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캐나다 캘거리 록키비유병원 갑상선 암 수술기(수정-보완)

작성자봄노래|작성시간11.11.13|조회수1,308 목록 댓글 47

안녕하세요.

어제 가입한 봄노래입니다.

아이들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일년에 최소 두번씩은 제가 한국을 방문하고 남편도 최소 두번 이상은 캐나다를 오고가는 기러기 부부였답니다.

남편이 건강검진이 잡혀있으니 한국에 오라고 해서 한국을 방문한 것이 2011년 4월 3일.

그 이튿날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갖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의사와 상담을 하는 중에, 저의 갑상선에 혹이 한개가 더 생겼는데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2년만에 혹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0.45미리짜리가.

 

그래서 세침으로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조직검사후에는  룰루랄라 남편과 제주도 여행도 하면서 휴가를 보낸 후, 검사결과를 알려고 전화를 검진기관에 했는데, 상담원이 검사결과를 전화로는 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네요.

그 순간 불길한 예감~~

가족병력에 암환자는 없었던 터라 눈꼽만큼도 암이라고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가슴이 많이 뛰더군요.

 

의사선생님과 직접 통화를 해보니, 암이고 유두암이라고 하더군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할 날이 5일밖에 안 남은 시점이지만, 여러 병원에 예약을 잡으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의 박정수선생님께 에약을 하려고 하니 5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하고, 또 서울대 병원에 전화를 거니 이 역시 몇달이 걸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기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에약실에 전화가 왔습니다.

방금 환자가 예약취소를 했다면서 내일 오전 9시에 서울대 암센터로 오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이비인후과 성명훈 선생님께예약이 되었습니다.- 노태우대통령 수술을 하셨다고 기자회견하는 것이 텔레비젼에서 보도되더군요- 

 

그 분께서 저의 챠트 등등을 조사하시고

예약담당부서로 가서 수술예약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 검사할 검사도 굉장히 많더군요. 4일 후에는 한국을 떠나야 하는데...

몇 십분을 기다려서 예약담당의사와 만나서 수술일정을 잡는데 몹시도 사무적이고 불친절한 태도에 좀 놀랐습니다. 서울대 병원이 국립병원이어서 그런가도 생각했지만 개인의 성향이겠죠.

 

여러가지 검사를 해야하지만 제 사정 상 , 9월에 다시 한국에 와서 수술전 검사를 받는 것으로 예약을 잡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참고로 저는 첫째 아이를 낳은 후,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약을 먹고 있다가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 호르몬수치가 정상적으로 돌아와서 약을 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남편하고 떨어져 살면서 아이들 돌보면서 지내는데 몸이 살이 찌고 속이 메슥거려서 피검사를 해보니

갑상선 기능저하로 인하여 약을 먹어야 된다고 즉 다시 기능저하증이 되돌아온 경우였습니다.

 

2009년 한국에 나가서 정기건강검진때 저의 갑상선에 작은 혹이 하나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그 때에는 혹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해서 조직검사를 받지 않았고 혹이 하나있다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하여 아이들에게 갑상선 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놀라서 걱정을 어찌나 많이 하는지 오히려 제가 아이들을 위로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교회 분들께도 이야기를 하니 많은 분들이 모일때마다 기도해주시고 또 리더목사님께서 특별안수기도회를 갖자며 친한 사람들을 다 초대하라고 하셔서, 여기에서 사귄 기도모임 분들과 여기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 그리고 성경공부시간에 만난 한국분과 우리가족 등 약 이십여명과 이 교회 리더목사님 및 다섯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까지 오셔서 이마에 기름을 발라주시며 모두 제 어깨에 손을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어쨋든 한국에 또 나가게 되면, 아이들도 없이 수술을 하는 것도 그렇고  남편의 일정하고도 맞지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캐나다 의료시술을 믿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나라의 의료는 모든 것이 무료이지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망설이면서 패밀리 닥터를 만나서 한국에서 가져온 모든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닥터가 앉은 그 자리에서 소견서를 써서 스페샬 암닥터에서 저에 대한 자료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스페샬 암 담당 의사가 너에게 연락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주일도 안되서 간호사 실에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면서 암수술 결정여부를 담당하는 의사와의 일정을 알려왔습니다.

이 나라는 급한 환자 - 암, 심장관련 즉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으면 가장 우선권이 있습니다. 아주 신속하게 대처합니다.

 

그 분의 전문분야는 내분비과 의사였습니다.

