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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민속(5) - 소금과오줌싸개, 옹기와장독대, 원두막과서리, 책거리, 첫돌잔치, 춤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2.01|조회수282 목록 댓글 0

소금과 오줌싸개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시절에 키를 덮어쓰고 이른 아침에 소금얻으러 가서 이웃집 아주머니께 혼이 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똥 오줌을 가릴 만큼 자란 어린 아이가 잠자리에서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을때,그 날 아침 어머니는 아이에게 키를 씌우고 쪽박을 들려서 이웃에 소금을 얻으로 보낸다. 키가 작아서 머리에 쓴 키를 질질 끌고 소금을 얻으로 오면 그 이유를 미리 알기 때문에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부엌일을 멈추고 소금을 주고 난뒤 빗자루나 부지깽이로 혼을 내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울면서 집에 돌아와 아침을 얻어온 소금으로 반찬을 하여 밥을 먹게 된다. 오줌싸개 아이는 이렇게 호되게 놀라고 창피를 주면 스스로 조심을 하여 오줌을 가리게 된다고 믿었다.

여름이야 홑이불을 덮고 자니까 오줌을 싸도 쉽게 빨래를 할 수 있지만 한겨울에 두꺼운 솜이불에 오줌을 싸면 큰 일이다. 추운 겨울에는 잘 마르지로 않고 애를 먹는다. 그래서 여름보다는 특히 겨울철 이른 아침에 키를 덮어쓴 오줌싸개꾼들을 동네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소금을 다량 생산해 왔으며,시품을 저장하기 위하여 염장저장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젓갈, 절인 생선, 장아치, 김치 등 소금을 많이 사용하는 식품들을 섭취해왔다.

성경에도 "너희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는 구절이 있다. 소금은 물질이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활을 한다. 소금이 이처럼 부패를 방지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도덕의 타락을 막고 순화향상시키는 참사람이 되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풍속에 보면 장사하는 집에 첫 맛수 손님이 흥정을 하다가 그냥 가면 소금을 뿌린다. 소금으로 부정을 물리는 것이다. 음한 나쁜 기운(-)을 썩는 것을 방지하는 양의 기운(+)으로 물리치려는 의도이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데 쓰일 뿐만아니라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서도 필수품인 소금은 물물교환시대에는 화폐의 역활도 했고 지배자나 사원에 바치는 공물이 되기도 하였다

옹기와 장독대

우리 일상생활에서 옹기 만큼 다양하고 유용하게 쓰이는 생활도구는 드물 것이다.옹기는 단지, 독, 항아리 등으로 불리는데, 술을 담으면 술독, 물을 담으면 물독, 간장독, 김치독, 쌀독, 소금단지, 된장항아리, 꿀단지, 양념단지 등 무엇이든지 담으면 되는 다용도 용기이다. 어디 이뿐인가, 풍년을 기원하고 집을 지키는 가신(家神)인 조상단지의 신체도 옹기로 만든 단지에 햇곡식을 넣어 만든다.

옹기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집안에서는 장독대이다.  집안의 뒤안이나 안마당 양지 바른쪽에 한 단 높여 만든 장독대에는 간장단지, 김치독, 소금항아리, 된장독, 떡시루, 약탕기 등등 옹기로 만든 것이 다모여있다.

특히 이곳은 그 집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장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장은 그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기본 식품이다. 장맛이 좋아야 그해 집안이 편안하다고 믿어 온 우리 어머니들은 장독대 간수에 몹시 마음을 썼다. 누가 보아도 보기 좋도록 장독들의 키 맞추어 가지런히 옹기종기 을어 놓고, 어느 것이나 모두 반들반들하게 윤이 흐르도록 매일 질 손질하여 뚜껑을 덮어 놓는다.

늦가을에 콩으로 메주를 쑤어 겨우내 안방에서 띄운다.  정월 말경에서 3월 초 사이에 메주와 소금, 물을 넣고 장을 담근다. 장을 담글 때는 고추와 대추, 빨갛게 달군 참숯을 항아리 제일 아래에 넣는다. 고추는 남아의 상징으로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고, 장을 붉은색으로 색내기 위한 것이다. 참숯은 항아리 안에 있는 냄새를 빨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모든 것은 오랜 생활경험에서 나온 지혜이다.

이처럼 장독대를 소중히 간수하고 장담그는데 주의하는 것은 장이 변질되지 않고 맛있게 숙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을 게을리 하면 장맛이 변질되기 쉽다. 만일  장맛이 변질되면  그 한 해의 음식은 제맛을 잃게 된다. 그러면 맛이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면 가족의 건강이 상하고 집안이 평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우리 어머니들은 정성껏 장을 담그고  장독대를 간수했다.

