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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고구려 소수림왕

작성자시리게푸른하늘|작성시간15.06.18|조회수38 목록 댓글 0

소수림왕대의 가장 큰 업적은 율령의 반포이다. 고구려는 이전까지는 관습법에 따라 나라를 움직여 나갔다. 그러나 국가가 확대되고 다양한 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싱황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화된 규범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진(秦)의 진시율령(秦始律令)을 모법(母法)으로 하여 율령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현전하는 기록에는 373년(소수림왕 3년)에 율령이 반포된 사실만 보일 뿐 율령에 관계되는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기록들을 통해 보면 당시 반포된 율령에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규범은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고구려의 율령은 중국의 그것을 모본으로 하였지만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특색을 보인다. 즉 형(刑)을 적용하는데 엄격한 면이 보이고, 유교사상의 정도가 중국에 비해 약한 반면 고구려의 전통적인 특질들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율령이 반포되었지만 전통적인 관습법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율령의 반포는 고구려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즉 율령은 중앙집권적인 체제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인 바탕이 되었다. 한편 율령은 형법관계, 관등제, 관직제, 조세, 제사 등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걸친 규정을 하여 사회운영에 일정한 원리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세력들간의 상호 배타적인 태도를 완화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소수림왕이 즉위하였을 때, 고구려는 해결되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었다. 소수림왕의 부왕인 고국원왕(故國原王)대에는 전연왕(前燕王) 모용황(慕容?)의 침입으로 수도는 파괴되고 미천왕(美川王)의 시신을 빼앗기고, 왕모(王母) 주씨(周氏)마저 끌려가는 등 고구려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한편 백제와 대방(帶方)의 고지(古地)를 둘러싼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기에 이르렀다. 고국원왕대의 패전은 일차적으로 고국원왕의 전술적인 실수에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고구려가 해결해야 할 많은 내부적인 문제가 산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나부체제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하였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적절한 제도적인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편 대외정복사업으로 영토가 확대되고 많은 이민족이 고구려 내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중앙집권화와 확대된 영토와 인민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제도의 시행과 정비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고구려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불법승(佛法僧) 3보가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다. 이후 374년(소수림왕 4년)에는 승려 아도(阿道)가 왔다. 375년(소수림왕 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佛蘭寺)가 창건되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불교의 전래 이전에도 고구려에서는 불교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동진(東晋)의 승려인 지순도림이 고구려의 도인(道人)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다. 소수림왕이 불교를 수용한 이래 이후의 왕들은 불교의 보호와 육성에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였다. 고국양왕(故國壤王)은 ‘불교를 받들고 믿어 복을 구하라’는 하명을 내렸고 광개토왕(廣開土王)은 평양(平壤)에 아홉 개의 사찰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후 고구려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 당시 고구려가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소수림왕대에도 전대에 이어 백제와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국력을 분산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전진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따라서 전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당시 국제적인 관계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구려 내적인 요인이었다. 즉 고구려내에서는 여러 세력별로 다양한 재래신앙이 있어 의식적인 통합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전진의 호국적(護國的)이며 고차원적인 성격을 지닌 불교의 수용을 통해 고구려 내의 의식적인 통합을 기하고자 한 것이다.

▶ 불교가 고구려에 전해진 후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고구려 사회에 많은 파장을 던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다양한 신앙과 의식을 가진 세력들이 왕을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전 국토의 확대와 다양한 세력의 성장과 수용으로 어수선하였던 나라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편 업보사상(業報思想)에 따라 현재의 신분제를 인정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도 하였다. 그리고 피지배층에게는 현실의 노력 정도에 따라 내세에서는 삶이 바뀔 수 있다는 현실긍정적인 인식의 형성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불교는 고구려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여 고구려 주민의 융합과 새롭게 성장한 세력의 성장을 뒷받침 해주고 나아가 왕권강화와 중앙지배체제의 확립에 필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소수림왕으로써 업적은 율령반포 불교수용 태학설립 등이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지식인 supaul97님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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