과 물자가 들어 혼자서 준비하는데는 벅차다. 그래서 평소에 혼인계를 만들어 자녀들의 결혼에 필요한 비용이나,  쌀 술 등의 음식을 부조 받아 혼인하는 계원의 부담을 줄여준다.

오늘날처럼 저축하는 은행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금융기관이 없던 시절에는 이러한 계모임이 은행의 역활을 대신했다. 계금을 조금씩 내어 적립해 두었다가 혼인이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때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웃간의 협동조직인 계모임은 마을생활에서 그 효용성이 매우 크다.

요사이 도시사회에서 성행되는 돈계가 흔히 계모임의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잘못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나, 예전 대부분의 마을 계모임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이웃과 상부상조하려는 아름다운 풍속에서 나온 것이다

고무신 자동차놀이

텔레비전과 전자오락, 겜보이가 오늘날의 아이들 놀이감이라면, 예전에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폐품 등을 이용한 사금파리(소꿉놀이), 깡통(깡통차기), 돌조각(고누,공기놀이, 비석차기), 굴렁쇠(굴렁쇠돌리기), 풀(호드기불기,풀싸움, 풀치기, 풀각시), 새끼줄, 나무막대기,고무신짝 등이 놀이감의 전부였다. 전통사회에서 아이들의 놀이는 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도구를 필요로 하는 놀이들이다. 이에 비해 오늘날 놀이감은 돈으로 구입하는 고급 장난감으로 아이들 스스로 구하거나 만들 수도 없으며,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도 어렵다. 과거의 놀이감 가운데 발에 신고 다니는 고무신 자동차놀이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 놀이의 공작성, 창조적 즐거움, 무한한 상상력의 일면을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라는 동요가 있다. 어린 시절 새 신을 새로 사서 신는 날의 기분은 정말 하늘에 닿을 것 같이 가볍고 신나는 일이었다.

낡은 고무신이나 검은 운동화가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떨어져야 그제샤 아버지는 다음 장날에 새 신을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5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가야만 신을 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손꼽아 다음 장날을 기다린다. 어린이는 장에 따라 갈 수가 없기에 신을 직접 신어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장에 가실 때 손 뼘이나 지푸라기로 발을 재어서 눈대중으로 사신다. 보통은 아이가 발이 클 것을 예상하고 더큰 것을 사는 것이 예사이다. 새 신을 기다리는 장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앞산 언저리까지 장에 가신 아버지를 마중하러아이들은 들락날락한다.

고무신은 우리 어린 시절에는 훌륭한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밀기만 하면 저절로 굴러가며 스스로 소리까지 내는 장난감 자동차는 아니었지만 고무신  한 켤레는 더나위 없는 좋은 장난감 자동차였다. 한짝 위에 다른 한 짝을 약간 구부려 끼우면 자동차가 되었고, 한 짝을 둥글게 말아 다른 한 짝 앞코에 끼우면 아주 훌륭한 짐차가 되었다. 또 고무신 두 짝을 앞코끼리 연결하면 기차가 된다. 개울가나 모래톱에서 고무신 한 켤레로 여러 가지 자동차의 모형을 두루 만들어 거기에 따른 자동차 소리를 음성으로 묘사해가며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다.

고무신 하면 하교길 뜀박질이 떠오른다. 시오리 학교 길에서 돌아올 때면 으례껏 뛴다. 도시락이 든 덜그럭거리는 책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매고 두 손에 고무신 잡고는 학교 문에서 집까지 줄곧 뛰어서 온다. 고무신을 신고 뜀박질을 하면 양말을 신지 않던 그 시절에는 땀이 많이 나서 미끄러지기에 고무신을 아예 벗어 들었다.

고무신을 처음 사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고무신은 모양이 같고 단지 크기에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잔치나 모임에 가면 신발이 바뀔 경우가 허다하다.그래서 고무신을 처음 사는 날은 소죽솥 앞에 앉아서 철사줄을 달구어 고무신 안쪽에 *나 +표 등으로 자기 신발에 새긴다. 잔치집에 서 우리 할머니들은 봉지에 자기 신발을 꼭 싸서 직접 관리를 하는 이유도 아마 신발의 외형이 똑같은 고무신에서 나온 풍속일 것이다.

