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chong Tomb (호우총, 壺玗塚) | |
경주시 노서동(路西洞)에 위치한 신라 때의 고분(古墳, 사적 제39호)으로 1946년 발굴되었으며 부장품 중에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제사(祭祀) 때 사용한 청동제 호우가 다른 껴묻거리들과 함께 출토되어 호우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덧널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합(盒)이라 불리는 뚜껑 달린 청동호우(靑銅壺)가 출토되었는데,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기념하여 415년(장수왕 3)에 만들었다는 명문(銘文)이 밑바닥에 새겨져 있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十)"이라 씌어진 이 명문의 글씨체가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 광개토태왕비의 비문(碑文)에 씌어진 것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교섭이 활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우총이라는 무덤의 이름은 이 그릇에서 따온 것이다. | |
호우명 그릇 | |
고구려 제19대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뚜껑이 딸린 합(盒)으로, 그릇 밑받침에 ‘을묘년 강상광개토지 호태왕 호우십(乙卯年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棹十)’이라는 4행 15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이는 415년(장수왕 3)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이 돌아가신(412년) 3년 후인 을묘년(415) 만주 집안 국강상에 영원히 잠드신 광개토왕을 기념하는 항아리’라는 말이다(호우총 발굴보고서. 1948년). 높이 19.4cm, 그릇의 깊이 10cm, 몸통의 지름 24cm. 그릇과 뚜껑의 각 표면에는 3가닥씩의 융기대(隆起帶)를 돌리고, 뚜껑에는 다시 윗부분에 1가닥을 돌린 위에 화형(花形) 10 꽃잎의 유좌(쐤座)에 구슬 같은 손잡이 꼭지가 달려 있다. 을묘년(乙卯年) : 광개토대왕이 죽은 후 3년째가 되는 415년(장수왕 3년) 글자체 :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의 비문과 같은 웅건한 한예체(漢隸體) | |
출 토 품 | |
덧널안 | 금동관(金銅冠), 금제 관드리개, 가는 고리식 금귀고리, 곱은옥[曲玉] 달린 유리구슬, 목걸이, 금팔찌 1쌍과 반지 5쌍, 은제 허리띠와 띠드리개 등의 장신구와 금동장단룡환두대도(金銅裝單龍環頭大刀) 1점 |
덧널주위 | 마구류(馬具類)와 목칠기, 토기, 방상시탈로 짐작되는 목심칠면(木心漆面) 등 출토유물로 추정해 볼 때 고위층에 속하는 인물의 무덤이라 짐작되며, 축조연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된다. |
- 목심칠면(木心漆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