그 분께서 저의 모든 자료를 넘겨받으시고 저에게 병력과 가족사를 물어보시고 곧 나를 수술한 의사와 연결 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저에 대해서 다 들어서 아이가 둘이 있다는 것도 써놓고도 소견서를 나중에 카피해서 읽어보니 " 이 젊은 여성(기분이 좋아서 자랑삼아 쓰는 것입니다. 주책이죠?)이 어쩌구 저쩌구 ", 나중에는 [미스최]라고 변신되어 있더군요.

동양여자는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외국사람들 눈에는 젊고 미스처럼 보이나봅니다. ^^

 

그 후 약 열흘 후에 이비인후과 수술담당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검사한 조직검사 샘플을 들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엄마의 수술과정 등등을 알아야겠기에 모두 데리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선생님은 제가 갖고 간 초음파 스캔 씨디를 열어보려고 해도 프로그램이 맞지 않아서인지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또 조직검사 샘플도 다 망가져서 읽을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렇지만 제가 떼어간 영문 진단서를 보시더니, 나의 혹들이 아주 작은 상태이고 또 갑상선 암의 진행속도가 느린 것을 생각해서 좀 더 경과를 지켜보고 혹이 자라고 있나를 확인한 다음에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또한 아무리 조직검사를 했다고 하나, 작은 샘플만으로 암이라고 단언하기에도 무리가 있으니 좀 기다려보자고 하셨습니다.

요사이에는 수술을 조기에 하자는 경우와 혹이 커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는 것이 낫다라는 의견들도 있으니까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검사를 해 보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때가 6월 초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만약에 암이라면 , 그리고 2년 전에는 없던 암이 갑자기 또 하나 생겼고 또 0.45미리까지 자랐다면  이 녀석은 좀 기분이 나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조직검사를 한번 더 받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지만, 한국 기술을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쨋든 초음파 스캔은 다시 받는 것으로 하고 수술 일정을 9월 초로 예상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존 왈샤스키 선생님께서는 수술 후의 부작용 -성대의 마비, 부갑상선의 기능손상으로 인해서 오늘 칼슘생산중단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비행기 사고와 같은 확률이라고 극히 드믄 부작용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쨋든 시간이 흘러 9월이 되어서 남편은 한국에서 휴가를 내서 왔고 수술 일정은 9월 6일로 결정되었습니다.

수술  1주일 전에 병원에 가서, 수술전 상담을 받았습니다.

 

나의 약물알러지, 특히 진통제에 대한 알러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저는 코데인에 대한 과민반응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할때 마취가 늦게 깼었거든요.

 

간호사와 레지던트가 와서 저의 모든 병력을 묻고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나니 마취담당의사가 오시더군요.

연세가 지긋하시고 위엄있어 보이시는 분이셨는데 , 레지던트선생님이 자기가 조사한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보고 하니까 교육까지 시키더군요.

그랬더니 내가 진통제와 마취에 대해서  왜 그렇게 예민했는가를 다시 레지던트에게 묻더군요.

특히 여자가, 또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들이 진통제와 마취제에 대해서 예민한 통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듣는데 ----사실은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걸렸습니다 총 2시간 넘게 병원에 있고 피검사를 받고 집으로 오는데 완전 녹초가 되었습니다.

 

수술 당일에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대기실에서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챠트를 작성하느라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손목에 이름표를 붙이고 담요를 덮어주는데

무료의료체재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많이 낡은 것들이었습니다.

 

오후 12시가 되어서 저를 침대차로 끌고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캐내디언 할머니가 함께 수술실 앞까지 따라와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수술실 안에는 여러 환자들이 수술용 파란 부직포 모자- 정말 샤워캡같은 것-을 쓰고 퍼런 부직포 양말을 신고 제각각 침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십분 쯤 후에 저를 수술하실 존 와샤스키 의사선생님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보조원이 저의 침대를 끌고 마취실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간호사가 저에게 와서 이름과 기타 등등을 대조하면서 약물에 대한 알러지 질문을 하고 차트를 대조했습니다.

그 곳에 있어보니, 중국분들과 필리핀분들의 간호사 보조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더러 어느 나라에서 왔냐면서 한국사람이라니까 친한 친구도 한국인이라면서 정말 친절하게 대해줬습니다.

마취실에 들어가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서 저를 마취해 주실 의사선생님이 와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걱정이 되냐 물으시고 자기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잘 부탁하고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하니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고맙다고 응대를 해 주었습니다.

