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황량한 대지를 지나 천산산맥의 남쪽 기슭에 다다랐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살갗을 파고드는 타오르는 뙤약볕이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숨결이 실려 오는 그 바람은 뜨겁고도 건조하여,
입을 열면 혀가 먼저 모래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아커쑤의 보석, 원쑤(溫宿) 대협곡의 홍석림은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사막의 건조한 숨결 속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위구르어로 '쿠들룩(Kuduluk)'이라 불리는 이 협곡의 이름은 '아찔하고 신비로운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 하나에 이미 경고와 유혹이 동시에 담겨 있는 셈이다.
협곡은 세 개의 주요 골짜기가 한자 '천(川)' 자 모양으로 갈라지고,
거기서 다시 열두 개의 지류 협곡이 뻗어나가 총 200여 평방킬로미터의 광활한 지질 세계를 이룬다.
그 안에는 협곡, 광곡, 절벽, 암주(岩柱), 그리고 홍석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지구 박물관을 완성하고 있다.
이곳의 공기는 지독하리만큼 메말라 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느껴지는 건조함은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하고,
피부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자외선은 마치 보이지 않는 불길처럼 온몸을 감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잔인한 햇살과 메마름이야말로 홍석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예술가다.
습기 하나 없는 공기는 억겁의 세월 동안 바위의 부식을 늦추었고,
뜨거운 태양 빛은 바위 속 산화철 성분을 자극해 대지를 피보다 진한 선홍색으로 불타오르게 만든다.
지질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바위는 탄산칼슘과 산화철이 혼합된 시멘트질 성분으로 굳어져 있어 건조한 환경에서 독특한 침식 구조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동남아시아의 다른 단하(丹霞) 지형과는 달리 이곳의 바위는 훨씬 더 날카롭고 웅장한 기둥 형태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
지질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장엄한 풍경의 서막은 약 1억 4천만 년 전인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은 거대한 강과 호수였고,
물이 실어 나른 붉은 모래와 자갈들이 층층이 쌓여 거대한 지층을 형성했다.
이후 히말라야 조산운동이라는 거대한 지각의 요동이 평평했던 땅을 밀어 올렸고,
그 위로 사막의 모래바람과 간헐적인 홍수가 정교한 끌질을 시작했다.
약 2,600만 년에 걸쳐 빚어진 이 침식 과정은 단순히 바람이 모래를 깎아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동안 암염(岩鹽) 카르스트 작용이 더해지고,
그 사이를 얕은 진흙류가 흘러내려 절벽 면에 특유의 줄무늬와 동굴을 새겨 넣었다.
협곡 안쪽에 존재하는 암염층은 빗물과 만나 서서히 녹아내리며 크고 작은 동굴을 만들었고,
그 위의 바위 천장이 무너지고 남은 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기둥들이다.
사진 속의 기괴한 바위 기둥들은 그렇게 수천만 년 동안 뜨거운 열기와 건조함을 견뎌낸 지구가 깎아낸 '시간의 조각상'인 셈이다.
2005년 중국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으며 세계적인 지질 유산으로 공인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과학적 신비 위에 현지인들은 훨씬 오래된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전설은 단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그것은 세대와 세대를 거치며 조금씩 살이 붙고 언어가 바뀌며 비로소 한 지역의 정체성이 된다.
원쑤 협곡의 전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마 이 협곡을 처음 맞닥뜨린 목동의 놀람이었을 테다.
황혼 무렵 서쪽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질 때,
붉게 타오르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그는 무언가 인간의 힘을 넘어선 존재가 이곳에 깃들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감각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마을을 돌며 부풀어 마침내 전설이 된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천산을 지키던 황금 용의 것이다.
먼 옛날, 이 일대는 사악한 기운이 몰려와 가축이 쓰러지고 오아시스가 메말라 가는 재앙의 땅이 되었다.
천산의 수호신인 황금 용은 그 기운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싸움은 길고도 처절했다.
