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비류는 향긋한 내음을 내는 까페모카를 받침에 살짝 내려놓았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잔은 받침에 고정되었고 비류 역시 의자에 자신을 다시금 고정시키며 벨라뎃다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벨라뎃다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마세요 오빠. 성당 다닌다고 해도 끝까지 쫓아오더라니까요. 온 몸에 그놈의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매달고 말이에요. 빨간 바탕에 노란색, 흰색 글씨를 써가지고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그거, 아우......"
비류 역시 바오로딸에 성물이나 기타 물건을 사러 갈 때마다 명동 거리를 휘젓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매달고 선교하는 개신교 사람들을 보았다. 비단 명동만이 아니라 꽤나 흔히 볼 수 있는 그 광경은 천주교 신자, 아니 그리스도교 신자로서도 과히 보지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그런 일방적인 믿음이 오히려 궁금해서 개신교를 찾는 사람들도 있더라...하는 카더라 통신도 있지만 과연 그렇게 찾은 곳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벨라가 고생이 많았구나."
비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벨라뎃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근데 사실 좀 창피했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확고하게 뭘 믿기나 하는데......전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뭐라고 톡 한방을 쏘아줄 수가 없으니까 말이에요. 에휴 답답......"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토요일 어린이 미사를 마친 초등부 아이들이 우루루 뛰쳐나왔다. 까르르 웃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에 벨라뎃다는 방금 전의 한숨을 잊은 듯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비류는 문득 '진정 이 아이들과 같지 않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오빠, 그런 사람들이 다음에 혹시 꼬이면 뭐라고 쉽게 해줄 말이 없을까요?"
벨라뎃다의 질문에 비류는 턱을 살짝 만지작 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먼 옛날, 인간이 아직 지성의 축적이 덜 이루어졌을 때는 오히려 그런 것을 설명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질대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좋은 말과 교리도 그것을 인간적인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그런 면에 있어서 현대 사회는 선교하기 매우 힘든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교란 선교자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기에 기도를 하면 답을 구할 수 있음이 분명했고 비류는 그런 답을 이미 구했다. 하지만 애늙은이 기질이 풍부한 비류는 탈무드에 나온 성현의 말처럼 벨라뎃다에게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다는 낚시를 가르쳐주기로 결정했다.
"벨라야, 너는 예수님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뭐라고 생각하니?"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벨라뎃다는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 하느님? 사람? 마리아의 아들? 삼위일체? 천주성자? 강생하셨도다? 말씀? 아하!!
"오! 말씀 아니에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네......라는 성경 말씀처럼!!"
갑자기 만남의 방에서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와 벨라뎃다는 흠칫하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작은 마술을 보여주어 아이들이 즐거워 낸 웃음소리지만 벨라뎃다는 마치 자신이 말한 답이 틀렸다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음......그것도 답은 답인데 지금 상황에서의 답은 아니구나."
비류는 싱긋 웃으며 잔을 들어 부드러운 모카향을 내는 까페모카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그런 느긋한 모습이 질문자에게는 짜증도 날 법 하련만 그런 상황을 또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벨라뎃다의 장점이었다. 초록은 동색, 끼리끼리 라는 한국의 잠언(???)집의 말처럼.
"으앙!! 선생님!!!"
초등부 4학년의 안나가 벨라뎃다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벨라뎃다는 앞에서 능글거리는 비류에게서 시선을 돌려 안나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이구 우리 안나!! 미사 다 끝났니?"
"네!!! 선생님!! 사랑해요!!"
뜬금없는 안나의 사랑고백에 벨라뎃다는 당황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안나는 다시 비류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말했다.
"아저씨, 사랑해요!!!"
역시나 뜬금없었지만 비류 역시 미소를 지으며 안나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비류는 무슨 생각인지 벨라뎃다에게 했던 질문을 안나에게도 했다.
"안나야, 예수님은 뭘까?"
우주의 탄생과도 같은 시간을 고민했던 벨라뎃다와는 달리 안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사랑이요!!!"
안나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쪼르르 초등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벨라뎃다가 눈을 들어보니 여기저기 초등부 아이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교리교사들이 초등부 아이들에게 준 뭔가 미션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그 귀여운 모습에 벨라뎃다가 눈웃음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비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지혜란 참으로 놀랍도다."
그 말에 벨라뎃다는 흠칫했다. 사랑, 맞다. 바로 그것이 가장 정답에 근접했던 것이다. 요즘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있던 벨라뎃다는 자신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마를 쳤다. 파우스티나 수녀님에게 발현하셨던 자비의 예수님께서도 자비, 사랑이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속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런 벨라뎃다를 바라보며 비류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을 그대로 바꿔보면......사랑 천국, 불신지옥이지. 사랑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천국에 갈테고, 사랑을 하지 않고 증오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천국에 못가지 않겠니? 사랑하지 않는자, 유죄라는 세상의 말도 있잖아.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맞는 말이야. 다만 그건 껍데기고 그 안을 본다면 바로 사랑천국이라는 말이 되지."
벨라뎃다는 문득 명동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슬로건을 몸에 두른 채 자신에게 선교하던 개신교 신자 앞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버벅대며 결국 말다툼까지 가버린 자신이 한심해졌다. 저것이야 말로 촌철살인. 사랑 천국이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을 그렇게 고민을 하다니......고개를 든 벨라뎃다의 맞은 편에서 비류는 미소를 지으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벨라뎃다는 문득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사랑을 해야 되나요?"
아까부터 슬쩍슬쩍 말을 돌려서 벨라뎃다의 애를 타게 한 것이 미안했던 비류는 이제 낚시대를 접고 아까 잡은 월척을 벨라뎃다에게 주기도 결정했다.
"그건 고린토서 13장에 나와 있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벨라뎃다의 이어짐에 비류는 웃으며 다시 받았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마치 노래하듯 벨라뎃다는 비류의 다음 구절을 이어 나갔다.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비류와 벨라뎃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곁에 있던 수호천사들은 둘의 성경 말씀 잇기가 분명 하느님을 행복하게 하는 아침 새의 지저귐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그 중에 제일은..."
일부러 끝 말을 맺지 않고 비류는 벨라뎃다에게 윙크하며 그 마지막 말을 하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그 배려를 받아 벨라뎃다는 영혼의 울림을 담아 힘차게 말했다.
"사랑이라."
벨라뎃다의 마지막 말이 맺어지자 하느님의 자비의 샘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아름다운 향내가 삼성산 성당을 온통 휘감으며 울려퍼졌다.
-위대한 유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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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했던 것을......단편으로 풀어봤습니다요 헤헤헤 -ㅁ-;;;
이거 쓰기 전에 19999명이었는데 다 쓰고 나니까
와 2만명+ㅁ+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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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비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09 감사합니다...ㅎㅎ+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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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끼아라 작성시간 11.05.10 ㅎㅎ 소설이라 정말 좋은 글을 쓰고 계십니다. 저 역시 두번째 독자이기를 청합니다.
궁금해 하는 소설에 이묘미 즐기렵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10 감사합니다+ㅁ+ 더욱 힘을 내서 기도하고 묵상해 좋은 글을 쓰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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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줄파 작성시간 11.05.27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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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비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27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