원두막과 서리

참외나 수박을 심은 밭에는 으레껏 밭을 지키기 위하여 밭머리나 밭 한가운데에  원두막을 짓는다. 원두막은 기둥 4개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보릿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만들고, 그 밑에 판자나 통나무로 높게 바닥을 만든다. 사방은 보릿짚이나 밀짚을 엮어 상하로 개폐식으로 더우면 막대기로 버티어 열도록 되었으며 땅에서는 사다리를 놓아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보리나 밀을 베고 그 밭에 주로 참외 수박을 심기 때문에 원두막을 지을 때는 보릿짚과 밀짚이 흔하다.

원두(園頭)라는 말은 원래 참외,오이,수박,호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중에서도 수박이나 참외 딸기 등은 현장에서 따먹기 쉽웠고,또 옛날에는 짓궂은 마을 청년들의 '서리'하는 버릇을 막기 위하여 원두막을 짓고 지켰다.

여름철의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고향, 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즐거운 추억거리다. 오후에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참외밭이 곁에 있는 개천가에서 멱을 감으면서 원두막의 동향을 살핀다. 배가 실쭉해지면 또래 아이들은 근처 참외밭을 살살 잠입해 들어간다. 두서너 명은 원두막에서 낮잠 자는 주인의 동향을 살피고 한두 명은 살금살금 기어서 밭 가장자리에 가서 얼른 한두 개를 따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는 헉헉거리며 익지도 않은 새파란 참외를 이빨로 아삭아삭 거리며 '마파람에 개눈감추듯이' 먹어 치운다.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참외 꼭지까지 다먹어 치운다. 그래서 참외서리의 뒷맛은 쓴맛이 된다. 참외 꼭지는 왜 그렇게도 쓴지 지금껏 먹었던 그 맛있던 참외 맛은 금세 사라지고 모두들 퇘퇘하면서 우거지상이 된다.

참외서리는 번번히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구쟁이들이 참외밭 근처에서 멱을 감고 있으면 주인 할아버지는 끝까지 개천가에 서서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핀다. 그러면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아예 일찍 집으로 돌아간다.

밤은 개구쟁이들에게는 좋은 참외서리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더위와 모기를 피해 동구밖 버드나무 아래로 대여섯 명의 꾼(?)들이 마실 나온다. 저녁으로 먹은 보리밥은 금세 소화가 다되고 밤이 으슥해지면 마음은 참외밭으로 향한다. 우선 그 꾼들 가운데 뜀박질을 잘하는 돌격대가 옷을 홀랑 다벗고 알몸의 용사가 된다.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개천가의 진흙으로 온몸을 검게 위장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참외밭 근처까지 기어간다. 또다른 한 명은 원두막 근처에서 주인이 잠자는지 어떤지를 뻐꾸기 소리로 알려준다. 뻐꾹뻐꾹하고 울면 돌격대는 행동을 개시한다. 주인도 뻐꾸기 소리가 나면 아예 큰소리 "다른 참외 상하지 않게 조심해라"하고서는 그냥 내버려둔다.

이러한 참외서리에는 불문율이 있었다. 서리를 하되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 서리한 참외는 두고 두고 먹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먹어 치운다.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요기나 할 정도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집에 계속해서 서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골고루 한다.

서리는 장난꾸러기 마을 악동들이 주로 떼를 지어서 농사지어 놓은 농산물을 훔쳐먹는 일종의 장난이다.여름철의 참외서리와 수박서리 뿐만 아니라 봄에는 밀 서리, 가을에는 콩서리와 사과서리, 겨울에는 닭서리까지 한다.

밀서리는 밀이 누릇누릇 익어 갈 무렵 마을의 꾼들이 떼를 지어 오후에 소먹이와 소꼴을 하러 간다. 소꼴을 다베어 놓고는 들판의 밀밭으로 가서 한아름의 밀대를 베어와 불을 붙이면 밀이삭이 뚝뚝 떨어지게 된다.이렇게  잘 구워진 밀을 손바닥에 놓고 후후 입김을 불어 가며 비비면 탄 껍데기는 날아가고 익은 밀알만 남는다. 가을의 콩서리도 밀서리와 비슷하다. 나무꾼들 아이들이 나무를 한 짐 지고 내려다가 모여서 쉬는 참에 콩을 꺾어 모닥불을 지피고 그 위에 콩가지를 얹어 놓고 이리저리 뒤적이면 콩꼬투리 안에서 콩이 적당히 익게 된다. 이렇게 익은 콩을 주위에 둘러앉아 까먹는다. 밀서리와 콩서리는 주로 오후에 하는데 반하여, 곶감서리나 닭서리는 밤에 행해진다.

긴긴 겨울 저녁에 어느 사랑방에 모여서 새끼를 꼬거나 혹은 놀음을 하다가 자정이 넘어 속이 출출해진다. 그 중 한두 사람이 허술한 집 닭장에 들어가 소리 없이 닭을 잡아다가 볶아 먹는다. 그런데 이때 닭주인도 함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인  자기집  닭인 줄도 모르고 같이  끼워 먹는다..

