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꾸려 가지고 새벽부터 식당에 나와 앉아있던 사람들이 환성을 지른다. 우렁찬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카트만두로 나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부지런히 왔지만 구름 안개가 루클라 일대를 뒤덮는 바람에 하루 더 주저 앉아야 했던 트레커들이다.
루클라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짝퉁 스타벅스도 있고, 맛있는 빵을 구어내는 베이커리들도 서너군데 있지만 떠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히말라야가 아무리 좋다 해도 역시 잠깐 들렸다 가는 곳일 뿐이다.
건기가 시작되면 날씨가 좋아진다는 말은 사실 반쪽만의 진실이다. 오전 날씨는 쾌청하지만 오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뜨거운 햇살로 대기의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구름 안개가 밀려 든다.
그리고 가끔씩은 비구름이 몰아치기도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도 날씨가 엉망인 날이 사흘이나 계속되더니 루클라를 떠나기로 되어있는 마지막 날에는 아예 천지가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다. 이런 형편이니 아무도 드나들지 못한다.
구름이 덮히면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면서 한치 앞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비행기는 뜨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안 뜨냐고 불평할 수도 없다. 이런 날 비행기를 탔다가는 목숨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루 예비일은 짱에서 보낼 생각이었지만 그건 이미 틀렸다. 다음날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이나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짱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맡겨둔 가방을 공항으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런데 짱이 또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마체르모로 올라간 나왕을 H양이 퇴 쳤다는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젠 감도 안 잡힌다. 짱은 전후사정을 자세히 알 수도 있겠지만 카트만두에 도착하는 대로 타이 항공 카운터로 가야 할 형편이다. 천상 이메일로 나중에 H양에게 물어 보는 수 밖에 없다.
햇살이 자취를 감추면 산속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산행 중에는 윈드자켓이나 다운자켓들을 언제라도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한다. 그러나 공항에 나갈 때는 소홀히 하는 부분이다.
카트만두는 저지대라서 따뜻하다. 하지만 그쪽 기후에 맞춰 옷을 입고 루클라 공항으로 나갔다가는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 꼭두새벽부터 언제 뜰 지도 모르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공항 안은 냉장고같이 썰렁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연발 연착은 네팔에선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지, 비행기는 뜰 수 있는지 얘기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체크인 시간에 늦지 않게 나오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가보면 항공사 직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눈치껏 기다리다가 커피샵으로 가거나 롯지로 돌아가는 등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서울이나 미국식 서비스를 네팔에서도 기대한다면 절망감에 빠지기 십상이니 그런 건 처음부터 포기하는게 낫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니 그까짓 비행기 엔진 소리에 열광한다 해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아침 햇살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꽁데도 다시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