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라때 고분 호우총(Houchong Tomb, 壺玗塚)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2.22|조회수70 목록 댓글 0

Houchong Tomb (호우총, 壺玗塚)

경주시 노서동(路西洞)에 위치한 신라 때의 고분(古墳, 사적 제39호)으로 1946년 발굴되었으며 부장품 중에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제사(祭祀) 때 사용한 청동제 호우가 다른 껴묻거리들과 함께 출토되어 호우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주 노서동 고분군은 사적 제512호로 지정돼 있다.<br> 호우총은 140호로 봉분이 훼손되고 높이가 2m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평평해 고분의 모습이라고 말하기 조차 어렵다.<br> 남쪽에서 바라본 호우총.


구조 : 발굴 전에 봉토는 이미 많이 파괴되어 있었으며 고분의 구조는 경주 고분군의 일반적인 형태인 고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지름 약 16m, 높이 약 4m로 추정된다. 7.3×4.5m 되는 구덩이를 약 2m 깊이로 파고 냇돌을 두 벌 정도 깐 다음 나무덧널[木槨]을 놓고 그 위에 다시 댓돌을 쌓아 흙을 덮은 형태이다.


덧널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합(盒)이라 불리는 뚜껑 달린 청동호우(靑銅壺)가 출토되었는데,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기념하여 415년(장수왕 3)에 만들었다는 명문(銘文)이 밑바닥에 새겨져 있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十)"이라 씌어진 이 명문의 글씨체가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 광개토태왕비의 비문(碑文)에 씌어진 것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교섭이 활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우총이라는 무덤의 이름은 이 그릇에서 따온 것이다.

호우명 그릇

고구려 제19대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뚜껑이 딸린 합(盒)으로, 그릇 밑받침에 ‘을묘년 강상광개토지 호태왕 호우십(乙卯年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棹十)’이라는 4행 15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이는 415년(장수왕 3)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경주 노서동 고분 140호 호우총이 해방 이후 순수 우리나라 기술로 최초 발굴됐다.<br> 발굴당시 일부 깨진 채로 발견됐지만 그릇 밑바닥에 제작연도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는 그릇이라는 명문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br>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br>


즉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이 돌아가신(412년) 3년 후인 을묘년(415) 만주 집안 국강상에 영원히 잠드신 광개토왕을 기념하는 항아리’라는 말이다(호우총 발굴보고서. 1948년).

이 명문의 서체가 호태왕(광개토태왕) 비문과 같은 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만들어 가지고 신라로 들여온 것 같고 그 연대도 이 명문에 의해 415년으로 확정된다.

이 호우가 어떤 경로와 이유로 경주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장수왕 후기인 5세기말에 세워진 중원 고구려 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고구려와 신라 간의 교섭이 실제적으로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신라 내물왕 이후 고구려군의 신라 영토 진주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의 왕위 세습을 통한 왕권 강화는 이러한 고구려의 군사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우명 그릇의 발견으로 일본이 '임나 일본부'설을 내세울 때 반증유물로 사용되고 있다.

[분석] 광개토 대왕 비문의 기록(내물왕의 요청으로 신라 . 가야 지역에 침입한 왜구 정벌, 400)과 경주 호우총 출토의 호우명 그릇에서 5세기 초반에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에 진주한 것과 더불어 4세기 말 고구려가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시사하고,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 및 간섭을 엿볼 수 있다.

높이 19.4cm, 그릇의 깊이 10cm, 몸통의 지름 24cm. 그릇과 뚜껑의 각 표면에는 3가닥씩의 융기대(隆起帶)를 돌리고, 뚜껑에는 다시 윗부분에 1가닥을 돌린 위에 화형(花形) 10 꽃잎의 유좌(쐤座)에 구슬 같은 손잡이 꼭지가 달려 있다.

을묘년(乙卯年) : 광개토대왕이 죽은 후 3년째가 되는 415년(장수왕 3년)

글자체 :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의 비문과 같은 웅건한 한예체(漢隸體)

출 토 품

덧널안

금동관(金銅冠), 금제 관드리개, 가는 고리식 금귀고리, 곱은옥[曲玉] 달린 유리구슬, 목걸이, 금팔찌 1쌍과 반지 5쌍, 은제 허리띠와 띠드리개 등의 장신구와 금동장단룡환두대도(金銅裝單龍環頭大刀) 1점

덧널주위

마구류(馬具類)와 목칠기, 토기, 방상시탈로 짐작되는 목심칠면(木心漆面) 등 출토유물로 추정해 볼 때 고위층에 속하는 인물의 무덤이라 짐작되며, 축조연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된다.


                       - 목심칠면(木心漆面)

호우총 출토 목심칠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