이처럼 서리는 도둑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은 범위 안에서 단지 약간의 허기를 채우는 장난인 것이다.

원두막과 참외서리는 오늘날의 삭막한 인정 속에 오아시스 같은 마음의 여유를 주는 풍속이었다. 원두막은 예로부터 참외밭을 지킨다는 구실 이외에도 동네 사람들의 좋은 피서지가 되었고 밤이면 젊은이들의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또 길손들에게는 땀을 식히고 가는 좋은 휴식 장소가 되었다.


책거리 풍속

요즘처럼 국민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에는 일종의 사설 교육시설로 서당이 있었다. 서당에는 훈장과 생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명한 훈장님을 문중이나 마을에서 초대하여 서당을 세웠다. 훈장은 선생님이고 접장은 학생의 대표 통솔자를 말하며 생도는 일반학생이다. 서당에서는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명심보감 통감 등을 비롯하여 경서를 배우고,글을 짓고,글자를 쓰는 것 등을 배웠다.

선비들(요즘은 학생)은 대개 서당(국민학교)를 거쳐, 향교 또는 4학(중고등학)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를 했다.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을 한 권 다 배우고 나면 학부모들이 훈장님께 음식을 차려 대접했다. 이것을 "책거리"라고 한다.책거리는 훈장님의 노고에 보답하고 학동의 공부를 더욱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이때는 반드시 송편을 장만했다. 송편은 속이 비어  뚫려져 있다. 학동들의 지혜구멍이 송편처럼  펑 뚫리라는 바램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요사이도 한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되기전에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수박이나 떡을 준비해서 선생님께 감사하는 책거리를 한다. 이러한 풍속은 바로 서당의 책거리에서 연유한 것이다.

우리 농사일에서도 책거리와 비숫한 끝맺음을 하는 호미씻이라는 풍속이 있다.호미씻이는 여름농사가 거의 끝나 밭이나 논을 매는 호미을 다쓴 후에 호미를 씻어 둔다는, 농사를 일단락 짓는다는 뜻에서 각가정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흥겹게 하루를 즐기는 행사이다.

우리생활에서 작심삼일이니 용두사미니 하여 끝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것을 경계한다. 책거리나 호미씻이는 둘다 끝맺음을 중시하며 그 마침을 감사하는 민속이다. 우리조상들은 '시작이 반이다'하여 시작을 중히 여겼지만 마무리도 철저하게 매듭을 지었다.

무병장수, 부귀영화을 축원하는 첫돌잔치

우리는 보통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날을 흔히 "귀빠진 날"이라고 한다. 생일 가운데도 태어나서 처음 맞는 첫돐과 60년 만인 환갑을 중하게 여겼다. 생일이라는 말은 손아랫사람에게 쓰여왔고, 손윗사람에게는 생신 선성, 나라임금에게는 탄일 탄신이라고 상하로 나누어 불렀다. 이러한 관행은 조선말기에 생긴 것이고 생일에 대한 존비의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생일은 돐이나 환갑처럼 대규모로 잔치를 베풀지 않고 그저 가족끼리 초촐하게 평상시 보다 음식을 조금 더 준비한다. 음식도 미역국이나 고기국 정도 끓여 먹는게 고작이고 부유한 집에서는 떡을 만들어 먹을 정도이다. 요사이는 어린이 생일에도 친구들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치르는데 이것은 우리고유의 민속이 아니다.

보통 아기의 생일을  첫돐,두돐, 세돐 등으로 말하는데,아이가 출생하여 처음 맞이하는 생일을 첫돐이라 한다. 원래 돌이란 말은 주(週).회(回) 등과 같은 뜻을 지닌 말로서 일년의 기간을 단위로 하여 반복되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옛날에는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유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고 질병이 많기 때문에 아기가 돌을 맟이한다고 하는 것은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계기가 되므로 이를 축하하는 날이 첫돌이다. 그래서 첫돌날에는 행하는 여러가지 풍속은 아기가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고, 높은 벼슬과 많은 복이  평생 충만하도록 비는 행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돌날에 할머니나 어머니는 우선 삼신상을 차리고 아이의 장수복록(長壽福綠)을 축원하는 삼신을 빈다. 우리 속담에 아이의 성질이 괴팍하거나 말을 잘듣지 않으면 "삼신을 누가 빌었는지 대게 못빌었다"고 질책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첫이레, 두이레, 세이레, 백일, 첫돌날에 주로 삼신상를 차리고  아이의 장래를 축원한다. 이때 잘못 빌면 앞날이 밝지 않다고 해고 돌날 삼신비는 일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온갖 정성과 마음을 다하며 축원한다. 이 날 주인공 아기는 돌복으로 치장을 하고 돌주머니를 달아준다. 요즘 돌복으로 사내아이는 머리에 복건을 쓰고 한복에 오방장두루마기나 전복을 입히고, 계집아이는 굴레에 치마저고리나 당의를 입힌다. 그리고 허리에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길게 만들어 아기의 허리에 한 바퀴를 돌린다.

