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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민속(2) - 길쌈, 김장품앗이, 마무리 풍속, 날씨점과 일기예보, 농악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2.01|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옷감을 짜는 길쌈일

옛날에는 옷감을 주로 어머니들이 베를 집에서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삼, 모시, 목화, 누에 등에서 실을 뽑아 삼베,  모시, 무명, 명주 등의 옷감을 짰다. 이렇게 옷감을 짜내는 일을 길쌈이라고 한다.

아녀자들의 길쌈은 남정네들의 농사일과 함께 그 옛날부터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으로 중요시 여겼다. 신라에서는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해마다 음력 7월 15일 부터 서울 안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내기"를 했다. 한 달 만인 8월 한가위에 승부를 가리고 한 판을 놀았다는 이 기록에서 볼 때, 우리 조상들은 길쌈의 보급과 기술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전통적인 우리의 옷감은 여름철에 주로 입는 삼베와 모시, 목화에서 만든 무명, 누에의 고치 실에서 뽑은 명주 등이 전부였다. 요사이는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 옷을 직접 사서 입고 거의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봄에 직접 삼씨를 뿌리고, 그것을 수확하여 삼을 삼고(실을 만들고), 삼을 날고(실을 정리하고),베틀로 삼을 짜서 우리 조상들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러한 길쌈은 무척 손이 많이가고 지루하고 고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길쌈을 하면서 길쌈노래를 부르거나 길쌈두레라고 해서 여럿이 모여 서로 도와 가면서 길쌈을 했다.

길쌈을 해서 옷감을 짜고, 자와 가위, 실로  재단을 하여 옷을 직접 만들고, 풀을 빠닥하게 멕여서 숯불 다림질을 해야만 한 벌의 옷이 되는 것이다.

요새는 먼저 어떤 상표인가를 보고 그 옷의 좋고 나쁨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길쌈을 얼마나 곱게 짜서 풀을 멕이고 어떻게 솜씨 있게 다림질을 했느냐를 보고 옷입는 맵씨를 칭찬했다.

김장품앗이

겨울의 반양식은 김장김치다. 김장은 겨울 3-4개월 동안 채소 공급원을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이다. 10월 상달이면 농사일은 거의 마무리 되고 이제 농촌에서는 겨우내 쓸 땔감 준비와 소먹이 장만, 장담그기 위해 메주를 쑤는 일과 김장김치를 하면 된다.

김장김치는 배추, 무우를 주재료로 한다. 미나리, 갓, 파, 생강, 마늘과 같는 향신미가 있는 채소를 부재료로 사용하고 소금, 젓갈, 고춧가루로 간을 맞추어 겨우내 잘 시지 않도록 보관해 두고 먹는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김치는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나 필요한 음식이다.

우리 식생활에서 김치가 빠진 밥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만큼 김치는 우리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자, 필수 영양소의 주요 공급원이다. 김치의 맛은 각종 야채류의 신선항 향미, 소금의 짠맛, 젖산의 신맛, 향신료의 매운맛,젓갈의 김칠맛 등이 서로 어우러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조상들의 걸작품이다.

김장을 담그는 가장 적당한 시기를 경기도에서는 입동(立冬) 전후 3일이라고 한다. 김장을 담그는 데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장철이 되면 대소가의 여러 동서간, 또는 가까운 친지간, 한마을 이웃간에 김장하는 날이 중복되지 않도록 날짜를 잡아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김장을 담근다.

일단 김장거리가 장만되면 배추의 겉잎과 고랑이를 떼고 소금물에 절인다. 배추를 절이는 동안에 양념거리를 다듬고,무우를 손질해 배추 속을 준비한다.  알맞게 절인 배추를 3-4명이 물가에 둘러앉아 차례로 건네가면서 헹구어 큼직한 체반에서 물기를 뺀다. 그런 다음 한사람은 배추를 갖다 나르고, 다른 한사람은 절인 배추와 양념을 자배기에서 머무린다. 또 다른 사람은 다 만들어진 김치를 김장독에 차곡차곡 가져다 놓는다.