용이 사력을 다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동안 그의 몸에서는 선혈이 쏟아졌고,
그 피가 대지 위로 스며들어 지금의 홍색 사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용이 마침내 숨을 거두고 남긴 그 붉은 빛은 영원히 대지에 새겨져, 지금도 천산 남쪽 기슭을 불타오르게 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산화철의 마법이라 설명되는 저 붉은 빛이,
전설 속에서는 용의 희생으로 재탄생하는 지점에서 과학과 신화는 묘하게 맞닿는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아무런 현미경도, 아무런 원소 분석표도 없이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이
이 땅의 빛깔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읽어냈다는 것이.
또 다른 전설은 이 기둥들의 기원을 군사(軍事)로 설명한다.
옛날 이 지역을 침범하려던 적군이 협곡 어귀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바위 속에서 거대한 기둥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올랐다고 한다.
적군의 눈에는 그것이 천산을 지키는 신병(神兵), 즉 신의 군대처럼 보였다.
말들이 공황에 빠지고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 전설은 아마도 협곡 안을 처음 탐색한 이들이 바위 기둥의 압도적인 규모와 기기묘묘한 형태에서 받은 경외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높게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바위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갑옷을 두른 군대보다도 위압적이다.
이 전설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다.
협곡이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협곡의 좁은 입구는 적군을 차단하기에 최적의 지형이었으며,
현지의 유목민들은 이 자연의 요새를 자신들의 땅을 지켜주는 신성한 경계로 여겼다.
그리고 이 전설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굳어지는 데는 무자르트(穆紮特, Muzart) 고도(古道)의 역할이 컸다.
원쑤 협곡은 바로 이 고대 실크로드의 지선, 천산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던 무자르트 고도가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낙타와 말에 비단을 싣고 험준한 천산을 넘던 상인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서역으로 향하던 순례자들,
그리고 황명을 받고 서역을 평정하러 나선 병사들이 모두 이 협곡 옆을 지나쳤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은 이 붉은 기둥들을 올려다보며 무사 안녕을 빌었고,
협곡 바위 틈에 이름 없는 소원을 새겨 넣었다. 그렇게 협곡은 단순한 지형을 넘어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거대한 병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은 누군가의 손이 닿은 것처럼 저마다의 이름을 얻었다.
'대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기둥은 풍만한 여인의 실루엣을 닮았고,
'쌍둥이 포플러'는 함께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나무를 연상시킨다.
그 이름들을 붙인 것이 지질학자였는지, 아니면 오래전 그 옆을 지나친 이름 모를 여행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두려움을 친숙함으로 바꿔왔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저 우뚝 솟은 바위 병사들 사이에 서면,
자연의 위용 앞에 절로 숙연해지는 서늘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햇살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쓴 여행객들의 모습은 태고의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탐험대처럼 보인다.
뙤약볕 아래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걷는 것은 고된 일이지만,
협곡 사이를 지나는 메마른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어느덧 실크로드를 오갔던 옛 상인들의 낮은 노랫소리가 되어 돌아온다.
낙타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어디선가 호마(胡馬)의 거친 숨소리가 바람에 섞이는 듯하다.
협곡의 깊은 어둠 속, 암벽에는 아직도 고대의 벽화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수백 년 전 순례자가 소박한 도구로 새긴 그 그림들은 지금도 이 바위 속에서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다.
협곡을 빠져나오는 길, 신발 밑창에 묻은
붉은 모래를 털며 생각한다.
인간의 한 평생은 이 바위가 사막의 바람에 1밀리미터 깎여 나가는 시간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이 전설들도 마찬가지다.
황금 용의 피이든, 신의 군대이든, 그 이야기들은 인간이 이 거대한 침묵 앞에서 느낀 경이와 두려움이 빚어낸 또 하나의 지층이다.
지질학적 지층 위에 신화의 지층이 쌓이고, 그 위에 역사의 지층이 덮이고, 다시 그 위에 여행자들의 발자국이 새로운 지층을 이룬다.
아커쑤의 홍석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과 메마른 대지가 수억 년간 써 내려온 장엄한 서사시였으며,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솟아오른 지구의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는 성소였다.
그리고 인간은 그 성소 앞에서, 언제나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경배해 왔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으로.
붉은 협곡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황혼 무렵, 저 멀리 바위 기둥 꼭대기에 마지막 햇살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용의 피처럼 붉었고, 신의 군대처럼 고요했으며, 수억 년의 시간처럼 무겁고 아름다웠다.
마실정회동