돌복을 입히고 돌상을 차린 다음 돌잡이를 한다. 무시무종(無時無終)과 길상(吉祥)의 무늬로  다리를 투각 장식한 돌상에 갖가지 돌음식을 준비한다. 돌상에 차려진 음식을 그냥 차려진 것이 아니라 모두 상징적 의미와 축원이 깃들여져 있다.

떡과 과일이 주가 되는데, 떡의 종류만 하더라도 12가지가 넘게 마련한다. 떡은 주로 백설기(흰무리), 붉은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 찹쌀떡, 송편, 무지개떡, 인절미, 계피떡 등이다. 이 가운데 백설기와 수수경단은  꼭 해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백설기는 아기의 신성함과 정결하기를 축원하는 뜻에서 뿐만 아니라 "백"이라는 숫자가 들어가기에 장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수수경단(수수팥단지)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으로,  이 떡을 해주면 귀신의 출입을 막고 퇴치하여 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무병하게 잘 자라는 축원이 담겼다. 백설기와 수수경단을 아기가 열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해주면 아기가 잘 넘어지지도 않고 좋다고 한다.

인절미와 찰떡은 찰기운이 있는 음식이므로 끈기있고 마음이 단단하라는 뜻에서 해주는 음식이다. 송편은 속이 빈 것과 속을 넣은 것의 두 종류를 만드는데 속을 넣어 만든 것은 아기의 속이 차라는 의미이며, 속이 빈 것은 의견이 넓으라는 기원으로, 깊고 깊은 마음과 넓은 아량을 베풀 수 있는 뜻깊은 마음씨를 가져라는 뜻이다.

무지개떡은 아기의 무궁무진한 꿈이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떡이다. 이렇듯 떡 하나하나에 까지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의 기원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일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여러색깔의 과일을 안배하여 돌상을 차린다.

돌상은 떡과 과일이 주류를 이루고 이 밖에 돌잡이를 위한 쌀.붓.책.활.돈 등의 여러가지 물건을 진열한다. 남아의경우에는 쌀.활.책(千字文).붓.먹,종이.실.대추.미나리.돈 등을 떡과  함께 놓는다. 여아의 경우는 쌀.반절필(反切筆).먹.종이.실.대추.면류.돈.자.부젓가락.인두.바늘.실 등을 올려놓고 돌잡히기를 한다.

돌잡히기는 아이로 하여금 돌상에 차려진 물건을 마음대로 골라 잡게 하여 그 아이의 장래를 점히는 것으로 돌잔치의 가장 흥미있는 행사이다. 돌상 앞에 무명피륙 한 필을 접어서 깔아 놓거나 포대기를 접어서 깔고 그 위에 아이를 앉혀 놓고 아버지가 돌잡이가 되어 아이로 하여금 골상 주위를 돌면서 물건을 집게한는데, 제일 먼저 집는 것과 두번째로 집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그 집는 것으로 보아 그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미리 점쳐보는 면과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을 알아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아기가 집는 물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속신이 있다.

활.화살 : 무인이 된다

국수.실 : 수명이 길다

대추 : 자손이 번창한다.

문방구 : 문장으로 크게된다

쌀 :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다

자.바늘 : 재봉을 잘하거나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된다

칼 : 음식 솜씨가 뛰어나게 된

떡 : 미련하다

이렇게 차린 돌상 앞에 돌맞이 어린이가 재롱을 부리고, 어른들은 이것을 지켜보면서 아이가 잡는 물건으로 장수를 빌고 문무(文武)의 활달과 부귀를 기원한다.

돌상에 차린 돌음식은 친척과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좋다. 돌음식을 받으면 그 아기의 복록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인사와 선물을 답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돌음식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들음식을 담아온 그릇을 씻지 아니하고 그 그릇에다 적으나마 물품이나 돈을 답례로 보내준다. 답례의 물건은 실.의복.돈.반지.수저.밥그릇.완구 등이다. 이러한 담례품은 아기의 장례를 위한 부귀장수를 빌고 함께 경하하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본다.

이처럼 우리의 돌이나 생일잔치는 오늘의 어린이들처럼 친구들을 불러서 단순히 잘먹고 노는 것이 아니고 건강과 복을 기원하고 바래는 엄숙한 날이기도 하다.

첫돌날의 모든 음식과 풍속은  무병장수와 장래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내용이 그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사람은 임신, 출생, 백일, 돌, 성인식, 결혼, 회갑, 장례, 제례 등등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때 적절한 시기에  그 당사자를 위한 의례를 행한다. 이것을 우리들은 인생의례, 평생의례, 또는 통과의례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평생의례는 관혼상제(冠婚喪祭)로 대표된다.