이러한 김장 품앗이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잘 활용을 한다.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그리고 혼자 담그기엔 벅찬 김장김치를 가까운 이웃이나 친지들끼리 모여 김장품앗이를 통해 넉넉히 해결해 가고 있다.

끝맺음을 중시하는 풍속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쯤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단골로 등장하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섣달이 되고, 그 마지막 날은 그믐이 된다. 우리 풍속 가운데 섣달 그믐날이 마무리하는, 끝맺음하는 대표적인 날이다. 제석, 제야라고도 하는 섣달 그믐날은 옛날에는 궁중에서 연종방포(年終放砲)라 하여 대포를 쏘았으며, 지금은 보신각에서 33천에 울려퍼지는 재야의 종을 33번 친다. 이 날까지 연중의 거래 관계를 청산해야 하며, 밤 12시가 지나면 정월 보름까지 빚 독촉을 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 속담에 '설은 들와 새고, 보름은 나가 샌다'라는 말이 있어서 이 날은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은 집으로 귀향하고, 이웃에 빌려오거나 빌려준 농기구나 세간살이들은 새해들어서 다시 빌려야  할지라도 섣달 그믐날은 반드시 돌려 주어 자기집에서 새해를 맞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섣달그믐날의 풍속은 마루리만을 짓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 새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세찬이나 차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여야 하고, 남자들은 집안팎을 깨끗이 청소한다. 특히 집 주변의 외양간과 거름을 퍼내어 설맞이 준비를 하는데, 이는 묵은 해의 잡귀와 액을 모두 물러가고 신성한 가운데 새해을 맞이하려는 마음의 준비이다. 그리고 마당을 깨끗이 쓸고 난 쓰레기를 태우는데 이것은 잡귀를 불사른다는 신앙적 속신이기고 하다.

이날 또 1년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사히 지나게 되었다는 뜻에서 사당에 절하고 어른에게도 묵은 세배를 올린다. 이날 밤에는 곳간, 장독대, 축사 등 집안의 곳곳에 불을 밝혀 놓고 잡귀의 출입을 막고자하는 수세(守歲)를 한다. 이날 일찍 잠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어 그렇게 안되기 위하여 재미있는 놀이나 고담 등을 읽고 들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잠을 참지 못해서 잠에 들면 얼굴에 밀가루 칠을 하여 아침에 일어나 보고 서로 웃는다.

섣달 그믐날의 풍속은 한해를 마무리하면서도 새해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날인 것이다.

호미씻이 나 서당의 책거리도 농사일과 공부를 마무리하는 풍속의 하나이다.  호미씻이는 여름농사가 거의 끝나 밭이나 논을 매는 호미가 필요없게 되어 씻어 둔다고 하여 생긴 이름으로, 대개 음력 7월경 날을 잡아 하루를 즐기는 농가의 축제이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시냇가나 산기슭의 나무그늘에 모여 징, 장구, 괭꽈리, 날날이, 북 등을 치면서 흥겹게 하루를 즐긴다. 또 마을에서 농사가 제일 잘 된 집 머습을 뽑아 우두머리로 삼고, 그 머슴에게 삿갓을 씌우고 황소에 태워 머슴들이 에워싸고 노래하고 춤추며 마을을 돌아 다닌다. 그 집의 주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주식을 한턱 내게된다. 이 날 주인들은 머슴에게  옷 한벌과 매기돈이라 하여 약간의 돈을 준다.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을 한 권 다 배우고 나면 학부모들이 훈장님께 음식을 차려 대접했다. 이것을 "책거리"라고 한다.책거리는 훈장님의 노고에 보답하고 학동의 공부를 더욱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이때는 반드시 송편을 장만했다. 송편은 속이 비어 뚫려져 있다. 학동들의 지혜구멍이 송편처럼  펑 뚫리라는 바램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요사이도 한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되기전에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수박이나 떡을 준비해서 선생님께 감사하는 책거리를 한다. 이러한 풍속은 바로 서당의 책거리에서 연유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하여 시작을 중요여겼는 반면에,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니 용두사미(龍頭蛇尾)니 하여 끝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것을 경계한다. 책거리나 호미씻이는 둘다 끝맺음을 중시하며 그 마침을 감사하는 민속이다. 우리조상들은 시작을 중히 여겼지만 마무리도 철저하게 매듭을 지었다.