해방이후부터 애용되기 시작한 고무신은 검은 운동화세대를 거쳐 오늘날의 유명 메이커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 우리 어린이들은 고급 운동화를 반도 안 떨어졌는데도 새로 사달라고 조른다. 새 신 하나 신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기대 속에서 마음에서부터 새 신을 신었던 그 어린 시절의 고무신, 그 고무신은 또 훌륭한 놀이감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놀이는 이렇게 주위에서 쉽게 구해지는 것을 놀이감으로 하여 자발적이고 생동감이 있으면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북돋운다. 그래서 아이들 시대는 놀이의 시대라 부르는가 보다

잡귀의 출입을 막는 "금줄"

금줄은 아기를 낳았을때 대문에 내거는 것을 비롯하여, 장을 담글때,잡병을 쫒고자 할때, 마을 공동제사를 지낼때 효험을 거두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정초나 대보름에 마을을 지키는 동신에게 제사를 지낼때는 제관집을 비롯하여 마을입구,동제당 근처에 금줄을 치고 황토흙을 뿌려 잡귀들의 접근을 막는다.

금줄은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서 왼새끼줄을 꼬아서 사이사이에 한지, 고추, 숯, 생솔가지 등을 끼워서 치게 된다.

왼새끼는 귀신들이 좌(왼쪽)를 싫어한다는 속신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부정을 배제하고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왼새끼줄을 주위에 둘러친다.

아이를 낳았을때는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금줄을 문전에 매는데, 아들인 경우에는 금줄 중간중간에 생솔가지와 숯 그리고 빨간고추를 끼워서 만든다. 딸인 경우에는 생솔가지와 숯, 종이를 끼워서 금줄을 만든다. 붉은 고추는 밝은색으로 귀신을 쫓는 효험이 있고, 그 맛이 또한 매워서 나쁜 기운을 쫓을 수 있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다.

금줄에 숯을 끼우는데 숯은 땅 속에서도 썩지않고 습기를 먹으며, 또 귀신에 가장 무서워 하는 불의 씨이기 때문에 금줄에 꼭 숯을 사용한다. 생솔가지는 솔잎이 침엽수이며 1년 내내 항상 푸른 상록이어서 그 힘을 인정하여 금줄에 단다. 흰종이는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폐는 어떤 물건이라도 살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그 힘을 인정하여 금줄에 매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힘을 가진 금줄을 일단 치면 근방 사람들은 조심을 하고 출입을 삼가며, 특히 몸과 마음이 부정한 사람은 드나들어서는 않된다.

가뭄에 단비를 바라는 농심(農心)

인공적인 수리시설이 미비했던 예전에는 적당한 때에, 적절한 양의 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서 배부름과 배고픔이 교차되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에 큰 피해가 예상될 때 임금은 물론 지방의 수령과 농민이 하나가 되어 비를 비는 제사를 지냈다.

옛부터 사람들이 많은 제언(堤堰)과 보(洑)를 만들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설들만으로 가뭄에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가뭄이 든 해에는 농민들이 두레로 둠벙에 고인 물을 품어 올리고, 조그만한 샘의 물을 퍼나르는 일에 매달렸다. 특히 여는 작물보다 휠씬 물이 많이 필요한 수도작의 경우, 물을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은 농민들은 벼 대신에 가뭄에 강한 다른 곡식을 심기도 했고, 호미로 논흙을 파내고, 흙 속 수분량에 맞을 정도로 모포기 수를 줄여 심기도 했다. 이렇게 하고 며칠 더 비를 기다려 보는 것이었다. 이렇듯 농민들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하여 절박한 수단과 도구을 동원해야만 했다. 모내기가 한창 벌어지는 음력 5월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천이나, 보에 저장된 물을 용두레, 두레, 맛두레, 무자위 등으로 온동네가 밤낮없이 물을 푼다.

용두레는 배(船)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두레로서, 통나무를 길게 파낸 것과 나무 판자로 바닥과 양옆면을 이어 붙인 것 등이 있다. 중간 부위에 줄을 매고, 이 줄을 길다란 자연목으로 만든 삼각지주에 연결시킨다. 작업을 할 때에는 삼각지주에 매달린 용두레의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물을 퍼올려 논에 붓는다.

두레는 특히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에 대는 데 쓰는데 용두레로 퍼올리는 물에 비해 수면(水面)의 위치가 깊다. 장대 한 끝에 물을 퍼담을 통을 단 형태이다. 이 장대를, 한 쪽이 논의 둑에 얹혀지고 다른 한 쪽이 삼각받침대에 얹혀진 둥글고 긴 나무의 중간 부위에 울려 놓은 다음, 노를 젓듯이 장대를 밀었다 당겼다 하여 물을 퍼올려 논에 물을 대는 방식이다.

맞두레는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에 대는데 유용하다. 바닥이 좁고 위가 넓은 사각의 나무통 네 귀퉁이에 줄을 갈아 놓은 형태이다. 두 사람이 각각 두 줄씩 잡고 마주 서서 물 속에 두레를 드리운 다음 줄을 당기며 물을 퍼담아 논에 댄다. 물을 퍼서 논에 부을때  매번 한사람이 선창으로 숫자를 세고 다른 사람들이 후렴을 부르는 관습이 있다.

