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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신라는 백제와 더불어 해상왕국 이었다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11.10|조회수22 목록 댓글 0

신라가 바다의 왕자라는 말에 사람들이 의아해할 지도 모른다. 바다의 왕자, 즉 해상왕국은 백제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신라도 해상왕국이었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이 그 하나인데, 군도로 이루어지지 않은 섬을 찾아서 정벌에 나선다는 것은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면 쉽게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더구나 우산국(울릉도)은 독도와 더불어 동해의 유일한 섬인데, 그것을 정벌하고자 우산국까지 갔다니 신라인의 배짱도 대단하다 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라 유례왕때 감행된 일본정벌이다. 일본을 정벌한 것은 종종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수도인 오사카 근처인 명석포(아키시노우라, 현재 일본 지명에 남아있다.)까지 진격해 일본 천황이 애걸하면서 항복했다고 한다.

이것이 조선후기 안정복이나 신경준등의 자료에만 보였다면 의심해볼 여지가 있으나 이 자료가 일본 자료에서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고 본다.

그런데도 신라가 왜군에게 계속 공격당해 고구려에 원병청한 것만 부각시키니 도대체 우리나라 역사연구가들은 신라를 약소국으로 만 몰려고 하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그 활동범위는 중국, 일본을 넘어서 서아시아, 로마까지 이르고 있다. 흔히 신라의 아라비아 상인하면 처용이라든가 통일신라 이후로 생각하면 그 건 양반일 것이다. 4세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물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는데에 그 놀라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봉수병 유리병의 경우 시리아등지에서 생산되어 동부 지중해 연안과 터키를 비롯하여 에게해 연안과 흑해 연안에서 사용되던 물품이었다. 그뿐인가?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제에 주조된 인물상은 고대 이란의 여신인 아나히타 상을 표시한 것이고, 이란에서 발달한 컷글라스, 쾰른 지방에서 유행한 반점문 유리잔이 금령 총에서 출토되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남색 귀갑문 유리잔은 동부 지중해 연안이 그 산지로 추정되고 있다. 미추왕릉(4세기 무렵의 신라 왕)에서 발견된 인물이 상감된 유리 구슬은 경주 외에는 동북 아시아에서 출토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신라가 바다 무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오르도스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진 청동대구가 신라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고, 사산왕조(226~651까지 번 성된 이란 왕국)의 영향을 받은 마두 장식의 리이톤(장식이 붙은 뿔잔 형태)또한 다수 출토되었다.

통일신라 이후에도 신라 무역은 계속 번성 하였다. 공작선은 공작의 꼬리를 잘라 만든 부채로 공작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서식한다. 로마 문명도 상당히 신라인들에게 들어 왔다고 한다. 신라 연구가인 일본 사학자 요시미츠 츠네오는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국시대의 신라도 중국문화를 받아들인 중국문화의 그늘 아래 있던 나라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동아시아사의 상식으로 인식하여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이나 일본인 그리고 전 세계인들 중 한국의 문화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화 아래 있었고, 중국문화 외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이 말은 신라가 중국 문화권에 있었으면서도 독특하게도 중국문화를 완벽하게 수용하지 않았고, 6세기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로마문명을 직접 받은 수혜자였다는 점 이었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우리의 상상력 으로 감히 신라를 재단한다는게 얼마나 우스 꽝스러운 일인지 알만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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