첫돌 다음으로 큰 인생의례는 관례, 혼례, 회갑, 장례, 제례 등이 있다.관례(冠禮)는 옛날 어린이가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기 위하여 남자에게는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고, 여자는 쪽을 찌게하는 성년의식이다. 혼례(婚禮)는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으로 관혼상제의 사례 가운데 가장 경사스럽게 여겨 혼례 당일 만은 일반 서민들도 궁중예복을 입을 수 있게 허용했다. 상례(喪禮)는 사람이 죽어 장사지내는 예법으로 예를 숭상했던 우리 조상들은 그 의례절차를 중시여꼈고 그만큼 복잡하고 까다롭게 했다. 제례(祭禮)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선조의 신주을 모시고 명절날이나 돌아가신 날, 혹은 시월에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여기서 볼때 한국의 관혼상제는 서양의 통과의례와 다른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중시여겨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출생의례에서 죽을때까지만 의례를 행하는데 반해, 우리는 어른을 중요시 여겨, 조상을 중요시 여겨 돌아가신 후까지도 마치 살아계시는 것같이 모신다.  이것은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조상을 숭배해온 우리네의 좋은 풍속이다.

체를 통해서 본 부엌세간의 변화

민속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 가운데서 食生活用具 만큼 빨리 변화하는 것도 아마 드물 것이다. 가전제품의 발달과 새로운 素材의 발견으로 매일매일 부엌의 모습은 바뀌어 간다. 냉장고, 전자렌지, 전기밥솥 등등은 아궁이에 불을 짚어가며 음식을 장만했던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릇의 재료는 또한 얼마나 변했는가! 질그릇,사기그릇,유기그릇,木器에서 양은그릇(알루미늄)으로, 플라스틱으로 변하고 다시 스테인레스로, 요즘은 신소재라는 살아 숨쉰다는 바이오 세라믹그릇 까지 나오게 되었다.

막사기로 구웠던 그릇은 거칠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깨어지고, 유기그릇은 때가 잘 끼어 몇 달마다 한번씩 딱아 주어야 한다. 주부들은 제사나 새해를 맞이할 때는 몇 일씩 유기그릇을 딱아야 했다. 그러다가 잘깨어지지도 않고 가볍고 때가 잘 끼지 않은 양은이 부엌용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금에 약해서 쉽게 부식되는 단점은 가지고 있었다.

60년대 후반에 이제까지의 모든 결점을 보완한 녹슬지않고 깨어지지않는 스테인레스가 부엌을 장식했고, 가볍고 부식되지 않은 플라스틱이 그 다음을 이어 받았다. 다음은 거르는 용구였던 체를 통해서  그 옛날은 부엌세간은 한단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속담에 "체로 물 긷는다" "체에 물 붓기다" 라는 말이 있다. 쳇불의 구멍이 아무리 작아도 물만큼은 다 걸러낸다.  체로 물을 아무리 길어 보아야 금새 물이 빠지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 체에  물을  아무리 많이 부어 봐야 밑빠진 독보다 빨리 물이 빠진다. 이 속담은 어떤 일을 열심히 하여도 성과가 없고 일한 보람이 없을때 쓰는 말이다.

"체장수 오자 술익는다"라는 속담은 일이 순조롭게 척척 잘 이루어질 때 사용한다. 우리 전통 막걸리는 술이 익은 후에 술막지를 체로 걸러낸 후에야 먹을 수 있다. 술 담근 후에 체가 다헤어져 술을 거를 수가 없었는데  술 익자 마침  술을 거를 체 매는 장수가 왔으니 일의 앞뒤가 잘 맞은 것이다. 체를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 다니면서 다헤어진 쳇불을 갈아 끼워 주거나 새로 체를 만들어 주는 체장수가 있었다. 그만큼 체의 사용이 많았다는 말이다.

아낙네가 방앗간에서 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무엇인가 맛있는 별식(別食)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을타작을 한 후 조, 참깨 등을 알곡과 싸라기 쭉정이 검불로 골라내거나, 시루떡, 송편 등 떡감을 마련하기 위하여 떡가루를 마련할 때, 혹은 손님이 오셔서 막걸리를 거를때 주로 사용되는 체의 쓰임새 때문에 체를 치는 그 모습에서 수확의 푸근함과 별미(別味)의 정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디딜방아간이나 물레방아간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부엌세간이 바로 체이다. 체는 방아나 절구 맷돌에서 빻아낸 밀이나 쌀 콩가루를 일정한 곱기로 쳐내거나, 막걸리나 간장을 거를 때, 참깨를 씻어 말릴때에 주로 사용한다.