 

발에 링거를 꽂고 곧 이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후 정신을 차려보니 온 몸이 저릿저릿하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구역질도 계속 나고 간호사들은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통제를 주사하는 것 같아서 나는 진통제를 안 맞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마음뿐, 소리를 안나오고 속삭이는 소리만 나옵니다.

심장을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자기 일들만 바쁩니다.

 

얼마후 토할 것 같이 메슥대더니 구토가 시작됩니다.

간호사들이 종이로 된 일회용 트레이를 제 입에 갖다 대고 저를 운반하여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저는 계속 웩 웩

 

갑자기 저의 눈에 눈이 둥그레 크게 떠진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편도, 딸도 , 또 캐나다 할머니도 저를 기다리고 계셨나봅니다.

병실에 들어온 시간은 거의 6시였습니다.

이번에도 마취에서 잘 깨지를 못해서 시간이 2시간이나 더 오래 걸렸습니다.

 

대기실과는 달리

병실은 호텔처럼 크고 깨끗하고 2인 병실이었습니다.

침대는 에어침대로 규칙적으로 에어가 매트를 돌고 있었습니다. 오래 누워있는 환자들의 등에 신선한 공기와 순환을 시켜주나봅니다.

다리에는 부종을 예방하기 위해서 에어맛사지기를 붙여주었습니다.

침대는 최신식으로 마치 일등석 비행기 의자처럼 전 자동입니다.

 

계속 꽥꽥대면서 먹은 물과 침등을 토하고 있고, 또 온 몸은 꿇어앉아있다가 일어난 발처럼 아프게 저립니다.

특히 얼굴은 짜리리리 하여 마치 사이다를 먹고 트림을 계속 하는 느낌입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번갈아 맛사지를 해주고 남편은 괴로운지 트레이를 들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이 와서 어찌나 다정하게 말을 걸고 상태를 묻는지 정신없이 토하는 중에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찹니다. 그 사람들이 눈을 뜨고 있으라고 해서 눈을 뜨니 흐릿하지만 모두 천사같이 고마운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새벽녁, 저는 거의 온 몸이 바늘이 돋아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찌르르했습니다.

그러더니 저의 엄지 손가락이 자꾸 검지 쪽으로 붙는거였습니다.

 

간호사들은 시간마다 와서 피를 뽑아가고 또 혈압을 체크하고 또 수액을 체크하고 제가 토하는 것들을 갖다 버리고....한번은 왁 다 토해서 환자복이 다 젖었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괜찮다면서 침대시트며 환자복이며 다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새벽녁에 검지가 엄지가 너무 달라붙고 오그라들기에 간호사를 응급으로 불렀습니다.

깜짝 놀라서 달려온 간호사 칼슘제재 2알과 특수 비타민 디를 제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하루에 네 번씩 칼슘과 특수 비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칼슘이 부족해서 즉 부갑상선 부분에서 제 역할을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백조증세(swan syndrome)라고 말하더군요.

엄지가 검지쪽으로 붙어서 마치 백조날개처럼 된다고 그렇게 이름붙였나봐요.

 

수술의사가 와서 저의 수술과정을 저에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수술부위가 작아서 저의 한쪽 부갑상선을 옆으로 옮기고 저의 갑상선을 떼어냈다고 하더군요.

칼슘이 부족하면 근육이 오그라들고 더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우리의 몸은 오묘막측하게 지어졌다는 성경귀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저의 갑상선의 혹을 보니, 모두 정상적으로 보이는 작은 혹이 두개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얼마나 저를 혼내주고 싶었는지.....

조금 더 기다리며 경과를 보자고 했었는데 그 말을 안들은 것과

또 조직검사를 한번 더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한 것과

교회 목사님들과 여러 분들이 특별 안수기도회를 해 주셨는데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는지도 체크 안한 저의 작은 믿음에 대한 후회들이 밀려들어와서....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암이 아니었다면......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이 고생은 다 무엇인가.....날아가버린 나비를 다시는 돌릴 수도 없는데......

 

저의 자녀들이 " 엄마...이미 끝난 일이예요. 암이 아니었어도 어쩔 수 없잖아요. 맘 편하게 갖고 계세요....."

 

저의 몸 상태--칼슘레벨이 너무 낮고 구토와 어지럼증상태가 좋지가 않아서 병원에서 3일을 입원해 있었습니다.