이제 "생활 속의 옛이야기"를 마무리 해보자. 삼년동안 줄곧 옛날의 일상생활 풍속을 가지고 이 난(欄)을 이끌어 왔다. 여기서 이야기된 것은 일상생활 속의 삶의 지혜와 방법이 숨겨져 있다.

날로 사라져가는 민속문화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재조명하는 일은 현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책임인 동시에 사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한 민속문화를 통하여 조상들의 삶을 이해하고 거게에 담겨진 선조들의 생활슬기를 배워야 한다. 전통적인 것은 비과학적이요, 불합리한 것이라 단정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옛 것}이라면 모두가 보잘 것 없는 것, 쓸데 없는 것, 허무맹랑한 것, 하루 속히 떨쳐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승적인 것이라 하여 그것이 모두가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특히 민속문화는 우리 조상들이 오랜 생활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삶의 지혜요, 기술이다.

"옛 말 그른데 없다" 는 속담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듯이, 옛 것 하나하나에는 반드시 어떤 의미와 오묘한 진리가 함축되어있다. 많은 민속문화에는 우리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삶의 지혜와 방법이 숨겨져 있다.  그러한 삶의 지혜와 방법을 밝혀내고 그것을 메말라가는 현대생활에 조화시켜 현대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일이 오늘의 우리들이다.

조상들의 날씨점과 첨단 일기예보

모처럼 새 옷을 입고 외출을 했거나, 중요한 큰 행사를 앞두었는데 비가 내려 하늘을 원망한 적이 종종 있을 것이다. 날씨만큼 우리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드물 것이다. 특히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짓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날씨의 예측이 생존과 맞물려 있어 초미의 관심사였다.

요즘처럼 TV,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해서 비올 확률까지 그날의 날씨를 예보해주는 기상청이 있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다음날의 날씨를 알 수 있었을까?

근대에 와서 기압.기온.습도.바람.구름 등의 기상요소들을 측기(測器)로 재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과학적인 일기예보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팩시밀리.기상위성 등 첨단과학기재들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일기예측은 요사이처럼 정확하고 장기적인 예보일 수는 없었으나, 해와 달, 별, 바람, 구름의 상태나 그 변화, 또는 여러가지 생물의 특이한 행동 등을 보고 다가올 일기의 변화를 예측했다. 이러한 날씨점은 일상생활에서 관찰과 경험에 의한 예측이었고 어느 정도 과학성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개구리가 처마 밑에 들어오면 장마진다.
개미가 자기 집 구멍을 막으면 비가 온다.
개미가 이사하면 비가 온다.
고양이가 얼굴 씻으면 비가 온다.
두꺼비가 나오면 장마가 진다.
소나무에 황새가 앉으면 비가 온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제비집에 제비새끼가 떨어지면 장마가 온다.
개가 풀을 뜯어 먹으면 그 해에 가뭄이 온다.

동물들의 감각은 사람보다 휠씬 더 예민하다. 특히 개미, 황새, 제비등은 다른 동물보다 기압의 변화에 예민해 사람보다 먼저 인지를 하고 특이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굴뚝의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깔리는 것이나 기압에 예민한 제비가 땅에 가까이 나는 것은 저기압때문이다. 저기압은 비를 오게 한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습지에서 수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생물이다. 그런 생물이 땅으로 나온다는 것은 비 올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기록에도 이러한 동물의 일기예측의 사례를 적고 있다.

백제 기루왕 40년(116) 6월에 "큰비가 내려 한강의 물이 넘쳐 인가가 물에 떠서 허물어졌다. 이에 앞서  황새가 도성문에 보금자리를 만든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마땅히 수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 을해왕 41년(350) 4월에 "큰비가 십여일 동안 내려 평지의 물깊이가 서너자나 되었고, 관가와 민가가 물에 떠서 허물어졌다. 이에 앞서 월성의 모퉁이에 황새의 보금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장차 큰물이 날 징조라고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과연 들어 맞았다"고 기록하였다. 황새가 집을 지은 것이 3월이고 4월에 큰비가 내렸다 하였으니 4월의 큰비를 3월에 예측하였던 것이다.