체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쳇바퀴, 아들바퀴, 쳇불이 그것이다. 쳇바퀴는 소나무나 버드나무를 둥글게 휘어서 한쪽에서 실로 꿰매 만든다. 가루나 액체를 거르는 그물인 쳇불은 말총, 삼 명주 등의 포백(布帛)이나, 대나무 등나무 등을 사용한다. 아들바퀴는 쳇바퀴에 쳇불을 팽팽히 붙이고 고정하는 역활을 한다. 또다시 칡넝쿨로 쳇바퀴와 쳇불, 아들바퀴를 얽어 매어서  단단하게 고정한다. 체를 만드는 재료는 이처럼 일상생활 주위에서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쳇불구멍의 크고 작음에 따라 얼레미, 도디미, 생주체, 고운체 등으로 구분된다. 철사 대나무 등나무 껍질 등으로 체불을 만든 바닥의 구멍이 성근 체은 떡고물이나 메밀가루 등을 내리며, 좁쌀이나 뉘를 고를때 쓴다. 생주체 고운체는 쳇불을 말총, 혹은 천으로 떡가루나 술, 간장을 거를때 쓰는 아주 미세한 것이다.

체질을 하는 방법은 두가지로 곡식의 알맹이나 가루를 칠때는 두 손으로 체바퀴 상하를 잡고 체를 좌우로 흔들어 사용하고, 또다른 한 방법은 술막지에서 막걸리를 거르거나 된장에서 간장을 거를 때처럼 쳇다리를 이용한다.쳇다리을 자배기나 그릇 위에 걸쳐놓고 그 위에 체를 놓고 체질을 한다.

알곡이나 가루내는 연장으로서 체는 여러가지 관련된 재미있는 풍속를 함께 가지고 있다.

정월 초하루 저녁에 야광귀를 쫒는 풍속이 있다. 속설에 야광이라는 이름의 귀신이 있다. 이것이 설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서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다가 발에 맞으면 문득 신고 가 버린다. 그러면 신발 임자는 불길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다 신발을 감추고 일찍 불을 끄고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체를 대청 마루 벽이나 또는 마당 가운데 걸어둔다.

그러면 야광귀신은 체 구멍이 많은 것을 보고 세어나가다가 마치지를 못하고 아이들의 신발을 훔칠 것을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어서 닭이 울면 도망치고 만다.

또 쳇밥 풍속은 정월 대보름날 성씨가 각기 다른 세 집의 밥을 체에 한 숟가락씩 얻어와, 절구통에 앉아서 개에게 한 숟가락 주고 자기도 한 숟가락 먹는 것이다.  이렇게 쳇밥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민속문화는 그 시대의 여건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하지만, 민속의 전체적인 틀은 큰 변함없이 지속된다. 쳇바퀴가 소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쳇불이 말총이나 천에서 나이론 줄로 변하고, 가정용 뿐만 아니라 기계화된 공업용 회전체나 진동체  등으로 체가 변화했다. 아궁이 부엌이 입식 주방으로 바뀌고, 디딜방아가 전기식 방앗간으로 변화했지만 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여전히 부엌 한 쪽에 매달려 주부들이 자주 애용하는 중요한 부엌세간이다.

축원과 애환을 신명의 춤으로 푸는 우리 풍속

역사문헌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그 옛날부터 한해의 농사를 시작할 때 나 추수를 마칠 무렵에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부르고 춤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요사이도 정초가 되면 마을사람들은 귀천을 떠나 한자리에 모여 춤판을 벌리면서 집집마다 농악을 치며 방문하여 지신을 눌러주고 잡귀를 몰아내고 마을의 무사와 그 해의 풍년을 바라며 신명나게 춤춘다.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은 크게 궁중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큰 경사가 있을 때 추는 궁중무용과 탈춤,무당춤, 살풀이, 농악춤,나비춤, 허튼춤 등의 민속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여기서는 민속무용 가운데 무당춤 탈춤 농악춤에 대해서 알아본다.

무당은 굿을 하면서 노래부르고 춤을 춘다. 무당은 춤을 통해 신의 뜻을 실제로 나타내며 무당 스스로가 신의 뜻을 창조하기로 한다.무당춤의 역활은 신을 불러들이고 신을 즐겁게 하고 신을 보내는 등 굿에서 그 기능은 다양하다.

탈춤은 탈을 쓰고 인간본래의 심성으로 돌아가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서리낌없이 표현한다. 탈춤 장단에 맞추어 탈을 쓰고 재담과 춤을 추면서 타락한 중을 등장시켜 형식적인 도덕의 추악함을 폭로하고, 몰락한 양반을 등장시며 양반들의 비리를 마구 공격해 댄다.

우리 민족의 마음씨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농악에서의 춤은 단순히 즐기는 오락으로서가 아니라 들판에서 농사의 고됨과 피로을 잊고 즐겁게 일하도록 도와주는 노동의 춤이다. 농악판에 어울린 할아버지 아저씨들은 어깨춤을 등실거리며 하루의 힘든 일에서 벗어난다. 이때는 그저 팔만 벌리고 어깨만 들석거려고 그 몸짓이 바로 흥겨운 춤이 된다.

