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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토막역사

[옮긴글] 조선시대 기록으로 보는 냉면의 역사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6.04.11|조회수498 목록 댓글 0

한반도의 자연 환경은 밀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 국수 만들 밀이 적었다. 그래도 국수는 먹어야겠고, 그래서 메밀로 국수를 내렸다. 메밀은 글루텐이 없어 국수 모양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누르는 압착식으로 국수를 내렸다. 메밀국수는 결착력이 약해 더운 물에 담으면 쉽게 풀어진다. 그래서 찬 국물에 말았다. 냉면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메밀 반죽을 하여 국수틀에서 면을 내리고 찬물에 마는 것은 막국수도 같다. 그러니 냉면과 막국수는 같은 계열의 음식이다. 냉면을 두고 평양냉면, 함흥냉면으로 가르는 것은 바르지 않다. 메밀국수에 찬 국물을 더하는 음식은 냉면인데 이를 두고 평양냉면이라 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후 서울에서의 일이다. 분단 이전 서울과 평양에는 각각 냉면이 있었고 그 조리법은 같았다. 분단이 되자 옛날에 평양의 냉면이 더 맛있었다는 ‘소문’을 이용하여 냉면가게들이 평양냉면이라는 말을 만들어 마케팅에 이용하면서 이 말이 생겼다.


  
▲ 일제 자본의 손길 아래 근대의 맛으로 포장된 냉면은 한국전쟁 후 월남한 실향민들에 의해 전국에 보급되었다.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1882~1885년경, 독일 베를린민족학박물관).


“평양냉면. 냉면옥(冷麵屋)에는 흔히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평양냉면이 아무리 맛있은들 삼팔선을 넘어 운반해왔단 말인가요. 서울서 만드는 냉면을 평양냉면이란 새빨간 거짓말.” 1948년 경향신문에 실린 독자투고이다. 함흥냉면은, 요즘은 주로 고구마전분을 쓰지만, 감자전분으로 내린 국수이다. 메밀이 아니니 냉면과는 전혀 다른 국수이고, 애초에는 농마국수라 하였다. 여기에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의 일이다. 냉면이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자 이를 벤치마킹하여 농마국수도 함흥냉면이라 이름을 바꾼 것이다.


냉면은 조선에서는 겨울에 먹던 국수였다. 메밀은 늦가을에 거두는 작물이고, 그러니 겨울의 식량이고, 그러니 냉면은 겨울에 먹었다. 국물은 동치미이면 되었다. 여기에 꿩으로 육수를 내어 더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반도에 꿩이 지천이었고 눈이 하얗게 쌓이면 꿩 잡기가 쉬워 아이들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쇠고기 육수가 기본이고 여기에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이 첨가되기도 한다.


냉면 육수가 쇠고기를 기본으로 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이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소를 많이 키우도록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였다. 일제는 군화며 군복 등의 제작을 위해 소가죽이 필요하였다. 조선에서만 하더라도 왕이 우금령을 내려 소를 못 잡게 하였는데 일제시대에 들어 소가 갑자기 넘쳐났다. 이때에 한국인의 ‘전통적’ 외식 아이템인 불고기, 갈비, 설렁탕, 곰탕 등등이 결정되었고, 냉면도 쇠고기 국물이 기본으로 자리를 잡았다.


  
▲ 1903년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 일민미술관 자리에 위치한 명월관의 모습. 명월관에선 고종이 즐겨 먹었다는 냉면을 비롯해 조선 정통의 궁중요리를 시중에 선보였다.


조선에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냉면집은 나름의 독특한 영업 형태를 갖추었다. 불고기와 냉면의 결합, 수육과 냉면의 결합 같은. 또 선주후면(先酒後麵·먼저 불고기와 수육에 술 마시고 나중에 냉면을 먹음)이라는 냉면집만의 ‘스토리’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냉면 전문점들은 1970년대 이후 크게 쇠퇴하게 된다. 그 첫째 원인이 ‘위생’이었다. 보건당국은 여름 성수기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냉면집 위생 단속을 하였다. 매년 여름이면 언론에서는 “대장균 냉면” “콜레라 위험” 등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여름 한철 장사인데, 이런 직격탄을 맞고 버틸 수 있는 냉면집은 드물었다. 1980년대에 들자 냉면집은 다소 특이한 경쟁 상대와 맞서야 했다. 당시 경제 사정이 나아지자 고깃집이 크게 늘었다. 이들 고깃집에서는 냉면을 아주 싸게, 어떨 때에는 공짜로 내었다. 이 고깃집 싸구려 냉면에 맛을 들인 소비자들은 냉면 전문점에서 냉면을 너무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고, 그렇게 냉면집들은 손님을 잃어갔다.


1980년대 중순부터 냉면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만들어졌다. 미식가의 음식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때에 한국음식은 인정사정없이 매워지고 달아지고 짜지고 있었는데, 그 대척점에 턱 버티고 있는 냉면이 ‘발견’된 것이다.


이제는 미식의 경지를 넘어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며 그 흐릿하고 밋밋한 국물에서 한국인의 영혼까지 건지려는 이들도 있다. 냉면이 변하듯 세상도 또 그렇게 변한다.



조선시대 기록으로 보는 냉면의 역사


냉면은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즐겨 먹은 음식으로 추측한다. 냉면의 꾸밈새를 구체적으로 밝힌 기록은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 소개된 것이 최초다. 《동국세시기》에는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 냉면은 겨울철 절식으로 평안도가 최고”라는 기록이 있다.


헌종 14년인 1848년과 고종 13년 때인 1873년의 봄날 궁중잔치에도 냉면이 쓰였다는 기록 또한 당시 기록물인 의궤류에 나타난다. 특히 고종 황제는 냉면을 좋아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배달하여 편육과 배, 잣을 얹어 먹었다고 한다.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에는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 김치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 나니라”라고 기록 되었다. 또한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 냉면 편에는 냉면의 조리법도 나와있다. “청신한 나박 김치나 좋은 동치미국물에 말아 화청하고 위에는 양지머리, 배와 배추통김치를 다져서 얹고 고춧가루와 잣을 얹어 먹는다”라고 기록되어있는데 고기장국을 차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는 장국냉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냉면으로 일컫는 기록으로 17세기 조선의 대문장가였던 장유의 문집 〈계곡집〉에 실린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란 제목의 시도 인상적이다. ‘노을빛 영롱한 자줏빛 육수/ 옥 가루 눈꽃이 골고루 내려 배었어라/ 입 속에서 우러나는 향긋한 미각/ 몸이 갑자기 서늘해져 옷을 끼어 입었도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현재 떠올려지는 냉면의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관련도서
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글, 휴머니스트
서울을 먹다 | 황교익·정은숙 글,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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