굴뚝에 연기가 깔리면 비가 온다.
동남풍이 불면 비가 오고 서북풍이 불면 날이 맑다.
가뭄때 햇무리나 달무리가 생기면 비가 온다.
서쪽에 무지개가 뜨면 장마가 진다.
달이 몹시 묽으면 가뭄이 든다.
정월 보름날 달빚이 희면 큰 바람이 있고, 붉으면 큰비가 있을 징조다.
초복에 비가 내리면 삼복 중에 모두 내린다.
동지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오뉴월에 비가 많이 온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어부들은 농사에 대한 궁금증, 물이나 바람 등 날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해와 달, 별, 바람, 구름의 상태나 그 변화가 옛날에 사용한 날씨예측의 잣대였다.

이러한 날씨점은 대부분 그날 또는 하루나 이틀정도의 단기예보이지만 상당히 긴 기간의 장기예보를 위한 것도 있었다. 특히 한해의 첫날인 설날, 첫 만월인 정월대보름, 한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2월에는 장기예보를 위한 농사점, 일기점 풍속이 많았다.

다음은 장기적인 일기예측의 풍속이다

정월초하루날 바람이 없이 날씨가 맑으면 풍년이 들고, 해가 붉으면 가뭄이 들고, 해가 푸른 빛이면 풍재가 들고,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면 홍수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정월 열나흘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 속에 집어 넣는다. 이것을 달불이라고 한다. 이튿날인 대보름날 새벽에 그것을 꺼내어 점을 쳐본다. 그 콩알들이 붇고 안 붇는 것으로 그달의 수해, 한해를 점친다.

경남지방에서는 구름이 남쪽에 끼면 남쪽, 서쪽에 끼면 서쪽에 풍년이 든다든가 비가 오면 그 해 내내 물이 흔해서 풍년이 저절고 든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조그마한 자연현상이나 동물들의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하여 실제 생활에 활용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하기 보다는 오랜 생활경험을 통해서 얻어낸 지식이었다. 경험에 바탕을 둔 생활과학도 현대의 첨단과학에 못지 않게 예측성이 뛰어났다.  물론 우리 조상들의 일기점 날씨점은 오늘날 처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근거 없는 미신이 아니라 생활경험에서 얻어낸 생활과학이었다.

농악

깨갱 깨갱~~ 꽹과리를 치면 그 소리가 삼십리 밖에까지 들린다고 한다. 한민족이면 누구나 이 소리를 들으면 귀를 기울이고 가슴 설레인다. 김매기 논매기 모심기 등의 힘든 두레 일을 하면서 괭과리나 북 장구 징 등을 쳐서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켰다. 설날 정월대보름 추석의 각종 명절때도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풍물을 쳤다.또한 새로 집을 지을때, 줄다리기와 씨름판에서도,잔치집이나 사람이 죽은 상가에서도 깨갱깨갱쳤다. 꽹과리 북 장구 징 법고 나팔 등을 치는 긴 상모를 쓰고 돌리는 사람도 있고, 정자관에 도포를 입은 양반, 나무총을 멘 포수,예쁜 각시,고깔에 장삼을 입은 중으로 분장하고 간단한 몸짓과 춤으로 마을사람들을 웃기는 잡색도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일년 열두달 기쁠때나 슬플때나 농악과 더불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농부들은 여러가지 농악기를 치면서 흥겹게 춤을 춘다. 피아노나 첼로처럼 크고 무거워 가만히 앉아서 연주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농악의 악기는 무게가 무겁지 않고 비교적 작기때문에, 사람들이 몸에 지닌 채 자유롭게 연주하면서 무용도 할 수 있었다.

김매기 모내기 추수 등을 할 때는 일이 많아 여럿이 모여 함께 일을 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농악을 치면서 힘든 농사일을 감내해 내었다.

농악을 치는 놀이판에서는 절로 어깨를 들석여지고 신명나게 만든다. 농악소리만 들으면 반복되는 고된 농사일에서 흥을 불어넣어 피로를 잊게 한다. 농악판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아무 꺼리낌없이 한데 어울린다. 즉,마을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신명나게 춤추는 축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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