한여름날 무더위를 씻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동구나무 그늘이나 개천에 모여들면 의례껏 노래와 춤이 나온다. '얼씨구' '좋다' '좋지' '그렇구 말구' '허허 좋아' 등의 추임새를 읊으면서 흥겹게 논다. 이때 즉흥적으로 어깨춤 보릿대춤 몽둥이춤 등의 몸짓춤이 나온다.

우리의 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향락적인 춤이 아니라 일상에서이 바램과 매듭,애환을 발짓 손짓의 진솔한 모습으로 추워지는 그런 것이다.

웃음판, 흥판, 신명판인 탈판 속의 한국인의 얼굴

`탈`은 사람의 본디 얼굴을 덮어 가리면서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본디 얼굴로서는 나타낼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의 얼굴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민중적인 삶과 意識의 진면목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탈의 특징은 괴상 망측스럽게 생겼다고 한다.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으면서도 韓民族의 여러 계층의 얼굴들을 개성 있고 재미있게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살아있는 韓國人의 얼굴인 탈은 그 뒤에 있는 人間의 얼굴을 가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탈 뒤의 人間이 지닌 心性의 原形을 象徵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탈놀이에서 그 배역에 따라 다양하게 그 성격이 함축되면서 `喜怒哀樂`을 안으로 머금고 있어 탈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삶의 진실을 가리고 왜곡하는 가면으로서 탈이 아니라, 민중적인 삶과 의식의 진면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덧뵈기로서의 탈이다.즉 신명의 춤과 몸짓 속에 살아 숨쉬는 의식의 얼굴(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탈의 실제적인 기능은 본디 얼굴로서는 나타낼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의 얼굴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있다.

탈에 대한 우리말로는 광대.초란이.탈.탈박. 탈바가지 등으로 불러왔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이란 말이 쓰이며 漢字表記로는 面 面具 假面 代面 大面 假頭 假首 등이 있다. 假面을 우리말로 탈 또는 탈바가지라고 하고, 假面舞를 탈춤, 假面劇은 탈놀이, 假面劇舞臺는 탈판, 假面劇演戱者를 탈꾼이라고 부른다.

해서지방의 탈이나 중부지방 또는 영남지방의 탈 등이 모두 바가지와 종이 털가죽 등의 재료로 덧붙여 나가는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즉 바가지에다가 코나 돌출부분을 노끈 종이 나무껍질 등을 덧붙여서  얼굴의 형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마치 진흙에 짚을 섞어 문둥그린 흙으로 토담을 쌓은 것같이 탈에는 민중의 生活感情을 그대로 거칠고 털털하며 거침없으면서도 솔직담백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하회탈은 순전히 나무를 깍아내어서 얼굴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품이다.이러한 제작기법은 오히려 나무기둥을 깎아서 만든 장승의 기법과 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의 탈놀이는 크게 서낭제祭탈놀이와 산대도감계통극으로 나누어 볼 수있다. 하회별신굿놀이, 강릉단오제의 관노탈놀이, 동해안별신굿의 탈놀음굿 등이 전자에 속한다.경 경기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해서지방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 춤,영남지방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수영야류 동래야류,함북 북청의 사자놀음 등은 후자에 속한다. 또 광의의 탈 범주에 드는 꼭두각시놀이도 탈놀이의 일종이다.

탈춤은 상호 관련성이 느슨한 여러 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있다. 특정장치가 없이 그 저 넓은 마당 곳곳에 횃불을 밝히고 마을사람들이 빙둘러 앉거나 서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탈놀이와 뒷풀이로 진행된다. 탈춤꾼은 말과 노래를 섞어서 관중과 악사에게 말을 걸며 무언극처럼 몸짓과 춤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탈판에는 웃음이 있고 흥이 있고 신명이 있고 풍자와 해학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생활 속의 `한`과 `슬픔`을 탈판에서 `신명`과 `흥`으로 풀어 가는  `멋`을 가졌다. 생활 속에 `한`은 恨으로 怨恨으로 가지 않고, 한스런 일을 당해도 원한을 품지 않고 누구도 허물하지 않으며 마음 속으로 삭이는 바로 그런 `한`이며 `신`은 한스런 삶을 잠시 잊고 생산하고 재창조하는 원동력이 깃들여 있는 신명 신바람 신풀이다. `흥`은 풍성한 탕진 속에 풍요로운 내일을 기약하고 흥겹게 흥청거려 보려는 즐거움이다. 풍자와 해학 풍류가 어우려진, 저항과 인고, 질타와 용서가 융합된,

불협화음이 리듬으로 되는 곳에 탈판의 `멋`이 자리한다. 이러한 신 흥 한 멋의 탈판에서 무질서 속에 질서를 발견하고 난장판 속에서 우리는 한동아리임을 느낀다.

한국의 탈은 그 전승담당자였던 민중들의 소박한 생활감정과 꿈을 아주 꾸임없이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무서워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무섭지 않고 무서워도 웃음을 자아내는 표정을 하고 있다.

