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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 수련

피정이란?

작성자thomas|작성시간10.01.31|조회수458 목록 댓글 0

 

피정이란?


1. 피정의 개념

 

  피정(避靜)은 종교적인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합성어로,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고요함을 피한다는 뜻이 되니 어불성설이다. 피정에 대해서는 ‘피속추정(避俗追靜)’의 준말이라는 설과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피속추정’은 ‘세속을 피해서 고요함을 따른다’는 의미이고, ‘피세정념’은 ‘세상을 피해서 고요하게 마음을 지닌다’는 것으로, 사실 두 말의 뜻이 대동소이하다. 두 말 중 어느 것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지만 ‘피세정념’의 준말이라는 설이 좀 더 지배적이다.


 

  영어로는 피정을 ‘retrea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후퇴라는 뜻을 지닌 ‘retreat’는 종교적인 언어로는 ‘일상 삶에서 후퇴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피정의 어원적인 의미는 ‘일정한 기간’을 나타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예컨대 3일, 8일, 30일, 40일 등의 기간을 정해서 세상에서의 일상생활을 떠나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하느님에 대해 묵상하거나 관상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에서 피정이라는 말이 파생하였다.



2. 피정의 기원과 역사



  피정의 기원은 그리스도교보다도 더 이전으로 보는 주장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광야사건’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신다(마태 4, 1-11; 마르1, 12-13;루가 4, 1-13).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예수는 세상에서 물러나 오직 하느님하고만 함께 지내시면서, 당신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다가오는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광야에 가셔서 일정한 기간 동안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셨던 예수의 행적은 이후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에 모범이 되었다.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모범을 따라 광야에 나가 기도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악마의 유혹을 이기고 오로지 하느님께 투신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선택하는 기간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전통으로 전해졌으며, 이를 피정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박해시대에는 박해를 피해 사막이나 광야에 숨어 지내면서 하느님께 투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이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경우로 이것을 피정의 기간을 갖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초기 은수자들의 삶의 형태에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해시대가 끝난 이후에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특권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박해 중에서도 면면히 이어오던 기도생활의 정신이 해이해지기도 했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점차 광야에 나가서 홀로 지내게 되었다. 이들이 초기 사막의 은수자들이다.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으로 피정을 사막의 체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원 후 5세기 경에는 성 파꼬미니우스(St. Pachomius)나 성 카시안(St. Cassian) 등의 여러 뛰어난 영적인 스승들이 출현한다. 이들의 영향으로 혼자서 기도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영적인 스승이나 인도자의 지도 아래 공동 생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점차 독거 생활을 하는 은수자들이 자취를 감추고 공동체를 이루어 기도 생활을 함께 하는 수도 생활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수도회를 정립시킨 대표적인 인물인 성 베네딕트(St. Benedict)는 수도 생활이 정착되면서 안락한 집이 아닌 사막에서 독거하면서 기도하는 일정한 기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일년 중에 어느 시기를 사막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기도에 정진하는 기간을 갖도록 권고했다.  일반적으로 사순 시기를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한 때 이런 기간을 ‘사순 피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 베네딕트는 그의 유명한 규칙 안에 사순 피정을 준수할 것을 언급했다(성 베네딕트 규칙 제 49장 참조). 이러한 피정이 베네딕트회 뿐 아니라 다른 수도회에서도 지켜지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는 피정이 생겨난 것은 16세기 성 이냐시오 료욜라(St. Ignatius of Loyola) 이후이다. 성 이냐시오 료욜라는 교회 역사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이전의 수도 공동체는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봉쇄 수도원이거나 활동을 하지만 기도 시간이 하루 일과의 중심인 반(半)관상수도회였다. 당시의 수도회는 하루 일과 시간이 기도와 일로 이루어지면서 수도 생활 자체가 피정의 상태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피정의 기간을 가질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이에 반해, 성 이냐시오와 그의 초기 동료 형제들이 세운 수도회는 사도적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전적인 활동 수도회였다. 이들은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필요한 어느 곳으로든지 파견되는 이른바, ‘분산되는 공동체’의 형태였다.


 

  성 이냐시오는 하느님의 자비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이 세운 활동 수도회의 회원들이 특별히 활동에서 물러나 조용히 주님과만 지내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냐시오는 본인이 저술했던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a)’에 따라 회원들에게 피정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다(예수회 회헌 제 408항 참조). 성 이냐시오가 ‘예수회’를 세운 이후에 나타난 다른 많은 활동 수도회들도 특별한 기간 주님과만 함께 보내는 기도 시간의 필요성에 따라 회원들에게 피정을 정례화했다. 이렇게 해서 예수회가 창립된 16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인 피정운동이 생겨났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t. Franciscus Salessius)나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St. Vincenetius de Paulus)와 같은 활동 수도회를 창설했던 인물들이 피정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성 이냐시오는 자기가 계발한 독특한 영적인 수련 방법인 ‘영신 수련’을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베풀었다. 활동 수도회의 회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피정에 참여하면서 여러 형태의 피정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성 이냐시오 당시에는 ‘영신수련’을 하기 위해서 따로 조용한 장소를 마련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신수련’의 성격상 ‘영신수련’을 통한 피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일상 삶에서 물러나 조용히 머무는 장소가 필요하게 되면서 소위 ‘피정의 집’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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