여기는 보통 당일이나 이튿날 퇴원을 시킵니다.

입원해서 계속 토하고 - 마취제와 진통제 부작용 그러는 중에 식단표주문표가 왔습니다.

저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그 식단표에는 아침, 점심, 저녁 메뉴들이 빼곡하게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체크하면 내가 주문한대로 식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재미있어서 아이들하고 이 맛은 어떤 맛일까 의논해서 체크를 다 했습니다.

어짜피 구토때문에 못 먹을 것이지만 궁금했습니다.

트레이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고 뚜껑이 있고 그 안에는 플라스틱 용기안에 음식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프며, 빵이며, 버터 및 소금 후추는 일회용으로 나왔고 잼이랑....^^

 

또 병실과 화장실에는 휴지며 샴프, 세수하는 물비누, 일회용 스펀지 칫솔, 일회용 치약....

아침마다 배달되는 얼음이 담긴 물컵과 빨대, 언제든지 물을 달라고 하면 배달해 주는 분들

이 모든 것들이 다 갖춰져 있었고 서랍을 열면 많은 용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인턴간호사들이 제 병실에 와서 실습을 하였습니다.

몸을 닦아주고 이를 닦아주고 손과 기타 모든 잡일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나이가 지긋하기도 하고 또 외국에서 이민와서 공부를 다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학원을 했다고 한 남자분도 있었고

멕시코에서 수학교사를 하던 여자분도 만났습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분들이었지만 이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다시 공부를 하는 이 분들의 용기와 결단에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퇴원해서 고개를 높게 베개를 세개나 올려놓고 잠을 잤습니다.

사실 수술부위는 별로 아프지가 않아서 내가 수술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있었을때 컨디션이 나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수술부위에는 반창고가 붙어있어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벼운 사워는 할 수 있다고 해서 샤워도 매일 했습니다. 수술 열흘 후에 피검사를 먼저 받고 수술 의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저의 수술자리 실밥을 뽑아주시고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직 피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바로 목주름에 있고 아랫쪽이어서 괜찮아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보니 목이 부어있어서 불룩 주머니같이 보이더군요.

아마 이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무결찰, 무배액관 갑상선암 수술을 시행하고 있었나봅니다.

그렇지만 로봇수술 등 다양한 수술은 하지 않고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고 효과적인 것만 - 미용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2주일 후에 또 피검사를 받고 의사선생님과 면담이 있었습니다.

저의 갑상선을 떼어낸 조직검사 결과를 듣으러 가는 날입니다.

 

저의 피검사 결과는 칼숨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칼슘을 하루에 2천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스페샬 비타민 디는 이제 그만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저의 조직검사결과, 한개는 유두암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톨셀이라고 아주 공격적이고 빨리 자라는 다른 종류의 암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암세포 잔재수치는 6부터 방사동위원소치료를 받게 되어있는데 저는 5.68이라고 하시면서

내분비과 의사와 만나서 상담을 받고 방사동위치료를 받을지 안받을지 결정을 같이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범사에 감사해야 할 명분이 확실해졌습니다. 암이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렸습니다.

 

 

 

그 이후 또 한번의 피 검사를 받고 맨처음 저를 암수술할 수 있도록 결정한 내분비과 의사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께서 제가 방사동위원소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고, 간단하게 치료의 진행단계에 대해서 설명하신 후에 뭐 질문이 있냐...그래서 저의 소견서와 수술결과서를 카피해 달라고 했습니다. 전문용어들이어서 저도 저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읽어보려고요.

에구, 한국같으면 저에대해서 잘 알아들었을텐데 외국에 있다보니 잘 알아들은 것인지 맞는 말인지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칼슘의 농도는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칼슘을 계속 복용하라고 하시더이다. 신지로이드와 함께....

일주일 후에 톰베이커 암센터에서 스페샬 의사와 예약을 해 놓았습니다.

방사동위치료를 받으면 바다소금이나 생선 등등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길래 집에 오자마자 식이요법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간도 없이 오직 설탕과 식초와 후추만으로요. 먹을 것이 없어서 암울했습니다.

그래도 요오드를 먹으면 안되기에 나름 최선을 다해서 식이요법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날짜가 통보되었습니다.

10월 25일은 암센터에 있는 세미나에 참석해서 교육을 받고, 10월 26일 - 저의 결혼 26주년 기념일입니다-이 바로 암센터 의사와 만나는 날이라고요.