탈 가운데 청자 백자에 비견되는 하회탈에서 한국인의 얼굴을 찾아보자. 탈이 제구실을 하려면 얼굴에 쓰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눈의 위치가 맞아야 하고 대사를 순조롭게 주고 받기 위해서는 입이 트여져 있어야 하며 탈을 쓰고도 호흡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콧구멍도 트여 있어야 한다. 하회탈은 크기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써도 쓰는 이의 얼굴에 눈과 코 입이 맞도록 되어 있어 한국인의 표준 얼굴이 하고 있는 셈이다.  눈매와 입매는 물론 눈두덩과 광대뼈, 볼, 이마와 콧대, 주름살 등을 모두 동원해서 그 높이와 깊이, 선의 방향 및 면의 양감 등을 독특하게 살려서 각 탈의 얼굴은 개성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띄게 된다. 특히 눈썹, 눈두덩, 눈 밑의 광대뼈를 두드러지게 하고 곡선을 살려서 만들었으며 실제로 턱을 고정시키지 않고 따로 놀게 하여 탈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양반탈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을 쓰고 뒤로 젖히면 실로 연결된 턱이 벌어지게 되고 눈썹이나 눈매. 광대뼈의 갈매기 모양의 곡선이 부드럽게 살아나서 웃는 모습을 하게 되고 깊게 파낸 아래쪽 부분의 그늘도 빛을 받아 전체적인 표정이 밝아지게 된다. 반대로 탈을 앞으로  숙이면 턱이 닫혀지고 눈매나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오고 겉으로 돌출된 부분에 인하여 탈의 표정이 화난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얼굴에 그늘이 많이 져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표정이 된다. 이처럼 탈의 움직임에 따라 웃는 표정, 화난 표정 또는 밝은 표정과 어두운 표정을 짓게 되어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의 일상적인 몸짓과 표정에 일치한다.

민속놀이판은 질펀한 흥겨움, 신명풀이가 그 본질이다. 그것은 난장판으로 절정을 이룬다. 건강한 놀이판은 놀이꾼과 구경꾼의 특별한 구분없이 한데 어울려 즐기는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생활공동체로서의 유대를 다지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놀이판에 스스로 주체가 되지못하고 들러리 노릇만 하고 시간과 돈과 정력만 낭비할 뿐이다. 민중이 놀이의 주체자가 되어 스스로 놀이를 창조하고 향유하며 전승하는 노릇을 직접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질 때 놀이문화의 건강성이 회복될 것이다.

얼씨구 !   절씨구 !  지화자 좋다!!

상부상조의 품앗이

'품앗이'는 알반적으로 '품'(일 노동)을 주고 받는 형식의 협동작업이라고 이해된다. '품'은 일,노동이란 뜻으로 하루품이라할 때 그 뜻은 하루의 일 또는 하루의 노동이란 말이다.

농사일이 한참 바쁠때나 일이 벅찰때면 의례껏 품앗이를 했다.옆집의 순돌이 엄마와 웅이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품앗이를 하면 우리끼리 삼 일 해야 할 일을 하루만에 그 일을 마칠 수 있다. 그리고 차례로 우리집에서 순돌이네집과 웅이네집에 가서 하루씩 협동으로 일을 해주면 품앗이는 끝이난다.

겨울철 김장할때도 품앗이를 한다. 엄마 혼자서 김장을 다할려면 벅찬 일이다. 그래서 품앗이를 해서 웅이네와 순돌이네 엄마가 오셔서 힘을 합쳐 김장을 한다. 그 다음에는 순서대로 웅이네  순돌네집에서 서로 도와 가면서 김장을 담근다. 혼자서 하면 힘드는 일이라도 품앗이를 하면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것이다.

품앗이는 서로 가까운 친척이나 이읏끼리 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업의 능률도 상당히 높으며, 일도 자신이 직접하기 때문에 섬세하고 충실하게 할 수 있다. 품앗이는 사람끼리만하는 것은 아니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소가 있는 집에서 소를 하루 품앗이로 빌려쓰고 사람이 이틀정도 그 집에 가서 일해준다. 즉 사람과 사람의 품앗이는 1:1로 교환이 되고 사람과 소는 1:2로 교환된다.

이러한 품앗이는 일년내내 거의 전 생활에 거쳐서 이루어진다. 품앗이 는 모심기 피뽑기 벼타작과 같은 논농사의 일부 작업과 보리타작 밭매기 감자심기 고구마씨 틔우기 수수,깨, 고추의 파종같은 밭농사 작업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사이일 경우, 또는 밭이 서로 인접헤 있는 경우,부인들끼리 자주 품앗이를 한다. 이러한 농사일 뿐만아니라 품앗이는 이읏의 '큰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협동으로 도와 주었다.

옛날부터 우리조상들은  이읏집의 큰일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었으며 동시에 '나의 일'로 여기고 서로 돕고 협동하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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