무자위는 중심 축(軸) 주위에 수많은 나무판들을 바퀴모양으로  붙여 놓고 받침대를 설치한 형태이다. 받침대에 부착된 두 개의 긴 막대기를 의지하여 두 발을 번갈아 가며 나무판들을 밟아 돌리면 바퀴가 돌면서 나무판들이 물을 퍼올리게 되어 있다. 퍼올인 물은 주둥이 모양으로 된 홈통을 따라 흘러서 농경지로 들어 간다. 수량(水量)이 비교적 풍부한 수로(水路)의 물을 대는 데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농구로 물을 퍼도 오뉴월의 땡볕에서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에 물대는 데는 태부족이다. 가뭄은 논밭을 말라붙게 하고 작물을 고사(枯死)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빈번하게 가뭄이 찾아 들어 왔고, 그때마다  농사가 망쳐지고 사람들은 굶주렸으며 민심이 피폐해지곤 했다.

모를 심기 위해 혹은 심어 놓은 모가 타지 않도록 하려고 밤낮으로 물을 푸면서 온갖 노역을 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 부근에 있은 산정상이나 하천변에 제단을 마련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온동리가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낸다.

엣날에는 큰 한발이 계속되면 나라에서 임금님이 제주(祭主)가 되어 기우제를 지냈다. 또한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하느님이 벌을 받아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여 임금님이 몸소 음식을 전폐하고 궁궐에서 초가로 옮겨 거처하였고 죄수를 석방하였다. 민가에서는 명산의 산봉우리나 큰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그 일대를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부정한 사람의 통행을 금하였고,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제물로는 닭, 돼지머리, 술, 과실, 떡, 포 등을 올리는데, 어떤 지방은 무녀의 가무까지 곁들인다. 민간에서는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그 못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하여, 개를 잡아 그 피를 산봉우리에 흘려 놓는 일도 있었다.

산천기우(山川祈雨)는 천신 또는 용신에게 비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기우제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산정산이나 강,못,늪, 보 등에서 지낸다. 옛날부터 산꼭대기나, 못 등에서 마을 공동제를 지내는 곳이면 한발 때마다 기우제를 지낸다. 다만 기우제 지내는 곳으로 산제당, 서낭당은 피하여 선택했다.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는 천신인 산신이 내려오고, 용신과 수신이 거처는 신성한 곳이 된다. 그런데 이런 곳에 가장 불결한 짐승들의 피를 뿌리거나 시체를 던져서 천신,산신,수신,용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하고, 그 노여움이 비를 뿌리게 하는 형태의 기우제도 있다. 돼지 또는 개의 피를 깊은 못이나 강, 또는 늪에 뿌리거나 머리를 넣는 방법이다.

옛날부터 "가물 때 키를 씻으면 이에 응하여, 비가 온다"는 데서 비롯된 기우 방법이 있다. 농가에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키는 부정한 것이 붙어 있으므로 이것을 내나 강물에 씻으면 용신이나 수신이 노하여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인들이 하는데, 냇가에 나가 키로 물을 떠올려 뿌리며 "비요! 비요!"한다.

사람들은 명산(名山), 명소(名所), 성소(聖所)로 알려진 곳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만약 이곳에 묘가 자리하면 공간의 질서가 어지럽혀지며 부정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비를 내리지 않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몰래 자리잡은 묘들을 파내는 일이 곧 가뭄을 멎게하는 해결책이었다. 이 일은 마을 부녀자들이  맡았으며, 부녀자들은 산을 뒤져 묘들을 찾아 내고 호미로 파헤쳐 관을 꺼낸 후에는 그 자리에 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소변을 보는 것은 비를 관장하는 신들로 하여금 더러워진 공간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리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한발이 계속되면 집집마다 병(甁)에 물을 넣고 버드나무 가지로 마개를 해서 꺼꾸로 매달아 놓으면 가지와 잎을 따라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렇게 물이 떨어지듯 비가 오도록 빈다. 또 냇가에 나가 모래를 긁어 모아 두둑하게 쌓고 거기에 버들가지를 꽂아 물을 뿌리고 버들가지에 떨어지는 물방울 같이 비가 오도록 비는 것도 있다.

이외에 무당을 불러서 기우하고, 장터를 냇가로 옮겨 시장를 열어서 기우하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보다 무서운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물푸는 도구를 만들어 내어 단 한방울의 물이라고 논에 대고, 산천에 기우하는 등  처철한 생존의 싸움을 하였다. 댐이 건설되고 수리시설과 양수시설이 완비된 오늘에도 비가 오지않으면 가뭄으로 걱정과 고생을 하는데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 그 옛날이야 말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우산도 쓰지 못하게 하고 비를 그대로 맞았다.

지난 봄부터 가뭄이 심했다. 아마 올해도 어느 시골에서는 기우제를  지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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