저는 암센터 의사와 만나서 방사동위원소 치료를 받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러 가서 내용을 들어보니, 보통 의사와 만나서 치료를 결정을 하면 한달이나 그 이후에 그 치료가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악......난 그런줄도 모르고 벌써부터 식이요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대를 하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이름도 괴이한 콘부름.....

 

간호사가 몸무게를 재고 혈압을 쟀는데 정상적이였던 혈압이 134에 80....

그 간호사가 저더러 한국인이냐고 물으면서 당신의 딸이 한국의 영어강사를 할때 한국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는데 저와 똑같은 성이라고 하더군요. 손녀 사진도 보여주면서 자기가 한국에도 몇번 나갔다 왔다가 하시더군요.

참 아름답고 날씬한 할머니 간호사분이셨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커피를 마시겠냐면서 직접 커피를 들고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키가 크고 얼굴이 좀 붉으신 의사분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가 커피 마시면서 담소를 하는 것을 보더니, 아니 내 방에서 뭘 하느냐면서 간호사더러 빨리 나가라고 눈을 찡끗하시면서 과장스럽게 몸짓을 하시는거예요.

우리 모두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려는 제스추어겠지요.

 

하여튼 이 분께서 저더러 레디알엑티브아이오다인 트리트먼트를 하게되면 따르게되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설명하셨습니다.

삼십년 후에 또 다른 암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그렇지만 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른 장기에 전이될 가능성보다는 확률이 적다라는 말씀도 하시면서, 하겠냐 안하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히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렸죠.

 

식이요법에 대한 설명과 또 우리 집에 내가 혼자서 잘 방과 화장실의 여유가 있냐고 물으시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3일동안은 공공장소에 나서지 말고, 5일간은 가임 여자하고 가까이 하지말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씀 등등...

 

그 분이 한국사람들에게 김치를 안먹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본인도 김치를 좋아해서 매일 김치를 먹고 집에서 담가 잡수시기까지 하신대요.

유대인출신인데도요.

나더러 김치를 담글 줄 아냐고 물으면서 내가 담근 김치 맛을 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에 치료받으러 갈때 갖다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남편도 없이 아이들을 돌보다가 4년이 채 되지 않아서 걸린 갑상선 암!

 

앞 선 검사시스템, 시설, 의료기술, 또 환자를 배려하는 이 모든 체재의 혜택을 듬뿍 누렸습니다.

이 의료체재에 너무 감사하며 제가 아는 모든 캐나다분들께 저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저의 감사를 어찌나 기뻐하면서 다행이라면서 좋아하시는지....

 

이제 11월 18일까지는 6일이 남았습니다.

 

매일 운동을 1시간씩 하고 기타 식이요법에 필요한 안내서를 주셔서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페에 가입해서 보니, 캐나다에서 준 안내서에는 들어있지도 않은 아주 자세한 안내와 함께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접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합니다.

또한 같은 처지의 분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큰 위안인지 감사하고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서 힘든 과정을 이겨내셨고 또 잘 이겨내실 것을 믿고 또 응원을 드려요.

저도 잘 이겨내서 다시 건강한 몸뿐 아니라 더욱 성숙해진 정신으로 이제부터는 그동안 받아왔던 것을 되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캘거리에서 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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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줄리엣1004 | 작성시간 12.02.25 읽는내내 가슴뭉클하게 잘 읽었습니다.내내 건강하세요
  • 작성자바이올렛1 | 작성시간 12.04.27 아우~~ 너무 생생해서 제가 수술맏은 것 같은 느낌이어요 ^^*
    근데 암이어서 감사하다니요 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화산 | 작성시간 12.05.15 수술하고나서는 암이라면 오히려 감사한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수술하기전에는 암이 아니길 바랐지만 수술해서 갑상선을 전부 떼어 낸 뒤 암이 아니라고 하면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요. 돌이킬 수도 없는 상태니까요. 그러니까 암이어서 감사한 거지요. ㅎㅎㅎ
  • 작성자여호수아 | 작성시간 12.05.17 님의 자세한 투병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타국에서 또 남편이 없는 상황에 많이 힘드셨겠어요.하지만 앞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만 있을거라 확신하면서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 작성자슬뮈짱 | 작성시간 12.07.18 수술기다리고 있는저에게 너무나 상세한 투병기가 많은도움이 됩니다..
    많이 힘드셨을텐데 잘이겨 내셔서 정말 다행입니다...빨리회복하시고 언능 건강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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